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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평행이론

 

YG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어왔다. 회사의 초석을 다진 지누션은 4집 이후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고, 〈핫뜨거〉로 마지막 불꽃을 태운 원타임 역시 일선에서 물러나 후진양성 및 프로듀서로 역할을 전환했다. 동시에 YG는 M.boat와의 제휴로 탄생한 휘성, 거미, 빅마마의 흥행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공격적인 음반 제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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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우 1집 - 문제아〉 앨범 재킷(좌)

원티드 1집 - 발작 앨범 재킷(우)

 

그동안 여러 힙합 앨범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큰 주목을 받던 마스터 우(Masta Wu)가 1집을 발표했다. 하지만 ‘거물급 신인! 진정한 갱스터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 주겠다’라는 홍보와 달리 앨범의 완성도가 높지 않아 힙합 팬들의 실망이 이어졌다. 가뜩이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장르에서 마니아들의 외면은 판매량 실패로 귀결되었다.

 

M.boat 산하에서 제작된 원티드 1집은 〈발작, 어떻게 널 막겠니〉로 좋은 반응을 얻고 활발히 활동하던 중,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멤버 서재호를 잃는 아픔을 겪으며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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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왔으면 형사 구속감인 가사의

바운스 1집 - 스타킹 앨범 재킷

 

YG는 렉시 앨범에 참여했던 싸이와의 인연으로 그가 설립한 회사 ‘야마존’을 지원하며, 제2의 M.boat처럼 실력파 신인들을 발굴하고자 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바운스’를 데뷔시키고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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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마마 2집 - 여자〉 앨범 재킷(좌)

소울스타 2집 - Only one for me 앨범 재킷(우)

 

빅마마의 2집은 멤버들이 음반 퀄리티에 만족하지 못해 전량 폐기 후 재제작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양현석은 “돈 걱정 말고, 너희들이 만족할 때까지 하라”라고 말했다는 전설적인 홍보 멘트가 전해지며, 이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아닌 한국 가요계를 이끄는 성공한 제작자로 인정받았다. 2005년 제작한 ‘소울스타’까지 좋은 평가를 받으며, YG는 다양성과 깊이 있는 흑인 음악 전문 레이블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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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운영으로 현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 힙합문화 정착을 위한 움직임 더 바운스 잡지 표지

 

특히 아이돌에게 자본이 집중된 제작 흐름 속에서, 외모와 상관없이 가수로서의 실력만 있다면 아낌없이 지원하고 제작하는 메이저 회사는 YG뿐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2002년까지 한국 최초 힙합 매거진 〈THE BOUNCE〉를 발간하는 등 한국 힙합 발전에 나름 큰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HITECH 댄스팀 운영, 클럽 운영 등으로 노래뿐만 아니라 춤, 문화 저변 확대에도 힘썼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시도들이 이미지는 좋게 만들었으나 생각보다 큰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제작한 신인들의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차트 1위나 판매량 등 눈에 보이는 수치적인 성과를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M.boat와의 제휴도 끝이 났고, 수익이 나지 않는 가수들은 모두 재계약 없이 흩어지면서 잠시 누렸던 영광의 시대가 지나갔다. 기존 가수들의 성적 역시 점점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이들을 다 합쳐도 아이돌급 팬덤을 보유한 세븐 한 명에 미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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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큰돈이 되는 것은 아이돌이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일까.

세븐 2집 - 열정 앨범 재킷

 

회사는 세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세븐의 하락은 곧 YG의 하락이었다. 특히 라이벌 구도에 있는 비가 상승세를 탈수록 세븐의 하락세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YG는 모든 역량을 세븐에게 집중하는 한편,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연습생들을 선보일 준비를 했다.

 

쇼맨십의 대가인 양현석답게 데뷔를 목표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방송으로 시작했다. 정식 데뷔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지드래곤(G-dragon)의 데뷔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그를 포함해 총 6명의 연습생이 데뷔를 목표로 경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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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결정대로 4명으로 데뷔했어야 했다(눈물).(좌)

양 사장님이 크게 곤란할 뻔한 상황 리얼 다큐 빅뱅(우)

 

결국 4명에서 극적으로 5명이 최종 선발되었고, 선행 예능의 특성상 인지도와 팬덤을 어느 정도 확보하며 기대감을 안고 데뷔했다.

 

2006년 〈We Belong Together〉, 〈La La La〉, 〈Dirty Cash〉로 대표되는 싱글 3장과 정규 앨범 1장을 차례로 발표했다. 하지만 YG 특유의 비주얼 천시(?) 기조 때문인지 “역시 얼굴은 철저히 안 본다. 그런데 생각만큼 실력이 월등하지도 않다”라는 최악의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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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K - BUMP, BUMP, BUMP〉 (좌) 앨범 재킷

B2K뿐만 아니라 퍼렐, 칸예웨스트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우) 

 

그도 그럴 것이, 빅뱅의 초기 콘셉트는 2002년 퍼프 대디가 만든 4인조 힙합 그룹 ‘B2K’로 추정되었다. 그동안 힙합 아이돌을 표방한 팀은 한국적 정서에 미국 힙합을 적절히 혼합한 형태였는데, B2K에 심취했던 YG는 R&B 소울 쪽에 큰 비중을 두어 당시 한국 아이돌 음악 트렌드와는 다소 맞지 않았다. 특히 고음이 가창력의 미덕이던 시절, 태양의 소울풀한 창법은 오히려 답답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중간한 위치를 고수하며 존재감은 미미했고, 지드래곤이 솔로 앨범으로 독립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1세대 아이돌 시절 SM의  H.O.T.와 DSP의 젝스키스가 라이벌 구도로 싸울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회사의 아이돌이 〈거짓말〉을 들고나와 가요계를 평정했던 것처럼 2세대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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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미니 1집 - 거짓말〉 앨범 재킷(좌)

빅뱅 미니 2집 - 마지막 인사 앨범 재킷(우)

 

2007년, G-dragon의 솔로곡으로 예정됐던 〈거짓말〉을 수록한 미니 1집은 YG와 빅뱅의 운명을 바꿔주는 곡이었다. SM의 동방신기, DSP의 SS501이 2세대의 대표 아이돌로 활약할 때, 아이돌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YG의 빅뱅이 〈거짓말〉을 내놓으며 가요계를 평정했다. 이 곡의 히트로 그동안 팬덤만 소비한다고 비판받던 아이돌 음악을 범대중적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고, 한국 가요 시장에 새로운 트렌드를 가져왔다.

 

데뷔 초에 고수했던 정통 힙합에서 벗어나 세계적 추세에 맞춘 하우스와 일렉트로니카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과 지드래곤의 패션 감각이 대중을 사로잡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완벽하게 다듬어진 무대 의상이 아닌 사복 같은 자유분방한 빅뱅 스타일이 곧 유행 아이템이 되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메가 히트를 기록하는 강자로 떠오르며 2세대 아이돌 지형이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으로 대표되는 ‘동슈빅’으로 재편되었다.

 

빅뱅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YG가 이전까지 지향했던 정통 흑인 음악 기반의 다양성 추구라는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회사의 메인 프로듀서도 페리에서 테디와 지드래곤 쪽으로 이동했다. 양현석 사장의 존경받던 제작자 이미지가 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였다.

 

 

대형 기획사의 지형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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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6집 - 보통날〉 앨범 재킷(좌)

god 7집 - 하늘 속으로 앨범 재킷(우)

 

1세대의 마지막 왕좌를 지킨 god는 기존 소속사 싸이더스와 JYP 간의 재계약 갈등으로 4인만 JYP로 완전히 이적했다. 결국 윤계상이 탈퇴하고 4인조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공백이 생기며 차기 앨범이 늦어졌고, 성공적인 복귀를 예고했으나 예전과 같은 압도적 인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전반적으로 1세대 시대를 누리던 아이돌들은 사라지고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god는 7집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해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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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7집 - BRAND NEW〉 앨범 재킷(좌)

이때 TV를 켜면 뉴스만 빼고 다 신화가 나오던 시절이다.

SBS 연애편지(우)

 

오히려 이 시기엔 SM에서 독립한 신화가 전성기를 맞으며 예능, 시트콤, 드라마 등 전방위적 활동으로 가요대상 대상을 휩쓰는 활약을 했다. 당시 이수만은 SBS 가요대전에서 프로듀서상 수상 소감으로 “SM을 나가서 잘된 사례가 없다”라며 동방신기 대상을 예상했는데, 신화가 대상을 받으며 뼈아픈 ‘한 방’을 선물했다.

 

SM, 대성기획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JYP는 어느덧 중견 아이돌이 된 god를 대체할 차세대 아이돌 제작이 시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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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5집 - 난 남자야〉 앨범 재킷(좌)

박지윤 6집 - 할 줄 알어? 앨범 재킷(우)

 

박지윤은 〈성인식〉으로 엄청난 성공을 했지만, 이 이미지가 고착되는 외통수에 빠졌다. 이후로 발표한 앨범마다 박진영이 만든 콘셉트가 과하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JYP의 빌보드 지향적이고 비욘세를 겨냥한 듯한 앨범 방향은 박지윤에게 맞지 않은 옷 같았으며, 때마침 같은 방향성을 추구한 이효리의 등장에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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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 여자 메인보컬의 기준점

임정희 1집 - Music is my life 앨범 재킷(좌)

박진영이 프로듀싱 후 엄청 만족했다는

원투 1집 - 자 엉덩이 앨범 재킷(우)

 

참신한 기획으로 데뷔했지만, 변성기를 걱정해야 했던 량현량하의 기약 없는 2집, 결혼식 축하곡 외 후속타가 없던 노을, 호기롭게 제작하고 호기롭게 퇴장한 원투까지 마냥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5년 ‘거리의 디바’라는 타이틀로 임정희를 데뷔시켰지만, 성공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정도로 성적은 애매했다. 물론 앨범을 꾸준히 발표하며 JYP의 아메리칸드림에 동참한 것으로 비춰봤을 땐, 회사의 대표 가수가 맞았다.

 

당시 JYP도 YG처럼 꽤 다양한 스타일의 가수와 음악을 제작했음에도 양현석과는 다르게 존경받는 이미지는 얻지 못했다. 끊임없는 표절 논란과 자기복제, 혹은 과한 자기 포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름의 암흑기를 거쳤지만, 가끔 나오는 메가 히트곡이 워낙 강력해서 이러한 부진을 만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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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3집 - IT’S RAINING 앨범 재킷(좌)

비 4집 - I’M COMMIG 앨범 재킷(우)

 

비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해 남자 솔로 댄스 가수 부문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며 가요대상을 받았다. 가수뿐 아니라 연기 활동까지 흥행으로 이끌며 해외로 진출했다. 이후 JYP를 대표하는 아이돌이 나오지 않아 회사의 소년 가장으로 활약했고, 4집을 끝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다. 특히 〈올드보이〉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출연은 할리우드 영화 출연의 계기를 만들어주며 비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2006년, 다른 회사보다 뒤늦게 아이돌 제작에 들어간 JYP는 보이 그룹이 아닌 걸 그룹을 선택했고, MTV를 통해 원더걸스 시즌 1이 방송되면서 원더걸스의 데뷔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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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획은 기존 연습생을 중심으로

4인조 그룹 결성이 목표였던 ‘원더걸스’

 

god때와 마찬가지로 JYP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걸 그룹이라는 점이 홍보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멤버 중 한 명인 선예가 2001년에 SBS영재 육성 프로젝트에서 선발된 후 6년간 연습생으로 지내며 어떤 그룹으로 데뷔하는지도 관심을 끌었다. SBS에서 방영한 〈영재 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은 10대를 대상으로 한 전국 규모의 오디션이었는데, 량현량하를 발굴하고 제작한 추진력 때문에 박진영을 메인 프로듀서로 섭외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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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날렵한 방시혁(좌)

유진을 닮은 외모로 화제였던 선예 SBS 일요일 만세(우)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선발된 연습생들은 바로 데뷔하지 못했고 오랜 시간 JYP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다. 정작 프로그램 시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성인식〉 춤을 똑같이 따라 춘 동영상으로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며 유명세를 떨친 ‘구슬기’였으나 최종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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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싱글 1집 - 아이러니 앨범 재킷(좌)

원더걸스 정규 1집 - Tell me 앨범 재킷(우)

 

선행 프로그램을 통해 예은이 추가 멤버가 되고 2007년 〈아이러니〉로 데뷔하게 되었다. 걸 그룹 침체기라고 할 수 있던 시기에 데뷔한 여자 아이돌이라 주목 받았지만, JYP 특유의 아이돌답지 않은 음악과 스타일링은 약간의 물음표를 남겼다.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싱글 활동을 마무리하고, 차기 앨범 뮤직비디오까지 촬영한 상태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현아가 탈퇴하는 악재가 발생했다.

 

2007년 9월 유빈이 합류하고 발표한 정규 1집 〈텔 미(Tell me)〉로 원더걸스는 ‘국민 걸 그룹’ 칭호를 받으며 대한민국을 텔 미 신드롬으로 뒤덮었다. 특히 따라 하기 쉬운 안무와 귀여운 시그니처 포즈, 복고풍 음악은 UCC 보급과 맞물려 일종의 챌린지 열풍으로 이어지며 인기를 가속화했다. 단순한 패러디를 넘어 온 국민이 텔 미를 부르짖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침체됐던 여자 아이돌 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며 걸 그룹 2세대의 막이 열렸다. god에 이어 또다시 국민 그룹을 만든 JYP는 SM, YG와 함께 2세대의 3대 기획사로 자리 잡았다.

 

 

원카소 등장: 걸 그룹 대전의 서막

 

2005년 보아, 동방신기로 자존심을 되찾은 SM은 S.E.S의 영광을 재연하고 싶었던 것인지, 혹은 자신의 부재중 흑역사의 길로 내몰린 가수들에 대한 보상이었는지 천상지희를 데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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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 싱글 1집 - Too Good 앨범 재킷

 

솔로였던 다나를 중심으로 ‘이삭 N 지연’의 지연과 연습생 2명이 합류해 각자 이름 앞에 ‘천무, 상미, 지성, 희열’을 붙여 동방신기의 여성형 그룹임을 드러냈다. 2004년 말, SM의 ‘Hot in Asia’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을 시작으로 범 아시아적 진출 사업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작명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8년 만에 SM이 내놓은 걸 그룹’이라는 비약적 억지 논리까지 끌어와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회사가 아닌 이수만과 산하 스태프들이 중국 진출이라는 큰 계획하에 제작한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다만 신비, 밀크는 자회사 출신이라 정통 SM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여자 동방신기라는 콘셉트 자체에 카시오페아의 반감을 사며 엄청난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동방신기와 마찬가지로 퍼포먼스보다 가창력을 강조한 〈Too Good〉을 밀어붙였지만, 여자 아이돌 수요층이 원하는 콘셉트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특히 다나, 지연은 중고 신인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이들의 기존 이미지가 겹치며 콘셉트 몰입도가 떨어졌다. 데뷔곡으로 내정됐던 〈Boomerang〉으로 후속 활동을 이어가며 어렵게 대중의 호응을 얻었는데 팬들은 ‘왜 이걸로 데뷔하지 않았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2세대에서 가장 먼저 데뷔한 여자 아이돌이란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며 시장 선점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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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징조였다.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정규 1집 - 한 번 더, OK? 앨범 재킷

 

재정비된 SM에서 모두 잘나가는데 유독 천상지희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름에만 ‘더 그레이스’를 추가했다. 그러던 중 2007년 섹시 콘셉트의 〈한 번 더 OK?〉가 인기를 끌며 당시 불기 시작한 UCC 열풍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고, 원더걸스와 초창기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유영진과 함께 Kenzie가 SM의 메인 작곡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더걸스의 전국민적 인기로 시기상 1세대와 2세대 중간에 끼인 어중간한 포지션이 되었고, 일본 활동을 병행하는 사이 스테파니의 건강 악화로 활동이 중단되었다. 천상지희는 실력과 비주얼 모두 부족함이 없던 팀이었으나, 정작 빛을 보기 시작했을 때 회사는 무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국내 활동은 새로 데뷔하는 그룹에게 넘기고 동방신기처럼 일본 활동에 집중하는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결국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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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소녀임을 강조한다.

소녀시대 싱글 1집 - 다시 만난 세계 앨범 재킷

 

비슷한 시기 SM은 수년간 준비한 9인조 걸 그룹을 ‘소녀시대’를 제작했다.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한 멤버들을 주축으로 보컬, 춤, 연기에 영어를 비롯한 제2외국어 교육까지 트레이닝시키며 상당히 공을 들인 프로젝트였다. 전체적인 콘셉트와 기획은 S.E.S 계보에 가장 가까운 그룹이었다.

 

〈다시 만난 세계〉는 전형적인 아이돌 풍의 곡이었지만, 이미 원더걸스의 〈Tell me〉가 자리 잡은 시장에서 ‘훅(Hook)이 약한 노래’로는 대중에게 어필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소녀시대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한 여자 아이돌의 정석을 고수하며, 걸 그룹 시장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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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송에 나온 소녀시대를 본 할머니들도 ‘새벽이’는 알아봤다.

소녀시대 정규 1집 - 소녀시대 앨범 재킷

 

풋풋한 소녀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는 한편, 그룹명과 같은 이승철의 〈소녀시대〉를 리메이크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일 연속극에 주연으로 출연한 윤아 덕분에 중장년층까지 인지도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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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싱글 2집 - So Hot 앨범 재킷(좌)

원더걸스 정규 3집 - Nobody 앨범 재킷(우)

 

이때까지만 해도 소녀시대가 원더걸스와 라이벌로 거론되기엔 화력이 부족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Tell me〉 이후 〈So Hot〉, 〈Nobody〉로 3 연타 흥행을 이뤄내며 정점을 찍던 원더걸스의 라이벌은 다름아닌 빅뱅이었다. 2009년이 되자 국내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던 원더걸스는 JYP의 아메리칸드림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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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스키니 부대 소녀시대.

그렇게 천상지희는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져만 갔다.

소녀시대 미니 1집 - GEE 앨범 재킷

 

때마침 소녀시대는 이전과 다른 훅(Hook)이 강하고 중독성 있는 〈Gee〉를 발표하면서 엄청난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국내 활동에 주력하면서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는 사이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섰다. 이후 발표하는 노래마다 흥행을 이끌며 사실상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라 2세대 걸 그룹 최강자로 장기 집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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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망할 것 같은 느낌이다.

카라 정규 1집 - Break It 앨범 재킷

 

SS501로 아이돌 명가 체면을 지키던 DSP 역시 핑클의 영광을 떠올리며 4인조 걸 그룹 카라를 제작했다. 그런데 핑클이나 1세대 인기 여자 아이돌과 달리 성숙미와 힙합이 뒤섞인 어중간한 콘셉트의 〈Break It〉을 타이틀로 데뷔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당시 싱글로 데뷔하는 트렌드와 맞지 않게 정규 앨범으로 데뷔하면서 이호연 사장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특히 한승연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개인 활동이 전무했다. 소위 아이돌의 막차라는 〈MBC 쇼바이벌〉 같은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면서 오래 활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메인 보컬인 김성희가 탈퇴하면서 그룹의 핵심인 보컬이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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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 Girl〉의 포인트 있는 안무는 배윤정에게 맡겼다고 한다.

카라 미니 1집 - Rock U 앨범 재킷(좌)

카라 미니 2집 - Pretty Girl 앨범 재킷(중)

카라 미니 2집 리패키지 - Honey 앨범 재킷(우)

 

하지만 위기 대응만큼은 빨랐던 이호연 사장은 문제를 즉각 파악했다. 이에 강지영, 구하라를 긴급 투입해 팀의 연령대를 낮추고, 〈Rock U〉, 〈Pretty Girl〉과 같은 상큼한 노래와 중독성 있는 안무를 연달아 발표하며 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동시에 멤버들은 예능에 나가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대형 기획사 소속의 아이돌임에도 생계형 아이돌, 성장형 아이돌의 서사를 갖고 팬층을 넓혀갔다. 

 

2009년 데뷔 2년 만에 〈Honey〉로 지상파 음악방송 1위에 올랐고, 3대 걸 그룹 구도를 만들어내며 이른바 ‘원카소’로 불리게 되었다.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의 인기로 한국 가요계는 때아닌 걸 그룹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Jay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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