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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약속은 어떻게 배신당하고 있는가

 

환경문제는 생태계 위기만이 아니라 문명이 지속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른다. 공기가 오염되고 해수면이 높아지는 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식량과 물, 에너지, 주거, 보건이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적인 위기다. 가뭄이 길어지면 생산망이 흔들리고, 홍수가 잦아지면 식량 가격이 치솟으며, 산불은 탄소배출을 가속한다. 기후가 불안정해지면 사회도 불안정해진다. 그래서 기후 정책은 환경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이자 안보 정책이다.

 

이 위기를 막기 위해 세계가 세운 약속이 바로 2015년 파리 협정이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한다”라는 단일 목표 아래, 각국이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계획(NDC)을 정하고 5년마다 상향하도록 설계했다. 한 나라가 세운 목표가 전 세계의 총합으로 연결되는 구조, 이른바 ‘스스로 약속하고 함께 이행하는 체제’가 파리 협정의 핵심이다.

 

이 체제가 작동하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각국이 약속을 실제로 이행할 정치적 의지. 둘째, 개발도상국이 전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국제적 재원 구조다. 이를 위해 마련된 것이 NCQG(새 글로벌 기후 재원 목표)이며 선진국이 주도해 연 3천억 달러 이상을 조성하고 민간투자와 연계하기로 한 합의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현실은 정반대였다. 석유, 석탄 산업은 여전히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을 차지했고, 강대국 정치인들은 그 산업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미국은 협정 탈퇴와 복귀를 반복하며 신뢰를 흔들었고, 중국은 탄소 중립을 외치면서도 석탄 발전 신규 착공량 세계 1위를 유지했다. 러시아는 전쟁과 제재를 명분으로 화석연료 수출을 늘리며 배출 감축을 유예했다.

 

주범들은 겉으로 기후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기후를 망쳤다. 그들은 ‘에너지 안보’, ‘경제 성장’, ‘국민 부담 완화’ 같은 말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산업 로비와 단기 이익이 지구의 생존보다 앞섰다. 우리가 한눈판 사이 그들이 만든 언어가 ‘상식’이 됐고, 그 상식이 지구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베렝이란 무대와 빌런들의 실체

 

1. 쇼의 무대 - ‘열대 우림 속 국제회의’라는 연극

 

아마존 관문 도시, 브라질 베렝에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리고 있다. 인류가 열대 우림의 심장부에서 기후 미래를 논한다는 상징성을 보여 주려 했지만, 그 상징은 이미 낡은 수사처럼 들린다. 지구의 허파라 불린 숲은 회의 배경으로만 소비되고, 그 한가운데서 인간의 진정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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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행사장 밖

출처 〈AP 연합뉴스(링크)

 

브라질 정부는 벌목률 감소를 내세우며 ‘환경 리더’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아마존 인근 해양 유전 시추를 승인했다. 현실적으로 전환기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있지만, 그 결정에 대한 명확한 종료 시한이나 감축 로드맵은 없다. 숲을 지키겠다는 선언과 석유를 캐겠다는 선택이 함께 존재하는 모순, 그것이 이번 총회 출발점이었다.

 

회의장 밖 풍경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공식 대표단보다 석유·가스 기업 로비스트가 더 많다고 한다. 그들은 배지를 달고 자유롭게 출입하며, 회의 의제를 시장 언어로 둔갑시켰다. 기후 위기 해법을 논하는 자리에 화석연료 산업이 가장 큰 목소리를 냈다. 오늘날 국제정치의 민낯이었다.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생존 문제를 호소하지만,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문다. 북반구 기자들은 그걸 ‘원조를 요구하는 남반구의 목소리’로 축소하고, 화면에는 여전히 지도자들 악수와 선언만 비친다.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그 문장을 책임질 얼굴은 어디에도 없다.

 

COP30은 회의라기보다 힘의 지도 위에서 펼쳐지는 협상의 과정이다. 열대 우림은 배경으로 남고, 결정은 언제나 북반구에서 내려온다. 논의 주제는 ‘지구의 미래’지만, 문장 끝에는 늘 돈과 에너지 계산이 있다. 이번 총회가 보여주는 건 이상이 아니라 구조다. 생태의 탈을 쓴 정치와, 정치 언어로 포장된 환경이 한 무대 위에 공존하고 있다.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책임은 흩어지고, 약속은 미뤄졌다. 베렝의 공기는 뜨겁지만, 그 뜨거움은 열대 기운이 아니라 인류의 무능이 만든 열기다. 이 회의는 회생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패를 반복하는 의례가 되어가고 있다.

 

 

2. 제도의 붕괴 - 약속을 배신한 돈과 권력

 

각국이 5년마다 스스로 감축 목표를 높이기로 한 약속, 그게 NDC였다. 올해 그 약속 시한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다수 국가는 새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경기 둔화와 고용 불안을 이유로 상향 폭을 축소했고, 중국은 산업 경쟁력 유지를 명분으로 제출 시기를 늦추고 있다. ‘자발적 상향’이라던 약속은 ‘조용한 지연’으로 바뀌었고, 파리협정 핵심은 서류 속 절차로만 남았다.

 

NCQG는 세계가 처음으로 세운 ‘기후 정의 금고’였다.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연 3천억 달러를 마련해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전환을 돕겠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돈은 숫자로만 존재한다. 목표 규모는 정해졌지만, 실제 분담과 집행은 합의되지 않았다. 각국 재무부는 서로 책임을 미루며, 기부 대신 대출과 민간 자본 유치를 택했다. 기후가 공공선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이 되는 순간, 숭고했던 약속은 부채 장부가 되어버렸다.

 

선진국들은 지원이 아니라 금융을 수출했다. 이름은 다양했다. 녹색 채권, 전환 펀드, 기후 대출. 그러나 대부분은 시장 논리 위에서 움직였다. 무상 지원은 예외에 불과했고, 가난한 국가는 대출을 갚기 위해 다시 자원을 팔았다. 탄소 감축을 위해 세운 제도가 결국 채무와 수탈 고리를 강화한 셈이다. 기후 정책은 불평등을 줄이기는커녕, 그 구조를 한층 세련되게 재생산하고 있었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존재하지만,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허리케인으로 무너진 섬과 가뭄으로 메마른 농지는 현실인데, 지원금은 절차와 협정이라는 벽에 갇혀 있다. 피해는 눈앞에서 벌어지지만, 구제는 해마다 다음 회의로 미뤄진다. 인도주의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였고, 정의는 절차를 따지는 말뿐이었고, 절규는 회의록에 각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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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건복지포럼〉 (링크)

 

탄소시장은 원래 ‘감축 비용이 적은 곳에서 줄이고, 높은 곳은 그만큼 비용을 지불한다’라는 단순한 원리에서 출발했다. 한 나라가 감축한 만큼의 배출권을 다른 나라나 기업이 사서 자국 감축 실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효율을 높이고 전체 감축량을 늘리는 구조지만, 실제로는 감축이 아니라 거래의 장이 펼쳐졌다. 기업들은 온실가스를 줄이기보다, 값싼 배출권을 찾아다니며 장부에서 숫자만 바꿨다.

 

이제 탄소시장은 기후 산업의 새 얼굴이 되었다. 거대한 회계 네트워크 안에서 탄소는 상품이 되고, ‘탄소중립’은 광고 문구로 재탄생했다. 실제로 줄어든 건 탄소가 아니라 책임이다. 수치는 감소했지만, 지구 온도는 그대로이며, 그 사이 공백은 ‘거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기후는 이제 구원이 아니라 비즈니스가 되었다. 회의장은 가장 세련된 사기극의 무대다. 말뿐인 감축으로 포장된 이 시장에서, 돈은 공기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COP30은 지금 ‘정의를 논하는 회의’가 아니라 ‘회계를 논하는 회의’가 되어 가고 있다. 문서와 표, 지표와 통계는 정교해졌지만, 지구의 체온은 여전히 내려가지 않고 있다. 대화는 넘치지만, 결단은 보이지 않고, 의제는 진보하지만, 방향은 제자리다. 파리협정 언어가 돈의 언어로 전락하면서, 지구의 시간은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다. 그것이 이번 총회를 바라보는 세계의 가장 깊은 불안이다.

 

 

3. 주범의 실체 - 환경 빌런의 진화된 거짓말

 

1970년대, 주요 석유 기업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사 과학자들 보고서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상승이 해수면을 높이고 기온을 올릴 것이라는 경고가 명시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 보고서를 숨겼다. 대신 언론과 의회에는 “과학적 불확실성이 크다”라는 메시지를 흘렸다. 정보를 은폐하고 회의를 조장하는 게 하나의 전략이었다. 그때부터 기후 진실은 기업 이익과 맞서는 불편한 지식이 됐다.

 

1990년대에 이르면서 그들은 더 세련된 전술을 택했다. “기후 규제가 강화되면 경제가 무너진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라는 공포를 조직적으로 조장했다. 싱크 탱크, 산업 연합, 경제단체가 앞장서서 “성장은 환경보다 우선”이라는 프레임을 퍼뜨렸다. 과학적 논쟁은 경제 위기론으로 대체되었고, 공론장은 이해의 장이 아니라 선전의 무대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전략이 또 바뀌었다. 노골적인 부정을 버리고, 책임을 시민에게 돌렸다. “탄소발자국을 줄이자”라는 캠페인은 그럴듯했지만, 실제로는 개인에게 죄책감을 떠넘기는 산업의 방패막이였다. 기업의 책임을 가정의 소비 습관과 개인의 양심에 전가하면서, 면죄부를 얻었다. 기후 위기는 공동의 문제였지만, 책임은 개인의 선택으로 쪼개졌다.

 

2010년대 이후, 거짓말은 기술적인 언어로 세탁됐다. ‘청정연료’, ‘탄소 포집’, ‘탄소중립 연료’ 같은 단어들이 새로운 구호가 되었다. 석탄이 ‘클린콜’로, 석유가 ‘블루수소’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기술은 구원의 상징이 아니라 면책의 수단으로 쓰였다. 상용화되지 않은 장치와 실험적 모델을 근거로 들면서, 그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라는 희망을 팔았다. 당장 감축하는 것보다 나중에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편했던 것이다.

 

그들의 언어는 다시 정치의 언어가 되었다. “경제를 위해 불가피하다”, “국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라는 말이 정책 논리로 반복됐다. 언론은 이를 인용하며 “균형 잡힌 보도”라 했고, 대중은 그 균형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합리의 언어가 기만의 언어로 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환경 빌런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로비스트로, 자문위원으로, 후원자로 형태만 바꿔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서 있다. 자본이 회의장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면, 회의장 안에서는 그 자본이 만든 주장이 채택됐다. 기후 정책은 그들의 투자 전략의 일부였고, 지구는 그 이윤의 부속물로 전락했다. COP30의 논의가 이들이 만든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 한, 약속했던 미래는 또 한 번 늪 속으로 빠질 것이다.

 

 

거짓말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COP30은 회의가 아니라 고백의 시간이었다. 누가 지구를 망가뜨렸는지, 이제는 모두 알고 있다. 변명할 여지도, 숨을 그늘도 남아 있지 않다. 각국의 연설은 여전히 ‘책임’이라는 수사에 머물고, 숫자와 계획을 늘어놓으며 또 한 번 진심이라고 말한다. 브라질의 베렝은 지금, 진실이 모여 있지만,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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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색전환연구소〉 (링크)

 

지금의 1.4도는 단순한 기후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무능, 산업의 탐욕, 언론의 방조가 결합된 결과다. 정책은 미뤄졌고, 산업은 눈을 돌렸으며, 언론은 그 모든 과정을 ‘논쟁’이라 불렀다. 각자의 역할이 결합해 만든 이 온도의 상승이야말로, 인류 전체의 구조적 공모였다는 증거다. 기후 위기는 자연의 반란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불러온 체계의 자멸이다.

 

이대로라면 다음 세대는 회의장이 아니라 생존 캠프에서 토론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딸, 아들들은 정책 초안을 논의하는 대신, 생존 매뉴얼을 작성하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그 예고편이 시작되었다. 폭염 속의 교실, 물에 잠긴 도시, 불타는 숲. 오늘의 미온이 내일의 절망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 기후 위기는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이다. 더 줄일 수 있느냐가 아니라, 더 외면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바뀌었다. 이 위기 앞에서 정치적 계산과 산업의 수익은 어떠한 변명도 될 수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선택이다. 인간이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변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구는 언젠가 회복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문제는 그때까지 인간이 그 속도를 견딜 수 있는가다. 자연은 인간보다 오래 버텨왔고, 인간보다 냉정하다. 우리는 여전히 중심이라 믿지만, 지구의 시간은 이미 우리를 앞서가고 있다. 회복은 자연의 권리이지, 인간의 권리가 아니다.

 

베렝의 공기 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지구는 변했는데, 인간은 언제 변할 것인가.”

 

COP30이 끝나도 이 질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의 시대를 끝낼 수 있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각성이다. 그리고 그 각성을 더 미루기에는, 이제 시간이 너무 뜨겁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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