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을 기억하시는가. 안경닦이부터 와인 오프너, 돈까스까지 파헤치며 딴지일보의 제작비를 거덜 내던, 그래서 편집장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전설의 시리즈. 그랬던 내가. ‘불가사리의 법률 대모험’으로 돌아왔다. 서정아트센터 사기극부터, ‘월 천만 원’에 낚여 날아간 캄보디아 취업 사기, 그리고 결정타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계약한 지식산업센터 분양권까지.
그렇다. 나는 망했다. 완벽하게.
지난 편, 이 모든 절망의 끝에서 나의 영원한 돈까스 메이트 박기태 변호사는 내게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아니오.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겁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회생? 파산? 그건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인생 다 말아먹은 ‘인생 낙오자’들이나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이 딴지의 간판 필진인 내가!
“변호사님! 지금 제정신입니까! 저더러 신용불량자 되라는 말이에요? 그 끔찍한 걸 왜 합니까! 당장 캄보디아 놈들이 내 명의로 받은 대출금 독촉 전화에, 투자 사기꾼들이 쫓아오고, 분양권 잔금 폭탄까지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그거 종이 쪼가리 하나 법원에 낸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박 변호사는 내 처절한 절규를 묵묵히 들은 뒤, 오늘 들어 세 번째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고쳐 썼다.
“불가사리님. 그게 끔찍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지옥 같은 상황을 해결할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열쇠가 될 수 있어요.”
1. 사기 피해자: 지옥의 추심을 멈추는 ‘법적 보호막’
“열쇠는 무슨 얼어 죽을 열쇠! 당장 캄보디아 놈들이 내 명의로 대출받은 그 사금융 놈들, 보이스 피싱 놈들한테 매일같이 전화가 빗발치는데! 회생 신청하면 그 사람들이 ‘아이고, 그러셨군요. 천천히 내십시오’ 하고 봐준답니까? ‘빚 떼먹는 놈’이라고 더 쫓아오고 회사까지 찾아올 텐데!”
“스톱. 바로 그겁니다. 그 지옥을 ‘즉시’ 멈추는 게 첫 번째예요.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금지명령(禁止命令)’을 받는 즉시, 모든 채권자의 전화, 문자, 방문, 심지어 급여 압류 시도를 포함한 일체의 독촉 및 추심 행위가 법적으로 중단됩니다.”
“모... 모두요? 아니, 1금융권 은행이야 법을 지키겠죠. 근데 그 사채업자, 대부업체, 캄보디아 놈들이랑 연결된 놈들이! 법원 명령서 하나 날아왔다고 전화를 끊는다고요? 말도 안 돼!”
“말이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막 나가도 법원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면 ‘과태료’ 수준이 아니라 ‘영업정지’까지 갈 수 있어요. 그들도 사업자입니다. 법원의 금지명령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일단 법원이 ‘전원 스톱!’을 외치는 겁니다. 그래야 불가사리님이 숨이라도 쉬고 다음을 생각하죠. 이게 사기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법적 보호막’입니다.”
“와... ‘세상에 이런 것까지?’ 싶긴 하네요. 근데... 하나 더 있어요. 제가 투자 사기에 당한 것도 있고... 솔직히 제 과실이 있잖아요. 캄보디아 간 것도 제 욕심이었고. 법원에서 ‘너도 바보같이 속았잖아. 네 과실도 있네’ 하면서 불리하게 보지 않을까요?”
“전혀요. 법원은 채무 발생 원인에 대해 기본적으로 법적 중립성을 가집니다. 물론 도박이나 명백한 사치, 낭비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사기 피해는 달라요. 본인 과실이 일부 개입된 경우라도 ‘상환 능력’이 없는 게 입증되면 구제해 줍니다. 오히려 요즘 법원은 이런 사기 범죄 피해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에요.”
“적극적이라고요? 법원이?”
“네. 특히 ‘전세사기’ 피해자들 보세요. 이게 완전 사회적 재난이 되니까, 법원에서 아예 실무 준칙을 새로 만들었어요. 이게 진짜 ‘세상에 이런 것까지?’의 결정판입니다. 통상 3년인 의무 변제기간을 2년 내외로 단축시켜주고, 가장 핵심적인 거! ‘회수 불가능한 전세보증금을 채무자의 재산 가치(청산가치) 산정에서 제외’해 줬습니다.”
“...그게... 뭐... 뭐가 좋은데요?”

출처 〈한겨레〉 (링크)

출처 〈연합뉴스TV〉 (링크)
“월 변제금이 확 줄어든다는 거예요! 원래는 ‘네 재산(돌려받지 못할 보증금 포함)만큼은 갚아라.’였는데, 이젠 ‘그 보증금은 없는 돈 칠게. 네 소득으로 최소한만 갚아’가 된 겁니다. 법원이 그냥 ‘법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살리려고 한다는 겁니다. 불가사리님 같은 사기 피해자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사기 피해자는, 회생 파산을 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고소를 해야 합니다. 꼭 받을 돈이 없더라도요. 불가사리님처럼 캄보디아 같은 곳에 다녀온 경우라면, 본인 명의의 계좌가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도 있으니, 본인이 처벌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자수의 의미에서도 고소를 하는 게 좋고요.”
2. 유령 분양권: 수억짜리 계약을 ‘합법적’으로 찢어버리는 필살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와... 전세사기는 진짜... 그렇다 쳐요. 근데 제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이 지식산업센터 분양권! 이미 중도금 대출이 실행돼서 계약 해제도 못 해요! 계약서에 ‘어떠한 경우에도 해제 불가’라고 도장까지 찍었다고요! 수억 원짜리 잔금 폭탄이 터지기 직전인데, 이건 회생으로도 못 막죠? 이건 사기가 아니라 ‘계약’이잖아요!”
“불가사리님. 그게 바로 오늘 설명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개인회생 및 파산은, 그 철옹성 같던 분양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하고 합법적인 카드입니다.”
“말도 안 돼요! 시행사가 미쳤다고 그걸 해제해 줍니까? 당장 ‘계약 불이행’으로 소송 걸고 제 남은 밥그릇까지 다 깨부수겠죠!”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합시다. 지금 이 계약, 법률용어로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이라고 해요. 말이 어렵죠? 그냥 ‘시행사는 등기 넘길 의무, 불가사리님은 잔금 줄 의무’가 둘 다 아직 이행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 만약 ‘파산’을 신청하면?
더 간단합니다. 법원이 임명한 ‘파산관재인’에게 이 계약을 그냥 해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나옵니다. 법 조항에 딱 박혀있어요. 시행사 동의 따위 필요 없습니다.
● 만약 ‘일반회생’을 신청하면?
마찬가지입니다. 일반회생 절차에서도 관리인(혹은 채무자 본인)에게 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대한 해제권이 법적으로 명확히 부여됩니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 계약, 지급불능 상태라 이행 못 하니 해제합니다’라고 통보하면 끝이에요.
● 만약 ‘회생’을 신청하면?
이게 더 현실적이고 재미있죠. 회생에는 그런 명시적 규정은 없어요. 하지만 더 무서운 ‘시장 논리’가 작동합니다.
“시장 논리요? 빚더미에 앉은 저한테 무슨 시장...”
“시행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계약 유지를 고집하면? 그 수억 원 잔금, 현금으로 받을 수 있나요? 아뇨. 불가사리님 회생계획안에 따라서... 잘 쳐줘야 10~20%? 그것도 3년에서 5년에 걸쳐 쥐꼬리만큼 분할 변제받게 됩니다. 근데 만약 시행사가 ‘에이씨’ 하고 계약을 해제하면? 지금 당장 다른 사람, 돈 있는 사람한테 재분양해서 현금을 챙길 수 있죠. 뭘 선택하겠어요?”
“...당연히 해제하고 다른 데 팔겠죠. 저 같은 거지한테 5년 동안 푼돈 받느니...”
“딩동댕. 법원이 ‘회생 개시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얘 공식적으로 돈 없음’ 하고 공인해 주는 셈이라, 시행사도 버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게 바로 시행사가 계약 해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가장 큰 압박 요인입니다.”
(눈이 커진다) “잠깐! 해제하면 ‘위약금’은요! 분양가의 10%... 그것도 수천만 원인데! 그 돈이 어디 있어요!”
“좋은 질문. 그 위약금 채무요? 그것도 그냥 ‘개인회생채권’이 되는 겁니다. 캄보디아 사기 빚, 카드론 빚, 그리고 이 분양권 위약금 빚까지 전부 한 바구니에 담아서 변제 계획을 짜는 거예요. 결국 그 위약금도 원금의 상당 부분이 탕감될 수 있습니다. 수억 원의 잔금 폭탄이 → 수천만 원의 위약금 채무로 바뀌고 → 그마저도 대부분 탕감되는 마법이죠.”
3. 회생? 파산? 일반? 간이? (도산러를 위한 법률 용어사전)
“아, 머리 아파... 변호사님, 잠깐만요. 아까부터 파산했다가 회생했다가, 이젠 또 무슨 간이 회생, 일반 회생? 뭐가 이렇게 복잡해요! 그냥 ‘나 망했소’ 하고 두 손 들면 알아서 해주는 거 아니었어요? 저 같은 딴지 필자는 도대체 뭘 해야 하는데요!”
(안경을 닦으며) “하... ‘세상에 이런 것까지?’ 알려드려야죠. 불가사리님이 좋아하는 ‘디테일한 데이터 조사’ 들어갑니다. 이걸 모르면 엉뚱한 병원 찾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박 변호사의 도산 클리닉: 당신에게 맞는 처방은?
● 개인파산 (청산형 – ‘수술’):
1. 대상: 소득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분.
2. 특징: 이건 ‘재건’이 아니라 ‘청산’입니다. 가진 재산을 싹 다 처분해서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빚을 ‘전액 면책’받는 거예요.
3. 단점: 내 재산이 사라지고, 면책받기 전까지 특정 직업(공무원, 변호사 등) 자격에 제한이 생길 수 있어요.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죠.
● 개인회생 (재건형 – ‘재활치료’):
1. 대상: 불가사리님처럼, 작고 귀여운 원고료라도 ‘계속적 또는 반복적 수입’이 있는 분.
2. 특징: 이게 핵심입니다. 빚이 무담보 10억, 담보 15억 이하여야 해요. ‘재건형’ 절차라, 내 소득에서 법정 최저생계비를 뺀 ‘가용 소득’을 3년간(최대 5년) 성실히 갚으면, 남은 빚은 싹 탕감됩니다. 그러니까 불가사리님이 월 300을 벌고, 최저생계비가 145만 원 정도이니, 월 155만 원씩 3년간 갚으면 나머지 빚은 탕감된다는 거죠.
3. 최강 장점: 채권자 동의가 필요 없어요. 법원이 ‘이 계획 공정하다’라고 인정하면 끝입니다.
● 일반 회생 (재건형 – ‘대수술 후 재활’):
1. 대상: 빚이 개인회생 한도(10억/15억)를 초과하는 고액 채무자. (주로 개인사업자로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돈을 빌려 크게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
2. 특징: 절차가 법인 회생처럼 복잡하고 변제 기간도 10년으로 깁니다.
3. 최대 난관: 채권자들의 동의가 필수적입니다. (담보권자 3/4, 일반 채권자 2/3 이상) 채권자들이 ‘No’ 하면 말짱 꽝이에요.
● 간이 회생 (재건형 – ‘신속 재활’):
1. 대상: 빚이 개인회생 한도보다는 많지만, 일정 금액(50억) 이하인 소액영업소득자(의사, 변호사 전문직이 많고, 자영업자도 여기 해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특징: 일반 회생의 복잡한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서 소상공인이 빨리 재기할 수 있게 돕는 제도입니다.
“자, 이제 진단이 나오죠? 불가사리님은 빚이 10억은 안 넘고, 딴지에서 쥐꼬리만 한 원고료라도 받고 있으니... 답은 뭡니까?”
“...개인회생이네요.”

2024년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의 산출 결과를 비교 분석한 자료
4. 그래서, 내 재산은 뺏기는 건가? (개인회생의 압도적 유리함)
“오케이! ‘개인회생’인 건 알겠어요. 근데 변호사님, 진짜 중요한 걸 빠뜨렸잖아요. 제 재산! 파산은 재산을 다 뺏긴다면서요. 그럼, 회생은요? 제 유일한 자산인 저의 작은 원룸 보증금, 그리고 ‘소비 대모험’ 시절 모았던 그 영롱한 와인 오프너 컬렉션... 이것도 다 팔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빚 탕감받는데 그 정도는 내놔야죠!”
(한숨) “이래서 개인회생이 불가사리님에게 ‘월등히’ 유리하다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 팔아도 됩니다.”
“네?! 재산을 안 판다고요? 빚을 수억 탕감받는데?”
“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이라는 겁니다. 법원이 아주 자본주의적으로 계산을 해보는 거예요. ‘만약 불가사리가 지금 당장 ‘파산’을 한다면, 채권자들이 얼마를 배당받을까?’ 이게 ‘청산가치’입니다. 그리고 ‘불가사리가 앞으로 3년간 ‘회생’으로 갚을 총금액'이, 방금 그 ‘청산가치’보다 많기만 하면 법원은 OK 사인을 내줍니다. 즉, 채권자들 입장에선 파산시키는 것보다 3년간 돈 받는 게 이득이니까요. 그 조건만 맞추면, 불가사리님은 재산을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할 수 있습니다.”
“와... 세상에...”
“그뿐만이 아니죠. ‘파산’과 달리 직업적 연속성이 보장됩니다. 파산 선고받으면 특정 자격에 제한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인회생은 그런 거 전혀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딴지에 글 쓰고, 돈까스 평론하면서 딴지 편집장 등골 빼먹으시면 됩니다. 3년만 법원에 꼬박꼬박 돈 내면, 남은 원금은 법적으로 ‘다 갚았음!’ 하고 소멸되는 거죠. 완벽한 재정적 해방입니다.”
“세상에... 이런 것까지... 그럼 저는...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네요?”
“그렇죠. 빚에 쫓겨서 캄보디아 같은 지옥으로 다시 발을 들이미느냐, 아니면 법의 보호막 안에서 3년만 버티고 새출발하느냐. 선택은...”
“하겠습니다! 변호사님! 하겠습니다! 그놈의 개인회생!”
“좋습니다. (서류를 꺼내며) 그럼 일단... 그동안 드신 돈까스 영수증이랑 와인 구매 내역부터 싹 다 가져오시죠. 최근 1년 치. ‘사치 및 낭비’ 항목인지 아닌지 법원에 소명해야 하니까 제가 직접 심사하겠습니다.”
“네에에에?!!!!”
그의 말이 맞았다. 개인회생을 결심한 순간, 나는 새로운 희망을 본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거대한 모험의 입구에 서게 된 것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부터가 거대한 장벽이었고, 그 과정은 상상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
불가사리는 변호사를 사칭한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변호사 명의만을 사용하는 불법 브로커를 만나 피해를 보기도 했으며, 수준 미달의 변호사를 만나기도 하고…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대체, 변호사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가….????

보이스 피싱 범죄를 위해 임의 개설된 가짜 변호사 홈페이지
출처 〈SBS〉 (링크)
다음 편 예고: 널린 게 법률사무소, ‘진짜’는 어떻게 찾는가
과연 불가사리는 돈까스 영수증을 무사히 통과시키고 회생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제발!)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마성의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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