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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출연은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꾸는 꿈이다. 그러나 한국계 배우들에게 있어서는 이뤄지기 어려운 꿈으로 보인다.

 

이미화 씨는 할리우드에서 직업배우 일을 하는 ‘토종 한국인’이다. 지난 4월 10일 ‘아마존 프라임’에서 공개된 액션영화 ‘G20’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영부인으로 비중있는 조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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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할리우드에서 열린 영화 ‘G20’ 시사회에서 주연배우들과 함께한 이미화 씨
왼쪽부터 안토니 스타 (더 보이즈 등 출연), 라몬 로드리게즈 (더 와이어,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출연), 이미화 씨

(사진 - Getty Images)

 

이미화 씨의 연기 입문과 무명배우 시절을 다룬 지난회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 영화배우들이 일하는 시스템, 그리고 배우들의 노동권 문제, 할리우드의 현재 상황을 한번 다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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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백그라운드 단역 배우를 하다가, 할리우드 영화 주연을 맡게 된 것인가요.

 

2019년 소니 프로덕션의 호러영화 ‘엄마’의 오디션 공고가 웹사이트에 떴습니다. 다행히 에이전트가 없는 배우도 지원 가능하기에, 지원해 봤습니다. 그런데 덜커덕 케스팅이 됐습니다. 그것도 ‘타이틀 롤’(주연급)로 ‘부킹(booking)이 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코로나 동안 아무 연락이 없던 에이전트를 해고한 상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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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 제작, 산드라 오 주연의 공포영화 ‘엄마’

 

무슨 문제인가요?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가 에이전트 없는 경우가 드물고, 프로덕션(제작사)과 여러 조율을 해 줄 에이전트를 빨리 구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주변에 물어봐서 작은 에이전시 하나를 추천받고, 밤 9시 30분에 e메일로 나를 소개하고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내가 아무개 프로덕션 타이틀 롤을 하게 됐다. 네가 나의 렙(representative, 대리인)이 되어줄래?”라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다음날 이른 아침 7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에이전트가 되어 주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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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스포츠분야의 스타들은 본인을 보좌해주는 에이전트를 고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 ‘’에서 미식축구선수(쿠바 구딩 주니어)의 에이전트를 맡은 톰 크루즈의 모습

(사진 - Getty Images)

 

에이전트가 하는 일이 뭔가요?

 

에이전트가 없으면 ‘워킹 액터’(직업 배우)가 될 수 없습니다. 에이전트는 모든 배역 공고( breakdown), 특히 에이전트 전용 공고를 통해 부지런히 배우 이력서를 집어넣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출연한 영화 ‘G20’의 경우, 배우 혼자서 오디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에이전트가 공고를 보고 배우를 ‘서브밋’(출연신청)해야지 오디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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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G20’ 레드카펫에 등장한 이미화 씨
(사진 - Getty Images)

 

그렇게 ‘서브밋’한 배우 가운데 대략 2%만이 ‘오디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킹’(예약)이 되면 에이전트는 ‘컨트렉트’(출연계약서)를 사인하는 과정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대규모 프로젝트들 출연이 잦은 배우들은 엔터테인먼트 변호사와 지속적 계약을 맺고, 변호사들이 개런티나 모든 조건을 협상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수임계약서(retainer contract)를 써야 하니, 일이 꾸준하게 생기는 배우가 아니면 경제적인 부담이 있죠. 에이전트는 그 대가로 배우 출연료의 일부를 받아갑니다. 보통의 에이전트는 출연료의 10%를, 상업 광고 촬영은 15%-20%를 받아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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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프라임 영화 ‘G20’의 엔딩 크레딧
이미화 씨의 이름은 10번째로 나올 정도로 비중이 크다
(사진 영화 G20 캡처)

 

어떤 영화는 에이전트가 아니면 이력서 자체를 넣을 수 없습니다. 저는 업계 정보를 나름대로 파악하면서, 에이전트에게 먼저 영화를 찾아서 알려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거죠.

 

“’파친코’라는 드라마에서 한국인 캐스팅 중인데 들어봤냐? 빨리 LA쪽 알아봐서 내 이력서 좀 넣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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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의 파친코
(사진 애플TV)

 

파친코에도 캐스팅된 적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원래 ‘늙은 경희’ 역으로 캐스팅됐습니다. 캐스팅 확정 후 촬영 가려고 짐싸고 있었는데 촬영 5일전 취소됐습니다.

 

“미안한데, 당신 배역이 다른 배우로 바뀌었어요. 윤여정 씨가 늙은 선자로 케스팅되어 경희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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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에 출연한 윤여정 배우
(사진 - Getty Images)

 

이렇게 촬영 막판에 부킹 최소되면 어떻게 되나요?

 

‘파친코’는 내 잘못이 아니라, 프로덕션 사정으로 촬영 5일 전에 취소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촬영은 하나도 안했지만 ‘베이직 페이’(기본급)는 모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프로덕션(제작사)으로부터 베이직 페이를 받아내는 것도 에이전트 업무인데, 소규모 에이전시라 그런 업무를 하는 걸 꺼려해서 (다른 기회를 제작사가 안 줄까봐)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촬영중 분쟁 해결하는 것도 에이전트의 일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럴 때 에이전트의 능력이 발휘됩니다. 유명한 ‘워킹 액터’의 경우 에이전트 이외에도 고문 변호사가 있어서, 프로덕션 잘못에 따른 출연료 및 벌금도 네고시에이션(협상)해서 철저하게 권리를 챙깁니다. 그러나 군소 에이전트의 경우 배우가 프로덕션에 부당한 일을 당해도 목소리를 못냅니다. 배우를 100명, 200명 거느리고 있는 에이전트는 이 배우들을 앞으로 부킹시켜야 하는데, 캐스팅 디렉터들에게 잘못보일까봐 제대로 요구를 못하곤 하죠.

 

그렇다면 에이전트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같네요.

 

맞습니다. 에이전트 고르는 것도 사각지대입니다. 좋은 에이전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거든요. 에이전시가 다 정직하지도 않고, 불평등한 계약으로 배우를 착취하기도 하는 문제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 보지는 않아서… 어떤 에이전트는 젊은 배우들에게 돈을 쓰게 유도하기도 합니다. 사진사들과 짜고 ‘헤드샷(얼굴 프로필 사진) 등을 찍어야 한다며 화장, 헤어스타일, 촬영 명목으로 몇 천 달러씩 쓰도록 유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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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나 미국이나 ‘영화 데뷔’를 핑계로 푼돈을 뜯는 행위는 다르지 않다
(사진 - Getty Images)

 

역시 배우들에게 있어서 자기 권리 챙기기는 쉽지 않네요. 그런 점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배우 노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백그라운드(한국말로 엑스트라) 출연, 또는 독립영화, 학생영화 출연은 비노조원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 영화에서 제대로 된 단역이나 조연을 맡으려면 반드시 미국배우조합(SAG-AFTRA)에 가입해야 합니다.

 

(보충설명을 하자면, 미국 할리우드는 각 직종마다 노조가 따로 있고, 배우 직종의 노조가 미국배우조합(SAG-AFTRA)이다. 노조는 노사협약을 통해 ‘비중있는 단역 및 조연은 노조원 필수 캐스팅’이라는 조건을 관철했다. 따라서 영화배우 노조원이라는 뜻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배우’라는 자격증이나 자부심이 된다. 할리우드 배우 노조 SAG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독자는 이전 기사를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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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배우조합(SAG-AFTRA) 노조 회원증을 들어보이는 배우 제시카 콜린스
(사진 - Getty Images)

 

노조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배우 노조는 아무나 가입할수 없어요. 노조에 가입하려면 바우처를 최소 3장 모아야 합니다. 비노조원 배우가 촬영장에서 대사가 있는 연기나, 노조에 가입된 배우들이 할 수 없는 역을 연기하게 되면(특수 기술이나 재능), 프로덕션이 배우 조합에 보고를 해야 합니다. 배우조합에서는 그것을 심사한 후 ‘연기’로 인정하고 비노조원에게 바우처를 지급합니다.

 

이미화 씨는 바우처를 어떻게 받게 되었나요?

 

“빌리언즈”라는 영화에서 법정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법정 장면을 스케치하는 화가(court artist) 백 그라운드 역을 맡았습니다. 그냥 그림 그리는 흉내만 내면 되는데, 저는 실제로 그림을 그렸죠. 제가 미술을 전공했으니까. 감독이 “그림 그릴 줄 아느냐. 더 그려보라”고 지시(디렉팅)를 했습니다. 그렇게 3일 동안 그림 그리니까 ‘바우처’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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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빌리언즈’에 출연한 이미화 씨
(영화 ‘빌리언즈’ 캡처)

 

또 다른 계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렌지 이즈 뉴 블랙’이었습니다.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이전 기사를 참조하시라) 여기서도 나는 그림 그리는 흉내만 내지 않고, 실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조감독이 다가오더니 “너 그림 그릴 줄 아는구나. 카메라로 이렇게 잡을 테니 이렇게 그릴 수 있느냐”고 ‘디렉팅’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이 클로즈업이 됐죠. 그래서 또 ‘바우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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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사진 넷플릭스)

 

‘바우처’는 누가 어떻게 발급해주나요?

 

비노조원 배우가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연기’를 한 경우, 프로덕션은 배우조합(SAG)에 보고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무개 비노조원 배우는 배우노조원이 할수 없는 스페셜티(특별한 기술)을 했다”라고 말입니다. 배우조합은 이걸 심사하고, 비노조원에게 ‘바우처’를 지급합니다.

 

‘스페셜티’가 중요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배우가 과한 노출을 한다든지, 외국어를 한다든지, 무술을 할 줄 안다든지, 그런 게 모두 ‘스페셜티’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배우들에게 “너만의 기술 하나쯤은 갖고 익혀두라”고 조언합니다. 잘생기고 예쁜 외모만으로는 이 바닥에서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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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인 특유의 태권도 실력이나 군사훈련 경험은 미국 영화 촬영에서 ‘스페셜티’가 된다
필자의 경험은
이전 기사를 참조하시라

(사진 - Getty Images)

 

‘바우처’를 받으면 자동으로 배우노조에 가입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가입비가 신참 배우들에겐 큰 액수이고, 가입하면 계속 노조비를 일 년에 두 번 내야하니 돈 없는 배우는 가입을 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우처’를 세 장 이상 받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일을 못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바우처가 많아도 써주는 프로덕션(제작사)에서 백그라운드를 하며 도망다니는 경우도 있는데…(웃음).

 

배우조합에 가입하면 어떤 의무가 있나요?

 

일단 조합 가입비 3000달러 이상(440만원 이상)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매년 본인의 출연료에서 일정 금액을 노조비로 빼가는데, 나름 부담스러운 액수에요. 그래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 배우들은 돈이 없어서 가입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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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노조 회원증을 들어보이는 영화배우 테렌스 하워드
(사진 - Getty Images)

 

그럼 배우조합 노조원이 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노조원이 되면, 아무리 단순한 백그라운드(엑스트라) 일을 해도 시급이 좀 더 올라갑니다. 촬영 8시간이 넘어가면, 오버타임(초과 근무 수당)이 나와요. 촬영 10시간이 넘어가면 더블타임을 받고 16시간부터는 ‘골든 타임’이라고 해서 시간당 하루 급여가 나옵니다. 1분이라도 넘으면 하루 기본 급여가 추가됩니다. 그래서 백그라운드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뉴욕에서 그런대로 기본생활이 가능한 돈을 법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인 무명배우는 투잡, 쓰리 잡을 하며 버티는 경우가 많지요.

 

노조원이 되면 밑바닥 백그라운드도 대우가 달라지나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촬영 중 점심을 먹을 때도 크루(촬영 스태프)가 제일 먼저 먹고, 노조원 백그라운드가 그 다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비노조원 백그라운드가 줄 서서 점심을 먹습니다. 아주 진부한 ‘계급사회’라 여겨지는 부분이죠.

 

돈 말고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촬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신고할 수 있고, 노조 차원에서 대응해 줍니다.

 

실제로 부당 노동행위를 당한 적 있나요?

 

물론이죠. 프로덕션 현장마다 다르긴 하지만, 할리우드도 백그라운드 단역 배우에 대한 대우는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PA들의 문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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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설명: PA는 ‘프로덕션 어시스턴트’의 약자다. 한국에서는 제작보조, 일본에서는 제작진행이라고 한다. 엑스트라 인솔, 주차장 정리, 배우 모시기, 스태프 도시락 배달 등등 온갖 잡일은 이들이 한다.

 

대다수 PA는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이 업계에 처음 들어온 젊은이들입니다. 어떤 PA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잘 다루죠. 역시 그런 사람들은 비교적 빨리 진급합니다. 그러나 간혹 성격이 못된 PA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바킹 PA’(개소리하는 PA)라고 부릅니다. 이런 PA는 노조원이나 비노조원이나 가리지 않고, 백그라운드들을 함부로 대하곤 하죠.

 

그럼 실제로 부당 노동행위를 노조에 신고한 적이 있나요?

 

어떤 영화 촬영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새벽 1시에 촬영이 끝났고, 저 같은 백그라운드들 수십 명이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게 됐죠. 그런데 세컨드 AD(제2 조감독)가 버스 운전사에게 “타임스 스퀘어로 가라”고 한 겁니다. 새벽 2시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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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뉴욕 타임스 스퀘어는 범죄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사진 - Getty Images)

 

새벽 2시에 타임스 스퀘어 가는 것은 미친 짓이에요. 한밤중에 맨몸으로 내리면 강도를 당할 가능성도 있어요. 한마디로 안전한 장소가 아닌 거죠. 노사협약에 따르면, 촬영이 늦게 끝날 경우 영화사는 배우들을 ‘안전한 장소’(safe place)에 내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백그라운드들은 뉴욕 뿐만 아니라, 뉴저지, 코네티컷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옵니다. 그래서 뉴욕에서 새벽에 영화 촬영이 끝나면 보통 ‘펜스테이션’ 등 사람이 많고 안전하며 대중교통이 연결된 장소에 내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AD는 노사협약을 무시하고, 타임스 스퀘어로 가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버스 운전사에게 말했습니다.

 

“SAG 계약에 규정된 안전한 장소에 내려주세요.”

 

그러자 버스 안이 난리가 났어요.비노조원들이 “노조 배우들이 갑질한다”고 비아냥거리며 소리지르고, 와중에 버스 운전사까지 “노조 배우들은 요구가 많다”며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아무도 선뜻 나를 도와주지 않았죠. 프로덕션에(제작사) 미운 털 박힐까봐 다른 노조 배우들도 입 다물고 있었죠. 하지만 저는 침착하게 그들의 무례한 태도를 핸드폰으로 모두 녹화했습니다. 운전사가 AD와 전화를 주고 받더니, 결국 제가 요구한대로 타임스 스퀘어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전한 ‘포트 오소리티’에 내리게 됐죠.

 

나는 ‘포트 오소리티’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오자마자,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핫라인’(부당 행위 신고전화)에 신고를 했습니다. 이 영화는 ‘안전하지 못한 촬영장’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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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의 포트 오소리티
24시간 대중교통과 인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사진 - Getty Images)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노조가 가만있지 않았어요. 노조가 나서서 프로덕션(제작사)에 항의했죠. 노조 변호사, 프로덕션, 그리고 제가 온라인 3자 대면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죠.

 

“나는 니네들(제작사)이 바뀔 거라고 생각 안 한다. 하지만 나는 선례를 만들어두기 위해 보고한 것이다. 이런 일이 두 번 세 번 일어나고, 어떤 배우가 한밤중에 타임스 스퀘어에 내렸다가 강도 당하거나 총 맞아봐라. 그러면 이건 전적으로 너희들 책임이 될거야.”

 

(보충설명: 배우조합SAG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작업장 안전 보장’이다. 배우노조 지역 대표는 촬영 조건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할 경우 노조원들에게 ‘작업장 철수’를 지시할 권한이 있다. 이미화 씨의 항의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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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영화사에 맞서 파업을 벌인 SAG 배우노조원들
(사진 - Getty Images)

 

백그라운드 배우들이 집단적으로 근로조건에 항의할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대다수 젊은 배우들은 이렇게 신고도 못해요. PA들 사이에 “쟤가 바로 그 시끄러운 애야?”라고 바로 소문이 나기 때문이죠. 저 같은 할머니야 이미 다른 직종에서 노후자금을 모은 상태에서 은퇴했고, 생계는 문제가 없으니까 총대를 메고 항의할 수 있었던 거죠. 나중에 PA들이 “저 별난 할머니 또 왔구나”라고 수군댔을 지도 몰라요.

 

그러고 보니 지난 2023년 SAG 배우노조 전체가 파업해서 할리우드 영화 촬영이 올스톱 된 적이 있었죠.

 

배우노조는 제작사에 (1) AI활용에 대한 기준, (2) 스트리밍 회사들이 비공개하고 있는 ‘레지듀얼’(재방료) 책정 데이타를 공개할 것, (3) 배우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했습니다. 앞으로 AI가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고, 배우라는 직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파업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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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파업에 나선 배우노조 SAG-AFTRA 소속 배우 수전 서랜든
(사진 - Getty Images)

 

예를 들어서 제가 영화를 한 편 찍는다고 해보죠. 그러면 나중에 영화사에서 제 출연분을 AI로 가공해 ‘클론’을 만들어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AI 활용은 앞으로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AI의 악용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노조 차원의 대응은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아직 누구도 모르는 미래의 불안 요소이죠. (2023년 AI를 둘러싼 할리우드 파업에 대해서는 지난 연재기사를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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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예술이 아니다”라는 피켓을 든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
(사진 - Getty Images)
 

본인도 2023년 배우 파업에 참가했나요?

 

2023년 7월 영화 ‘G20’ 촬영중에 파업이 터졌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영화 촬영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된 때였어요. 다들 영화 촬영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글래디에이터2’ 도 남아공에서 촬영중이었는데, 배우노조로부터 예외(웨이버)를 인정받아 촬영을 계속했어요. 그런데 주연인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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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Getty Images)

 

“난 촬영할 수 없다. 다른 배우들이 연대하는데, 우리만 영화 찍는 건 말이 안된다.”

 

바이올라는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받은 할리우드 중견배우이고, 본인의 배우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파업에 동참한 것입니다. 결국 2023년 7월에 모든 배우가 남아공에서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할리우드 파업이 끝난 12월말에 다시 영화 촬영에 복귀했습니다. 결국 ‘G20’의 촬영은 2024년 2월에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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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SAG-AFTRA의 배우노조 파업에 동참한 이미화 씨
(사진 이미화 씨 제공)

 

그렇다면 파업 후, 할리우드의 AI 사용에 대해 달라진 게 있나요?

 

아직 모르겠어요. 파업 후 지금까지 영화 촬영 편수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현재 할리우드 영화 촬영 규모는 파업 이전에 비해 20-30%에 불과합니다.

 

파업 끝난 지 2년이 됐는데, 왜 이렇게 영화 촬영을 안하는거죠?

 

첫째는, 많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이 미래의 불확실함에 선뜻 영화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업 기간, 그 이후에도 영화 촬영이 확연히 줄어들자 많은 크루가 일자리를 잃었고, 배우들도 마찬가지로 일거리가 사라졌습니다. 많은 관계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부업을 했고, 아예 전업(캐리어 체인지)한 사람도 많아요. (파업 기간 도중 할리우드 배우들의 생활고 이야기는 이전 기사를 참조하시라)

 

둘째는 LA화재 때문입니다. 2023년 파업 종료 후, 그나마 정상가동을 기대하던 중, 갑자기 할리우드가 위치한 LA에 대규모화재가 터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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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LA 화재로 멜 깁슨, 패리스 힐튼, 제프 브리지스, 빌리 크리스털, 애덤 브로디 등의 배우들이 집을 잃었다
(사진 - Getty Images)

 

2025년 1월 발생한 대규모 화재로 할리우드 영화 프로덕션은 ‘올스톱’ 했습니다. LA에는 스튜디오와 프로덕션 헤드쿼터(본부)도 많이 위치해 있고, 배우들도 많이 살고 있었는데 화재 피해가 컸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도 할리우드는 화재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필름 인더스트리(영화 업계) 자체가 상당히 도먼트(침체)된 상태입니다. 앞으로 할리우드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거기다 관세 논란까지 불거져, 할리우드 영화의 외국 로케이션 촬영에 큰 타격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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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침체와 스트리밍 서비스 여파로 문을 닫은 텍사스 휴스턴의 한 극장
(사진 - Getty Images)

 

그래도 할리우드 영화 촬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게도 한 두 건 이상은 오디션과 출연 제안이 들어오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촬영하고, 그 영화가 한국에도 소개되는 것이 꿈입니다.

 

앞으로 차기작 찍게 되면 딴지에도 꼭 알려주세요.

 

물론이죠. 기대해주세요.

 


 

이미화 배우의 말처럼, ‘세계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도 지금 힘든 상황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따르면, LA 할리우드 영화 제작편수는 2022년 14만 2000편에서, 2024년 10만 편으로 확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영화, 드라마 제작 예산도 30%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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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할리우드도 영화계는 힘든 상황이다
(사진 - Getty Images)

 

지금까지 할리우드 배우 이미화 씨를 통해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의 현실과 어려움에 대해 알아보았다.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인들이 있기에, 한국 문화가 영화, 드라마를 통해 계속 퍼지고 있으니, 우리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화려한 할리우드의 이면에 숨겨진, 생계에 허덕이는 최근 미국 영화, 드라마 업계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 계속해 보자.

 

 

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고물상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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