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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의 ‘일탈’이라는 인식

 

ADHD 약을 계기로 향정신성 의약품에 중독된 루루는 결국 필로폰까지 손을 댔다. 처음 필로폰을 투약하려다 엄마에게 발각되어 미수로 그쳤지만, 엄마의 감독만으로는 더 강한 도파민을 갈망하는 중독의 속도를 막을 수 없었다.

 

루루와 비슷하게 성인이 되어서야 조용한 ADHD 진단을 받은 지아(가명)는 현재 중독성이 강해 처방이 매우 엄격한 메OOO을 먹고 있다. 지아 역시 말수가 적고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전형적인 조용한 ADHD였다. 학업 성적은 우수했지만, 사회적 맥락을 읽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져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따랐다.

 

지아에게 가장 힘든 것은 ‘듣는 일’이었다. 타인의 말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반복 학습과 선행 학습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자율성과 의지, 자기 동력이 요구되는 대학 수업부터는 상황이 달랐다. 강의를 듣고 과제를 수행하는 일 자체가 큰 부담이 되었고, 온라인 강의는 더 어려웠다. 지아는 국내 명문대 공과대학에 수시로 합격했지만, 입학 후 1년을 간신히 보냈다. 약속을 자주 잊어버리고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학사 관리 전반이 엉망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면서 따라가기는 더 어려워졌다. 과제를 한 번도 제때 제출하지 못했고, 결국 휴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1년의 휴학 기간 동안 지아 자신도 무얼 하며 보냈는지 모른다. 어학연수도, 배낭여행도,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한 채 밤낮이 뒤바뀐 생활 속에서 집에 틀어박혀 스마트폰과 SNS만 들여다보다 시간이 다 갔다. 그렇게 휴학은 2년을 넘겼고, 입대나 출산과 같은 특별한 사유 없이 휴학이 길어지자, 재적 처리되었다.

 

“너 혹시 ADHD 아니야? 병원에서 상담받고 약을 처방 받아봐.”

 

친구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지아는 성인 ADHD라는 진단을 받았고,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다. 아침 약을 먹으면 머리가 맑아졌다. 하루 계획을 세우고 운동을 하는 모습에 스스로가 ‘갓생’을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생산적인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면 활력이 생겼고, 보람감에 자존감도 높아졌다. 부모 역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ADHD 약을 먹고 난 후 지아의 삶, 그러니까 뭐라도 해보는 알찬 하루를 긍정적으로 봐주어 마냥 좋았다. 그리고 몇 달 사이 체중은 6kg이 빠졌다. 더없이 좋았다. 하지만 약기운이 떨어지는 저녁이 되면 다시 침대에 누워 인스타만 들여다보는 생활로 돌아갔고,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약 없이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아가 복용하는 약은 암시장에서 한 알에 1만 원꼴로 거래되는 마약 대체 약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지아는 합법적으로 처방받았고, 오남용이나 환각 경험으로 불법 마약에 손을 댄 사례는 아니다.

 

랑이(가명)의 경우는 더 일상적인 경로를 통해 위험에 노출되었다. 같은 반 친구와 ADHD 약을 바꿔 먹은 것이다. 한 달간 약을 복용했지만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자, 똑같이 ADHD 약을 처방 받은 친구의 약을 먹어본 것이다. 친구의 약은 졸림이 없고 각성 효과가 훨씬 강했다. 랑이는 친구에게 그 약의 이름을 확인한 뒤 부모에게 같은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이후 학교에서 친구와 약을 주고받았고, 때로는 카페인 음료와 함께 복용했다. 효과는 더 강하게 느껴졌다. ADHD 환자가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에서 이런 일은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이런 사례들을 두고 일부에서는 ‘예외적인 특이한 사례’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인식이 마약 문제, 그중에서도 청소년과 젊은 층의 중독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러 번 반복했지만, 이 약은 오남용 되면 마약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게이트(징검다리) 약물’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처방받은 약을 본인이 다 먹지 않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이 문제는 개인적 경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마약류 범죄 통계와 공신력 있는 연구 기관들의 연구 결과만 보더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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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약류 범죄 변화 양상에 따른 실태 및 치료처우방안 연구(Ⅰ): 마약류 범죄 실태조사』

김낭희 외 2인, 2025.03, 209쪽.

 

2024년 기준, 치료 목적이 아닌 환각 목적의 약물 사용 비율은 22.9%에 달한다. 2004년 4.6%와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뛴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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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약류 범죄 변화 양상에 따른 실태 및 치료처우방안 연구(Ⅰ): 마약류 범죄 실태조사』

김낭희 외 2인, 2025.03, 211쪽.

 

이제 일부 ‘질 나쁜 아이들’만 다이어트약을 남용하고, 소위 ‘까진 애들만’ 공부 잘하겠다고 ADHD약을 찾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싶다는 욕망,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절박함이 이 약물 소비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소위 성공한 ‘먹방 유튜버’의 사례 역시 개인의 특수한 일탈이 아니다. 짭짤한 돈벌이와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신비함’을 유지하기 위해, 향정신성 의약품인 ‘나비약’을 불법 처방받고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되는 구조. 이것이 반복되는 한 비슷한 사례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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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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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짧은 햇님 유튜브 채널 공지

 

 

과학기술의 발달은 신종 마약을 키운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24년 KICJ 정책연구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과학기술 발달에 의한 합성마약의 확산과 초국가 범죄 조직의 국내 유입, 인권과 젠더 이슈, 대마 산업화 등이 마약류 대응 방안 마련 시 고려해야 할 쟁점으로 파악됨. 

 

이 가운데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과학기술 발달에 의한 합성마약의 확산”이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마약이 등장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기호식품이나 생활용품에까지, 기존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마약이 혼합·유통될 수 있음을 뜻한다.

 

초국가적 범죄 조직의 국내 유입 문제 역시 이미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 온몸에 마약을 테이프로 감은 채 인천국제공항을 버젓이 통과한 말레이시아 마약 유통책 사례는, 국경 통제가 더 이상 안전망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마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대마의 합법화 여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독일은 최근 기호용 대마 소지를 허용했고, 태국은 한때 합법화했다가 다시 규제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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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F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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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링크)

 

그러나 한국의 전체 마약류 사범 중 대마 사범의 비율은 14.4%에 불과하다. 반면 향정신정의약품 관련 사범은 77%로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의 마약 문제는 대마보다 의료용 마약류와 향정신성의약품에 훨씬 더 깊이 연결돼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 이사장이었던 이경희 한남대학교 명예교수는 “현재 보편화된 전자담배 액상에도 마약이 혼합되어 유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과학기술 발달에 의한 합성마약의 확산은 곧 보편적으로 애용하는 기호식품에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마약이 섞여서 유통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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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경희 전 이사장

(마약퇴치운동본부, 링크)

 

 

진짜 문제는 ‘미인지 중독자’

 

이 전 이사장은 2019년 6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임기를 마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청소년 마약 팬데믹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후 드러난 통계와 마약류 범죄 양상만 보더라도 그의 우려는 괜한 근심이 아니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영역에 있다.

 

아직도 마약에 관한 일반적이고, 신뢰할 만한 통계가 없다. 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마약 중독자 및 마약류 의약품 이용자에 대한 통계가 산출되어야 국가 정책을 마련하거나 시행할 수 있는데 이 기본적인 통계가 없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뚜렷한 대응 정책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발표되는 마약 관련 통계는 대부분 경찰과 검찰에 적발된 형사범죄를 기준으로 한 집계이다. 2024년 기준 집계된 마약류 사범은 2만 3,022명이다. 이 숫자를 놓고 “국민 5,300만 명 중 2만 명이 마약사범”이라며, 일부를 부풀려 과도하게 사회적 공포를 조장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마약 범죄의 특성을 간과한 결과다.

 

마약 범죄는 전형적인 암수 범죄다. 실제로 발생했지만 적발되지 않거나, 수사와 처벌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은 사례가 구조적으로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성폭력 범죄의 암수 범죄율은 8배에 달한다. 향정신성의약품과 같은 의료 처방 영역과 맞닿아 있는 마약류의 경우, 사용 사실 자체가 범죄로 인식되지 않거나 문제로 드러나지 않은 채 장기간 은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마약 범죄의 암수 범죄율이 최소 10에서 많게는 30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현재 공식 통계에 적용하면, 실제 마약 사용자는 적게는 60만 명, 많게는 3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청소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보호자의 관리, 학교와 의료 시스템의 사각지대, 또래 집단 내 은폐 등으로 인해 암수 범죄율이 100배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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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링크)

 

이경희 전 이사장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현재 대한민국의 마약 정책은 적발된 2만여 명만을 대상으로 한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에 잡히지 않은 ‘미인지 중독자’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 단속과 처벌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마약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미인지 중독자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 체계로 연결하지 않는 한, 마약 문제는 수면 아래에서 계속 확산될 수밖에 없다.

 

 

어렵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미인지 중독자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단서는 일상적인 동네 약국에서 파악할 수 있다. 동네 약사들은 특정 개인이 반복적으로 다량의 ADHD 치료제나 다이어트약을 처방받아 구매하거나,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찾는 사례를 비교적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경희 전 이사장은 약사와의 협업 가능성을 제시했다.

 

“약사들과 협력해 미인지 중독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형사처벌이 아닌 상담으로 유도하거나 중독 치료와 재활로 연결하는 정책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의사의 처방권과 충돌하지 않도록 제도적 균형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취지에서 ‘마중 약국’, 즉 마약 중독 상담을 운영하는 약국 모델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일부 약사들의 문제의식과 자발적인 노력에 의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가 그동안 ‘마약 청정국’으로 오랫동안 분류되어 왔다는 점 역시 문제를 키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마약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력 자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마약 중독이 치료와 재활을 통해 회복 가능한 질병이라는 인식도 여전히 희박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약 중독 치료와 재활을 담당하는 전문의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 교육 과정에서도 마약 중독 치료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로 의료법 위반이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국가 지정 마약 중독 치료 병원이 존재함에도, 실제 중독자들 사이에서는 치료를 받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사라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의 부재는 향후 마약 대응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큰 장애물이 된다. 마약 사범을 단순히 단속해 형사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장기적으로 마약 중독 예방과 치료, 재활을 담당할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마약 문제는 면밀한 관찰과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부에 불과한 몇몇 사례만을 근거로,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온 일부 청소년의 일탈이라는 인식은 마약 문제를 은폐하고 악화시킬 뿐이다. ‘진짜 대한민국’에 ‘마약 좀비’가 창궐하기 전에, 정말로 ‘헬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정인영

기사: 헤르메스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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