
윤석열 정권 3년 동안 국회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였다. 행정과 사법을 장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아예 사유화해버린,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창피한 윤석열이 끝내 손에 넣지 못하고 그저 패싱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국회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압도적 과반을 유지하지 못했더라면 윤석열은 계엄 없이 합법적 독재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윤석열의 꼭두각시였던 검찰이 그 패거리의 범죄 혐의를 눈감아줄 때 국민을 대신해 특검법을 통과시켜 압박했던 것도 국회였다. 비록 윤석열의 거부권 남발에 번번이 좌절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국민의 압박을 더해 재발의를 거듭하며 거부권을 거부할 수 있는 재의결 정족수에 한 발짝씩 다가갔다. 윤석열이 불법 계엄이라는 자폭 버튼을 눌렀던 건 이런 국회의 영향도 컸다.
불법 계엄이자 내란의 목표물이 된 국회는 윤석열의 선택을 결과적으로 자폭이 되게 만들었다. 국회의장을 비롯한 수많은 국회의원이 목숨을 걸고 국회 담장을 넘어 들어갔던 그 밤의 장면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회자되고 기억될 것이다.

출처-<국회의장실>
그 밤, 국회의원을 비롯한 국회 보좌관들과 국회 직원들은 시민들과 함께 계엄군에 맞서 대한민국 역사의 거대한 갈림길 한쪽을 지워냈다. 비상계엄 해제안을 의결한 뒤에는 내란 대통령을 탄핵하고 헌법재판소의 인용을 이끌어냈다.
윤석열 정권 3년 내내 최후의 보루가 되어 지키고 버틴 것도, 윤석열의 폭주를 멈춰 세우고 자리에서 끌어낸 것도 모두 국회,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이 한 일이었다.
이춘석 사태

여당인 민주당 소속 4선 국회의원이자 법사위원장 이춘석 의원은 8월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폰으로 주식 거래를 하다 언론사 카메라에 그 모습이 찍혔다.
문제는 거래를 하는 주식 계좌가 의원 본인의 것이 아니라 보좌관 차 모 씨 명의였다는 것이고 보유한 주식 종목들이 AI 관련주였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장을 맡아왔는데 새 정부 AI 정책과 관련이 있는 곳이어서 이해충돌 소지까지 있다.
주식 차명 거래만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한 금융실명법 위반 행위인 데다 공직자윤리법 위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까지 더해지면서 이춘석 의원은 코너에 몰렸다. 기자들에게 ‘차명 거래한 사실은 결코 없다고’ 주장하던 그는 결국...
하루도 못 가 민주당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여당 지지자들까지 분노하고 있다. 단순히 실정법을 위반한 것에 대한 실망을 넘어선 허탈과 분노다.
먼저, 여당의 4선 중진의원에 법사위원장이라는 자가 법을 어겼다는 것만으로도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범법 사실이 드러난 상황이 기가 막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의 스마트폰 화면이 찍혀 보도되는 것이 어디 한두 해 일인가. 언론사 카메라가 의원들 스마트폰만 잔뜩 노리고 지켜선 본회의장에서 이제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찍히는 것보다는 의원들이 필요에 따라 일부러 찍혀줄 때가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시절이다. 뭐 잘하는 짓이라고 스마트폰 화면을 본회의장에서 부주의하게 노출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범법 행위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각조차 없어 보이는 모습에 그저 황망할 뿐이다.
위법 행위에 대한 무감각에 그가 앉은 법사위원장 자리의 무게를 더하면 분노가 몇 배로 커진다. 여당 지지자들은 법사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이름의 면면만으로도 일희일비하고 천당과 지옥을 오갔었다. 법사위원장이 내란 진압과 개혁 입법 과제 수행의 선봉장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자가 대체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다른 곳도 아닌 국회 본회의장에서 남의 명의 주식계좌로 거래를 하다가 경을 치는가 말이다. 여기서는 거래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액수가 작으면 작은 대로 화가 치민다.
하필이면 ‘주식’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노동자 안전 문제를 포함한 노동 인권과 주식 시장의 거래 질서 유지와 제도 보완을 통한 한국 증시의 재평가 등이다.
무려 여당의 4선 중진인 이춘석 의원은 여기에 비수를 꽂았다.

그렇잖아도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는 사안에 관한 여당 의원이나 정부 인사의 의혹을 캐고 없는 의혹도 만들어 담가버리는 게 보수 언론의 메인 레퍼토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부 여당 인사의 부동산 의혹이 그랬고 공정 프레임에 가둬 버린 조국 사태가 그랬다. 이제 막 들어선 이재명 정부에서는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의혹이 한동안 뉴스를 잠식했다. 며칠 전부터는 주식 양도세 과세 요건과 관련한 세제개편안으로 난리가 나고 있었다.
이춘석 의원의 주식 차명 거래 의혹은 개인 차원의 법 위반 의혹을 넘어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동력 자체를 꺾어버릴 수 있는 사안이다. 기가 차서 다시 말할 수밖에 없는 사실, 그런 일을 한 자가 초선, 재선 의원도 아니고 4선의 법사위원장이었다.
자진 탈당하고 법사위원장에서도 물러나 이제는 수사를 통해 책임지게 하면 될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쯤에서 드는 불안감이 있다.
과연, 이렇게 얼빠진 여당 국회의원이 이춘석 하나뿐일까.
정청래 당대표라 다행이다
고개를 돌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내란 국면에서 보여줬듯 훨씬 눈 뜨고 보기 힘든 지경이다.
내란을 부정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우 스피커가 당당하게 국힘 당대표 후보들이 자신에게 면접을 봐야 한다고 말하고 여기에 유력 후보가 응답하는 당이 국민의힘이다.
윤석열 정권에 부역한 현역 의원들의 각종 의혹이 매일 같이 쏟아지고 수사 대상에 오른 의원 수를 헤아리자면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라다.
그래도 국힘 의원의 행태를 민주당 옆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이 필요한 정당의 의원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에 대한 단죄는 그것대로 허술함 없이 진행해 나가야겠지만, 여당은 여당대로 ‘정상범위’ 안에서 평가해야 한다.
정청래 신임 당대표가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아닌 것과 사람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를 윤석열 정부와 비교하는 것도 일종의 모욕이다. 그런 태도를 가져야 진짜로 국힘을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몰아낼 수 있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정청래 후보와 박찬대 후보는 모두 내란 진압과 탄핵 정국에서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이번 경선에서 누가 승리해도 민주당을 잘 이끌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없다.
누가 더 나은 후보인가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이춘석 의원의 차명 거래 의혹 건을 보면서 민주당의 당대표 경선 결과에 만족감을 느낀다. 다수의 민주당 현역 의원들과 더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면서 선수들의 주장 격으로 뛰는 것보다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지휘, 감독할 수 있는 사령탑의 역할을 하는 당대표가 지금의 민주당에 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수를 가진 역사상 가장 강한 여당이다. 자정 시스템을 얼마나 잘 갖추느냐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성공 여부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 명운까지 갈릴 수 있다.
머슴에게 눈을 떼면 안 된다
12월 4일 새벽, 목숨을 걸고 국회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에 모인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
이듬해 8월 4일, 본회의장에 앉은 한 의원은 스마트폰으로 보좌관 명의의 주식 계좌에 접속해 주식을 거래했다.
이것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는 국회의원이다.
어느 쪽이든 될 수 있는 국회의원을 (국민을 대변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회의원으로 남게 하려면 끊임없이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2주 전, 글에서 뽑아놓고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주인은 머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가끔 타박도 하고 잔소리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결론은 같다.
정신 못 차리면 제일 앞장서서 혼내고 야단쳐야 한다. 당원으로서든 국민으로서든 우리의 한 표가 언제까지고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야 한다.
국힘을 저 지경으로 만든 건 결국 국힘 당원과 지지자들이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상기해야 할 일이다.
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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