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카고 대학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교수가 「역외 균형 전략 예시: 미국의 대전략」(The Case for Offshore Balancing: A Grand Strategy)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미국의 외교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글로 평가받는다.
이 글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서반구에서 패권을 공고히 하고, 아시아, 유럽, 중동 등 서반구 이외의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수 있는 지역 패권국(regional hegemon)의 등장을 막는다는 것.
핵심은 지역 패권국의 등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직접 힘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괜히 힘 빼지 말고, 지역의 다른 국가들을 동원하여 지역 패권국을 견제하자는 것인데, 만약 이런 견제를 뚫고 강력한 ‘패권국’이 등장한다면, 그때 미국이 개입하여 해당 지역의 세력 균형을 맞추어 주면 된다는 주장이다.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미어샤이머의 이 주장을 간결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괜히 쓸데없는 힘 빼지 말고, 중국 놈들 막는 데 온 힘을 집중해!”
러시아는 유럽에 넘기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중동에서는 발을 빼라는 것이다(실제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관계 정상화인 아브라함 협정은 미국이 중동 개입을 줄이는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 견제 대전략의 대목에서 핵잠수함이 튀어나온 것이다.
1. 일본이냐 한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상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을 막을 수 있는 미국의 파트너는 일본이 맞다. 세계 3~4위권의 경제력에, 미국의 혀처럼 움직이는 외교 행보, 거기에 열도라는 특징과 맞물려 구성된 해상자위대까지. 특히 섬이란 점이 군사적으로 상당한 이점을 제공하는데, 군사력 육성을 해군과 공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해군 육성에 사활을 걸었고, 2차대전 직전에 이미 세계 3위의 해군력을 자랑했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또 센카쿠 열도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이 공동의 적이라는 인식, 1억에 상당하는 인구, 국력, 국방력의 수준을 고려할 때 일본은 미국의 훌륭한 파트가 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연구 결과를 보면, 중국과 미국이 대만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벌일 경우, 일본이 자국 공항을 어디까지 허락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피해가 달라진다는 결과를 주요 변수 중 하나로 내놓았다. 이것만 봐도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고민해 봐야 할 질문이다.
“미국은 일본에 베팅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의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을 키워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미어샤이머의 주장처럼 지역의 다른 세력을 키워서 지역 패권국을 견제하는 게 맞다. 그런데, 여기서 찜찜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야, 너 일본 믿을 수 있어?”
20세기 초, 일본을 키워서 러시아를 견제했던, 영국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러일전쟁 당시 영국과 미국이 일본의 뒤를 봐줬고, 그 결과 진주만이란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냉전 시절, 소련을 견제하겠다고 키운 중국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는가.
미국이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
“중국을 견제할 정도의 힘은 있지만, 미국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 정도의 나라”
문제는 일본이 아무리 봐도 찜찜하다는 것이다. 잘 키운 21세기 일본이, 20세기의 일본이나, 현재의 중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일본도 핵잠수함을 가지고 싶어 한다. 이런 열망은 카와구치 카이지의 〈침묵의 함대〉란 만화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미 80년대부터 일본은 핵잠수함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제2차 대전이란 원죄와 함께 평화헌법 등 각종 제약에 물려 있다.
여기까지 보면 슬슬 감이 올 것이다. 트럼프의 핵잠 허용이 트럼프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 전략적 판단이 개입된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장영실급 잠수함
출처 - 대한민국 해군
2. 왜 하필 한국일까?
전략적으로 볼 때 한국은 미국에게 이런 나라다.
“다루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애가 착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체급이 작다. 경제력은 약 2.5배 작고, 인구는 40% 수준이다. 반도 국가이면서 북한이란 적과 마주하기 때문에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육군에 할애해야 한다.
또한 이런 나라임에도 전략적 모호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미국에 붙을 확률이 높지만, 그때까지 계속 줄타기를 하면서 간을 보겠다는 ‘의지’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불편해하면서도 일본과 저울질 할 만한 ‘뭔가’가 있다.
“한국이 좀 까탈스럽긴 한데, 그래도 애가 착하다니까.”
일본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힘 좀 쓸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은 다지고 있다는것을 미국은 이미 알고 있다. 간혹 버티고 말을 안 들을 때가 있지만, 최후의 최후에는 미국 편에 서리라는 믿음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결정적인 강점이 하나 있다.
“한국은 죽었다 깨도 지역 패권국이 될 수 없다.”
이 믿음이다. 미국이 한국을 밀어주면, 선봉에 서서 행동대장 노릇까지는 가능하겠지만 미국 뒤통수를 칠 체급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미국이 그레이트 게임을 하던 시절 일본을 키웠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험, 소련 시절 중국을 키웠다가 지금 뒤통수 맞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섣불리 일본에게 힘을 실어줄 수가 없다. 일본과 손잡고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대전략은 유효하지만, 일본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차세대 추진력을 갖추고 수직 발사 장치를 탑재한 신형 잠수함 보유를 목표로 한다.”
지난달 20일, 일본은 이미 집권 자민당과 유신회의 연정 수립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정책 합의를 발표했다. 여기서 말한 차세대 추진력이란 곧 원자력 추진이다. 이미 일본의 목표는 나온 거다. 문제는 이걸 미국이 승인하느냐인데, 미국은 일본보다 한국의 손을 먼저 들어줬다.

출처 〈BBC KOREA〉 (링크)
3. 한국이 핵잠을 가지게 된다면?
한국이 핵잠을 가지는 표면적인 이유는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막는 것이겠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전략적 이유를 들자면 단연 중국이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의 209급 재래식 잠수함 1척을 잡기 위해 영국 해군이 엄청난 전력을 소모했지만, 끝내 아르헨티나의 산루이스를 잡지 못했다. 이게 바로 잠수함의 힘이다. 단 한 척으로 함대 전체의 발을 더디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핵잠수함이다.
이 한 척 때문에 중국 해군은 상당한 대잠수함 전력을 투입해야 하고, 함대 출격 전에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후의 최후까지 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피해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할까.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한국의 참전을 원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중국은 불안할 것이다. 언제든 빈틈을 치고 들어올 수 있는 한국이 옆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전략적 부담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핵잠을 건네겠다고 나선 것은 트럼프의 시혜도 아니며, 미국이 한국을 특별히 좋아해서도 아니다. 당연히 미국도 치밀한 계산하에 한국을 자신들의 〈그레이트 게임〉에 장기말로 쓰려는 전략 중 하나다.
미국도 알고, 한국도 알고, 일본도 알고 있다. 심지어 중국도 알고 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부분이며,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은 이미 사전에 충분한 교감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핵잠을 노래 불렀고,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하나둘 퍼즐을 맞춰 나갔던 이야기다. 그럴만한 깜이 되는 '말'이란 게다.
어차피 미국은 태평양 우방국들에게 핵잠을 뿌리겠다고 팔 걷어붙인 상황 아닌가. 호주는 이미 바이든 시절부터 핵잠 대기 줄에 섰고, 일본도 시기의 문제일 뿐 핵잠을 보유할 것이다. 미국도 조건을 면밀히 검토하고, 일본의 속내를 파악할 것이다.
이미 동북아시아에서 핵잠을 가질 수 있는 ‘기준’을 한국이 얼떨결(?)에 확립한 셈이다. 핵잠을 보유하려면 미국의 농축우라늄을 제공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당량의 대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 즉, 핵 추진 잠수함 프로젝트를 미국의 통제 하에서 추진할 수 있다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가 건조할 핵잠수함은 우리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지구 경영 전략의 한 축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제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게 됐다. 자신감도, 자괴감도 불필요하다. 우리는 핵잠이 필요했고, 미국은 통제 가능한 지역 파트너가 필요했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고, 상호 합의 하에 핵잠수함을 주고받은 것이다. 이재명 정부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시작했다.
이후 우리의 역할은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쓸 수 있는 칼 하나가 더 늘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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