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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의 하굣길 농담부터 중년 아저씨들의 술자리까지 빠지지 않는 삼국 시대 관련 화두가 있어.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그렇지? 그런 얘기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 낙동강 유역까지 떨친 광개토왕의 힘과 백제 개로왕을 목 베어 죽인 장수왕의 기세로 차제에 백제 신라를 한 나라로 만들었으면 우리나라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대국이 될 수도 있었을 테고, 그 뒤 역사도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소산이겠지. 그럼 이게 가능했을까?


고구려의 절정기라 할 장수왕 때로 가 보자. 이때 중국은 남북조로 갈라져 있었어. 고구려는 선비족이 세운 북위와 사이좋게 지내긴 했지만, 북위와 맞선 남조의 송나라에 대량의 말을 실어 보내는 등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 있었지. 말(馬)을 보낸다는 건 요즘으로 치면, ‘싸드’를 배치하는 것과 같은 격의 문제야. 유목민족인 선비족의 장기는 기병전이었는데 여기에 맞설 기병의 원천을 제공하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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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가 성병예가 그린 장수왕


그렇게 등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일단 서쪽을 안정시킨 장수왕은 남하 정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게 되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과 남하정책의 전개. 국사 시간에 무지하게 외운 부분이지? 지금도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게 장난이 아니고 대한민국 헌법 재판소도 ‘경국대전’을 가져와서 ‘관습적 수도가 서울’이라고 우기는 판에 당시 장수왕이 수도를 옮기는 것이 쉬웠을까? 그렇지는 않아.


자세히 기록돼 있진 않지만, 피를 부르는 숙청과 죽음을 무릅쓴 반발이 있었던 것 같아.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를 쳐 달라고 요청하며 북위에 보낸 국서에 보면 “고구려왕 련이 죄가 많아 나라가 개판이 되고 대신들을 마구 죽여 버리는 바람에 백성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의역임, 개판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음. 비슷한 표현은 있음 )고 하거든. 아마도 평양 천도 와중의 갈등을 얘기한 게 아닐까 하는데.


어쨌건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신라와 백제에 눈독을 단단히 들이게 되는데 백제와의 싸움이야 광개토왕 때부터 난리블루스였으니 그렇다고 치고 신라와의 관계가 묘해. 신라는 왜군의 공세에 견디다 못해 고구려에 원병을 청했고 광개토왕은 그가 동원한 군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된 5만 대군을 동원해서 가야까지 쓸어버리거든. 그 뒤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 비슷한 처지가 돼. 내물왕은 조카 실성을 인질로 보냈고 실성왕은 내물왕의 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냈을 뿐 아니라 중원고구려비의 내용을 봐도 고구려 사람은 신라를 동이(東夷), 즉 동쪽 오랑캐로 부르고 있었단 말씀이야.


눌지왕 때부터 신라는 상전 행세를 하는 고구려에 서서히 반항하기 시작해. 오늘날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사냥하던 고구려 장수가 신라군의 공격에 죽은 사건은 그 전초였지. 열 받은 장수왕이 신라를 공격하는데 일단 눌지왕은 고개를 숙이지만, 고구려나 신라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은 했을 거야. 일본서기에 보면 더 재밌는 얘기가 나오는데 눌지왕 대에도 왜국의 기세는 대단해서 고구려는 정병 100명(아마 병사가 아니라 군사 고문단이나 몽골이 지배지에 남긴 다루가치 수준이었을 듯)을 보내 신라를 도왔다고 해. 예나 지금이나 자국 영토의 외국 군대란 상전이게 마련이지. 고구려는 이 군사 고문단을 이용해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려 들었을 것이고.


그런데 고구려 장교 중의 하나가 신라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해. “자네들 나라는 인차 끝나서. 우리한테 밟힐 날이 멀지 않았다니까니.” 속내를 무심코 드러낸 거지. 이게 눌지왕한테 보고되고 신라는 마침내 고구려 군사고문단 전멸 작전을 벌이게 돼. 암호명(?) “수탉 습격 작전” 아마도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데, 신라 사람들은 “키우는 수탉들을 죽여라.” 는 외침과 함께 서라벌 안의 고구려군을 쓸어 버리거든. 싸악~ 이건 광개토왕 이래 유지돼 온 고구려의 대 신라 공작의 파국이었어. 남은 건 나라 대 나라의 전쟁일 뿐이었지.


이때 맺어지는 게 나제동맹이야. 원래 신라와 백제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이웃치고 사이 좋은 나라는 완벽한 남편만큼이나 귀하다) 고구려라는 덩치 큰 호랑이 앞에선 왕성한 단결력을 발휘해.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도 백제를 멸망시키지 못한 건 백제 태자가 신라군 1만 명을 이끌고 왔기 때문이었고 고구려도 신라와 백제를 한꺼번에 공격할 역량은 없었어. 북위하고 친하다고는 해도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선비족들이란 말이지. 고구려 국초부터 피 터지게 싸웠던 그 민족.


하지만 장수왕도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욕심은 있었다고 생각돼. 그중 눈에 띄는 전투가 하나 있어. 바로 481년의 신라 공격이야. 이미 눌지왕은 죽고 소지왕 때였지만 말 그대로 장수 끝장나게 하신 장수왕은 아직 고구려 왕위에 있었지. 이때 신라는 동해안을 타고 야금야금 북상해서 오늘날의 함경남도 안변(북한은 강원도에 편입시켰다는군)까지 먹었던 모양인데 신라가 북상해 온 그 길로 고구려는 일대 신라 침공 작전을 전개해. 동해안을 타고 내려오는 7번 국도를 생각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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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네이버 지도)


7번 국도가 해안 도로로 쭉 이어진 것 같지만 옛날 7번 국도는 구불구불 길이 좋지 않았고 사고도 많이 난 길이야. 하물며 그 옛날에 해변 길을 따라서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만, 전략적으로도 지극히 위험한 길이었어. 무슨 말이냐 하면 여차하면 배수진이라는 뜻이야. 상대방 군대가 길을 막고 퇴로를 끊으면 바다에 빠질 수밖에 더 있냐? 그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작심하고 감행한 작전이라는 뜻이야.


고구려군은 삽시간에 강원도 동해안을 휩쓸고 남하해. 오늘날의 청송 등 일곱 개 성이 떨어졌고 고구려군은 오늘날의 흥해 지역에까지 진격한다. 포항 근처니까 여기서 산 넘으면 경주야. 신라는 대단한 위기에 몰린 셈이야. 후대에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했을 때만큼이나 위기감에 휩싸였을 게 분명해.


고구려군의 주축을 이뤘을 중장 기병대는 태백산맥으로 서쪽이 막힌 바닷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갑자기 내륙으로 넓어지는 지점에서 환호했을 거야. 이제는 외길도 아니고 서라벌도 멀지 않다. 죽어간 수탉들의 원수를 갚자! 그런데 황망한 일이 벌어진다. 무려 백제 신라 가야 삼 개국 연합군이 고구려군을 막아선 거야. 사이가 그 이전이나 그 이후나 결코 좋지 않았던 세 나라, 즉 한반도 남부 대연합군(?)이 고구려군에게 창을 겨누고 달려든 거지. 낙동강 방어선에서 UN군이 편성된 느낌?


천하의 고구려군도 여기에 무너지고 말아. 낭림산맥 넘어 동해안에 집결해서 안변부터 강릉 찍고 삼척 지나 흥해까지 수천 리 길을 내달렸을 고구려 기병대는 백제와 신라의 보병들이 휘두르는 도끼에 찍혀 나자빠졌고 발에 물집 적잖이 잡혔을 고구려 보병들은 원기 왕성한 남쪽의 연합군들에게 짓밟히고 말았지. 이 연합군은 많은 것을 의미해. 이미 고구려라는 절대 강자에 맞서서 ‘생존’의 이름으로 아웅다웅하던 한반도 남부 3국이 똘똘 뭉쳐 있었고 일종의 경보 발령과 이에 맞선 동원이 재빠르게 이루어졌다는 것. 백제군이 포항까지 오는 시간을 생각해 보렴. 그것 또한 만만치 않지.


미질부, 즉 흥해 전투에서 고구려의 통일 욕망은 매우 결정적으로 꺾인다. 그 후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의 수도에 그 정도로 육박한 적은 없었어. 내분이 일어나고 또 서쪽에서 중국이 통일되면서 주된 관심이 그리로 쏠리게 되니까. 그런데 하나 궁금한 거.


당시 신라는 어떻게 동맹군을 요청하고 불러들였을까? 


물론 “신라가 무너지면 다 죽는다.”는 생각은 공유됐겠지만 그래도 백제와 가야의 신속한 지원을 끌어내기 위하여 신라는 모든 일을 다 했을 거야.


최소한 “너희들은 우리 안 도우면 다 뒈져! 이 바보들아. 빨리 와서 도와.”라고 했다거나 좀 미적거린다는 이유로 “이 괴물들아. 빨리 안 와?”라고 다그치지는 않았을 거야.


무릇 동맹이나 연대란 기본적으로 이익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뤄지는 거고 연대나 동맹의 가장 큰 의미는 연대와 동맹의 폭을 넓히는 일이지 연대와 동맹의 정당성을 외치고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이를 배신자로 비난하는 게 아니야.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연대이기도 하고 그걸 도덕을 무기로는 공격할 수도 없고 해 봐야 의미도 없는 게 나라 간 동맹이고 정치에 있어서의 연대일 거야. 삼국 시대부터 그랬어. 아니 더 옛날부터 그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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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궁금하다. 총선을 앞둔 지금 180석 200석 호언하는 고구려 같은 새누리당 앞에서 신라와 백제 같은 정당들은 어찌하고 있는지. 뭐 우산국이나 탐라국같이 홀로서기하는 정당들은 놔두고 말이지. 백제가 어떻게 하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아. 우선 가장 목에 칼 들어온 신라 같은 정당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좀 역사를 들여다보시라고 말하고 싶네. 지금 신라는 “남부 여러분! 고구려를 물리칩시다.!”를 외치는 가운데 너무 “연합군 안되면 넌 나쁜 놈!” 소리를 남발하고 있진 않나?






산하의 가전사


"가끔 하는 전쟁 이야기 사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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