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걸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JAC가 판사를 뽑고, JAC를 CPA가 감시하고, CPA는 의회가 감시한다.
자, 그러면 여기서 또 같은 질문이 생긴다. 의회가 부패하면 어떡하나? 부정한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각 위원회를 독점해 판사도 입맛에 맞게 선발하면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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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 아래 서로 밀고 당겨주며 고위직을 차지했던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는 제도 개선과 개혁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권한이 집중되지 않도록 최대한 분리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계를 만들어냈다.
영국의 특정직 인원 선발 과정은 투명하다. 모든 과정이 국민과 언론에 공개된다. JAC 위원 선발, NHS 이사회, 대학평의회, 각종 위원회 등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중점적으로 보는 사안은 임명 과정이 공정했는지 절차에 대한 감독이다. 절차를 위반하면 선발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기관의 절차 위반 여부를 점검하는 게 모든 감사의 주요 업무다.
의회를 통해 선발된 CPA 역시 JAC 위원을 직접 선발하는 기관이 아니라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감시하고, 잘못되면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CPA의 수장은 ‘Commissioner for Public Appointments’ 단 한 명인데, 이 인물 역시 공공 임명 절차를 통해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된다.
총리실에서 직접 선발 공고를 내며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총리실에서는 공직 경력이 있는 전/현직 인사를 비롯해 비법조인 시민 대표를 포함한 독립된 심사위원회(Selection Panel)를 구성한다. 정치인은 위원 자격이 없다. 면접을 통해 윤리, 투명성, 공공 봉사 정신을 평가하여 최종 후보 3명 중 한 명을 총리가 국왕에게 추천해 임명한다. 물론 국왕은 총리의 조언에 따라 형식적으로 임명만 할 뿐 선택 권한은 없다. 이후 CPA는 의회에 직접 보고하며, 총리실과는 별도의 조직으로 독립적 운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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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CPA도 부패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 CPA 역시 사람이 운영하는 조직이니 이론적으로 부패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영국은 특정 인물 혹은 기관이 권한을 가지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다. CPA가 JAC를 감독하지만, CPA도 또 다른 기관들에 의해 감시받는다.
판사를 임명하는 기구인 JAC는 CPA의 감시를 받고, CPA는 영국 의회의 행정 헌법위원회(PACAC)에 연례 보고 및 심사를 받는다. 특히 CPA의 인사와 관련해서는 NAO(National Audit Office)의 감사를, 행정 투명성에 대해서는 ICO(Information Commissioner’s Office)를 통해 정보공개 요청 및 위반 제재를 받는다. CPA에서 실시하는 모든 행정 절차에 대해, 문제가 있을 시 의회는 즉시 소환해 청문회를 열 수 있고, 언론은 정보공개법을 통해 관련된 모든 서류를 요청할 수 있다. CPA는 반드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 또한 연간 보고서를 통해 전 국민에게 공개된다.
단점이 있다면, 과정이 길고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 관점에서 판사 한 명 선발하는데 수개월, 혹은 수년씩 소요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500년 가까이 진행되어 온 시민사회의 노하우, 그중 하나는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 요소가 부패라는 것을 영국은 알고 있다. 층층이 두텁게 쌓인 감시의 둑은 부패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고 이에 국민은 길고 긴 과정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습성을 터득했다. ‘믿을 만한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면서 전체의 신뢰를 만들고 있다.
도덕이 아닌 시스템으로 청렴을 만드는 것. 영국식 정의의 핵심이다. 영국의 사법 임명 시스템은 사람을 믿지 않고, 절차를 믿는 사회의 전형이다. 부패가 일어날 여지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물론 모든 기구는 인간이 만든 기관이지만, 그 위에 또 다른 감시자가 있고 마지막엔 국민이 있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외침은 국가의 투명성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깨어 있고 양심 있는 시민들의 눈과 귀야말로 사회를 청렴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영국 검사는 공익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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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권한을 가지고 기소를 결정하고 구형까지 하는 대한민국 검사. 기반만 잘 다지면 대형 로펌으로 퇴직할 수 있는 권력의 핵심으로 인식된다. 판사와 버금가는 전관예우의 끝판왕이다. 그렇다면 영국 검사들은 어떨까?
영국 검사는 한국과 인식, 대우,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선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에서 검사는 법조인이지만 사실상 행정직 공무원에 가깝다. 경찰이 조사한 사건에 대해 범죄가 있다고 판단하면 국가를 대신해 기소하고 법정에서 변론하는 법률가다.
먼저 영국의 사법절차를 보자.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이 수사를 진행한다. 수사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검사에겐 없다. 경찰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CPS(Crown Prosecution Service)가 기소 여부와 기소 내용을 결정한다. CPS는 범죄 사건 수사에 대한 기소 과정을 담당하는 독립행정기관으로 정부 및 법무부 산하에 있지 않다. 검사는 CPS 소속 공무원으로, 변호사 자격을 갖춘 법률가 경력이 있는 자로서 공개 채용 방식을 통해 CPS에 들어가 검사로 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수사 기록을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재판정에 나가 변론하는 일을 하는 공무원이다.
기소 여부를 검사가 결정하니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사실 그렇다. 검사는 결정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법정에 세울지 아니면 그냥 돌려보낼지를 판단한다. 그 결정 하나로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명예가 무너지고 혹은 가족 전체의 삶이 흔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검사는 분명 권력자고 그래서 그 권한을 놓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 당연한 사실이 성립하지 않는다. 검사는 분명 ‘결정’을 하지만, 그 결정이 ‘권력’이 되지는 않는다. 영국의 기소 제도는 검사의 판단을 절차의 일부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검사가 결정은 하지만, 결정의 주인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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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의 세계에서 기소는 생명선과 같다. 경찰이 아무리 열심히 수사해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법정은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기소 여부는 한 사회의 정의가 작동하느냐를 가르는 관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을 검사와 그 조직이 판단하고 지배한다. 기소권은 재량권이 되고, 재량권은 언제든 권력으로 변한다. 영국의 검찰도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의 판단에 기소를 맡기지 않는 방법을 고안한다. Code for Crown Prosecutors, 검사의 기소 기준 규정이다.
1986년, Crown Prosecution Service(CPS)가 설립될 때 함께 만들어진 이 규정은 기소 여부를 개인이 아니라 절차가 결정하게 하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이 문서는 법률이 아니라 행정문서이지만, 그 어떤 법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다. 기소할 때, 사건과 사안에 따라 분류된 규정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검사가 이 규정을 어기면 그 즉시 감사와 징계를 받는다. 주제별로 세세하게 분류된 지침서에 따라 기소와 불기소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검사 기소 기준 규정은 검사 개인의 판단 위에 있다.

규정은 두 개의 질문으로 구성된다. 증거가 충분한가? 그리고 공익에 부합하는가?
증거가 충분한가?라는 질문은 “유죄 판결이 날 현실적 가능성이 있는가?”를 묻는다. 유죄일 것 같다가 아니라, 유죄로 입증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경찰의 수사 보고서가 아무리 분량이 많아도,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신빙성이 낮으면 기소는 금지된다. 기소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공익성 검토는 정의의 균형추를 의미한다. 가령, 피의자가 고령자이거나 경미한 범죄를 처음 저질렀을 경우, 법은 처벌보다 회복을 우선한다. 검사는 이러한 상황을 검토해 공익에 맞는지 판단해야 한다. 영국의 검사는 정의의 집행자가 아니라 공익 관리자다.
또한 모든 기소 결정은 전자 시스템에 기록되며,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데이터로 남는다. 물론, 기소와 불기소 결정 모두 기록된다. 하지만, 이 결정은 결코 ‘최종’이 아니다. 영국에는 '피해자 재심 요구 제도'가 있다. 검사가 불기소를 결정하면,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항의할 권리가 있다. 이 경우 다른 검사가 사건을 다시 검토한다. 즉, 피해자는 “검사의 판단을 다시 묻는” 제도적 권리를 가진다. 기소하지 않는 것도 ‘책임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검사가 하는 기소는 권력의 행사가 아닌 절차의 완성으로 간주한다.

영국 기소청(CPS) 페이스북 메인 화면
그럼 대체 검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단지 규정을 읽고 문서에 서명만 하는 관리자에 불과한가? 조사가 끝나면 해당 자료를 AI에게 맡겨도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검사는 기계적으로 사건이 규정에 맞는지만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검사는 단순히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조율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 균형은 개인의 성향이나 정치적 판단이 아닌 법이 정한 원칙 안에서만 움직인다. 검사 기소 기준 규정이 바로 그 원칙의 범주를 결정한다. 영국의 검사는 권한이 있지만 그 권한을 자기 뜻대로 쓸 수 없다. 권력의 형식은 있지만, 권력의 실체는 없다.
기소의 절차와 결정도 그렇지만, 기소권 자체가 감사 대상이다. CPS의 모든 결정은 HMCPSI(HM Crown Prosecution Service Inspectorate) 라는 독립 감사기관의 감시를 받는다. HMCPSI는 무작위로 사건을 뽑아 기소 결정이 절차에 맞게 이루어졌는지 평가한다. 해당 결과는 매년 의회에 보고되고, 부당 기소나 절차 위반이 확인되면 CPS 전체가 공개 경고를 받는다. 기소는 검사의 권한이 아니라 검찰의 행정 행위로서 감사 대상이다. 결국, 검사의 ‘판단’이 아닌 조직의 ‘기록’이 남게 된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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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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