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불가사리 법률 대모험_700.jpg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을 기억하시는가. 안경닦이부터 믹스커피, 돈까스까지 세상 만물의 티끌 같은 역사를 파헤치며 딴지그룹의 자산을 붕괴시키려 했던 전설의 시리즈.

 

3년 전, 와인 직구 편을 끝으로 사라졌던 나는 화려하게 복귀... 하기는커녕, ‘아트테크 사기’로 조 단위 사기꾼의 뒤통수를 맞고, 로맨스 스캠에 당해 유키 짱에게 사랑과 돈을 다 잃었으며, 급기야 캄보디아 취업 사기로 목숨만 간신히 부지해 돌아왔다. 그 결과 내게 남은 건 억대의 빚과 스트레스로 인해 더 늘어난 뱃살, 그리고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뿐. 이제 더 이상 ‘투자’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믿을 건 오직 내 두 손과 노동뿐이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 겪은 PTSD로 인해 밖으로 나가는 건 무리였다.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 안전하고 소소한 일. 그래, 옛날 드라마에 나오던 ‘인형 눈 붙이기’나 ‘마늘 까기’ 같은 거 없나? 무념무상으로 눈알을 붙이다 보면 마음의 평화도 얻고 돈도 벌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검색창에 ‘부업’, ‘재택 알바’, ‘단순노동’을 쳤고, 알고리즘의 신은 나를 새로운 지옥, 아니 모험으로 인도했다.

 

 

1. 미끼: “요즘 누가 인형 눈알 붙여요? 촌스럽게.”

 

인스타그램 피드 사이에 뜬 광고 하나.

 

01.jpg

집에서 하는 소일거리 / 초보 가능 / 하루 10만 원 당일 지급

(한국일보, 링크)

 

02.jpg

 

 

“그래, 이거야! 정직한 노동!”

 

당장 카카오톡 링크를 눌러 문의했다. 상담원 ‘김 실장’은 아주 친절했지만, 내 질문에 콧방귀를 뀌었다.

 

“인형 눈 붙이기요? 불가사리님, 요즘 그거 다 중국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지 사람이 안 해요. 단가가 안 맞아서 하고 싶어도 일감이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는 뭘 할 수 있나요?”

 

“대신 요즘 트렌드는 ‘문화 콘텐츠 마케팅’입니다. 영화사나 OTT 플랫폼에서 신작 홍보를 위해 트래픽을 늘리고 리뷰를 관리하는 건데, 그냥 예고편 보고 ‘좋아요’ 누르고, 기대 평 한 줄 남기시면 돼요. 인형 눈 붙이는 거보다 10배는 쉽고 돈은 5배 더 줍니다.”

 

처음엔 의심했다. 하지만 가입만 해도 축하금 3만 원을 준다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가입했다. 10분 뒤, 정말 내 통장에 3만 원이 꽂혔다.

 

‘어? 진짜 돈을 주네?’

 

그다음엔 시키는 대로 영화 예고편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니 건당 5천 원씩 정산해 줬다. 며칠 동안 이렇게 치킨값 정도를 쏠쏠하게 벌었다. ‘노동의 대가’가 즉각 통장에 찍히는 쾌감. 의심은 확신으로, 확신은 맹신으로 바뀌어 갔다.

 

03.jpg

‘즉시수익 보장’ 인스타 부업 계정...실제로 말 걸어보니

(스냅타임, 링크)

 

 

2. 라포(Rapport) 형성: “우리는 피를 나눈(?) 원 팀입니다”

 

어느 날 김 실장이 은밀하게 말했다.

 

“불가사리님, 너무 성실하시네요. 사실 일반 회원님들한테는 공개 안 하는 건데, 수익률이 훨씬 높은 ‘프리미엄 팀 프로젝트’ 방이 있어요. 특별히 초대해 드릴게요.”

 

초대된 텔레그램 방에는 나를 포함해 4명의 ‘팀원’이 있었다. 

 

김 팀장: 리더. 수익률 분석의 대가.

성실맘: 아이 분윳값을 벌러 왔다는 가정주부. 프로필 사진은 귀여운 아기 사진.

열정대학생: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는 건실한 청년.

불가사리: (호구)

 

우리는 서로의 사연을 공유하며 빠르게 친해졌다. 성실맘이 “오늘 수익금으로 우리 아기 기저귀 샀어요ㅠㅠ 팀장님 감사해요”라고 올리면, 열정대학생이 “누나 축하드려요! 저도 오늘 등록금 냈습니다!”라고 맞장구쳤다. 삭막한 내 인생에 따뜻한 ‘동료’가 생긴 기분이었다. 나는 이들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무엇인가를 해나가고 서로의 어려운 상황을 공유하며, 우리는 매일 함께 성장하고, 위로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개인적인 비밀들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친한 사이가 되었고, 돈을 번 다음에는 만나서 술 한잔 나누자는 약속도 했다.

 

 

3. 덫: “세금 내셔야죠? 아, 그리고 님 때문에 다 망했어요!”

 

‘김 팀장’은 새로운 미션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미션이었다. 바로 ‘영화 배급권 조각 투자’라는 것이었다.

 

“이번엔 팀 미션입니다. 4명이 똑같이 예치금을 충전해서 영화 판권을 공동 구매하는 거예요. 구매 확정 누르면 10분 뒤에 원금+수익 30%를 바로 돌려드립니다.”

 

금액은 점점 커졌다. 10만 원, 50만 원, 300만 원... 

 

수익금이 쌓여가는 게 눈에 보였다. 어느덧 내 가상 계좌에는 2,000만 원이 넘는 돈이 찍혀 있었다. 이제 이걸 인출해서 빚을 좀 갚아볼까?

 

04.jpg

“인스타 카지노 게임 부업사기에 수천만원 날려...투자금의 10배 수익 현혹”

(일요주간, 링크)

 

[출금 거절: 소득세 미납]

 

김 실장의 설명은 이랬다.

 

“아, 불가사리님. 수익금이 너무 커져서 세무 조사를 피하려면 소득세 22%를 별도로 입금하셔야 출금이 가능해요. 이거 법이라 어쩔 수 없어요.”

 

내 돈 2,000만 원이 인질로 잡혀 있었다. 지인에게 급전을 빌려 세금 400만 원을 입금했다. 김 팀장은, 이제 곧 입금될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세금보다 더 큰 문제는, 본업, 즉 ‘팀 미션’에서 발생했다. 하나 둘 셋! 하고 눌렀는데,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05.jpg

(일요주간, 링크)

 

[시스템 오류: 팀원 간 입력 시간 불일치]

 

김 실장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아, 불가사리님. 지금 님께서 매수 버튼을 팀원들보다 0.7초 늦게 누르셔서 전산 오류 났어요. 블록체인 동기화가 깨져서 팀원들 돈까지 싹 다 동결됐습니다. 대체 어떻게 할 겁니까???”

 

채팅방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성실맘: “불가사리님! 저 이거 남편 몰래 대출받은 전세금이란 말이에요! 책임지세요! 엉엉!”

열정대학생: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야! 나 내일 등록금 내야 한다고! 인생 망칠 일 있어?”

 

팀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죄책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 같은 놈 때문에 저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다니. 내가 죽일 놈이다.

 

김 실장이 선심 쓰듯 해결책을 제시했다.

 

“불가사리님, 이거 푸는 방법이 딱 하나 있어요. ‘오류 해제 보증금’으로 1,000만 원을 추가 입금하시면 락(Lock) 풀립니다. 팀원들 생각해서라도 빨리 넣으세요. 사람 도리는 하셔야죠.”

 

사람 도리. 그 말에 나는 이성을 잃었다. 사채라도 써야 하나. 당장 돈 나올 구석을 찾다가, 머릿속을 스치는 한 사람. 나의 영원한 물주이자 팩트 폭격기, 박기태 변호사였다.

 

 

4. 박 변호사의 팩트 폭격: “그 방에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변호사님... 흑흑... 제가 실수를 해서 애기 분윳값이랑 대학 등록금을 다 날려 먹었습니다... 사람 살리는 셈 치고 돈 좀 빌려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돈까스 씹는 소리가 뚝 끊겼다.

 

“불가사리님, 스톱. 지금 텔레그램에서 ‘팀 미션’ 하셨습니까?”

 

“어떻게 아셨어요?”

 

“하아... 당장 멈추세요. 그거 100% 사기입니다.”

 

“아니, 성실맘이 울고 있다니까요? 제가 실수해서...”

 

“하아….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

 

당신만 빼고 다 배우다 (바람잡이)

 

“불가사리님, 그 채팅방에 있는 ‘성실맘’, ‘열정대학생’? 전부 범죄 조직원이거나, 한 놈이 스마트폰 여러 개 놓고 연기하는 ‘바람잡이’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죄책감을 자극해서 돈을 뜯어내는 ‘사회공학적 설계’ 전문가들입니다. 당신이 버튼을 늦게 눌러서 오류가 난 게 아니라, 애초에 돈을 안 주기 위해 ‘오류가 나게끔 프로그래밍 된’ 가짜 사이트예요.”

 

3초 늦게 눌렀다고 블록체인이 깨져?

 

영화 리뷰하는데 블록체인이 왜 나옵니까? 전형적인 아무 말 대잔치입니다. 출금을 막고 추가 입금을 유도하기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 당신은 지금 ‘돈세탁’을 했다

 

박 변호사의 다음 말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불가사리님, 처음에 받았던 3만 원, 그리고 리뷰 쓰고 받았던 5천 원들... 그거 범죄 조직이 자기 돈으로 줬을까요?”

 

“그럼요?”

 

“다른 피해자가 사기당해서 입금한 돈입니다.”

 

“네?! 다... 다른 피해자 돈이라고요?”

 

“네. 범죄 조직은 불가사리님 계좌를 일종의 ‘세탁기(Money Mule)’로 쓴 겁니다. 

A 피해자에게 받은 돈을 불가사리님에게 ‘수익금’이라며 보내주고, 불가사리님이 믿고 입금한 큰돈은 먹튀하는 거죠. 불가사리님은 사기를 당한 피해자인 동시에, 본의 아니게 범죄 자금 세탁에 관여한 꼴이 된 겁니다. 재수 없으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나 사기 방조로 조사받으러 오라는 경찰 전화를 받게 될 수도 있어요.”

 

 

5. 결론: 잃어버린 돈보다 무서운 건

 

나는 결국 돈을 입금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를 “우리 팀원님~”하며 우쭈쭈해 주던 김 실장과 성실맘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야 이 XX야, 밤길 조심해라”, “니 신상 다 털렸다” 등등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붓더니, 방을 폭파하고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엔 내 빚과, ‘내가 또 속았다’라는 자괴감만이 남았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다는 배신감은 어떤 것보다도 더 큰 것이었다. 물론 당장 먹고살 일이 더 문제지만.

 

이번 모험에서 배운 것은 명확하다.

 

1. 세상에 쉬운 돈은 없다. 인형 눈알 붙이기보다 쉬운데 돈을 더 준다? 100% 사기다.

 

2.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친절은 덫이다. 뜬금없이 나를 ‘팀’에 끼워주고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사람은 사기꾼뿐이다.

 

3. 죄책감 갖지 마라. 그 채팅방에서 당신을 비난하던 사람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당신의 등골을 빨아먹으려 연기한 악당들이다.

 

4. 돈을 받으려면 먼저 돈을 내라? 말도 안 된다. 대부분의 보이스 피싱 피해는 눈앞의 큰돈을 받기 위해 소액을 내라는 유혹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렇게 낸 돈이, 매몰 비용(Sunken Cost)이 늘어날수록, 사기당하는 금액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포기할 수 있을 때 포기하고 정신차릴 수 있을 때 정신 차려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혹시라도 이런 ‘부업’을 하다가 통장이 묶이거나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다면, 절대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라. 당신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교묘한 범죄의 톱니바퀴로 이용당했을 수 있다. 즉시 형사 고소를 진행하고 전문가(라고 쓰고 박기태 변호사라고 읽는다)에게 연락해라.

 

불가사리의 법률 대모험은 계속된다. 내 통장이 0원이 되는 그날까지(지금 마이너스니까, 0원만 되어도 내 인생 큰 성공이라는 의미가 맞다)... 

 

다음 싸움은, ‘리딩방 사기’다(진짜?).

 


 

제보 및 상담 문의

마성의 불가사리 starfish.big.adventure@gmail.com

또는 박기태 변호사 keith@hjlaws.com

 

이 글은 실제 사기 수법과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극적으로(그리고 눈물겹게) 가공된 콘텐츠입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정인영

기사: 마성의불가사리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