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세대 아이돌 시대
H.O.T. 이전에 10대 가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대성기획의 이호연 사장은 10대 소년 듀오를 데뷔시켰다.

팀 이름이 아이돌 그 자체다.
출처 〈IDOL 1집 - 바우와우〉 앨범 재킷
1996년 초 발표된 아이돌(IDOL) 1집 〈바우와우〉는 귀여운 외모와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TV에 나오는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모습에 큰 어색함을 느꼈다. 그동안 보던 성인 가수들과 함께 있는 학생 가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아빠 양복을 입은 어린아이 같았다.
확실히 ‘감각의 승부사’ 이호연 사장의 눈은 달랐다. 이들의 풋풋함과 소년미는 시장 선점 효과를 톡톡히 보았고,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은 어른들에겐 귀여움을, 또래들에겐 친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두 멤버 모두 외국인 학교에 다니는 교포라서 한국말이 서툴렀음에도 그것마저 귀엽게 봐줄 정도였다.
하지만 가수로서 한계도 명확했다. 이들은 충분한 트레이닝 기간 없이 회사의 기획과 프로모션의 힘으로 단시간에 데뷔한 사례였다. (최혁준은 오디션이 아닌 이호연 사장이 당구 치러 갔다가 얼굴을 보고 발탁했고, 이세성은 추천으로 뽑혔다) 이들의 성공은 당장의 실력보다 갖고 있는 끼와 외모, 기획사의 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활동이 끝날 때까지 ‘전국 청소년 가요제 참가번호 4번’ 수준의 실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학업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출처 〈IDOL 2집 - 환상 체험〉 앨범 재킷
실력을 재정비할 틈도 없이 2집 〈환상 체험〉을 발표했지만, 곧바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이미 H.O.T.나 영턱스클럽같이 일정 기간 트레이닝을 거친 팀이 등장하면서 팬덤 이탈이 가속화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쟁력을 잃은 아이돌은 1997년 고별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1년 만에 해체하게 되었다.
한편, 듀스의 소속사였던 뮤즈기획도 새로운 10대 듀오 ‘언타이틀(Untitle)’을 제작했다.

유건형은 이현도를,
서정환은 김성재의 롤을 따랐다.
출처 〈언타이틀 1집 - 책임져〉 앨범 재킷
이들은 듀스의 열렬한 팬으로, 그들처럼 되고자 팀명도 듀스 2집 수록곡 〈무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1집 타이틀곡 〈책임져〉는 시그니처 안무인 태권도 춤을 내세우며 순위 프로그램 상위권에 올랐고, 준수한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앞서 소개한 아이돌과는 다르게, 언타이틀은 유건형이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맡고 서정환이 작사, 랩, 안무 등을 담당하여 자기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 그룹이었다. 그들의 지향점인 듀스의 결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듀스를 좋아했던 팬들도 동생 그룹 같은 언타이틀에 친근감을 느끼며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인 것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듀스는 가요톱텐 1위를 하진 못했다.
출처 〈언타이틀 2집 - 날개〉 앨범 재킷
언타이틀은1997년 발표한 2집 〈날개〉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다수의 음악방송 1위를 기록하고 음반 판매량도 밀리언을 달성하는 등, 수상 커리어로는 그들의 우상인 듀스를 뛰어넘었다. 듀스의 3집이 그러했듯, 명반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 3집 〈꽃〉을 발표하지만 아쉽게도 명반이 되지도, 흥행을 기록하지도 못했다. 평화와 사회적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 대중과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내는 방법이 서툴렀고, 그즈음 부쩍 늘어난 아이돌 그룹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낸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본인들 역시 아이돌 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인기 그룹이었기에 그런 ‘디스’는 오히려 다른 팬들의 불편함을 일으켰다.

아쉽게도 듀스의 음악적 아성을 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출처 〈언타이틀 3집 - 꽃〉(좌) 앨범 재킷
〈언타이틀 2집 – 떠나가지 마세요〉(우) 앨범 재킷
3집을 끝으로 해체한 듀스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로 4집 〈떠나가지 마세요〉를 마지막으로 발표하며 해체했고, 각자 원하는 음악적 행보를 걸었다. 언타이틀의 활동은 듀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어서 해체는 이미 예견된 것과 다름없었다. 특히 유건형은 god, 비 같은 가수들의 히트곡뿐만 아니라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한국인 최초 빌보드에 입성한 작곡가가 되었다.

출처 〈이지훈 1집 - 왜 하늘은〉(좌) 앨범 재킷
〈양파 1집 - 애송이의 사랑〉(우) 앨범 재킷
그 외 이지훈, 양파, 김수근, 이기찬 같은 10대 솔로 가수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특히 양파는 1집 〈애송이의 사랑〉으로 ‘가요톱텐 최연소 골든컵’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전교 1등’이라는 모범생 후광까지 받으며 10대 가수를 춤추고 노는 ‘날라리’쯤으로 생각했던 어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성기획은 5인조 혼성 그룹 ‘잼(ZAM)’과 여성 듀오 ‘코코’를 제작하며 나름 성공적인 사업을 펼쳤지만, 이 팀들은 오래 활동하지 못했다. (이호연 사장은 그 이유에 대해 공통적인 한 사람을 지목했다) 그 후 뮤를 제작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누구보다 빠르게 학생 듀오 ‘아이돌’을 데뷔시켜 먼저 시장에 진입했지만, 이 또한 철저한 기획하에 준비된 H.O.T.의 등장으로 선두를 빼앗겼다.
이호연 사장이 예상보다 빨리 ‘아이돌’을 해체시킨 건 새로운 10대 그룹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팬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이 팀의 시작은 하와이에 놀러 간 이호연 사장이 김창진 씨가 운영하던 클럽에서 은지원과 강성훈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 유학생이던 둘을 캐스팅해 듀오 제작을 준비하던 중, H.O.T.에게 무너지는 ‘아이돌’을 보며 6명으로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SM의 ‘팀 구성원 수 +1 전략’을 펼쳤다) 추천과 오디션을 통해 뽑은 2명과 이주노 사무실에서 연습하던 2명을 합류시켜 빠르게 데뷔 준비를 마쳤다.

일본 쟈니스의 V6의 토니센, 카미센 컨셉을
참고한 호연사마... 다메요...
출처 〈젝스키스 1집 - 학원별곡〉(좌)(우) 앨범 재킷
그렇게 1997년 남성 6인조 그룹 ‘젝스키스(Sechs Kies)’는 1집 〈학원 별곡〉으로 데뷔했다. ‘6개의 수정’이라는 독일어로, 화이트 키스와 블랙 키스로 나눠 팀 속의 팀이라는 일종의 유닛 개념을 선보이려고 했으나, 활동 내내 별다른 개별 활동은 없었다. 타이틀곡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H.O.T.와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담은 강렬한 노래와 춤으로 포스트 서태지를 지향한 팀이었다.
이호연 사장은 박소현, 이본, 오현경 같은 당대 미녀 배우들도 매니지먼트했을 정도로 스타를 보는 눈이 탁월한 전략가였다. 그는 평소 가수에 비해 배우 매니지먼트는 수입 루트가 단순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여배우들의 역할을 예능 MC, 라디오 DJ로 영역을 넓혀 소속 가수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이본은 〈볼륨을 높여요〉, 〈슈퍼선데이〉, 박소현은 〈FM 데이트〉, 〈충전 100% 쇼〉 같은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에 젝키는 엄청난 홍보 혜택을 누린 셈이었다.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TV에 출연해 팬들을 모았고, 신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주말 예능에 본인들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레귤러 코너도 맡게 되었다. (물론 이호연 사장이 방송국 PD들과 친한 것도 여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초상권과 저작권 없이 팔리는
H.O.T. 상품들을 보며 미리 준비를 한 듯하다.
63빌딩에서 열린 굿즈 사업 설명회.
출처 〈KMTV 뉴스〉
기획 단계에서는 팀의 로고를 만들고 캐릭터 작업을 진행해 의류, 스티커, 머그컵 등 다양한 종류의 굿즈(Goods) 사업까지 발표하며 미래 엔터 산업의 수익 다각화에 대한 식견까지 보여주었다.
결국 아이돌의 성공 포인트와 실패 요인을 잘 배합해서 기본적인 실력이 갖춰진 담당 멤버들을 선별했고, 후발 주자가 나오기 전에 재빠르게 나온 작전이 통했다. H.O.T.가 2집을 준비하던 공백기에 기가 막히게 등장한 6명의 미소년은 많은 소녀 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며 그들의 강력한 라이벌, 대항마로 떠오르게 되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H.O.T.는 2집 발표를 예고했고, 1집에서 얻은 인기만큼이나 그들의 컴백은 연일 화재였다. 대성기획이 TV 매체를 공략했다면, SM은 잡지를 적극 활용했다. 앨범 준비 기간의 소식을 잡지 인터뷰와 화보로 내보이며 팬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한 공백기 전략을 펼쳤다.

이 잡지들의 발행인 신성철은
이수만의 형, 이수영의 지인이다.
출처 〈뮤직라이프, 포토뮤직, I love star〉잡지 표지
〈뮤직라이프〉, 〈포토뮤직〉, 〈토마토〉, 〈I love star〉 등을 통해 멤버들의 일상과 스토리를 공유했고, 이 잡지들은 H.O.T.의 전속 화보집처럼 매회 그들의 소식을 전했다. 물론 그들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판매 부수가 급증했기 때문에 서로 상부상조가 된 것이긴 하다.
문희준의 부상으로 컴백이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2집 〈늑대와 양〉은 연간 판매 1위를 기록했고, 제작자로서 이수만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1집의 성공 이후 2집은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감이 있었는지, 1집의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라갔다. (타이틀곡은 강하게, 후속곡은 귀엽게 가는 전략)

타이틀은 강하고 후속곡은 귀엽게 가는
흥행 공식을 따라 1997년 연간 판매 1위 기록
출처 〈H.O.T. 2집 - Wolf and Sheep〉앨범 재킷
타이틀곡 가사에 들어간 ‘빌어먹을’이라는 비속어로 인해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큰 타격은 없었고, 사실상 숨겨둔 필살기는 후속곡 〈행복〉이었다.
같은 해, 정식 유료 팬클럽 ‘Club H.O.T.’를 창단했다. 가입자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 가수를 응원하고 지지할 명분과 소속감을 부여받은 듯 강력한 팬덤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당시 공식 유료 팬클럽 10만 명이라는 최다 인원수를 기록했고, 아이돌 응원 풍선의 고유색(H.O.T.는 흰색)을 만들어 낸 시초이기도 했다.

단일 그룹 최초로 잠실 주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덤 규모
출처 〈SBS 한밤의 TV연예〉
지금은 소녀시대 써니 아빠로 알려진 이수만의 형, 이수영은 스타월드를 설립해 SM 소속 가수들의 팬클럽 모집과 관리, 초상권 침해 대응과 굿즈 제작 전반에 대한 지원을 담당했다. 이로써 정기적으로 팬들에게 입금을 받는 합법적 캐시카우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익 다각화 전략은 현재 K-POP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익 모델이 되었다.
이후 H.O.T.는 2집 앨범의 3번째 활동 곡인 〈We are the future〉까지 히트시키며 MBC, SBS, 골든 디스크, 서울가요대상까지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다. (KBS는 임창정이 수상하며 아쉽게도 올킬에는 실패했다) 이때부터 이수만은 모든 방송 활동을 접고 제작자로서의 행보에 집중했다.

1집 발표와 동시에 2집 녹음을 시작했다고 한다.
출처 〈젝스키스 2집 - Welcom to the SechsKies land〉앨범 재킷
‘따라가는’ 젝키는 여유가 없었다. 또 다른 후발 주자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1집 활동을 마무리하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2집 〈기사도〉를 발표했다. H.O.T.와의 1대1 구도에 다른 팀이 낄 수 없게 하려는 전략이었는데, 성공적으로 적중했다.
SM이 유영진이라는 메인 작곡가를 중심으로 확실한 전속 프로듀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제작이나 콘셉트에 시간을 들였다면, 대성기획은 대표 이호연의 식견으로 젝키에게 어울릴 만한 인기 작곡가들의 곡으로 앨범을 채웠다. H.O.T.가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내세웠다면, 젝키는 다른 가수들이 불러도 이질감이 없는 대중적인 노래들로 보다 넓은 연령층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특히 곡을 만들고 콘셉트를 정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공백을 최소화했는데, 다만 휴식기가 줄어든 만큼 늘어난 가수의 살인적인 스케줄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젝키는 데뷔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2장의 정규 앨범을 냈고, 연말 콘서트를 열고 이듬해엔 어린이 뮤지컬까지 소화하는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방송 도중에 졸거나 인터뷰를 하면서 멍하니 있는 모습도 종종 포착되곤 했다. 꿈을 이루고 돈과 인기도 좋지만,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비즈니스 세계에 들어와 너무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SM은 H.O.T.의 후속 가수로 3인조 걸 그룹을 제작했다. 그동안 걸 그룹으로 데뷔한 팀들은 있었지만, 얼마 활동하지 못하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대부분 외모 하나만 믿고 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실력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솔로로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H.O.T.가 여학생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보이 그룹이라면, 반대로 남학생들의 지지를 받는 10대 걸 그룹에 대한 수요도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고 한다.

한(바다), 미(유진), 일(슈) 3국의
특징을 다 담은 그룹이라는 설명.
출처 〈S.E.S 1집 - I'm your girl〉앨범 재킷
1997년 1집 〈I'm your girl〉로 데뷔한 S.E.S.는 달랐다. 이전 걸 그룹들이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조하거나, 소년과 같은 중성적인 매력의 댄스팀들이었다면, S.E.S.는 옆집 누나, 동생 같은 친근함과 소녀 같은 청순함을 극대화한 팀이었다. 미국의 TLC와 일본의 Speed,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를 적절히 배합한 기가 막히게 현지화한 걸 그룹의 탄생이었다. 특히 각 멤버가 한국, 미국, 일본의 특색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S.E.S.는 단숨에 인기 가수로 자리 잡았다. 주요 소비 타깃층을 남학생에 맞췄음에도 여학생 팬들까지 새로운 걸 그룹의 등장을 반겼다. S.E.S.는 이후 등장한 걸 그룹들의 구성, 콘셉트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K-POP 걸 그룹의 이미지와 방향성을 제시한 정석과도 같은 그룹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성기획은 이번에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당초 ‘뮤’에서 활동한 김준희를 중심으로 힙합 그룹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게 되었고, S.E.S.의 성공을 목도한 후 ‘+1’을 외치며 4인조 걸 그룹을 제작했다.

출처 〈핑클 1집 - 블루레인〉앨범 재킷
그 결과, 1998년 핑클(Fin.K.L.)이 1집 〈블루레인〉으로 데뷔했다. 젝키 때와 마찬가지로 이호연 사장의 영향력 아래, TV 출연 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 나갔고, 젝키의 리더 은지원이 수록곡 〈쉐도우〉에 피처링하는 등 패밀리십도 보여줬다. 그러나 이들의 데뷔곡 〈블루레인〉은 S.E.S.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미지근한 반응을 우디르급으로 뒤엎은 장본인은 이호연 사장이었다. 멤버 모두 너무 유치해서 반대했던 〈내 남자 친구에게〉를 과감하게 후속곡으로 정하며 빠르게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블루레인〉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청순함보다는 후속곡에서 보여준 말괄량이 같은 깜찍함이 멤버들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 빠르게 팬덤을 구축하며 인기 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젝키도 데뷔 앨범에서 하지 못한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기록했고, 세 번째 활동 곡 〈루비〉까지 히트시키며 S.E.S.와의 라이벌 구도를 굳혔다.

초창기 한국 아이돌 산업의 라이벌
SM의 이수만(좌), DSP의 이호연(우)
출처 〈SM엔터테인먼트〉
〈DSP엔터테인먼트 〉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수만 대표가 철저한 기획형 전략가였다면 이호연 대표는 감각의 승부사였다. 확실하게 이끌지 못할 거면 빠르게 뒤따라가는 ‘확실한 이인자’ 전략은 생존을 위한 대성기획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의 유명한 별명 ‘다트사마’는 멤버 구성, 타이틀곡, 콘셉트, 컴백 시기 등 아무도 그 기준을 몰라 ‘혹시 다트에 던져서 결정하는 거 아니냐’는 팬들의 우스갯소리에 기인한 것이다.
그만큼 촉과 감이 뛰어났고, 당시 그가 발굴했던 이효리, 은지원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능 섭외 1순위라는 걸 보면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요즘 표현으로 ‘감다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이 그룹과 걸 그룹의 라이벌 구도를 이끌어낸 SM과 대성기획은 시장을 양분했다.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로 대표되는 이 구도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서로를 성장시키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위해 더 열광했고, 기획사들은 더 나은 기획과 콘텐츠로 경쟁했다. 1세대 아이돌 시대를 이끄는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은 두 기획사는 K-POP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Jay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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