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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5일, 백악관은 새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을 공개했다. 즉, 앞으로 미국은 이 방향으로 가겠다는 걸 선포한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발표한 NSS(국가안보전략)에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큰 만큼 앞으로의 세계 질서와 우리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이 내용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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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he Secretariat>

 

지난 기사에서도 말했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 역할을 이렇게 변하고 있다. 

 

①국제기구를 향한 회의감(거리 두기)

 

②서반구(아메리카 대륙)와 자국 산업을 우선에 두는 전략

 

③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 동맹에 대한 거리 두기

 

본 글에서는,

 

1. NSS라는 문서의 성격

 

2. 2025년 판 NSS의 큰 틀

 

3. 부시·오바마·트럼프 1기·바이든과의 비교

 

4. 그로부터 드러나는 미국 전략의 방향

 

5. 결론

 

이번 NSS를 짚어보고 있다.

 

 

지난 기사

    

1. 중국보다 위험한 적을 규정하다

 

 

 

3. 부시부터 바이든까지 미국 안보 전략

 

①부시 정부 : 개입과 민주주의 확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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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

출처-<AP>

 

9·11 이후 2002년 발표된 부시 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은 내용은 대략 이랬다.

 

“최상위 목표는 ‘테러와의 전쟁’이다. 이를 위해선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감수할 것이다. 중동의 민주화와 테러 위험이 있는 국가의 정권 교체도 그 일환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반면, 지난 12월 5일에 발표된 트럼프 2기 정부의 NSS(국가안보전략)는 이렇게 말한다.

 

“중동 개입과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을 장기간 소모시킨 비효율적 전쟁’이었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제 미국은 장기 점령이나 민주화 프로젝트와 같은 걸 다시 추진하지 않겠다.” 

 

즉, 안보 전략의 축이 ‘악의 축 제거와 민주주의 확산’에서 ‘핵심 이익만 방어하고 나머지는 현지 세력에 맡기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②오바마 정부 : 규범과 동맹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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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정부 NSS의 특징은 이랬다.

 

“다자주의, 국제기구, 동맹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의 부담을 나누고, (미국이 추구하는) 규범을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세계를 컨트롤한다.”

 

“협상이 안 되는 국가가 있다면, 제재·외교적 고립·표적 공격 등 최대한 간접 수단을 사용하여 제어한다.”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이라고 자신들을 홍보하는 걸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중국이 세계 규범을 지키게끔 한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 NSS는 당연하게도(?) 이런 발상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국제기구와 다자 협력은 ‘주권을 약화시키고 관료적 글로벌리즘을 강화한 장치’일 뿐이며, 동맹국들은 자신들의 방위를 미국에 의존한다. 지금의 구조는 미국의 세금으로 다른 나라만 지켜주는 꼴이다.”

 

미국의 과거 정부들에서 “규범 기반 질서”는 전략 목표였지만, 트럼프 정부에서는 오히려 문제의 일부로 취급된다. 미국은 더 이상 “규범의 설계자”를 자임하지 않고, 자국 규범을 압박하는 국제 규칙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이탈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③트럼프 1기 정부 : 강대국 경쟁에서 정체성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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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당시) 트럼프 대통령

출처-<백악관>

 

트럼프 1기 정부는 NSS에서 “위대한 강대국 경쟁”의 언어를 복원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강대국”으로 규정하고, 군비 증강과 에너지 패권, 공정 무역을 결합한 전통적 현실주의 전략에 가까운 그림을 제시했다. 즉, 도덕이나 정의 같은 명분을 내세우는 이상주의보다는 현실적 권력과 힘의 논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안보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발표한 트럼프 2기 정부의 NSS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1기 때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1기 때는 언급하지 않았던 더 위험한 적이 등장한다.

 

“중국·러시아가 여전히 경쟁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위험한 적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민·표현 규제·기후·DEI 정책’ 같은 걸 추진하는 서구 엘리트다.”

 

미국 외부의 강대국보다 서구 내부의 “문화 전쟁”이 안보 전략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트럼프 1기 안보 전략

 

“국제기구와 다자외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질서를 다시 국가별 이합집산 및 강대국 경쟁의 판으로 되돌리겠다.”

 

트럼프 2기 안보 전략

 

“1기 때 추진했던 전략은 그대로 진행한다. 그러나 미국에 더 위협이 되는 적이 등장했다. 이 적들과의 내부 이념·정체성 전쟁을 더 우선순위에 둔다.” 

 

④바이든 정부 : 정치적 서구의 마지막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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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

출처-<AP>

 

바이든 정부는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연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NATO와 EU, 인도·태평양 동맹, 기후 협력을 중요시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즉 서구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 집단을 만들고, 미국이 그 집단의 리더가 됨으로써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이런 국가 집단을 유식한 말로 ‘정치적 서구’라고도 말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원과 중국 견제, 기후 위기 대응을 동시에 추진하는 “가치 동맹”이 틀 위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2기 NSS는 이 구도를 전면 부정한다. 

 

“유럽연합과 주요 유럽 국가들은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과도한 이민과 기후·DEI 이데올로기로 자국의 문명을 약화시키는 엘리트 정치체제일 뿐이다. 미국은 그런 유럽 내에서 ‘애국적 정당’의 부상을 긍정적으로 본다.”

 

미국과 유럽은 이제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같은 문명권 안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정치 체제들”로 재정의된 것이다.

 

 

4. 이번 NSS가 말하는 미국의 선택

 

①세계 경찰에서 서반구 제국으로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질서를 지키는 경찰” 역할을 감당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이제 미국은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지배를 “안보와 번영의 전제조건”으로 규정하고, 이 지역에서의 군사·경제·외교적 우위를 회복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자원을 빼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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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서반구, 오른쪽이 동반구

 

이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스스로를 “지역 패권국”으로 재규정하는 장면이다. 물론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전략의 중심축이 서반구와 자국 산업·에너지를 향해 이동했다. 그 결과,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은 “질서 유지자”에서 “정치적·군사적 거래자”에 가까운 것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②동맹 재편과 ‘정치적 서구’의 해체

 

유럽 지도자들이 이번 NSS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이번 NSS에서 유럽을 ‘자유와 인권의 파트너’가 아니라 ‘이민과 검열, 기후 정책으로 스스로를 해치는 실험실’로 묘사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유럽 내 극우·국민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듯한 어조를 취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외에도 미국은 이렇게 선언했다.

 

트럼프 콱 씨.jpg

아유~ 그냥 콱~!

출처-<서울신문>

 

“나토 국가들은 ‘헤이그 약속’을 이행해라. 국내총생산(GDP)의 5퍼센트를 국방비로 쓰라.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질서 전체를 어깨에 짊어지는 아틀라스’가 아니다.”

 

미국은 동맹을 “가치 공동체”에서 “부담 분담 네트워크”로 재정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서구”라는 개념은 흔들리고, 대신 각 지역의 우파·국민주의 세력과의 새로운 정렬이 모색되는 중이다.

 

③미국 내부 문화 전쟁의 세계화

 

이번 NSS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미국 내부 문화 전쟁의 언어가 그 자체로 외교·안보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이다. NSS는 DEI, 이민, 표현 규제, 기후 정책, 정치적 올바름을 “국가 역량을 약화시키는 이념적 장애물”로 묘사하고, 이를 제거하는 것이 국가안보 전략의 일부라고 선언한다.

 

같은 표현은 유럽을 비판할 때도 반복된다. 유럽의 대량 이민 허용, 혐오 발언 규제, 역사·식민주의 재평가, 탄소중립 정책이 “문명적 소멸”과 “자유의 후퇴”를 부른다는 식의 서술은, 미국 우파 내부에서 진행되어 온 논쟁이 그대로 대서양을 건너간 결과다.

 

구조적으로 볼 때, 앞으로 국제 정치의 많은 쟁점들이 “민주주의 vs 권위주의”가 아니라, 

 

“woke vs anti-woke”

 

“엘리트 글로벌리즘 vs 국민 주권”

 

같은 구호로 재정렬될 위험이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 내부의 정치 지형도 이 축을 따라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 전략의 언어가 국내 문화 전쟁의 언어와 뒤섞이기 때문이다.

 

(woke는 원래 인종차별과 사회적 약자 문제에 깨어 있으라는 뜻으로 미국 진보 진영에서 쓰이던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보수 진영에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정체성 정치, DEI 정책을 비판할 때 더 자주 쓰이는 말이 되었다. anti-woke는 이러한 흐름에 대한 정치적·문화적 반발을 가리킨다) 

 

④한국과 동북아에 주는 몇 가지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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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지역

출처-<뉴스타운>

 

이번 NSS에서는 인도·태평양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인도·태평양은 21세기의 핵심 경제·지정학적 전장이다. 이 지역에서 경제적 미래를 쟁취하고 군사적 충돌을 막아야 한다. 특히,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기적 억지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관세와 공급망,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고 공정하게 무역한다. 중국의 보조금과 불공정 무역, 기술 탈취에 대해서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공동 대응하겠다.”

 

“대만은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이자 제2도련으로 향하는 관문이며, 동북아와 동남아를 둘로 가르는 전략 요충지이다.”

 

“제1도련 전역에서의 공격 억지를 위해 미국과 동맹국이 함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과 한국이 방위비와 능력을 늘리고, 미군에 대한 기지와 항만 접근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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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출처-<아시아경제>

 

(제1도련은 일본 남부와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섬 띠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중국 해군이 태평양의 깊은 바다로 나가기 전에 마주치는 전진 방어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제 2도련은 괌과 마리아나 제도 일대를 중심으로 한 두 번째 섬 띠로, 1도련 뒤에서 장거리 타격과 후방 지원을 담당하는 두 번째 방어선에 가깝다. 미국이 대만과 인도·태평양 억지를 이야기할 때 1도련과 2도련을 언급하는 것은, 이 두 섬 띠를 중심으로 중국의 해상 진출을 단계적으로 억제하는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 구도를 전제로 보면, 한국과 동북아에 주는 시사점을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견제는 계속되겠지만, 그 방식은 “체제 경쟁”이라기보다 “공급망, 기술 표준, 해상 교통로”를 둘러싼 거래와 조정에 가까워질 수 있다. 

 

또한, 미국이 서반구와 자국 산업에 우선순위를 두는 만큼, 동맹국의 부담 분담 요구는 더 거칠고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가능한 빨리 정리해야 할 귀찮은 문제”로 보는 시각은, 동북아에서도 비슷한 발상이 등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이 전면전 개입을 피하면서도 최소한의 억지와 거래를 통해 “문제를 치우고 다른 우선순위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주의와 인권, 기후와 DEI 같은 의제는 더 이상 “미국과 발을 맞추기 위해 따라가야 할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서로 다른 기준과 언어가 충돌하는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이 사이에서 어떤 언어와 기준을 선택할지에 따라, 외교적 공간뿐 아니라 국내 정치의 균열선도 달라질 수 있다.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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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NSS 보고서

출처-<AP>

 

결국, 이번 NSS는 한 세대 동안 미국 전략 문서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전제, 곧 “미국은 정치적 서구의 리더이며, 규범과 동맹을 통해 세계 질서를 관리한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지운 문서다. 

 

이제는 그 자리를 

 

“세계 경찰에서 서반구 제국으로의 전환”

 

“동맹에 전가되는 부담 분담”

 

“정체성과 주권을 둘러싼 문화 전쟁의 세계화”

 

라는 세 가지 축이 채웠다.

 

이번 NSS를 어떻게 평가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국제 정치의 언어를 다시 짜는 쪽은 여전히 미국이고, 동맹과 주변 국가는 그 언어가 정한 문장 구조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냉전 종식과 유럽연합 출범이 상징하는 새 질서가 지구촌에 자리를 잡은 지 한 세대가 지났지만, 그 사이 미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다. 그리고 과거의 대제국이었던 중국이 영향력이 커진 미국조차 위협을 느낄 만큼 성장했다.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Trump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의 등장은 이런 현실 속에서 미국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택한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일지도 모른다.

 

유럽은 새 질서 속에서 자기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러시아는 제재와 고립 속에서도 주변 권역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포기하지 않고,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을 기회로 삼아 독자적 경제권과 규범을 구축하려 하며, 일본은 재무장과 집단적 자위권 확대를 통해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다시 그리려 하고 있다. 미국의 전환을 계기로, 각 권역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 가쁘게 재배열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국가 역량에 걸맞게, 동시에 변화하는 미국의 전략에 대응할 새로운 외교 모델을 세워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바로 이 역사적 전환점의 한가운데에서 출범했고, 최근의 대미 정책과 안보 전략은 그 가능성과 함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험대이자 선행 사례가 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서반구 우선·동맹 부담 전가’라는 전략 구도를 전제로, 방위비 증액과 동맹 현대화, 미 관세 인하와 공급망 협력, 핵추진 잠수함 연료 합의 같은 이슈들을 패키지로 엮어 한미 양국의 이해를 동시에 끌어올리려 한 점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재명 트럼프 연합뉴스.png

출처-<연합뉴스>

 

미국 전략의 필요를 정면으로 인정하되, 그 안에서 한국의 선택 공간을 넓히는 방향으로 한미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평가할 만하다.

 

전후 한미 관계에서 지금처럼 미국의 압박이 정면으로 밀려온 시기는 많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서반구 우선과 동맹 부담 전가를 공식 전략으로 못 박았고, 최대 25퍼센트에 이르는 관세와 핵심 기술 규제를 동맹에게까지 들이밀었다.

 

이런 조건 아래에서 이재명 정부가 이 전략 구도를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이 절실히 원하는 산업 투자와 조선·공급망 협력을 패키지로 제시하는 대신 한국의 요구 조건인 관세 완화와 핵추진 잠수함, 핵연료·핵주기 권한 확대를 동시에 끌어낸 것은, 미국 전략의 논리와 우선순위를 세밀하게 읽고 그 안에서 한국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려 한 외교 역량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도가 일시적인 협상 성과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NSS가 재구성한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지속 가능한 대외 전략으로 정착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설계한 전략 구도에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외교가 아니라, 자율성과 상상력을 발휘해 스스로의 공간을 확보하는 새로운 대미 외교 모델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문서를 정확히 해석하는 한국”을 넘어서, 이번 정부가 보여준 시도를 토대로 한국의 고유한 이익과 원칙, 정책 우선순위를 장기적 전략으로 정교화하고,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일관되게 이어갈 수 있는 국가 전략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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