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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왕자는 더이상 왕실 구성원으로서의 공식적 지위와 칭호를 유지하지 않는다."
영국 버킹엄궁은 냉정한 발표를 내놨다. 국왕 찰스 3세는 자신의 친동생인 앤드류를 영국 왕실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한때 ‘요크 공작’이라 불리며 왕실의 인기 인사로 꼽히던 남자는 이제 왕실 문턱조차 넘을 수 없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다. 장남 찰스, 장녀 앤, 차남 앤드류 그리고 막내 애드워드. 남편 필립을 닮은 딸 앤은 젊은 시절의 필립과 같이 진취적이고 과감했다. 앤은 필립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엘리자베스는 섬세하면서도 다정하고 마음씨 착한 아들 앤드류와 애드워드를 아꼈다. 그중 앤드류에게 각별했다고 알려져 있다.
공주 시절 낳은 찰스와 앤은 보모에 의해 길러졌고, 여왕이 된 후 정서적 안정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는 직접 육아를 선택했다. 그래서 그 첫 혜택을 앤드류가 누린다. 유년 시절,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가 앤드류였다. 그에겐 필립 같은 남자다움이 있었다. 포클랜드 전투 당시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고 국민은 그런 앤드류를 사랑했다.
이에 반해 속된 말로 약간 모지리 같던 찰스는 특별한 능력이 있지도 않았고 사교성이 떨어져 학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장남이라 왕위를 물려받을 위치에 있었던 찰스는 늘 왕가에 골칫거리였다. 그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다이애나 비 덕이었다. 하지만, 찰스는 그런 다이애나를 내치고 끝내 카밀라와의 연을 이어갔다. 엘리자베스가 눈감는 순간까지 찰스는 영국 왕실의 부끄러움이었다.
찰스에게 성별이 다른 여동생 앤과 조용한 성정의 막내 애드워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앤드류만이 눈엣가시였다. 그런 찰스에게 앤드류를 내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불륜 이미지로 얼룩진 이미지를 덮을 기회였다. 모든 화살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만큼 좋은 기회는 없었다. 때를 기다리던 찰스는 이때다 싶어 동생 앤드류를 왕가에서 영구 제명한다.
대체 어떤 이유로,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왕자 앤드류는 이리 가혹하게 내던져진 걸까?
앤드류 왕자, 앱스타인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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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영국 왕실은 수많은 스캔들을 겪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사생활 문제로 정리되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미성년 성매매 앱스타인 사건은 단순 사생활 문제가 아닌 범죄 연루였다. 앱스타인 스캔들은 왕실의 도덕성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제프리 앱스타인은 1953년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교사에서 투자자문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의 인맥은 화려했고 그가 벌어들인 돈의 출처는 불분명했다.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빌 게이츠, 스티븐 호킹과 유명 대학의 교수진 그리고 영국 왕실까지. 그는 부유하고 권력을 거머쥔 일부 남성들의 친구이자 비밀을 지닌 중개자로 통했다. 그는 더 큰 부를 축적하기 위해 권력과 성범죄를 결탁한 일종의 VIP를 위한 미성년자 성접대를 시작했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권력을 추구하고 얻으면 보상을 추구하게 되고, 이러한 보상심리가 성적 동기 혹은 욕망을 연결하는 간접적인 경로(행동 및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관찰되어 왔다. 그래서일까? 유독 정재계 권력자들과 유력 인사들이 추구하는 부도덕한 성적 욕망은 시대불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이지 않았다. 앱스타인은 그 욕구를 채워주며 자신의 안위를 찾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2005년, 플로리다 경찰은 앱스타인의 저택에서 14세 소녀가 성적으로 학대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한다. 수사는 수십 명의 피해자 증언으로 이어졌다. 거물급 유명인들이 연루되었기 때문이었을까. 2008년, 앱스타인은 비밀합의(plea deal)로 연방기소를 피하고 13개월동안만 교도소에 머물렀다. 그마저도 업무 외출을 허용받는 특혜였다. 이와같은 면죄부 합의를 주도한 검사는 훗날 트럼프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알렉산더 아코스타였다. 권력의 순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등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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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스타인의 범죄는 단순한 성착취가 아닌 권력층을 포섭하는 구조적 착취 시스템이었다. 그는 젊은 여성들을 마사지사로 고용해 고위층 남성들에게 소개했고 이후 그들의 협박(블랙메일) 수단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충격적인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N번방 사건의 롤모델이 앱스타인이다. 앱스타인이 소유했던 거대한 맨해튼 저택과 카리브해의 아일랜드(Little Saint James)는 사실상 성착취의 거점이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 해당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들은 다양했다. 기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은 앱스타인의 오랜 동반자이자 모집책이었다. 2022년 성매매 및 인신매매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대표적인 인물은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으로 하원의원에서 탄핵까지 됐던 빌 클린턴은 앱스타인의 개인 제트기를 여러 차례 이용한 사실이 항공기 로그에서 확인됐다. 이제는 결별했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 앱스타인과 플로리다 사교계에서 활동했던 도널드 트럼프도 여전히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스캔들 관련자가 바로 앤드류 왕자다. 런던을 비롯한 뉴욕, 버진아일랜드 등에서 앱스타인과 함께 목격된 다수의 사진과 일정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의혹을 받아왔던 다른 유력인사들보다 확실한 증거들이 포착되어 용의선상에 올랐다. 다만 2019년, 미성년자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앱스타인이 같은 해 8월 맨해튼 교도소 독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 공식적으로는 ‘자살’이었지만, 교도관의 근무 부재와 CCTV 고장으로 인해 살해 의혹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이후, FBI와 미 법무부는 2025년 재조사 결과 타살 정황은 없다고 재확인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앱스타인의 성범죄 연루 리스트는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앱스타인의 연인이자 공범으로 알려진 맥스웰이 당시 17세였던 버지니아 주프리(Virginia Giuffre)를 런던으로 데려왔고, 그 자리에서 앤드류 왕자가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사건의 상징처럼 남은 한 장의 사진은 지금까지도 왕실의 불편한 진실로 남아 있다.

앤드류 왕자와 버지니아 주프리 그리고 앱스타인 공범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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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이를 “조작된 사진”이라 주장했지만, 디지털 감식과 증언 과정에서 사진의 진위가 인정되면서 논란은 수습 불가능하게 되었다. 2021년 주프리는 뉴욕 연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초 두 사람은 비공개 합의에 이르렀다. 금액은 약 1,200만 파운드(한화 200억 가량)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돈으로 매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왕실의 평판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추락했다.
1999년, 앤드류와 앱스타인은 맥스웰의 연결로 처음 만남을 가진다. 이후 앤드류는 뉴욕과 버진아일랜드 등지에서 여러 차례 앱스타인의 초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앱스타인이 2008년 성범죄 유죄 판결을 받은 뒤에도 앤드류는 2010년 앱스타인을 찾아 뉴욕에서 함께 머물렀다. 앤드류는 BBC Newsnight 인터뷰에서 앱스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앤드류의 말을 믿을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2019년 말,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아들의 모든 공식 직무를 박탈했고 왕실 홈페이지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이유에는 노환도 있지만, 아들 앤드류의 범죄 영향도 컸다. 그리고 국왕이 된 찰스 3세는 쐐기를 박았다. 왕가의 일원으로서 누렸던 앤드류의 모든 혜택을 박탈했다.
왕실은 필요한가

앱스타인-앤드류 사건은 단순히 권력형 성범죄 혹은 영국 왕실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왕실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reign but not rule)"는 원칙 아래 왕실의 상징성과 민주제의 제도성을 조화시켜왔다. 입헌군주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통해 합리적인 국가 통치를 하는 동시에 오랜 전통적 가치를 유지하는, 진보적 체재와 보수적 가치를 모두 갖겠다는 위험하면서도 용기있는 시도였다. 하지만, 왕가라는 이름이 갖는 논란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았다. 영국 왕실도 마찬가지였다. 지속적인 사생활 문제와 도덕적 해이, 최소한의 법적 책임이라는 특권으로 존재 이유를 의심받고 있다. 전통이라는 구실 뒤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왕실이라는 타이틀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불평등은 입헌군주제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의 중심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왕실 스스로에게 있다.
입헌군주제의 정당성은 왕실의 품위가 아니라, 공공의 신뢰와 책임 의식에서 나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현이다. 귀족층(Noblesse)에게 의무를 지운다(oblige)는 단어가 결합된 프랑스어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권력, 부를 가진 사람일수록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 특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귀족은 특권만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도덕 규범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해왔다. 귀족이 과거의 특수계급을 뜻한다면, 현대적 의미에서 귀족은 정치인, 경제인, 고위공직자, 학자, 종교 지도자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도 크다는 원칙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앤드류 왕자의 행실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은 책임을 져 버리고 거짓으로 일관하며 대중을 기만했다. 영국 국민은 이제 ‘왕실을 존경할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최근 조사된 여론조사에서는 군주제 대신 선출된 국가 원수가 있어야 한다는 비율이 40%대까지 치솟았다. 물론 군주제 폐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반에 가까운 인구가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앤드류의 성범죄 사건 이후 영국인들의 왕실에 대한 회의감은 커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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