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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은 늘 차갑고 서늘하다. 지면을 벗어난 발이 여유를 부리는 사이 허리춤으로 파고드는 공기는 땅에서 마주하는 그것보다 시리다. 앞과 옆, 심지어 위아래 모두 뻥 뚫려 있기 때문에 바람을 피할 수 없는 밤하늘에서 제일 빌어먹을 순간이라면 길을 잃어버렸을 때다. 허공에 멈춰 서서 오들오들 떨다 보면 절로 욕이 나온다. 표지판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처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옛날 사람들은 별을 보고 걸었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멀리 도시의 불빛을 살필 수도 있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다. 쉬운 방법이라면 고속도로 같이 길을 따라가면 되지만 그것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한밤중에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남자를 만났을 때, 운전자들이 겪을 당혹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나는 우선 땅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가방에서 GPS를 꺼내 보기 위해서는 헬멧을 벗어야 했고, GPS를 떨치기라도 했다가는 영영 미아가 돼 버릴 수 있었다. 멈춰선 자리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오니 다행이 어느 시골에 야산쯤 되는 것 같았다. 한밤중에 산속에서 낙엽을 밟으며 헬멧 벗었다. 등에 맨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GPS를 꺼내기 위해 손을 집어넣다가 문득, 내가 처음 이걸 사러 갔던 날이 떠올랐다. 전날 밤, 내가 중력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한 행동은 네비게이션을 사러 가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오전에 가게 문을 닫고서 근처에 내비게이션 전문점을 찾았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은 사장이 나른한 고양이처럼 앉아 있었다. 등 뒤로는 내비게이션들과 방향제, 스티커 같은 자동차 용품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옆으로는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사이드 미러들이 나를 비췄다. 그 가운데 턱수염을 기른 사장은 슬리퍼에 추리닝을 입고서 유리로 된 진열장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어딘가 축 늘어진 폼이 밥을 잔뜩 먹고 낮잠 자기 직전에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는 고양이 보다 더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내비게이션 하나 사려고요.”


 “차에다……. 설치하시게요?”


그는 말투마저 나른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박자가 묘하게 틀어지면서, 문장의 끝맺음도 명확하지 않았다.


 “아니요, 높은 데서도 사용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도 있나요?”


 “높은 곳?”


 “네. 높은 곳. 아주 높은 곳.”


 “높은 곳이라면 얼마나?”


 “그게…….”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산에서 쓰실 거예요?”


 “네?”


 “등산가서 산에서 쓰실 거냐고요.”


 “뭐, 비슷……. 하겠네요.”


 “그런 물건이라면 저희 가게에…….”


남자는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했고 혼자 뭐라 중얼거리는 듯하더니 말했다.


 “취급……. 합니다. 보통 등산용 GPS는 전문점으로 따로 가셔야 하지만…….”


그는 몸을 일으켜 아래에 놓인 진열장으로 손을 뻗었다. 눈은 계속 나를 쳐다보면서 손만 뒤적거리다가 이내 상자 하나를 꺼냈다.


 “우리 가게는 있습니다.”


언뜻 반짝이는 듯한 그의 눈을 쳐다보며 내가 물었다.


 “그럼 혹시 나침반 같은 것도 팔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길 찾는 데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지도도 구해 드려요.”


 “지도요?”


 “네. 일반인은 구할 수 없는 그런 지도. 뭔지 아시죠?”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남자는 포장을 모두 뜯더니 무전기처럼 생긴 물건을 내밀었다.


 “보통은 등산용 GPS라고 부르는데 실제로는 GPS 측정기죠. 이게 중국에서 만든 물건인데 성능은 보장합니다. 무엇보다도 사용이 편해요. 신호도 잘 잡죠. 특히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알람도 울려요.”

 

 “배터리는요?”


 “충전해서 쓰시면 됩니다. 스마트폰 충전하시는 잭 있죠? 그걸로 꼽으면 충전되고, 한번 해 놓으면 일주일은 쓸 수 있습니다.”


 “위치는 어떻게 입력해요?”


 “기계에서 직접 입력하셔도 되고, 컴퓨터에 연결해서 입력하셔도 됩니다. 어디 한번 찍어 보실래요?”


 “네. 잠깐만요.”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좌표를 불러줬다.


 “여기로 입력해 주세요. 경도 125점, 57점…….”


 “저기 그렇게 읽는 게 아닌데요.”


 “네?”


남자는 고개를 내밀어 내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을 봤다.


 “경도 125도 57분 35초, 위도 34도 9분 40초.”


그는 눈으로 화면을 읽으며 손으로는 능숙하게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화면에 알아먹을 수 없는 한문과 함께 나침반 그림이 떴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숫자가 보였다.


 “여기 보시면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이 입력한 목적지고, 밑에 보이는 숫자가 남은 거리입니다. 대충 한 310km 정도 되네요. 가만있자…….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좌푠데? 경도 125도 57분이면....”


 “얼마죠? 카드로 결제하고 싶은데.”


 “17만 5천 원입니다.”


 “자, 카드 여기 있습니다.”


남자는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았고, 결제를 하면서도 뭔가 표정이 개운치 않았다. 상자를 받아들고 나오는 내게 그가 말했다.


 “거기가……. 혹시 거긴가요?”


 “네. 뭐……. 그렇죠.”


나는 더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다. 허나 그가 눈치를 챈 듯했고 어느새 종이가방에 물건을 담아 문 앞까지 나를 배웅해 줬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과 미안함이 묻어 나오는 몸짓. 그날 이후 간혹 만나게 되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사실 처음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언제나처럼 빌어먹을 집구석이 싫어 새벽에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어머니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서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그곳. 아침에 출근을 할 때면 아버지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일어나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내게 ‘벌써 나가니?’라는 말을 한마디 남긴 후 TV를 켜고 앉아서 퇴근해 돌아올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점심나절쯤 아버지가 일어나 혼자 술을 드시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저녁쯤엔 마시다 지친 아버지는 다시 안방에서 쓰러지고, 집으로 돌아온 내가 냉장고에 다시 소주병을 채워 놓는다. 식탁에 널린 반찬 뚜껑을 치우는 사이 어머니는 ‘피곤할 텐데 일찍 자라’라는 말을 남기고 동생 방으로 들어 가 버린다. 싱크대를 둘러보고, 밥통을 열어 보면 두 분 다 계속 식사를 거른 것 같다. 나는 마저 주방을 치우고, 텔레비전을 끄고, 씻고, 양치질을 하고 방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와 슬리퍼를 신는다.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게 보통 새벽 2시쯤이다.


그때가 하루 중 제일 개운한 시간이다. 밤하늘을 보고서서 찬 공기를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가끔은 내뱉는 숨에 멍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벽마다 불빛 반짝이는 동네를 내려다보며, 그 시간까지 불이 켜진 집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하다가, 밤하늘에 별자리를 찾기도 했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다 보면 기분은 괜찮아진다.


몇 달을 그렇게 보냈다. 제자리에 서서 숨을 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몸이 떠오른 것이다.


처음엔 그냥 그랬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뜬 게 아니라 주변 공간이 그대로 내려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엘리베이터는 내려가는데 내 몸은 그대로 있어서 위로 붕 뜬 느낌.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탔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이상한 일이었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뭔가 몸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대로 마음만 먹으면 조금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잠시 땅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발을 굴러 위로 솟구쳤다. 금세 하늘을 날았다.



공기는 차가워졌다. 사방은 점점 고요해지고 평생 발에 붙어 있던 것들이 멀어지면서 내 몸은 풍선처럼 떠올랐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리 집과 동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컴퓨터로 보던 위성사진처럼 같았다. 가까이 있을 때는 그렇게 분주하고 복잡하던 것들이 새삼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불빛들은 소박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데 그 아래에서는 다들 죽자 살자 살고 있었다.


입으로 꺼내기는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말. 그 말을 뱉었을 때처럼 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선을 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 더 높이 올라가면 그대로 지구를 떠나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금세 발가락이 시려서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된 나이. 남자에게 서른 즈음이란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무슨 일을 겪더라도 호들갑 떨지 않고, 제법 어른인 척 뭐라 말할 수 있는 나이. 하지만 하늘을 날게 되고 나서부터, 그게 어려웠다. 간혹 가게에 손님과 나, 둘만 있을 때. 아니면 간만에 만난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제법 취기가 올라왔을 때. 경박스럽지 않더라도 제법 근사한 자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그날도 그랬다. 몇 번의 연습으로 이젠 제법 멀리 날 수 있을 때쯤이었다. 찬호가 갑자기 술 한잔하자고 불렀고 나는 비행할 때 입으려고 산 검정색 바이크 슈트를 입고 나갔다. 내 옷차림을 보고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연거푸 술만 마셨다. 간지러운 입을 달래려 마른 오징어만 씹었다. 마요네즈에 섞인 짠맛이 입안에 퍼질 때쯤, 녀석이 내게 물었다.


 “야. 너 그거 기억하냐?”


 “뭘?”


 “왜, 우리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학년에서 누가 자살했던 사건 기억하지?”


 “기억하지. 그때 무슨 여자애가 그랬잖아.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려가 지고.”


 “정확히 기억하네. 어제 갑자기 유미가 그 이야기를 꺼내더라.”


 “유미? 아참, 애는 잘 크냐? 백일 넘었지?”


 “응.”


나, 그리고 이제는 부부가 된 찬호와 유미는 셋 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학생 때는 나랑 찬호만 친했지 유미는 서로 알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모두 같은 대학을 가게 됐고 나만 빼고 둘이서 연애를 하더니 지금은 아이까지 낳아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에 애랑 셋이서 거실에 앉아 있는데, 유미가 갑자기 그러는 거야. 그때 자살한 여자애 기억하냐고. 그래서 내가 기억한다고 했지. 꽤 유명한 사건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유미가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뭐라고 하는데?”


 “부러웠데.”


 “부러워?”


 “응. 자기는 그 자살한 여자애가 부러웠데.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왜?”


 “사실대로 말하자면, 좀 쫄았다. 우리가 셋 다 고등학교 동창이고, 그때 죽은 애가 왕따로 죽은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내 마누라가 누군가를 자살할 때까지 괴롭혔다던가, 하는 폭탄 발언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부러웠다’ 라니……. 더 심장이 덜컥 주저앉는 느낌이더라.”


찬호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요즘은 좀 괜찮아졌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런데 다시 그래?”


 “아무래도. 너도 알잖아. 너네 부모님도 있으면서…….”


 “하긴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뉴스에서도 안 나오더라.”


 “응.”


 “1년쯤 지나서야 배를 건지네 마네 하더니, 지금은 아예 아무 말도 없잖아. 인양 계획 같은 거 통보 안 왔어?”


 “그 사람들이 언제 우리한테 알려 주고 일하는 거 봤냐? 다 지들이 알아서 결정 하는 거지.”


 “그러게……. 그러고 보면 우리 막내처남은 참 빨리 올라왔어. 거의 열 번짼가 그랬잖아.”


 “그랬지.”


 “와……. 그때 참 기분 이상하더라. 사람이 물에 불어버리니까 얼굴은 알아볼 수 없는데, 옷이랑 신발이랑 다 나하고 유미가 사준 거였어.”


 “너도 너네 처남 좋아했잖아.”


 “그랬었지. 어린놈이 큰 매형한테 ‘형, 형’ 그러면서 살갑게 구는데 누가 싫어하겠냐. 착했어 우리 막내 처남. 얼굴도 똑똑하고, 잘생겼고.”


찬호는 속이 답답한 듯 맥주를 한잔 들이켜고 말했다.


 “그나저나, 너는 옷이 그게 뭐냐? 오토바이 타?”


 “아 이거? 나 요즘 날아다녀. 바람이 차가워서 입은 거야. 윗공기는 많이 시리더라고.”


 “미친놈. 적당히 해라. 무슨 비행 청년도 아니고.”


 “알았어.”


우리는 서로의 잔을 채웠다. 빈 마음보다 술잔을 채우는 건 훨씬 쉬운 일이었다. 테이블 위로는 빈병들이 쌓여갔고, 안주가 몇 차례 새로 나왔다. 빈정거리는 농담과 옛날이야기, 자동차 이야기,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을 갔다가 가계 밖으로 나가자 이미 계산을 마친 찬호가 서 있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조금 휘청이는 자세로 내게 물었다.


 “벌써 2년이다.”


 “응.”


 “제기랄. 뭔 일이냐 이게? 수학여행 간다던 애들이 졸업할 나이가 돼 버렸네.”


 “저번 달에 졸업식도 했을걸.”


 “힘내라. 젠장.”


 “너도. 유미한테도 안부 전하고.”


 “그래. 나중에 또 보자.”


찬호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서로 오랜 술친구다. 둘 다 마시기를 좋아하고 잘 취하지도 않는다. 대학생 때도 그렇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셨다. 그런 우리가 1차에서 마무리하고 각자 헤어지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역시 이젠 호들갑 떨 나이는 지나버렸다.


잠시 후 바로 대리기사가 와서 찬호는 돌아갔다. 나는 술을 마신 터라 날아서 가지 않았다. 두 발로 걸어서 집으로 갔다. 허나 기분만은 붕 떠서 하늘을 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찬호에게도 그랬지만, 나는 위로에 서툰 사람이다. 누군가를 용서 해 본 적 없고 특히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라면 더욱 난감하다. 녀석과 만나고 돌아온 다음 날, 약간의 숙취에 시달리면서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날 그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하기 적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오징어만 씹다가 꺼내기 어려운 말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그날, 내가 하늘을 날게 된 날 가게에 한 여학생이 찾아왔다.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얼굴에 옷차림도 요즘 학생들답지 않게 수수했다. 평일 오전에 커피를 마시러 왔다는 점을 빼고는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내 카페는 시내 금융가 쪽에 자리 잡은 테이크아웃 점문점이다. 테이블이라고 해 봐야 가게 안쪽에 두 개 정도 있고, 길가로 뻥 뚫린 구조여서 보통은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들리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헌데 그 학생은 아침 11시부터 찾아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더니 테이블에 앉았다. 마치 커피를 처음 마시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잔을 잡고 입으로 불어 식혔다. 가게에는 나와 학생 둘뿐이었다. 얼마 후 손님이 몰릴 시간이라 이른 점심이나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학생이 말을 걸었다.


 “저기요. 아저씨.”


 “네?”


 “저기…….”


 “무슨 일이죠?”


 “그게……. 아저씨, 용준이 형 되시죠?”


 “네. 제가 용준이 형인데요.”


내 대답을 듣더니 그 학생을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내내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죄송해요 아저씨. 죄송해요.”


난감했다. 누구를 위로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서툰 내게 심지어 여자가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 건 좀처럼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커피가 식고 그 학생의 눈물이 그치기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수영이라고 밝힌 그 학생은 테이블에 있는 티슈를 반 통 정도 다 쓴 후에야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도 용준이랑 같은 배에 타고 있었어요. 그날 용준이 때문에 살았어요.”


간만에 동생의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권용준. 2년 전 그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녀석. 나와는 다르게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제법 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놈이었다. 못난 형이 취업도 안 되고 좋아하는 커피로 가게를 차린다고 했을 때, 나서서 부모님을 설득해 줬었다. 나이 차가 10살이나 나는 동생이지만 간혹 나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날도 수학여행 갈 때 옷 사 입으라고 돈을 줬더니, 그대로 들고 가서 부모님 선물을 사오겠다고 하던 녀석이다.


 “처음부터 용준이랑 아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저는 문과고 용준이는 이과라 학교에서는 서로 볼 일도 없었어요…….”


그날 둘은 같은 배에 탔고, 같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정이었는데 아침 9시쯤에 배가 가라앉았다.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처음에는 다들 가만히 있다가 나가야 된다고 해서 움직였을 때는 이미 배가 많이 기울었어요. 복도를 기어서 올라가야 됐는데…….”


그때 마주친 사람이 용준이었다고 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힘들어하는 수영이를 끌고 문 앞까지 왔지만 내 동생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용준이가 먼저 저를 밀어줬어요. 위에 매달렸던 아저씨들이 제 손을 잡고 끌어올려 줬는데 문밖으로 나가니까 갑자기 물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수영이는 당시 생각이 났는지 잠시 숨을 고르며 어깨를 움츠렸다. 나도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말해준 용준이의 모습은 딱 그 녀석 다웠다.


2년 전 그날 어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치며 전화를 걸었을 때, 이미 뉴스에서는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용준이네 학교 학생들과 다른 승객들까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배에 타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나와 부모님은 어디다 연락을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날 저녁 동네 사람들과 함께 바로 진도로 향했다. 찬호도 유미도 그날 같이 내려갔다. 배가 가라앉은 곳과 가장 가까운 항구에 도착했고 얼마간, 책임자라는 사람들에게서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쇼를 구경해야 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또 가족이 죽어서 돌아온 사람들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유미가 그런 모습이었다. 우리는 몇 달을 버티며 용준이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최종 실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수영이라고 했지? 고마워. 정말로.”


수영이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덕분에 용준이가 마지막에 어땠는지 알 수 있었네. 전화 연락도 안 되고 많이 답답했었는데 덕분에 알게 됐어. 그리고 미안해하지마. 정말로. 괜찮아.”


이번 2월 달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수영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도 힘들고 온종일 집에만 있다고 했다. 그러다 어떻게 우리 부모님 이야기를 들었는지 내 가게를 찾아온 것이었다.


 “수영아. 요즘 집에서 계속 쉬고 있어?”


 “네.”


 “부모님은?”


 “두 분 다 출근하세요.”


 “낮에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아니요 괜찮아요. 혼자 있는 게 편해요.”


 “그렇구나. 혹시 알바 해볼 생각은 없니?”


 “네?”


 “우리 가게에서 커피 만드는 거 배워 볼래?”


 “커피……. 요?”


 “그래. 가게는 작아도 내가 커피 하나는 끝내주게 내리거든. 주변에서도 유명해. 낮에 할 일 없으면 아저씨, 아니 오빠한테 커피 만드는 거 배워라. 나중에 가게 넓히고 체인점도 생기면 점장 시켜줄게.”


 “감사합니다.”


 “자. 여기 내 명함이야. 울지 말고. 가져갔다가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아이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는 식어버린 아메리카노 대신에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카페모카를 한잔 내려줬다. 수영이는 처음보다 조금 더 나은 얼굴로 잔을 받았다. 커피 맛이 좋아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하늘을 날 수 있었다.


GPS를 확인해 보니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 그대로 쭉 30분 정도만 날아가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을 확인할 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잠시 후 밀린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대출광고. 방송국 PD. 그리고 수영이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사장님 저 알바 할게요.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나요?’


나는 짤막하게 답장을 했다.


‘내일. 아침 10시까지 가게로.’


그리고 한마디 더 썼다.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시간은 거의 자정이 다 돼갔다. 나는 다시 휴대폰 끄고 매고 있던 가방 안에 넣었다. GPS로 방향을 확인한 후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갔다.


앞으로 나아갔다. 이내 풍경이 바뀌고 바다가 보일 때쯤, 맞게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더 속도를 냈을 때 가방 뒤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목적지가 점차 가까워진 것이다.


경도: 125° 57' 35.75"

위도: 34° 9' 40.67"


인터넷으로 찾은 좌표였다. 용준이가 탄 배가 가라앉은 자리. 2년이 지나도록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고 동생을 태운 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사실 알람이 울리고 기계가 위치를 알려준다 한들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날처럼 뉴스만 보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전원 구조했다는 말만 믿고 부모님을 안심시키던 그 빌어먹을 형의 모습 그대로다.


오토바이 헬멧에 바이크 슈트를 챙겨 입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수영도 할 줄 모르는 멍청이다. 진도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내 괜찮다는 말 밖에 할 줄 몰랐고, 지금은 그 말조차 바닥나 버려서 냉장고에 소주병 채우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 용돈을 챙겨 줄 게 아니라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갔어야 했다. 용준이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도 먹고 같이 야구도 보러 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쯤엔 둘이서 술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참 야속하게 되어버렸다.


발아래에서 바다가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보는 눈도 없어서 나는 수면 위로 낮게 날아갔다. 짠 내가 올라왔다. 저 물을 한꺼번에 들이켰을 상상을 하니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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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지났다. 용준이는 아마 그날부터 쭉 그 자리에 있을 테고, 나는 하늘을 날아서 어디든지 갈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동생을 데려올 수는 없다. 이대로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졌다.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이 같은 모습이었다. 달빛과 별, 바람. 그리고 시커먼 바닷물의 일렁거림이 낯설었다. TV로 보던 그 바다는 환하게 불을 밝히고 너도나도 달려들어 사람을 찾고자 했는데 지금은 모두가 잠잠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던데, 잊을 사람들은 알아서 잊어 가는 것 같았다.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뜬 게 아니라, 세상이 주저앉은 게 아닐까. 세상 전체가 주저앉았는데 나는 멍청하게 따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무는 바람에 그 주저앉은 만큼 하늘로 떠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제법 그럴듯했다.


아니면 그날 배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익숙했던 ‘아래’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천장이 뒤집혔듯이 지금 내가 갇힌 세상의 뒤집혀 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위로 솟구친 게 아니라 하늘 위로 계속 추락하고 있던 것일까?


목적지에 도착하면 동생에게 묻고 싶었다. 넌 어떤 기분이었냐고. 나는 이런 기분이다고. 세상이 뒤집어진 틈을 타 하늘을 날고 있는 철없는 형이다고. 보고 싶었다고.


육지와는 다른 제법 차가운 바닷바람이 스친다. 나는 지금 야간비행 중이다. 물어볼 게 많은 동생을 만나러 가고 있다.


-끝.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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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헙드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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