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 아이돌 시대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처럼 대중적인 히트곡을 쏟아내는 그룹들이 등장하며 2세대 아이돌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각 회사에서는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신인들을 데뷔시켰다.

〈샤이니 미니1집 - 누난 너무 예뻐〉 앨범 재킷(좌)
〈F(x) 싱글1집 - Chu~♡〉 앨범 재킷(우)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를 앞세운 SM은 샤이니, F(x)를 선보이며 시장의 우위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들은 기존 SM Music Performance(SMP)에서 벗어나 ‘뮤직 컨템포러리’를 지향하는 팀으로, 당시에는 다소 특이할 수 있는 가사와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SM은 보아와 동방신기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중국인 멤버를 영입해 ‘슈퍼주니어 M’ 같은 유닛을 만들고, 중국 진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빅뱅으로 돈의 참맛을 알아버린 YG는 구시대를 상징하는 원타임과 페리(Perry)를 정리했다. 개국 공신 지누션은 후진 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테디를 본격적으로 메인 프로듀서에 앉혔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YG의 두 번째 걸 그룹 2NE1을 제작하며, 정식 데뷔도 하기 전에 빅뱅과 함께 CF에 등장해 얼굴을 알렸다. 청순함, 성숙함만을 강조하던 걸 그룹 시장에 여성 팬덤을 자극하는 확고한 걸크러시 콘셉트로 기존 3 대장 원, 카, 소를 위협하며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갔다.

〈2NE1 데뷔 싱글 - Fire〉 앨범 재킷(좌)
데뷔 전, 빅뱅과 광고를 찍으며 홍보한 ‘롤리팝’(우)
‘여자 빅뱅’이라 불리며 테디와 쿠시의 프로듀싱 아래 레게, 힙합, 일렉트로닉 기반의 곡들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아 새로운 음원 강자로 등극했다. YG는 빅뱅과 2NE1의 연속적인 메가 히트에 힘입어 2011년 SM에 이어 자력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두 번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되었다. 이전까지 다른 회사들은 부실 회사 인수합병을 통해 우회 상장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세븐 미국 싱글 1집 - Girls(feat.Lil Kim)〉 앨범 재킷(좌)
〈세븐 미니 1집 - 디지털 바운스(feat.TOP)〉 앨범 재킷(우)
비의 해외 진출 성공에 자극받은 YG는 그동안 회사에서 큰 역할을 한 세븐에 보상하려는 듯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다소 뒤늦은 타이밍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세븐은 싱글을 발표했다. 이제는 본인보다 더 잘 나가게 된 지드래곤과 탑의 도움까지 받았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입대했다.
원더걸스의 국민적인 인기로 god 때의 영광을 되찾은 JYP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혈남아〉를 제작해 남자 아이돌 데뷔를 위한 사전 포석을 다졌다.

M.net에서 방영된 JYP 연습생 서바이벌 〈열혈남아〉(좌)
아이돌 최초 군필자가 데뷔한 2AM(우)
이 프로그램을 통해 2PM과 2AM이 데뷔했는데, 이미 동방신기, 빅뱅, 슈퍼주니어 등이 강하게 자리 잡은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보였다. 일단 아이돌로 보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예비역 형님’ 멤버가 계신 발라드 전문 그룹 2AM 자체는 입덕 포인트가 약했다. 또한, 당시 아이돌의 콘셉트와는 괴리감 있는 ‘오랑캐 스타일’의 2PM 역시 god 데뷔 때와 비슷한 반응을 얻었다.

어쩐지 오랑캐가 연상되는 비주얼의 2PM(좌)
〈2PM 싱글 2집 - again again〉 앨범 재킷(우)
두 팀 중 god를 잇는 메인팀은 2PM이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인트로에 JYP를 도배하면서 사실상 ‘7명의 박진영 자아분열’이라고 할 만큼 개성이 강했다. 타 그룹과 차별화된, 헬스로 다져진 멤버들의 장점을 살린 〈again & again〉의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로 ‘짐승돌’이라는 표현을 만들며 그들만의 팬덤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팀의 핵심이었던 리더 박재범이 퇴출당하며 위기를 겪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이 사건을 전환점 삼아 후속 싱글 〈Heartbeat〉에서 최정상급 그룹에 올라섰다.

옥택연이 한번 찢을 때마다 순위가 올라가던
〈Heartbeat〉 시절
처음에는 박재범의 빈자리가 팀의 관심도를 높였고, 이를 잘 활용해 팬들과의 결속력을 다지면서 팀의 메인이 자연스레 옥택연 쪽으로 옮겨갔다. 결국 2009년 KBS 가요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이후 박재범은 영구 퇴출당해 팀에 복귀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팬덤 내 충돌로 잡음이 있었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면 서로에게 잘된 결과일 수도 있다.

〈MISS A 싱글 1집 - bad girl good girl〉 앨범 재킷
2010년, JYP는 중국 진출을 목표로 중국인 멤버와 미국에서 데뷔 준비 중이던 민을 합류시켜 ‘미쓰에이(MISS A)’를 선보였다. 이들의 데뷔곡 〈bad girl good girl〉은 등장하자마자 지상파 1위에 오르며 단숨에 JYP 메인 걸 그룹으로 떠올랐다. 이에 힘입은 미쓰에이는 데뷔 첫해에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세대 아이돌 음악은 10대만 소비하는 분위기를 넘어 넓은 소비층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고, 한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노래들이 발표되던 시기였다. 물론 음악적 깊이나 공장형 아이돌 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계속됐지만, 1세대 때와 비교하면 대중적 메가 히트곡은 더 많이 쏟아졌다.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는 아이돌의 등장은 뜻하지 않게 소머리, 울보 창법으로 대표되던 미디엄 템포 장르의 하락세로 이어졌다.

〈SG워너비 정규 1집 - Timeless〉 앨범 재킷(좌)
〈SG워너비 정규 2집 - 살다가〉 앨범 재킷(우)
2004년 동방신기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음원 성적과 판매량으로 실질적 라이벌 구도를 벌였던 ‘SG워너비’는 소몰이 창법으로 가요계를 획일화했다는 비판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SG워너비의 제작자는 연예계 비리 사건으로 가요계에서 사라질 줄 알았던 김광수 대표였는데, 이들의 데뷔 역시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와 ‘얼굴 없는 가수’로 화제를 만들었다. 박근태, 조영수, 김도훈, 류재현 등 당시 한국형 R&B로 대표되는 작곡가들의 곡으로 인기를 끄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4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음반 불황 속에서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아이돌 화력에 밀리지 않은 음원 성적을 보이며 대상을 받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씨야 정규 1집 - 여인의 향기〉 앨범 재킷(좌)
〈M to M 정규 1집 - 사랑한다 말해줘〉 앨범 재킷(우)
문제는 이들의 인기로 한국 가요계가 한동안 소몰이 유행에 매몰됐다는 점이다. ‘적당히’를 모르는 김광수 사장 덕분에 SG워너비 여성 버전인 ‘씨야’를 시작으로 ‘MtoM’이 데뷔했고, 또 같은 시기에 ‘먼데이 키즈’, ‘견우’, ‘가비앤제이’, ‘브라운아이드걸스’ 역시 아류로 평가절하되며 소몰이 혐오를 가속화했다.

2집 표절 논란을 이겨낸 〈이효리 정규 3집 - U Go Girl〉 앨범 재킷(좌)
가요계의 백년해로 〈다비치 미니 1집 - 8282〉 앨범 재킷(우)
GM기획은 반짝인기에 그쳤음에도 이 업적을 발판으로 문화 산업 진출을 준비하던 CJ에 인수 합병되었다. 그렇게 ‘코어 엔터테인먼트’가 출범했고, 김광수 대표가 수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CJ 산하 방송국 M.net을 통해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소속 가수들은 많은 혜택을 받았다. 표절 논란 이후 2년 만에 가수로 복귀를 준비하는 이효리와 계약해 3집 〈U Go Girl〉을 내놓았고, 여성 듀오 그룹 ‘다비치’를 성공시키며 김광수 사장은 완벽하게 부활했다. 그의 생명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초신성 정규 1집 - Hit〉 앨범 재킷(좌)
〈티아라 데뷔 싱글 - 거짓말〉 앨범 재킷(우)
김광수 대표는 시장에서 미디엄 템포가 끝물임을 감지하고 남자 아이돌 ‘초신성’을 제작했으나 이름처럼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뒤이어 여자 아이돌 바람에 편승하고자 ‘티아라’를 제작했다. 이들은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첫 방송으로 ‘라디오 스타’가 잡히는 등 엄청난 지원이 있었지만, 당시 너무 많은 아이돌이 데뷔하면서 ‘인제 그만 나오라’라는 뜻의 ‘치아라’라는 조롱을 받았다. 이후 초신성과 함께 발매한 〈TTL〉이 음원으로 인기를 얻으며 인지도를 올렸다.

〈티아라 정규 1집 - Bo Peep Bo Peep〉 앨범 재킷(좌)
〈티아라 미니 3집 - 롤리폴리〉 앨범 재킷(우)
다소 유치했지만, 콘셉트만은 확실한 〈보핍보핍〉이 성공하며 팬덤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복고 바람을 타고 〈롤리폴리〉, 〈러비더비〉로 이어지는 메가 히트곡이 나와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2NE1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며 아직 아이돌 유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서는 이들을 2세대 5대 걸 그룹으로 칭하며 ‘원카소투티’로 요약했다.
중소의 기적
2세대 아이돌의 대유행으로 신생 기획사들이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SM, JYP 같은 대형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독립하거나, 소속사를 이전하는 스타와 함께 1인 기획사를 차리기도 했고,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지금처럼 소수의 대형 기획사가 시장을 좌우하던 때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는 열려 있었다.
홍승성 사장은 JYP에서 독립해 ‘큐브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 초기에 2AM의 매니지먼트를 대행하거나 연습생을 공유한 것으로 보아 불화가 아닌 우호적 협력관계로 보였다. 특히 큐브의 마중물이 된 첫 가수들은 JYP의 연습생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비스트 미니 1집 - Bad girl〉 앨범 재킷(좌)
〈포미닛 미니 1집 - Muzik〉 앨범 재킷(우)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남자 아이돌 비스트, 여자 아이돌 포미닛을 데뷔시켰다. 이기광은 AJ로, 윤두준과 장현승은 각각 2PM과 빅뱅의 데뷔 서바이벌 예능에 참여한 이력이 있었고, 포미닛의 현아는 원더걸스의 원년 멤버였다. 이처럼 두 팀 모두 가요계 활동 이력 있는 멤버들이 포함되어 있어 초반 인지도 면에서 다른 중소 아이돌보다 이점이 있었다. 이후 솔로 가수 G.NA를 데뷔시켜 성공시키는 등 JYP의 인력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며 업계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비의 매니저였던 조동원은 제이튠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4집을 끝으로 JYP에서 독립한 비(Rain)와 계약했다.

당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급이었던 비.
〈비 정규 5집 - 레이니즘〉 앨범 재킷(좌)
한국 최초 할리우드 단독 주연 영화 〈닌자 어쌔신〉 포스터(우)
때마침 할리우드 영화 개봉이라는 호재 속에 비는 새로운 몸짱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가 새로운 월드 스타의 탄생이라며 비를 추앙해 마지않던 바로 그때, 5집 〈레이니즘〉으로 컴백했다. 박진영을 떠난 비의 새 앨범은 우려와 달리 화려한 조명과 ‘매직 스틱’ 안무로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조동원 대표는 엠블랙 멤버 ‘미르’의 큰 매형이다.
〈엠블랙 싱글 1집 - Oh Yeah〉 앨범 재킷
이때쯤 비에게 자신의 스승인 박진영처럼 제작자로도 성공하고픈 도전 정신이 생겼던 걸까. ‘다섯 명의 비’가 있는 아이돌 그룹을 제작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엠블랙’이 데뷔했다. 처음에는 비의 후광과 2NE1 산다라 박의 동생인 ‘천둥’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비스트’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
하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의류 사업의 실패와 자기 세계에 갇힌 듯한 비의 프로듀싱 고집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 회사 그 자체였던 비가 입대를 앞두고 본인 활동에만 전념하면서 제이튠과 함께 엠블랙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 위기를 파고들어 2010년 상장 기업이었던 제이튠을 인수해 우회 상장을 시도한 회사가 바로 JYP엔터테인먼트다.
2007년 JYP의 메인 작곡가로 활동하던 방시혁은 본인의 회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가수로 ‘에이트’를 제작했다. 방시혁은 2005년에 회사를 설립하고 경영과 JYP 프로듀서를 동시에 수행했다.

히트맨 뱅의 첫 번째 결과물
〈에이트 정규 1집 - 사랑을 잃고 난 노래하네〉 앨범 재킷
유사 연애 마케팅이 기반인 아이돌 시장에서 방시혁은 과감하게 혼성 그룹을 시도했는데, 남들이 만들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아이돌 포지션도 아니고, 가창력과 히트 작곡가 방시혁의 음악으로 승부하려고 했지만, 당시 가요계의 트렌드를 지나치게 간과한 무리한 시도였다. 결국 ‘MBC 쇼바이벌’에 출연하며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싸이월드 도토리 효자 곡인 〈심장이 없어〉를 히트시키며 회사의 수명을 연장했다.
회사 초창기에는 연습생으로 있던 케이윌이 스타쉽으로 이적했고, 큐브와 JYP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2AM, 임정희 등의 매니지먼트를 대행해 신생 기획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별히 아이돌을 키워낼 역량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고, 방시혁의 히트곡 납품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이 시기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내 귀에 캔디〉 같은 메가 히트곡을 만들며 보릿고개를 이겨냈다.
SM에서는 보아의 매니저로 근무했던 한성수가 독립해,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소속 가수로 메이비와 연습생 손담비, 보아의 백업 댄서로 활동했던 가희만을 데리고 조촐하게 출발했다.

유이가 비욘세보다 ‘싱글 레이디’ 춤을 더 많이 췄을 것이다.
〈손담비 EP 2집 - 미쳤어〉 앨범 재킷(좌)
〈애프터 스쿨 싱글 2집 - 너 때문에〉 앨범 재킷(우)
첫 번째 제작 가수로 손담비를 선보였지만, ‘여자 비’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홍보 전략으로 역효과만 불러왔다. 하지만 미니 앨범 2집 〈미쳤어〉의 메가 히트로 자리를 잡았고 〈토요일 밤에〉를 연달아 히트시켜 제작자로서 성공의 첫발을 내디뎠다. 기세를 몰아 개국 공신 가희를 중심으로 ‘애프터 스쿨’이 데뷔했다. 초반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손담비의 인지도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팀을 홍보했다. 특히 중간에 합류한 유이가 때아닌 ‘꿀벅지’ 열풍을 일으키며, 이른바 ‘멱살 하드캐리’한 결과 지상파 1위를 차지했다.

스타쉽의 창립 멤버로 빅히트의 이현 같은 존재
〈케이윌 정규 1집 - 왼쪽 가슴〉 앨범 재킷
스타쉽을 설립한 서현주, 김시대 대표는 SM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출신 제작자들이다. 2007년 회사의 첫 가수로 빅히트에서 준비하던 케이윌이 데뷔했다. 데뷔곡 〈왼쪽 가슴〉은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한창 잘 나가던 박진영이 써주었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원더걸스와 여러 매체에 동반 출연 기회가 주어지는 등 신생 회사로서는 총력을 다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케이윌은 드라마 OST에 활발히 참여해 대중들의 귀에 익숙해졌다. 〈러브 119〉, 〈눈물이 뚝뚝〉의 연이은 히트를 시작으로 〈그립고 그립다〉까지 성공시키며 1등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또 스타쉽 제작진은 SM 출신이라는 이점을 살려 뮤직비디오에 소녀시대를 출연시키는 수완을 보여주기도 했다.

〈씨스타 싱글 1집 - Push Push〉 앨범 재킷(좌)
〈씨스타 정규 1집 - So Cool〉 앨범 재킷(우)
뒤이어 2010년, 스타쉽에서 4인조 걸 그룹 씨스타가 데뷔했다. 케이윌이 히트곡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아이돌처럼 엄청난 팬덤을 바탕으로 매출을 보장하는 가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는 여전히 중소기업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문에 대형 기획사에서 제작한 걸 그룹처럼 제대로 된 투자가 없어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기존 여자 아이돌과는 색다른 음악과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KBS 불후의 명곡〉 같은 음악 예능이 주목받으면서 가창력 있는 가수들에 대한 수요가 생겼는데,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으로 팬층을 중장년층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멤버들의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도 차별화되어 건강한 섹시함을 강조한 매력이 만들어졌고, 새로운 음원 강자로 등극해 스타쉽을 이끄는 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11년 6인조 아이돌 ‘보이프렌드’를 제작했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아이돌 제작사로 성장하기에는 부족했음이 드러났다.
2010년 틴탑을 제작한 티오피미디어의 이재홍 대표 역시 SM에서 신화의 매니저를 거쳐 회사를 설립한 경우였다. 틴탑은 데뷔 당시 신화의 앤디가 만든 아이돌이라고 홍보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들은 방시혁, 용감한 형제 등의 곡들로 틴탑만의 색깔을 찾아 자신들만의 팬덤을 구축했다.

〈주얼리 정규 1집 - 이젠〉 앨범 재킷
조선음향은 마지막 희망이었던 Y2K의 해체와 함께 막을 내렸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신주학 사장은 써클의 멤버로 활동했던 이지현을 데리고 스타제국을 설립했다. 2001년 써클 오디션에서 탈락한 후 인터넷 가요제에서 입상한 박정아를 영입해 4인조 걸 그룹을 제작했다. 시기상 1세대 걸 그룹 거의 마지막에 나와서 세대 포지션이 애매했고, 콘셉트는 핑클의 복사판이었던 바람에 이들의 1집은 소리 소문 없이 실패했다.

3개월간 아시아를 유랑하며 거리 공연과 알바로 비용을 마련해
서울까지 돌아오는 예능 〈SBS 일요일이 좋다〉(좌)
〈주얼리 정규 2집 - Again〉 앨범 재킷(우)
이후 ‘소녀 가장’ 박정아가 팀을 살리기 위해 SBS의 예능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서인영, 조민아로 멤버를 재정비하여 2집을 발표했다. 이때 예능으로 고생한 공로를 인정해 준 SBS가 아낌없이 지원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주얼리 정규 3집 - 니가 참 좋아〉 앨범 재킷(좌)
〈주얼리 정규 4집 - 슈퍼스타〉 앨범 재킷(우)
때마침 1세대 대형 걸 그룹들이 해체하거나 개별 활동하며 빈집이 된 상황에, 3집 〈니가 참 좋아〉를 기점으로 상큼한 걸 그룹에 목말랐던 군인들의 한 줄기 빛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이지현은 ‘퀸 오브 당연하지’, ‘게리롱 여사’ 밈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며 팀을 견인했고, 4집 〈슈퍼스타〉로 정점을 찍으며 스타제국을 이끌었다.
주얼리로 번 돈을 바탕으로 스타제국은 남성 3인조 보컬 그룹 VOS를 만들어 SG워너비로 시작된 보컬 그룹의 시류를 타고 나름의 인지도를 얻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사실상 주얼리 하나로 밀고 나가는 회사였는데, 정점의 시기에 이지현과 조민아가 갑작스럽게 탈퇴를 선언했다.
이때 조선음향의 후예답게 신주학 사장은 팬덤 관리 시스템의 심각한 부재를 드러냈다. 나름 큰 팬덤을 보유한 가수였음에도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관리하는 카페나 홈페이지가 없었다. 심지어 가장 큰 규모의 팬카페는 외부 운영자에게 매각되었고, 주얼리 관련 게시물은 모두 삭제된 채 하루아침에 필리핀 어학연수 카페로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다. 카페에 모여있던 팬들은 철저히 흩어졌다. 이는 특별히 기획 능력이 뛰어나거나 시류에 맞는 제작 능력도 없는, 오직 에이스 한두 명의 활약에 의존하여 회사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중소 기획사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주얼리 정규 5집 - one more time〉 앨범 재킷
이 처참한 상황에서 2명의 멤버를 영입해 〈one more time〉을 발표했는데, 이 곡으로 골든 디스크 디지털 음원 대상 수상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새로 영입된 서인영이 가상 결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신상녀라는 독보적인 ‘쎈 캐릭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10년 스타제국은 차세대 아이돌 '제국의 아이들'을 데뷔시켰다. 하지만, 이 팀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희한한 포지션이 되었다. 그래도 메가 히트 가수를 보유한 소속사답게 꾸준히 예능으로 얼굴을 알리고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팀의 인지도에 비해 단 한 곡의 히트곡도 내놓지 못하는 아이돌로 남았다. 임시완, 박형식은 연기자로 크게 성공해 팀을 넘어서는 위대한 멤버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제국의 아이들 싱글 1집 - 마젤 토브〉 앨범 재킷(좌)
〈나인 뮤지스 싱글 2집 - DOLLS〉 앨범 재킷(우)
이후 주얼리를 이을 차세대 걸 그룹으로 멤버 평균 신장 172cm를 자랑하는 모델돌 ‘나인뮤지스’가 데뷔했다. 사실상 유튜브 드라마 〈좋좋소〉의 탑골 버전으로 봐도 무방할 M.net의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회사 홍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연습생들을 선보이며 차기 걸 그룹을 홍보했다. 어지간한 중소 기획사에서 여자 아이돌들도 한 번쯤은 히트하던 시절이었는데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제국의 아이들, 나인뮤지스의 사례를 보면 예전 조선음향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아이돌 멤버 조합, 선곡, 의상과 안무 제작, 콘텐츠 제작 등이 주먹구구식이었고, 활동 중간에 멤버의 영입과 이탈로 인한 고정 팬덤의 분산 같은 관리의 부재도 드러났다.
그밖에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인피니트, WM 엔터테인먼트의 B1A4도 회사를 이끌어 지금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중소의 기적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소 회사에서 내놓는 아이돌의 대부분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큰 회사의 후광을 업고 나온 팀들이 난무하는 치열한 시장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중소의 기적’을 만드는 팀들은 회사보다는 개인의 역량이 빛을 발하며 회사를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을 직접 만들거나, ‘얼굴 천재’라는 말을 만들 만큼 비주얼이 뛰어나거나, ‘칼군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퍼포먼스에 공을 들였거나, 혹은 예능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경우가 그렇다.
이렇게 제작 가수가 히트해도 회사의 역량이 뛰어나서 만든 결과라고 착각하는 곳은 이내 그 밑천을 드러내고야 만다. 중간에 잘못됨을 감지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을 수용하는 자세의 회사는 살아남아 지금도 K-pop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사라졌을 것이다. 2세대에서 중소의 기적을 만든 회사들 중에 현재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면 어떤 곳이 그런 곳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JayTV
제보 및 연재 문의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