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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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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시스〉 (링크)

 

런던베이글뮤지엄(이하 ‘런베뮤’)이 회사 숙소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과로사 의혹을 부인하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언론 보도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유족과 합의했다. ‘런베뮤’는 산재가 인정될 경우 지급되어야 하는 보상금보다 많은 금액을 위로금 명목으로 유족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으로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런베뮤’는 논란을 일단락하고 다시 원래의 명성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걸까.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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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시스〉 (링크)

 

‘런베뮤’와 유족 간 합의가 알려진 다음 날, 고용노동부는 ‘런베뮤’ 전 지점과 함께 ‘런베뮤’의 운영법인인 엘비엠 계열사 전체로 감독 대상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미 감독 중이었던 ‘런베뮤’ 본사와 인천점에서 일부 법 위반 정황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근로 감독과는 별개로 〈매일노동뉴스〉의 과로사 의혹 첫 보도 후 언론사들의 취재와 후속 보도가 이어지면서 퇴직금 미지급, 쪼개기 계약, 야근수당 누락 등의 폭로가 쏟아지기도 했다. 

 

합의는 했지만 ‘글쎄’다. 정황상 언론 보도로 비판 여론이 극에 달하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런베뮤’가 궁여지책으로 유족과의 합의를 서두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를 써서라도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런베뮤’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적당히 수습하고 시간을 보내며 부정적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런베뮤’가 지금까지 눈부신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핵심 토대가 이번 논란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멋짐’에서

 

‘런베뮤’의 성공은 곧 브랜딩의 성공이었다. ‘런베뮤’에 열광하며 한두 시간 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은 단지 그들의 베이글만 샀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어느 베이커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런베뮤’만의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이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줄을 서는 행위마저 그런 특별한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런베뮤’을 찾은 손님이 매장 안에 발을 들이며 만나게 되는 모든 감각적 경험을 치밀하게 설계한 것은 다름 아닌 창업자 이효정 씨였다.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 또한 그가 강조하는 일종의 ‘바이브’였다.

 

“밀도는 단순히 기물을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레이어(layer)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직원의 배치도 내부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한다. 공간의 구성원들, 조명의 방향, 내부와 외부의 공기, 손님들이 내는 식기 소리 등의 요소들은 모두 합쳐져 무수한 레이어를 만든다. 이런 것들이 공간의 밀도라고 생각하고, 이를 통해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중압감을 느낄 정도의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 2023년 ‘조선비즈 유통산업 비즈 포럼’에서 열린 대담 중 ‘런베뮤’ 창업자의 말 

 

 

‘런베뮤’라는 브랜드에 사람들은 왜 그토록 열광했는가.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멋짐’이었다. ‘런베뮤’는 멋졌다. 멋지고 힙해서 기꺼이 경험하고 그 경험을 SNS에 공유했다. 당시에도 ‘줄 서서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니다’, ‘너무 비싸다’라는 등의 반응이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모든 ‘런베뮤’ 매장은 오픈런과 긴 대기시간이 필수인 ‘성지’로 입지를 굳혀갔다.

 

 

‘구림’으로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먹다 남은 복숭아의 죄’라는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라는 동자가 있었는데 제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 왕의 수레를 허락도 없이 타고 나가는 중죄를 저질러도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며 용서했다. 제가 먼저 한 입 먹은 복숭아가 맛있다며 왕에게 바쳐도 그저 그 모습을 기특하게 여길 뿐 벌하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미자하에 대한 왕의 총애가 사라지자, 과거 미자하가 수레를 훔쳐 타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일까지 상기하며 벌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도지죄’다. 같은 행동도 사랑할 때 보는 것과 미워할 때 보는 것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라는 상호는 창업자가 평소 좋아했던 세 가지를 조합한 단어로 알려졌다. 그는 런던이라는 도시와 베이글이라는 음식과 뮤지엄이라는 공간을 사랑했고 이를 한데 모아 브랜드를 만들고 ‘런베뮤’ 매장 안에 그대로 투영해 대박을 쳤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베이글의 유래는 런던이 아니라는 조롱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런베뮤’ 특유의 쫀득, 쫄깃한 식감에 대한 찬사 보다 ‘그건 베이글이 아니’라는 댓글이 우세하다. 런던베이글뮤지엄에는 베이글이 없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매장에서 직원들이 그 어떤 오브제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오브제라고 생각한다’라는 창업자의 발언이 지금은 사람을 오브제 취급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았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그만큼 ‘런베뮤’ 매장에서 직원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돋보이게 만들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지금은 ‘그래서 배치나 인테리어를 할 때도 직원들을 역광에 두지 않고, 자연광을 제일 잘 받는 위치에 두는 편’, ‘그분들이 가장 예뻐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라는 말까지 비난받고 있다. ‘매장의 멋을 위해 직원들을 직사광선에 노출시킨다’라는 것이다.

 

잘 된 브랜딩의 성공 사례였던 ‘런베뮤’의 모든 ‘멋짐’은 어찌 보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런 부분은 좀 억울하겠다 싶을 정도로 이렇게 한순간에 ‘구림’으로 전락해 버렸다. 한때 그런 ‘런베뮤’를 멋지다고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이 정반대의 편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지만 ‘런베뮤’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호불호에 대한 판단이 없었던 잠재적 고객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구리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고, 기존의 충성 고객 가운데 일부 혹은 상당수가 큰 실망감을 느끼고 이탈하는 조짐이 보인다는 점에서 ‘런베뮤’ 브랜드가 입은 손상의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는 수준을 넘어 치명상에 가까워 보인다. 

 

세상에 맛있는 빵은 너무나 많지만 ‘런베뮤’의 멋짐은 고유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더 이상 멋지지 않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구리다고 말하는 이 브랜드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적당한 성공 가지고는 약 2,000억이라는 사모펀드의 인수액을 설명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한 가지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의 상황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런던베이글뮤지엄 스스로였다는 것. 회사 숙소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후의 대응이라도 달랐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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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블로터〉 (링크)

 

일단 ‘런베뮤’에 큰일이 난 건 맞다. 작년 한 해 단 6개의 매장에서 800억에 가까운 매출을 뽑아냈던 곳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오픈런과 대기를 감수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과 높은 포장 판매 비중으로 각각의 매장 모두에서 거둘 수 있는 매출의 극한을 기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약 여기에 가해진 브랜드 이미지 손상으로 모든 매장이 ‘제법 잘되는 매장’ 수준으로 매출이 떨어진다면? 앞서 말한 대로 적당한 성공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물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다. 쏟아지는 보도량이 줄어들다 잠잠해질 때쯤, 브랜드를 총괄하는 창업자가 참회의 기자회견을 할지도 모른다. 이 일을 계기로 인사 관리 시스템이 환골탈태하여(가장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금 예전의 ‘멋짐’을 되찾을 수도 있는 일이다. 

 

쉽지는 않을 거다. ‘런베뮤’가 더 세련된 브랜딩을 할수록 과거의 자신이 소환되어 싸움을 걸어올 것이기에 그렇다. 그동안 돋보였던 창업자의 개인기와 대외 활동은 이제 역효과 말고는 당분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런베뮤’가 준비하고 있던 해외 진출이 성공할 가능성은 있다. 지금 안국동 매장은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국내 매장의 노동 환경과 인사 관리에 대한 문제를 해외에서 같은 민감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 

 

 

‘나다움’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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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C〉 (링크)

 

‘런베뮤’ 창업자 이효정 씨의 과거 인터뷰나 그의 에세이를 보면, 그가 20여 년간 몸담아온 패션 업계를 떠나 카페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든 계기를 발견할 수 있다.

 

“10여 년 전에 런던을 길게 여행한 적이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우연히 그 카페에 들어갔다. 열 평 정도 공간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직원들이 영국인, 인도인 등 여섯 명의 바리스타들의 인종이 모두 달랐고, 작은 카페였지만 손님도 많았다. 바리스타들이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원두에 관해 설명해 줬고, 손님들도 기다리는 시간 속에 여유 있게 녹아들어 서로 배려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커피를 내릴 때도 천천히 내리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굉장히 거친 방식으로 내리는데도 커피의 맛이 좋았다. 전까지만 해도 카페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나 바이브, 이런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공간에 밀도가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간 F&B와 관련한 일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직업을 바꾸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충격을 받았다.”

 

- 2023년 ‘조선비즈 유통산업 비즈 포럼’에서 열린 대담 중 ‘런베뮤’ 창업자의 말

 

창업자는 런던의 ‘몬머스 커피(monmouth coffee)’라는 카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또 일관되게 ‘나다움’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하거나 유행을 좇지 않고 나다움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브랜드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도 ‘나다움’으로 답하고 강연에서 만난 청중들, 책으로 만나는 독자들에게도 ‘나다움’을 권한다. 

 

몇 달 전 읽었던 그의 에세이를 가득 채운 이러한 메시지에 여전히 동의하고 공감한다. 그 진성성을 딱히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나 이번 일을 통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그가 몬머스 카페에서 본 서로 다른 인종의 바리스타들을 상상해 본다. 스스럼없이 손님들과 대화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 생동감과 에너지를 뿜어내는 바이브까지. 그런 모습을 통해 창업자는 나름의 이데아를 그려서 자신 매장에 구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나다운 것을 채워 넣은 그 공간에. 

 

창업자는 ‘진짜’를 강조하기도 했다. ‘진짜 나’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런베뮤’의 성공에 대해 사람들이 ‘진짜’을 알아봐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도 했다. ‘런베뮤’는 실로 그러했다. 창업자의 ‘나다움’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한국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작은 인테리어 하나까지 치밀하게 신경 써서 진짜 런던의 어떤 공간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그에게 충격과 영감을 선사한 그 바리스타들은 ‘런베뮤’ 매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몬머스 커피의 그들은 CCTV를 돌려보는 관리자의 눈을 통해 실수를 지적당하고 시말서를 썼을 것 같지 않다. 한숨을 쉬지 말라거나 부드럽고 즐거운 어투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 같지도 않다. 일이 힘들어 표정이 좋지 못했다고 ‘조치’를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게다. 

 

그러한 ‘거의 진짜 같음’과 ‘진짜’ 사이의 틈이 이번 일을 통해 대중에게 드러났다. 거의 진짜 같았기 때문에, 진짜를 내세웠기 때문에 더욱 공허함이 컸던 것도 같다. 무엇보다 그 세계를 지탱하는 ‘나다움’에 ‘우리’가 빠져있는 모습이 너무 여실히 드러나서 허탈했다. 매일매일 만날 수 있는 따뜻한 베이글로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내게 그곳은 볼 수록 허탈하고 허기진 이름으로 남을 것 같다. 

 

이제라도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나다움’에 ‘우리’가 속하기를 진짜로 바란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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