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산자를 구하다
2024년 12월 3일, 고된 하루를 마치고 침실에 머물 무렵이었다. 분명 9시 뉴스가 끝났는데 TV에 대통령이 다시 나타났다. 밤 10:25분. 당시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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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가장 평화로워야 할 시간에 느닷없이 폭력을 선언한 대통령. 그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단어인 계엄을 입에 올렸다. 역사적 아픔이자 과거의 사건이 현재 시제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실성이 없었다. 이게 진짜라고? 어른들이 말했던 그 ‘계엄’을 진짜 지금 하겠다는 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언론사 속보 알림이 연속으로 울리고 어머니는 이모로부터 온 전화를 황급히 받았다. 격앙된 이모의 목소리가 휴대폰 밖으로 새어 나왔다.
“윤석열이 저게 미칬나. 계엄이란다 계엄! 저게 지금 진짜 계엄을 한다는 기가.”
억장이 무너진다는 이모의 표현이 딱 맞았다. 국민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한 장 한 장 쌓아온 민주국가를, 길어봤자 5년짜리인 대통령이 한순간에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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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의 명분은 취임 후 줄곧 외쳤던 반국가세력 척결. 반국가세력이 실재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를 위해 국회와 언론 등을 전면 통제하겠다는 사고 회로는 더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 대놓고 독재를 선포한 사람이 누가 누굴 보고 반국가세력이라 하는 건가? 지금 자기소개를 하는 건가.
윤석열은 기어코 자충수를 두었다. 민주당이 주도한 감사원장, 장관, 검사 탄핵 등을 거론하며 “이는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야당 정치인을 척결하겠다는 목표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에게서 “(지목한 정치인들)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와 김어준 여론조사 꽃 대표 등 체포 대상자 14명 명단을 전달받은 메모지가 존재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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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에 계엄이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로 의원들을 긴급 소집하고 라이브 방송을 통해 국민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그 무렵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초비상 상태였다. 별안간 사장이 긴급 체포될 수 있고, 당장 방송 송출이 끊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이 계엄 선포 직후 몇몇 언론사의 물과 전기를 끊으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단수·단전 언론사에 포함돼 있었다.
“집에 있으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수뇌부 지시에 따라 뉴스공장 직원들은 한밤중 서울 충정로 스튜디오(벙커)로 모였다고 한다. '김어준 체포'라는 명을 받은 계엄군은 벙커 주차장을 배회하며 출입구를 찾았고, 뉴스공장 직원들은 혹시라도 출입구가 뚫리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자정에 라이브를 켰다. 이날을 기점으로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6.3 대선까지 <뉴스특보> 체제를 운영하게 된다.
국회에는 군용 헬기와 소총을 든 계엄군 280명이 국회 유리창을 깨부수고 진입했다. 무기란 게 있을 리 없는 국회 보좌진들은 각종 집기를 끌고 나와 유리로 된 출입문을 막기 시작했다.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계엄군을 최전선에서 방어했다. 그 시각 국회 앞에서는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온 시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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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시민들의 연령대는 1980년, 5·18을 경험한 중장년 세대들이 주를 이뤘다. 겪어봤기에 막아야 했고, 잃어봤기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는 참혹한 고통이 재현돼서는 안 되었다. 손에 든 건 스마트폰 하나뿐이라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았다. 계엄군을 코 앞에서 맞선 시민들에게 두려움은 찾을 수 없었다.
훗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5·18 광주에서 땅에 묻히신 민주투사들이 2024년 12월 3일 계엄을 막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상을 탄 한강 작가는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도 이제는 답을 찾지 않았을까?
결국, 국민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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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4일 새벽 4시 27분.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선포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국민들은 간밤의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21세기에 계엄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모두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계엄 당일 오후,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상정했다. 음모와 망상에 사로잡혀있던 대통령은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란 것이 있냐”며,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게 폭동이란 말이냐”며 분개했다. 그러면서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는 시혜적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분노한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헌정사상 3번째 탄핵과 파면이라는 혼돈 정국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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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탄핵안은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저지로 실패로 돌아갔다. 의결 정족수 미달로 투표 자체가 불성립됐지만, 시민들은 굴하지 않았다. 도리어 화력을 더 불태웠다. 촛불보다 강력한 LED 응원봉이 거리를 밝히기 시작했다. 노랗고 밝은 빛이 국회 앞 대로를 가득 메웠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나온 패딩 군단은 연일 ‘윤석열 탄핵!’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이 나라의 진짜 주인, 국민의 힘으로 대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것이라며 다시 만난 세계를 꿈꿨다. 그렇게 12월 중순에 시작된 집회는 이듬해 4월이 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8:0 전원일치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비상계엄 이후 123일 만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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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123일간의 투쟁 기간.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한남동 관저 앞 시위였다. 재판부가 윤석열의 체포영장 집행을 무산시킴으로써 분노는 극에 달했다. ‘키세스단’이 출동했던 2025년 1월은 겨울치고도 유독 폭설이 많이 내렸다. 10cm나 눈이 쌓이는 한파도 키세스 시위대를 막을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알루미늄 은박 담요 하나로 막으며 밤낮 자리를 지켰다. 거리의 온도를 오로지 체온으로만 버티고 있었다.
시위대는 지치면 지칠수록 더욱 크게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정신을 잃으면 다신 못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화면 속 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현장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채감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전달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시각, 윤석열 부부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보일러를 풀가동한 따뜻한 관저에서 시위대를 관전하며 우매한 국민이라 비웃고 있지 않았을까? 합리적 의심이다.
계엄 1년, 아직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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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이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나의 지난 1년은 계엄, 탄핵, 파면, 21대 대선, 국정감사, APEC 정상회담, 계엄 1년 방송 준비로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 1년이 더 빠르게 흐른 것 같다. 그렇다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전 대통령 재판은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재판 기사를 검색하자마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귀연 재판부는 올해 말에 변론을 종결하겠단 입장을 바꿔 내년 1월까지 변론기일을 추가로 잡았다. 윤석열 구속 기한이 2026년 1월 18일까지인 점을 고려하면 또다시 풀려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내란 특검 수사, 김건희 특검 수사. 뭣하나 명백하게 결과가 나온 게 없지만, 이제 야당이 된 국민의힘에서는 뻑하면 ‘내란팔이’ ‘내란 우려먹기’를 그만하라며 네거티브를 펼친다. 계엄 정국이 지나고 혐오가 키워드로 떠오른 2025년이라, 정치권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언제 적 내란이냐’ ‘내란 들먹이는 것도 지겹다’며, 그날의 충격을 까마득 잊어버린 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아니꼬운 대상이 정부든 여당이든.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불평을 쏟아낼 수 있는 건 불과 1년 전 계엄을 막은 국민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쯤은 떠올려 보라고. 무임승차를 부끄러워하지는 못해도 행동한 시위대의 노고를 안다면 적어도 내란을 비아냥거려서는 안 된다. 최소한 그 정도의 품격은 있어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민주주의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을까? 헛된 바람일지라도, 누구나 일말의 양심은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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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작가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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