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바로 너,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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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38분, 영국 교통경찰에 돈카스터(Doncaster)를 출발해 런던 킹스크로스(King’s Cross)로 향하던 LNER(런던 노스-이스트 철도) 열차 안에서 승객들이 흉기에 찔렸다는 긴급 신고가 들어온다. 열차가 막 피터버러(Peterborough)를 지날 때였다. 8분 뒤, 열차는 캠브리지 근처 헌팅던(Huntingdon)역에 비상 정차했고, 무장 경찰이 열차 내에 진입하여 용의자 두 명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의자는 열차가 피터버러를 떠난 직후 갑자기 흉기를 꺼내 들고 무차별적으로 승객들을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테러 가능성도 조사했으나, 다음 날 오전 테러가 아닌 단독 범행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처음 현장에서 체포된 두 명 중 한 명은 곧 풀려났고, 32세의 영국 국적 남성이 단독 범인으로 특정되었다. 그는 살인미수 등 10건 이상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영국 언론들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열차가 멈춰 선 헌팅던역 주변에 경찰과 구급차가 대거 출동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현장은 한동안 봉쇄되었고, 철도역은 통제되었다. 승객들은 "비명과 아비규환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며 당시의 공포를 전했다.
영국 중부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 헌팅던(Huntingdon). 올리버 크롬웰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이곳에서 발생한 무차별 살인 사건은 단순한 범죄 이상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가해자의 개인적 동기보다, 그 배경에 깔린 사회적 정서가 영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영국 언론과 SNS는 가해자의 출신지와 인종적 배경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댓글 창에는 "이민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라는 식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퍼졌다. 경찰이 범인의 신원을 공개하기도 전에, 이미 ‘이민자 혐오의 서사’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후 가해자가 영국 국적자임이 알려졌지만, 이미 발 빠르게 전해진 숱한 루머들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영국 사회의 불안과 분열이 표면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물론, 이민자 문제는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특히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비슷한 사건과 정서가 반복되고 있다.
극우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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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의 헤게모니 다툼이 끝난 뒤, 냉전의 종식은 인류에게 거대한 낙관을 안겨주었다. “이제 세계는 하나다”라는 구호 아래 자유무역이 확산되고, 자본과 노동, 기술과 정보가 국경을 넘나들었다. 북미와 유럽의 풍요는 아시아와 남미로 번졌고, 많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글로벌 시민’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그 화려한 포장지 아래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세계화로 인한 수혜는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 공장과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되며 중산층이 붕괴했다. 자유무역이 불평등을 완화하리라는 기대는 깨졌다. 이제 불안과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이 묻는다.
“과연 세계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이 질문이 바로 극우의 출발점이다. 세계화가 약속했던 개방과 다양성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반작용을 낳았다. 사람들은 다시 '우리 것', '우리 나라', '우리 사람들'이라는 단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가장 먼저 세계화를 외쳤던 나라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이 대표적인 국가다. 전쟁 후 복구 과정에서 이민자는 필수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수는 6천만 명. 공식적으로 발표된 자료만으로도 이러하니 실제로 목숨 잃은 사람의 수는 가늠하기 어렵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남성이었기에 턱 없이 부족한 남성 노동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영국의 출생률을 유지시키는 건 이민자들의 몫이 되었다. 90년대에 부모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아이의 이름이 '데이비드'였다면, 지금은 '모함마드'다. 이민자 대부분이 대도시로 모였다. 일자리를 찾아야 생활이 가능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영국의 경제 지형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런던을 중심으로 대도시와 남부 지역에는 세계 자본이 몰리지만, 북부와 중부 산업도시는 쇠락했다. 공장은 문을 닫고, 집값은 치솟았으며, 인플레이션이 남긴 상처는 고스란히 영국 서민층의 몫이 되었다. 그 불만은 점점 "이민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단순한 분노로 변했다.
이민자는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인력이었다. 정작 어려울 땐 도움받다가 나의 환경이 녹록지 않으니 타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조업을 버리고 서비스업을 선택하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사실상 그 책임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한 영국 정부가 져야 하지만, 사람들은 상실의 원인을 눈앞의 약자에게서 찾았다. 그렇게 경제적 박탈감은 불안으로, 불안은 혐오의 언어로 바뀌었다.
열린 제국을 꿈꾼 영국, 닫힌 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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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위기에서 영국은 유럽연합을 벗어나 독립적인 자구책을 마련하려 했다. 브렉시트는 단지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사건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내전이었다. 과거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었던 대영제국 시절을 영광으로 여기는 구세대는 “Take Back Control(통제권을 되찾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주권 회복의 상징처럼 들렸지만, 그 이면에는 “외국인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브렉시트가 이뤄지고 나서야 영국은 자신이 ‘열린 제국’에서 ‘닫힌 섬’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자각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내린 결정을 물릴 수도 없는 법. 이후 인플레이션과 주택난, 의료 시스템 문제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그 분노는 자연스럽게 이민자와 난민에게 향했다. 보수 정치인들은 “영국의 자원을 영국인에게”라는 슬로건으로 여론을 끌어모았고, 언론은 범죄 보도마다 “이민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헌팅던 사건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범죄의 본질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대중에겐 이미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화되었다. SNS에서는 “국경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했다. 지방 의회 선거에서는 극우 성향의 후보들이 예상 밖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중이다. 물론, 유럽의 극우화와 한국의 윤어게인은 비할 바 없이 다르지만, '극우' 흐름이 특정 국가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불안의 정치: 극우는 어디서 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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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등장은 단순히 정치적 선전의 결과가 아니다. 불안의 정치학이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다. 경제적으로는, 부가 상류층에 집중되고 중산층이 몰락한 결과다. 문화적으로는, 급격한 다문화와 가치 다양성이 전통적 정체성을 흔들어놓은 탓이다. 정치적으로는, 기존 주류 정당들이 복잡한 현실에 답을 내놓지 못하면서 ‘분노를 대변하는 언어’가 극우의 무기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anti-woke(반각성)’ 담론이 젊은 층까지 파고들었다. 젠더나 인종, 다양성 논쟁으로 인한 피로감이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되며, 정치적 올바름을 조롱하고 전통적 가치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곳이 어디 영국뿐이랴. 미국의 트럼피즘을 비롯해 프랑스의 르펜 현상, 독일의 AfD 부상과도 궤를 같이한다. 극우는 더 이상 주변부의 언어가 아니다. 이제는 주류 담론 속에 녹아든 분노의 언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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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시 유사한 현상이 빈도 높게 발생하고 있다. 중국과의 갈등, 조선족과 외국인 범죄 뉴스가 반복되면서 반중 정서가 일상화되고,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자는 구호엔 사실상 ‘우리만의 사회를 지키자’는 배타성이 녹아 있다.
한국은 유목민인 유럽과 달리 정착문화다. 비교적 단일한 민족국가로서 오랫동안 외부의 위협을 막으며 내부 결속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로 인한 인적 이동과 문화 교류가 확대되면서, 그 결속이 흔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상황은 하나의 거울이 된다. 영국이 이민자 문제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하고 정치적 포퓰리즘에 의존한 결과 사회적 분열이 심화된 것처럼, 한국도 비슷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민자나 외국인 범죄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는 정치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외국인 혐오’가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언론도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이를 부추기고 있다. 지금 영국이 겪는 혼란은, 한국이 맞이할 혹은 이미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포용 실패'의 미래다.
그래서 세계화는 실패한 것인가? 세계화는 성숙하지 못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열린 세계가 불평등을 낳았다고 해서 닫힌 국가가 해답이 될 수 없다. 영국 극우화가 보여주는 것은 불평등 그 자체보다 불안과 공포를 해석하는 방식의 실패다. 정치가 불안을 혐오의 언어로 번역할 때 사회는 쉽게 분열한다. 사회적 문제를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순간 공동체가 무너진다.
그 취약함은 한국에도, 유럽에도, 미주에도 존재한다. 국경은 닫을 수 있지만, 불안은 국경을 넘기 마련이다. 어쩌면 영국, 한국, 전 세계 많은 국가가 동일한 과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시점이 왔다. 단순히 자유 무역의 확장이나 이민자 수용이 아니라 공존의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겪은 혼란은 제도적 포용력의 부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다가올 다양성의 시대에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세계화는 공동체의 균열을 발생시켰다. 이제 인류는 균열 위에 '포용'이라는 두 번째 기둥을 세워야 한다. 벽이 아닌 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헌팅던 비극은 단순 범죄 사건이 아닌, 우리가 어떤 사회로 가고 있는지 묻는 하나의 질문이었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금성무스케잌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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