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이혜훈 지명

 

이재명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장관이었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을 넘어서는 파격 인사였다. 지명 직후부터 1주일이 넘도록 정치권과 여론의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충격에 빠진 국민의힘은 그 어떤 이재명 정부 장관 후보자보다 격렬하게 임명을 반대하며 총공세를 쏟아붓고 있다. 사실상 90도 고각 발사로 자기 진영에 폭탄을 투하하는 꼴이지만 이미 상해버린 ‘존심’과 ‘가오’ 때문에 그런 걸 따질 맨정신이 아니다.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니라 누워서 ‘Sh하기’ 수준이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침착한 반응이다. 대통령의 장관 지명에 ‘다 이유가 있겠지요’ 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 언론이 말하는, 이른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은 몹시 거세다. 윤석열 정부 시기 내내 고난의 길을 걸어온 이재명 당시 대표를 온몸으로 지킨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반발은 단순한 실망감이나 허탈함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감정으로 일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맥락이 있다.

 

 

내란 트라우마와 내란 청산 스트레스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내란 시도는 몇 시간 만에 제압됐지만, 그 이후 모든 길은 단 한 발짝도 순탄하지 않았다. 윤석열 탄핵 소추안은 한 번에 통과되지 못했고, 시민들이 국회를 포위하다시피 한 끝에 겨우 가결됐다. 내란 시나리오가 속속 밝혀지면서 등골이 서늘한 와중에도 윤석열은 용산 관저에서 체포를 거부하며 버티다가 구속됐지만, 법원이 다시 풀어주고 검찰이 묵인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명확한 설명도 없이 지연되면서 일부 헌법재판관의 퇴임과 그로 인한 탄핵 불발을 염려해야 했다. 내란 동조 의혹을 받고 있던 한덕수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들은 후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버티거나 아예 윤석열 패거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려 했다.

 

윤석열 탄핵이 선고되자 이번에는 조희대 대법원이 속을 뒤집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에 대한 이례적인 속도의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으로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을 샀다. 그러면서도 내란 재판은 재판인지 개판인지 모를 아사리판으로 끝 간 데 없이 늘어지면서 2025년이 저물도록 1심 선고 하나 나오지 않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1년 넘게 시간이 지났지만, 내란 청산은 아직 요원하다. 이혜훈 지명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실망의 맥락은 여기서부터 헤아려봐야 한다.

 

대통령 인사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내란 특검과 법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임명 전후로 우려와 실망이 누적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모두 내란 청산 작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자리다. ‘이 사람들로 내란 청산을 잘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우려의 눈길을 보냈던 지지자 가운데 일부는 임명 이후의 모습을 보며 ‘역시나’ 하고 탄식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을 비판할 뿐 화살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겨누지는 않았다. 그러다 윤 어게인 집회에 나서 내란을 옹호한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로 지명하자 이재명 대통령에게 과연 내란 청산 의지가 있는가를 묻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누구보다 단단한 지지자들을 이 정도까지 실망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란 종식과 청산에 대해 그동안 쌓인 우려와 트라우마가 컸기 때문이다. 

 

그럼, 이재명 대통령은 왜 하필 이혜훈 후보자를 지명했을까.

대통령의 선택에도 맥락은 있다. 그걸 살펴볼 차례다.

 

 

레드팀

 

요즘 글로벌 기업들은 사내에 기본적으로 반대팀, 소위 레드팀을 두지 않습니까. 무조건 반대만 해요. 뭘로 반대할까 이것만 연구를 하는 팀을 둔다고요. 그래야 위험을 헷징할 수가 있어요. 국가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이런 입장 가진 집단, 저런 입장을 가진 집단이 정쟁을 하면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03.jpg

2025년 2월 1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링크)

인터뷰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말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하나는 늘, 소위 레드팀을 두는 게 습관이 돼 있는 분이에요. 항상 레드팀을 지정하고, 꼭 레드팀의 이야기를 마지막에 청하고 가급적 토론이라는 게 일방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중요성을 아는 분이에요.

 

02.jpg

2025년 6월 18일 김어준의 뉴스공장(링크)

인터뷰에서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말

 

레드팀을 만들어 반대 의견을 청취하며 균형을 잡는 이재명 대통령의 행정 스타일은 시장과 도지사 시절 일화를 통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 정책의 반대편에 있는 ‘긴축재정론자’ 이혜훈을 곳간지기라 불리는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강훈식 비서실장이 인터뷰에서 “자원 배분이 관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나 유시민 작가가 정준희의 논에서 본인이 추측하기에 예산을 받아내야 하는 장관들 반이 정치인이라 맺고 끊고 하기가 어렵지만 기획예산처 장관은 안면몰수하고 해야하기 때문에 밖에서 데리고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부분에서 서로 통한다. (유시민 작가는 이혜훈 후보자가 그 일을 잘 해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경제 정책 기조에 끊임없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레드팀을 기획예산처 장관에 앉혀 자신의 기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볼 수도 있겠다.  

 

 

통합과 내란 청산

 

제가 제일 크게 영향을 미친 게 목에 칼, 찔린 사건 같습니다. 저는 부산, 그 광장에 누워서, 찔린 다음에 '아 이렇게 곧 정신을 잃고 죽겠지?' 이 생각을 제가 했거든요. 근데 안 죽는 거예요. (웃음) 동맥을 잘리면 죽는 거잖아요. 전 다행히 정맥만 잘려서. 1mm 차이로. 동맥을 안 건드려서 살았는데.

 

삶이 덤 같더라고요. 덤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이게 참 다 무상하다. 그런 생각이 들고. (중략) 주먹으로 때려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할이 바뀌어서 그럴 수 있어요. (보복하지 않겠다는 말도) 진심이죠.

 

저는 그게 얼마나 우리 사회를 퇴행, 후퇴시킬지를 생각해요. (중략) 보복은 보복을 불러요. 더 큰 걸 감당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벌어져서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면 희망이 없어요. 누군가는 숙여줘야 됩니다. 내가 먼저 숙여야 상대가 숙일 것이고. 그렇게 붙여 나가야 됩니다.

 

01.jpg

2025년 2월 1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링크)

인터뷰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말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 양극화와 극한 대립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정치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했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내란 대통령의 타겟이 되기도 했다. 단순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삶에 초연해져서 개인적으로 적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다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은’ 극단적 대립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사회의 희망이 없다는 결론이다. 

 

04.jpg

강훈식 비서실장 "이혜훈 후보자 지명, 대통령의 의지이자 도전"

(국제신문, 링크)

 

보복하지 않는 통합의 정치와 내란 청산은 양립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청산하고 어디부터 통합해야 하는가. 내란범도 통합을 위해서라면 용서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뒤따를 수 있다. 대통령이 통합을 위해 내란범들을 사면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어느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이 기준을 지지자들로부터 지지받기, 쉬울 리 없다.

 

통합과 내란 청산,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둘 다 놓칠 수 없는 과업이겠지만 자칫하다가는 모두에게서 버림받을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도전이다. 그래서 이혜훈 후보 지명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놀란 감정을 가라앉힌 후 먼저 든 생각은 ‘이 양반은 무난하게 대통령직을 마치고 내려올 생각이 애초에 없구나’였다. 그는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다. 자신도 있을 것이다.

 

05.jpg

靑 대변인 “이혜훈 같은 통합 인사 계속 등용”

(문화일보, 링크)

 

청와대 대변인은 앞으로도 이러한 인사가 계속 될 것이라 말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마도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온 국민을 설득하고 스스로 증명해 내려 할 거다. 12월 말, 정준희의 논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이재명 대통령의 야망이 크다’라고 말했다.

 

 

내란 청산의 기준

 

그럼 이재명 대통령이 생각하는 내란 청산의 기준은 무엇인가. 

 

1. 내란 우두머리와 주요 임무 종사자, 단순 가담자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2. 내란 이후 내란을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한 인사의 경우 철저하게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과한다면 국정 운영의 필요에 따라 기회를 줄 수 있다.

 

이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이렇게 그은 선은 여전히 내란과 절연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한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다. 이 선 바깥에 계속 머물고 있는 한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위에 인용한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당대표는 레드팀과 정쟁 발언에 이어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저렇게 극우적으로 내란 세력 그 자체가 돼가고 있잖아요. 1호 내란범을 제명하지 않지 않습니까. 오히려 1호 내란범을 모시고, 열심히 다니면서 그 1호 내란범의 얘기를 퍼뜨리고 있잖아요. 그 집회에 참여해요. 그러면 이렇게 극우화되는, 헌정 파괴 세력이 돼가고 있는데 이 집단 자체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국가의 미래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제발 그러지 마라. 진짜 보수가 돼라. 헌법을 파괴하는 파괴자가 어떻게 보수예요.

 

06.jpg

2025년 2월 1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링크)

인터뷰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말

 

그렇게 말해놓고 이혜훈을 장관 후보에 지명하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제발 그러지 말고, 진짜 보수가 되라’라는 여전히 유효한 말로 보인다. 여전히 이재명 대통령은 진짜 보수가 될 생각이 있는 인사들에게 퇴로를 열어줄 용의가 있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 이 기준에 모든 국민과 지지자들이 동의할 수는 없다.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이혜훈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갑질 의혹에 대한 보도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개인 의혹을 딛고 청문회를 뚫어 장관에 임명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부터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되는 영역이 아니다. 청와대가 인지하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장관에 임명된다 해도 이후에 얼마나 기대만큼 장관직을 잘 수행할지는 또 지켜봐야 할 문제다.

 

이혜훈 한 사람의 낙마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며 던지는 메시지다. 다른 정치인도 아닌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을 지탱했던 핵심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럼에도 밀고 나갔다는 건, 끝내 결과로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했을 경우 책임질 각오 또한 되어 있다는 말일 게다. 과연 시간이 지난 후 이재명 대통령의 위험한 도전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나로서는 지금 알 수 없다. 

 

다만 이건 안다.

 

우리는 결코 자신에게 쉽고 안전한 길을 갈 생각이 없는 대통령을 지금 보고 있다. 자신을 불태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는 목표에 닿기 위해 애쓰는 대통령을 지금 보고 있다.

 

비록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더라도,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더라도

지금 당장은 지켜보고 응원할 이유, 충분하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홀짝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