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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외곽의 한 도로. 흰 차 한 대가 신호에 멈춰 선 순간, 하늘에서 빛나는 작은 점 하나가 차를 향해 곧장 떨어진다. 순식간에 차는 거대한 불덩이로 변하고, 검은 연기가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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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잠시 그 불덩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날, 아니면 그다음 주에도 비슷한 장면이 다시 나타난다.

 

만약 이런 일이 서울 외곽의 여느 도로에서 벌어졌다면, 온 나라가 뒤흔들릴 만한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전쟁 준비라는 말까지 나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베이루트에서는 이런 일이 그만큼 낯설지 않다. 이런 장면이 더 이상 전쟁 특별 보도가 아니라, 평소 뉴스에서 짧게 스쳐 지나가는 영상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곳이 바로 베이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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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출처-<구글 지도>

 

지금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회색 전쟁’의 상태다. 포성이 멈추지 않지만 정식으로 전면전이 선포되지는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휴전이 발표되어도 누구도 정말로 안전해졌다고 믿지 않는다. 다음 충돌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만 바뀔 뿐, 폭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좀처럼 자라지 못한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집을 나서고, 장을 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도시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이어진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언제, 어느 골목에서 미사일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함께 있다. 아침에 인사하고 나간 가족의 뒷모습은, 그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품고 있는 장면이다.

 

믿기 힘든 이 일상의 지옥이 바로 같은 지구 위, 서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회색 전쟁의 특징은 전쟁이 한 번 시작됐다가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일상이라는 점에 있다. 전쟁과 평화가 시간 순서대로 교대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일상이 한 화면 안에서 뒤엉켜 버린 상황에 더 가깝다. 이곳 사람들에게 전쟁은 더 이상 예외적인 비상사태가 아니라, 일상을 서서히 잠식하는 상시적인 배경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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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ljazeera>

 

중요한 것은 이 회색 전쟁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표적 암살과 정밀 공습, 국경 너머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 ‘전면전은 피하면서 당장의 위협만 골라 없애는 방법’으로 선택된 결과, 전쟁은 짧은 충돌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업무가 되었다.

 

이 회색 전쟁의 한쪽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언제 폭격이 떨어질지 모르는 일상을 버티는 레바논과 가자가 서 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쥔 채 이런 방식을 오랫동안 선택해 온 이스라엘이 서 있다. 그래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바뀐다. 왜 이렇게 압도적 힘의 군대를 가진 이스라엘이, 끝없이 불안한 안보만을 되풀이하는 나라가 되었는가.

 

 

정밀 타격이 만드는 안보의 역설

 

이스라엘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선택해 온 전쟁 방식의 중심에는 정밀 타격과 표적 제거가 있다. 위험한 지휘관과 거점을 정확히 찾아내 미사일과 무인기로 없애면, 자국 병사의 희생을 줄이고, 정치적 부담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실제로 이 방식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안보 수단”으로 자주 소개되어 왔다.

 

단기적으로만 보면, 이런 판단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지상군을 대규모로 투입하지 않아도 되고, 전쟁을 공식 선포하지 않아도 필요한 목표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여론이 악화되면 작전을 잠시 멈추고, 다시 위협이 커지면 국경 밖에서 빠르게 타격하는 식으로, 전쟁을 하나의 관리 기술처럼 다룰 수 있다는 믿음도 생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안보의 역설이 시작된다. 당장의 위험을 줄이려는 정밀 공격이, 그 위험을 낳는 분노와 정당성을 동시에 키우는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표적 암살은 한 사람을 제거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순교자로 기억해야 할 이유”를 수많은 사람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담론에는 오래전부터 “승리하면 승리, 죽으면 순교로 또 다른 승리”라는 구호가 반복되어 왔다. 이런 사고방식 안에서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지휘관을 죽이는 순간은, 곧 새로운 승리 서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된다. “이스라엘이 그를 두려워해, 미리 제거했다”는 해석이 뒤따르고, 장례식은 다음 세대에게 분노와 충성을 전하는 정치 집회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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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삐삐 폭발로 사망한 

헤즈볼라 대원들의 장례식

출처-<SBS>

 

공습을 겪는 주민들의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처음에는 “언젠가는 이런 일이 끝나겠지”라는 희망이 남아 있지만, 폭격과 표적 공격이 몇 년, 몇십 년씩 반복되면 평화에 대한 기대 자체가 서서히 닳아 사라진다. 이웃이 죽고 집이 무너질 때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는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체념과 “어차피 이렇게 살 바에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심 사이를 오가게 된다.

 

그 결과 정밀 타격은 단기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레바논과 가자에서 더 조직화된 적, 더 강한 저항 서사, 더 깊은 불신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 군사적으로는 매번 이기지만, 정치적으로는 미래를 잃어버리는 구조, 이것이 지금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안보의 역설이다.

 

 

“승리하면 승리, 죽으면 순교로 승리”라는 회색 전쟁의 언어

 

회색 전쟁의 공간에서 폭력은 단지 총과 폭탄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폭격이 멈춘 뒤에도 사람들의 머릿속과 일상에서 전쟁은 언어와 이미지의 형태로 계속 이어진다. 헤즈볼라와 하마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여러 조직이 반복해 사용하는 “승리, 순교, 저항”의 단어들은 이 전쟁을 견디는 방식이 되었다.

 

이 논리는 단순하다. 싸워서 이기면 군사적 승리이고, 싸우다 죽으면 순교의 승리라는 것이다. 이 구도 안에서 이스라엘의 표적 타격은 두 가지 메시지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하나, “우리 지도자가 제거될 만큼 우리는 두려운 상대”라는 자부심

 

둘, “이만큼 잔인한 적과 타협할 수 없다”는 확신

 

장례식은 슬픔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 정치적 교육의 현장이 된다. 관을 앞세운 행렬은 “이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자”는 약속의 행렬이 된다. 아이들은 텔레비전과 거리 행진을 통해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과 사람들의 분노를 함께 본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공습이 있을 때마다 그 기억은 다시 호출되고,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분노가 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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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P>

 

이때 회색 전쟁은 단지 군사적 교착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평화에 대한 상상력과 신뢰가 서서히 닳아 없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언젠가는 이웃과 공존할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 전쟁은 평생 계속될 것”이라는 체념과 “그래서 우리는 더 강해야 한다”는 결의만 남는다. 회색 전쟁은 적의 전투 의지를 꺾는 전쟁이 아니라, 양쪽 사회에서 평화를 생각할 능력을 먼저 꺾어버리는 전쟁이 된다.

 

 

제국적 우위와 영구 회색 전쟁 체제

 

이스라엘은 군사력과 정보력, 기술력에서 이 지역의 다른 어떤 세력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우위를 가지고 있다. 정찰 위성과 무인기, 첨단 미사일 체계, 세계에서 손꼽히는 정보기관이 결합된 안보 체제는, 중동의 다른 국가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미국과의 군사 동맹과 지원은 이 우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이런 우위는 분명히 현실의 힘이다. 이스라엘은 국경 너머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표적도 언제든 타격할 수 있고, 레바논과 시리아, 가자, 심지어 예멘 인근 바다까지 작전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볼 때 이 능력은 “적을 우리 손안에 두고 관리할 수 있는 힘”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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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회색 전쟁의 또 다른 역설이 드러난다. 제국적인 우위는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그 힘을 사용하는 방식이 평화조약이나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 끝없는 관리와 조절에 머물 때, 그 우위는 스스로를 영구 회색 전쟁 체제에 묶어 두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전쟁을 끝내는 대신, 전쟁을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취급하는 순간부터 이 체제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겪은 경험도 비슷하다. 정밀 폭격과 드론 공격, 특수부대 작전으로 “지도자 제거”에 반복적으로 성공했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시리아의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잠시 잠잠해진 것처럼 보이던 지역에서 새로운 조직이 다시 등장했고, 미국은 “전쟁을 끝낼 수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어떤 점에서 이 경험의 중동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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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결국 인정하고 철수했다.

위 사진은 아프간 미군기지에서 

성조기를 내리는 미군의 모습.

출처-<AP>

 

군사적 우위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힘 그 자체가 평화의 조건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힘은 언제든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일 뿐이고, 그 힘을 어디까지, 어떤 규칙 아래 사용할 것인지는 정치의 영역이다. 이 정치의 원칙이 부재한 상태에서, 제국적 우위는 결국 자신과 이웃을 함께 회색 전쟁의 상태에 가두는 힘으로 변한다.

 

 

평화협정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

 

중동 분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두 국가 해법”이나 “일국 해법”, “연방안” 같은 정치적 설계를 떠올린다. 어느 정도의 영토를 어떻게 나누고, 예루살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난민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도는 이미 수도 없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런 설계들이 실제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협상 기술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그 설계들이 올라설 토대가 되는 전쟁의 양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 지역을 지배하는 회색 전쟁의 양식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 한, 어떤 정치적 해법도 쉽게 뿌리 내리기 어렵다. 전면전은 피하면서 폭격과 봉쇄, 표적 제거를 일상적인 관리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계속되는 한, 사람들은 서로를 협상 파트너가 아니라 영원한 위협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국경선 위의 선 긋기는 바꿀 수 있어도, 이 폭력의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평화는 종이 위에만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국경을 어떻게 긋느냐”에 앞서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제한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 레바논과 가자, 시리아, 예멘 등 많은 서아시아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비국가(또는 반국가) 무장 단체가 국가를 대신해 무력을 소유하고 행사하는 공간이 넓어졌고, 사람들의 삶은 이들 조직이 쥔 총구의 방향에 더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스라엘은 이들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회색 전쟁을 이어 가고 있다. 이웃 국가들이 정상적인 국가 기능을 하지 못하고, 무장 단체들이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안보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군사 행동이 불가피한 대응이라는 이스라엘의 항변이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 대응이 위협을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회색 전쟁의 일상을 굳히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이 정상적인 국가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만큼, 그 빈자리를 차지한 무장 정파들을 방치하거나, 경우에 따라 활용해 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자신 있게 부정할 수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레바논과 가자, 예멘에서 국가가 다시 최소한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단지 인도주의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에게도 안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빠진 자리를 극단적 무장단체가 차지하는 한,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주변국에서 국가 권력이 여러 무장 정파로 쪼개지고 약화되는 과정을 단순한 남의 문제로 지켜본 것인지, 아니면 그 구조를 방치하거나 이용해 온 것인지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의심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팔레스타인의 단합을 막기 위해 하마스 정파를 사실상 이용하고 묵인해 왔다는 비판에 대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비판은 가자라는 한 지역을 넘어, 레바논과 예멘에서 국가 부재와 극단적 무장단체가 뒤섞인 현실에도 함께 비춰볼 필요가 있다. 극단적 무장단체의 난립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고, 그 위협이 이스라엘 내부의 비판을 무력화하며, 그렇게 다시 이스라엘 정권의 존립 이유를 설명하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회색 전쟁을 정권 유지의 전략이자 안보의 전략으로, 하나의 정상 상태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중동의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지만, 지금의 길을 계속 간다면 영구적으로 불안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군사적으로는 언제든 이길 수 있지만, 한 번도 끝내지 못하는 전쟁 속에서 자기가 만든 공포의 구조에 갇힌 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은 갈등을 끝내는 대신, ‘관리 가능한 충돌 상태’로 묶어 두는 쪽을 반복해서 선택해 왔다. 그 선택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결국 회색 전쟁 그 자체를 하나의 안보 전략으로 삼아 온 것은 아닌지 하는 국제사회의 의심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회색 전쟁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다. 그 순간을 준비하는 정치와 규범을 만들지 않는 안보는, 결국 자기 자신의 불안을 영원히 재생산하는 기술에 머물고 만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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