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0만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털린’ 피해자 수다. 5,100만 대한민국 인구 대비 60%가 넘는 어마어마한 피해 규모에 놀라고 거의 모든 회원이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에 경악하는 이 숫자의 이면에는 우리가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들이 있다.

JP모건, 쿠팡 개인정보 유출에도 “잠재적 고객 이탈 제한적일 것” (링크)
글로벌 금융사 JP모건은 쿠팡이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겪게 될 곤란을 ‘제한적 고객 이탈’로 내다봤다. 한국 정부가 상당한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는 있겠지만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대해 덜 민감해 보인다”라는 것이다. 온·오프라인상에서 ‘JP모건이 뼈를 때린다’라는 자조가 나왔다.
이커머스 기업 쿠팡은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유출된 개인정보 수가 3,370만에 달할 정도로 많은 회원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직후 정점을 찍은(자신의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파악하거나 회원 정보를 바꾸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용자 수가 증가할 수 있다) 일간 활성 이용자 수가 나흘 새 180만이나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렇게 줄어든 수치가 1,600만이 넘는다. 지난 11월 쿠팡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 추정치는 2,200만이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듯이 쿠팡은 2023년 대한민국 유통업계 최초로 연 매출 30조를 넘어섰고(이커머스 한정이 아니다) 지난해 연 매출 40조를 돌파했으며 올해 연 매출은 50조가 전망되고 있다.
그런 쿠팡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수만 약 10만 명이다. 삼성, 현대차, LG, SK 4대 그룹사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쿠팡의 앞자리를 차지한 4대 그룹은 말 그대로 그룹 내 계열사를 모두 포함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쿠팡이 차지하는 일자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쿠팡 연 매출 50조 원(와우 멤버십 월 이용료처럼 쿠팡의 모든 매출이 상품 거래대금은 아니지만)을 구성하는 수많은 입점 업체들과 쿠팡의 물류와 배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쿠팡의 ‘혁신’을 경험하고 있는 수천만 고객들까지.
대한민국에서 쿠팡과 완전하게 무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쿠팡 로켓 배송이 닿는 지역이라면 그곳에 있는 24개월 이하 영아들조차 상당수는 쿠팡 기사가 문 앞까지 가져다준 분유를 한 번이라도 먹고 자랐을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논란이 지난 11월 한 달 내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새벽 배송 금지 논란

쿠팡 새벽 배송, 이토록 많은 사람이 연루된 논쟁 (링크)
10월 29일, 민주노총 택배 노조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초심야 시간대의 배송을 제한”하고 “노동자들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제안을 일주일 전인 22일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내놓은 것 또한 알려졌다.
곧장 ‘새벽 배송 금지’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들끓었다. 아니다. 겉으로는 찬반 팽팽하게 맞섰던 것 같지만 다수의 언론은 새벽 배송 금지 주장에 대한 비판 여론 보도를 쏟아내며 ‘노조의 억지 주장’을 혼쭐냈다.
처음부터, 이 사안을 ‘새벽 배송 금지’로 단순화한 것에서 이미 건설적인 사회적 협의는 물 건너갔다. 심야 시간대 배송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하자는 취지는 싹둑 자르고, ‘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초심야 시간대의 배송을 제한’하자는 것으로 변질됐다. ‘새벽 배송 금지’라는 듣는 사람 누구나 펄쩍 뛸 프레임 전환으로 정작 중심이 되어야 할 노동자들의 수면과 건강 보장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보수 언론은 새벽 배송 금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참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실어 날랐다.





새벽 배송이 금지되면 타격을 입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 새벽 배송이 절실한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에는 ‘평일에는 나가서 장 볼 여유도 없는 맞벌이 부부’가 빠지지 않고 소개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새벽 배송 제한은 마치 재앙인 듯 그려진다. 새벽 배송 이용자 수가 2천만이라고 한다.
쿠팡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새벽 배송을 못 하게 되면 가뜩이나 내수 부진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온라인 판로까지 막혀 생존이 위협당할 것이라는 경고다.
쿠팡 노조까지 나섰다. 심야 시간대에 일하는 쿠팡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낮에 하는 일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투잡러도 있고 낮에는 환자 가족을 돌봐야 하는 등의 다른 이유로 일을 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쿠팡 노조위원장은 언론사 인터뷰에서 “현장의 요구는 무작정 새벽 배송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휴식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슬의 숫자 읽기] 새벽 배송과 취업 빙하기 (링크)
쿠팡 새벽 배송 금지를 ‘청년 일자리’ 문제와 연결 짓는 시선도 있다. 위에 인용한 기고문을 보면 쿠팡 일자리는 “고도의 숙련이나 교육을 쌓지 않아도, 몸으로 정직하게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귀한 자리”인데 새벽 배송을 규제하면 “청년층이 고강도·고소득 일자리를 잡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라고 걱정한다.
누가 ‘편리하게’ 쿠팡에 떠넘겼나
그 모든 우려에 합당한 근거가 있다. 새벽 배송이 정말 금지될까 걱정하는 맞벌이 부부도 매출에 시름하는 소상공인도 당장 일자리가 없어질까 두려운 쿠팡 노동자들도 자기 혼자 살기 위해 누구 하나 죽어 자빠져도 좋다는 심보로 하는 걱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의 걱정 뒤에 속 편하게 숨은 쿠팡과 언론, 그리고 새벽 배송 금지 논란의 취지는 무시한 채 노조 비판에만 이용하는 무책임한 정치인이 진짜 문제다.
평일에 나가서 장 볼 여유도 없는 맞벌이 부부가 차고 넘치는 사회가 정상인가. 이 정도면 해결책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다. 그동안 편리하게 쿠팡 새벽 배송에 떠넘기고 손 놓고 있었던 거다. 워라벨이고 나발이고 밥 먹듯 야근시키기 좋았나 보다. 그러다 만약 쿠팡이 정부의 합법적 통제와 규제 조치를 거부하고 배 째라는 식으로 새벽 배송을 중단하면 어찌할 텐가.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 정부 조치를 접고 쿠팡에 납죽 엎드리라고 손가락질할 텐가.
지난 글에서 쿠팡의 최저가 시스템을 다루면서 입점 업체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관한 기사를 소개한 바 있다. 기사를 낸 언론사는 대부분 ‘메이저’와는 거리가 먼 작은 인터넷 매체였다. 보수, 경제 언론들은 새벽 배송 금지 논란 국면에서만 소상공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보청기를 착용한 것처럼 잘 들렸나.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재벌 대기업 편만 드느라 외면했던 소상공인, 소기업이 쿠팡에 의존해서 풀칠이라도 하고 있으니, 신경을 덜어서 얼마나 편하고 좋았겠나.
낮 동안 일하는 직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곤란해서 심야 시간대에 투잡을 뛰어야 하는 노동자가 많은 사회. 그렇기 때문에 새벽 배송이 없어지면 문제가 되는 사회. 환자인 가족을 하루 종일 간병하느라 밤에 나가서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무너지는 사람이 새벽 배송 일자리에 의존하며 가까스로 버티는 사회. 양질의 일자리는 고사하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나날이 매출 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쿠팡이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이라도 있어서 사회적 혼란을 피하고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누가 만들고 방치했나. 그러다 언젠가 반드시 오고야 말, 피지컬 Ai가 쿠팡의 물류, 배송 노동을 대체하는 날이 오면 그땐 누구에게 원망을 돌리려 할 것인가.
진작에 고민하고 개선했어야 할 사회안전망과 노동자 삶의 질 개선 문제는 외면한 채 다들 너무나 편리하게 쿠팡에 떠넘기고 있지 않았나. 그러는 동안 쿠팡은 끝 간 데 없이 몸집을 키웠고 온 사회가 쿠팡 의존도를 키우다 못해 쿠팡 공화국을 만들고야 만 것이다. 그래 놓고 새벽 배송 없으면 큰일 난다는 아우성을 실어 나르는 언론과 정치인이 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서. 심야시간대 배송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초심야 시간 배송 제한 의견을 내놓은 택배 노조를 이기 집단으로 몰아세우고 돌을 던지면서 무작정 새벽 배송을 금지하기보다는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한다는 허울 좋은 소리를 해놓고는 뚜렷한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로 유야무야시킨다. 비열하다.
이대로는 안 되는 쿠팡, 이래도 된다고 믿는 쿠팡
블랙코미디다.
새벽 배송 금지 논란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덮었다.

‘유출' 대신 '노출'이라니‥"제대로 다시 공지해" 쿠팡에 철퇴 (링크)
3,370만 회원의 개인정보를 털린 쿠팡은 처음에는 개인정보 유출이 아닌 개인정보 노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과문을 단 이틀 동안 메인 화면에 ‘노출’시켰다. 분노한 여론과 여론에 올라탄 언론이 비판을 퍼붓고 정부가 강력 조치를 시사하자 마지못해 사과문을 고쳐 올렸다.

그마저 미리보기에 광고 문구가 떠서 욕을 더 먹었다.

사고 예방 조치에는 소홀하고 사고 수습하는 대관 인사만 끌어모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쿠팡의 대관 욕심은 아직도 진행형인가 보다.
쿠팡 창업주이자 쿠팡 모회사 의결권의 70% 이상을 보유한 김범석 의장은 여전히 미국에서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국회에서 증인 채택까지 했지만 제 발로 걸어들어올지는 미지수다. 쿠팡 한국 법인 대표가 나서서 이번 사태에 대해 본인이 모두 책임지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쿠팡의 입점 업체 관리 문제나 노동 환경, 노동자 처우 문제는 분명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허나 개인정보 유출 사태 발생과 이후 쿠팡의 행보를 볼 때, 쿠팡이 자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침 7시까지 배송을 완료하지 못하면 새벽 배송 기사들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받다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아예 배송 구역을 회수당했다. 쿠팡이 성실하게 지켜나간 최저가 ‘약속’은 입점업체를 옥죄는 사슬이 됐다. 쿠팡이 소비자들의 굳건한 신뢰를 쌓아가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건가. 그 약속과 신뢰에 우리가 취해갈 때, 누가 웃고 누가 병들어 갔을까.
쿠팡, 이대로는 안 된다. 하지만 쿠팡은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JP모건이 뼈를 때린 바와 같이 대한민국에는 아직 쿠팡의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다. 쿠팡을 버려도 갈 곳이 마땅찮다는 말이다. 쿠팡의 믿는 구석은 거기에 있다.
만약 대다수의 쿠팡 이용자들이 일거에 등을 돌려 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쿠팡 매출 의존도가 높은 소상공인들은 진짜로 위기에 빠진다. 배송 물량이 급격하게 빠지면 플랫폼 노동 일자리도 같은 속도로 빠질 수 있다. 글 첫머리에 인용한 <시사IN> 기사 제목처럼 이토록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있는 존재가 쿠팡이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로 우리는 쿠팡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것인지. 쿠팡을 없애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쿠팡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정인영
기사: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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