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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의 침몰

 

YG는 위너와 아이콘을 연이어 데뷔시키며 차세대 보이그룹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두 팀은 데뷔 초의 강한 임팩트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빅뱅이 트렌드를 주도하던 팀이었다면, 위너와 아이콘은 그 계보를 온전히 이어받지 못했다. 멤버 개인의 사건과 인성 논란으로 탈퇴가 이어지며 발생한 전력 누수는 초기에 확보했던 코어 팬층마저 흔들리게 했다. 두 팀 모두 메가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시장을 장악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또 다가올 빅뱅의 군복무 공백을 대체할 차세대로 보기에도 부족함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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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빅뱅은 여전히 YG를 빛나게 하는 존재이자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후광이 되는 팀이었지만, 동시에 이 회사를 떠받치는 보이 그룹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기도 했다. 대중은 위너와 아이콘에게 ‘제2의 빅뱅’을 기대했다. 상품에 비유하자면 기존 제품의 완성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소비자들이 신제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기존 제품만 찾는 꼴이었다.

 

반면 걸 그룹 라인에서는 단호한 결단이 내려졌다. YG는 2NE1을 과감하게 해체했다. 박봄의 크고 작은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2014년 중반부터 개인 활동 위주로 팀 공백이 이어지긴 했지만, 음원 성적만큼은 꾸준히 유지하던 팀이 갑작스럽게 해체된 것이다. YG는매니지먼트와 회사의 역량을 새롭게 데뷔할 걸 그룹에게 집중시키는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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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데뷔 싱글 - 휘파람〉(좌)

 

2016년, YG는 차세대 걸 그룹 ‘블랙핑크’를 발표했다. 데뷔곡 〈휘파람〉은 공개 14일 만에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며 당시 걸 그룹 최단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2NE1이 보유하던 28일을 절반이나 단축한 것이었다. 소녀시대가 2NE1의 노래를 부른다면 어떨지 상상하며 기획했다는 양현석 대표의 구상은 결과적으로 적중한 셈이었다.

 

하지만 블랙핑크의 빠른 성공에 긍정적인 평가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데뷔 과정에서 2NE1을 전격 해체한 결정은 기존 팬들의 원성을 샀고, 이는 패밀리 십을 강조해 온 YG의 가족적 이미지와 어긋나는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같은 메인 프로듀서 체제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2NE1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로 이어지며, 비주얼만 좋아진 ‘옆그레이드’라는 비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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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2번째 싱글 - 불장난〉(좌) 

〈블랙핑크 3번째 싱글 - 마지막처럼〉(우)

 

YG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시장에 안착한 블랙핑크는 이전과는 다른 전략으로 팬덤을 키워 나갔다. 과거 팀들이 데뷔 전 사전 프로그램과 활발한 미디어 노출로 인지도를 쌓았다면, 블랙핑크는 신비주의 콘셉트를 택했다. 지상파 음악방송 외 노출을 최소화하는 대신 ‘블핑 TV’를 통해 그룹의 모습을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YG 특유의 걸크러시에 비주얼이 더해지며 블랙핑크는 광고 업계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싸이를 통해 이미 유튜브의 파급력을 경험했던 YG는 이를 적극 활용했고, 블랙핑크는 빠르게 글로벌 팬덤을 형성했다. 특히 리사의 모국인 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현재 K-pop을 대표하는 그룹이 된 블랙핑크는 BTS와는 다른 방식으로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성장 서사를 축적해 온 BTS와 달리, 블랙핑크는 데뷔 초기부터 대형 기획사의 자본을 바탕으로 ‘우리가 최고야, 앞으로도 우리가 최고’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YG는 멤버들을 명품 브랜드의 엠버서더로 만들고 가수를 넘어 킴 카다시안, 카일리 제너와 같은 글로벌 셀럽의 이미지를 부여하며, ‘Another Level’이라는 이미지를 굳혀갔다. 동시에 음악 작업량과 노출 빈도를 의도적으로 줄이며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한 결과, 블랙핑크만의 고유한 색을 완성해 나갔다.

 

YG의 걸 그룹 세대교체 프로젝트는 완벽한 성공이었고, 빅뱅 역시 여전히 건재했다. 외부적으로는 타블로가 이끄는 ‘하이그라운드’와 테디를 수장으로 한 ‘더블랙레이블’을 산하 레이블로 두고, 혁오와 자이언티 같은 아티스트들을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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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정규 3집 - MADE〉(좌)

〈정규 3집 타이틀곡 - 에라 모르겠다〉(우) 

 

빅뱅이 발표한 정규 3집 〈에라 모르겠다〉, 〈라스트 댄스〉는 발매와 동시에 음원 차트를 올킬하며, 이들이 10년 넘게 최고의 그룹으로 불리는 이유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완전체로는 마지막이 된 콘서트를 끝으로 앨범 활동을 성공리에 마무리했고, T.O.P의 입대를 시작으로 멤버들은 군 복무와 개인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의경 복무 중이던 T.O.P의 대마초 사건이 터지면서 빅뱅은 다시 위기에 빠졌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고, 재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의경 신분에서 퇴출당한 뒤 사회복무요원으로 재배치됐다. 복무 중인 T.O.P.을 제외한 네 명은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를 열었고, 이후 차례로 입대했다. 빅뱅의 공백은 분명한 전력 손실이었지만, 글로벌 팬덤을 확보하며 북미 진출을 앞둔 블랙핑크의 성장세가 좋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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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를 ‘패배’라고 부른다.

(연합뉴스, 링크)

 

홀로 남아 가수가 아닌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를 내세우며 방송가를 종횡무진하던 승리가 대형 사고를 치며 YG 몰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승리가 운영하던 클럽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이 ‘버닝썬 게이트’로 커졌고, 마약·폭행·성범죄 등 각종 범죄 의혹이 얽힌 대형 사건으로 번졌다. 사건에는 승리를 포함한 연예인과 공무원들이 연루되었고, 아이콘 멤버의 마약 사건과 탈퇴, 양현석의 사건 은폐 및 회유, 협박 의혹까지 드러나며 충격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양현석의 해외 원정 도박 혐의까지 더해져 대한민국 3대 기획사로 불렸던 YG의 위상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루아침에 ‘약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약간의 논란은 있었지만, K-pop계에서 성공한 보스이자 존경받던 인물로 여겨졌던 양현석의 명예는 땅에 처박혔다. 승리를 비롯한 정준영, FT아일랜드의 최종훈 등은 실형을 선고받고 연예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러나 버닝썬 게이트는 제대로 정리된 사건으로 남지 않았고, 사건의 중심에 있던 YG의 이미지는 급격히 추락했다. 이는 소속 아티스트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식음료와 의류 사업은 모두 실패했고, 양현석은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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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최정상 아이돌 두 팀의 완전체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다.

4뱅 이후 T.O.P도 일방적인 탈퇴 선언을 했다. (좌)

빅뱅 디지털 싱글 - 봄여름가울겨울(우)

 

전역 후 4인 체제로 재편된 빅뱅은 컴백을 준비했지만, 복귀 무대로 예정됐던 코첼라 공연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두 차례나 취소되며 무산됐다. 결국 이렇다 할만한 완전체 활동 없이 4년 만에 〈봄여름가을겨울〉을 발표했고, 각자 계약이 종료되며 빅뱅의 활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제 YG에서 주장하던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라는 말을 현실로 증명할 수 있는 가수는 블랙핑크가 유일했다. 만약 이 시기에 블랙핑크의 북미 진출 성공이 없었다면, YG는 존속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양현석이 명절마다 굴비 보내야 하는 사람: 서태지, GD, 싸이, 블랙핑크)

 

 

걸 그룹의 명가 JYP

 

세대를 대표하는 원탑 남자 아이돌을 만들어 온 JYP 역시 god와 2PM의 계보를 잇는 3세대 보이 그룹을 준비했다. 원더걸스와 2PM 이후 이렇다 할 대표 가수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2세대 시기에 다져놓은 기반과 탄탄한 연습생 인프라는 충분히 기대할 만했다.

 

2014년, 7인조 다국적 그룹 ‘갓세븐’은 박진영이 작사, 작곡한 〈Girls Girls Girls〉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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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돌에게 힙합 콘셉트 데뷔는 실패 공식인 듯하다.

(JYP)

 

데뷔 전 YG의 위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잠시 출연한 것만으로도 주목받았지만, 그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2PM의 〈10점 만점에 10점〉을 힙합 버전으로 재해석한 듯한 데뷔곡은 박진영의 자가 복제 한계를 드러냈고, 갓세븐은 국내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갓세븐은 잭슨의 예능 활동을 통해 국내 인지도를 쌓으며 꾸준히 음반을 발표했지만, 국내에서는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반면 다국적 그룹이라는 강점을 살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팬덤을 확대했고, 일본 진출을 병행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나갔다. 그럼에도 ‘해외에 비해 국내 인기가 약한 그룹’이란 꼬리표는 늘 따라붙었다.

 

당시 JYP는 박진영이 열린 생각을 가진 대표라는 이미지와 달리, 변화에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3세대 남자 아이돌 최정상인 ‘엑방원’이 각기 명확한 세계관과 서사를 구축하며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었는데, JYP는 이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1, 2세대 시기에 강점이었던 박진영 특유의 ‘사연 팔이’를 적절한 시점에 활용하지 못했고, 갓세븐은 그저 ‘이쁘고 잘생긴 애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그룹’ 정도로만 기억될 만큼 기획력이 부족했다.

 

팀의 기획 역시 구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2세대의 성공 공식을 참고하는 것과 그대로 답습하는 것 분명 다른 문제인데, JYP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짐승남 콘셉트로 재미를 봤던 2PM의 테토남 이미지를 반복했고, 음악의 주도권 역시 여전히 박진영 중심에 머물렀다. 데뷔 1년이 지나서야 그의 이름이 점차 크레딧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갓세븐과 위너, 아이콘은 모두 ‘성공한 그룹’이다.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기록했고, 연말 시상식에서 본상을 받았으며, 해외 투어를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를 이끄는 에이스 팀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부족했다. 요란했던 데뷔 과정과 대형 기획사라는 후광에 비해 국내 시장의 점유율은 턱없이 모자랐고, 3세대에서는 ‘엑방원’에 밀렸고, 4세대로 넘어가면서는 후발 주자들에게 추월당했다. 차세대 보이 그룹 경쟁에서 단 한 번도 패권을 잡지 못한 YG와 JYP의 남자 아이돌 세대교체는 실패로 귀결된다.

 

블랙핑크가 YG를 하드캐리했듯, JYP 역시 트와이스가 회사를 떠받치며 걸 그룹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실패, 2PM의 국내 인기 하락, 수지의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며 와해된 미쓰에이 이후 흔들리던 JYP를 다시 국내 최상위 기획사로 끌어올린 것은 트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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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 키즈 미니 1집 - District 9(좌)

ITZY 데뷔 싱글 - 달라달라(우)

 

이후 JYP는 2018년 보이 그룹 ‘스트레이 키즈’, 2019년 걸 그룹 ‘ITZY(있지)’를 연이어 데뷔시켰다. 스트레이 키즈는 갓세븐의 아쉬운 성과를 의식한 듯, 다시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멤버를 선발했다. 박진영은 BTS의 성공에서 자극받았는지 음악의 주도권을 스트레이 키즈 멤버들에게 과감히 넘겼다. 그러나 이들은 메인 차트 진입조차 실패했고, 초동 판매량 3만 장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아들여야 했다.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운 만큼 색채는 분명했지만, 대중이 이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물론 이 선택은 훗날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원더걸스, 미쓰에이, 트와이스의 계보를 잇는 ITZY는 데뷔 12일 만에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기록했다. 트와이스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걸 그룹이라는 점에서 높은 기대를 받았고, 데뷔곡 〈달라달라〉는 그 기대에 정확히 부응했다. 여자 아이돌 시장에서 서사보다 대중성을 내세워 빠르게 성장하는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는 회사가 바로 JYP였다. 이로써 JYP는 ‘보이 그룹보다 걸 그룹을 더 잘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다시 한번 굳히게 된다.

 

 

한국의 디즈니를 꿈꾼 SM

 

2009년 동방신기가 분열되고 슈퍼주니어도 중국인 멤버 탈퇴를 겪으며, SM은 1세대 시기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잠시 시장의 패권을 내주는 씁쓸한 시기였지만, 보아·소녀시대·샤이니·f(x) 등 국내 최정상급 아이돌을 다수 보유한 대형 기획사라는 위상은 여전히 견고했다. 이후 엑소와 레드벨벳을 성공시키며 3세대 아이돌의 포문을 가장 먼저 열었고, 업계를 이끄는 회사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러나 사실상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중화권에서도 절대적인 인기를 얻으며 한류 스타로 군림하던 엑소는 4년 만에 꺾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예상 밖의 폭발력을 보여준 BTS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 것이다. 엑소의 인기가 급격히 하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엑소의 성장 한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점에 도달하던 시점, 중국인 멤버 크리스가 SM을 상대로 전속계약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팀의 불안정성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현지화 전략에 따라 멤버 3분의 1이 중국인인 팀에서 이러한 사건은 멤버들의 동요를 일으키기 충분했고, 결국 연쇄 탈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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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크리스의 탈퇴는 호재가 되었다.

(뉴스엔, 링크)

 

한경을 시작으로 중국인 멤버들의 반복되는 이탈은 SM에 치명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힘들여 키워도 현지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막을 수 없고, 인기를 얻으면 결국 떠난다는 인식이 굳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팬덤의 이탈은 진행됐고, 원 팀으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쳐야 할 시기에 불거진 팀 내 불화설은 엑소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2017년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사드 보복과 한한령은 중화권 비중이 컸던 SM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수만과 SM은 세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아이돌을 꾸준히 만들어냈지만, 지속 가능성이라는 과제 앞에서는 늘 같은 벽에 부딪혔고, 궁극의 지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멤버 탈퇴, 군 복무로 인한 공백, 사건 사고와 개인적 일탈로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브랜드를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가 본격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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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팬덤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했던 계획,

한국 최초 무한 증식 아이돌 NCT

(SM엔터테인먼트)

 

그리고 2016년, NCT를 제작하며 그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엑소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남자 아이돌로, 연습생 시스템 ‘루키즈’에서 검증된 에이스들을 대거 데뷔시키며 큰 화제를 모았다. ‘네오 컬처 테크놀로지’의 약자인 NCT는 멤버 수의 제한이 없고, 새로운 멤버의 영입이 자유로운 무한 확장이 가능한 월드와이드 그룹이라는 콘셉트로 소개됐다. 어쩌면 H.O.T. 시절부터 이수만이 그토록 구현하고자 했던 로테이션 그룹을 비로소 만든 셈이었다.

 

그러나 NCT는 SM의 전폭적인 지원과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음악방송 첫 1위를 기록하기까지 무려 842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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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 관계도(좌)

NCT 멤버 소개(우)

 

일단 팀을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공개 이후 멤버 수는 계속 늘어났고, 유닛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누가 누구인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심지어 이수만 본인도 최종 멤버 수를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는데, 결국 25인을 끝으로 무한 확장은 멈췄다.

 

대중들이 반대하던 로테이션 그룹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팀의 브랜드를 유지한 채 인적 리스크가 발생하더라도 완전체 활동에만 의존하는 그룹보다 타격이 적었고 서브 유닛들이 활동하며 서로의 공백기를 보완할 수 있었다. 특히 이수만의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와 같은 다수의 뷔페식(?) 멤버 구성으로 폭넓은 팬층을 공략할 수 있었다. 이는 ‘이수만 아저씨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개인 팬덤의 비중이 커질수록 화력이 분산되고, 유닛 간 팬덤 경쟁은 갈등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 실제로 ‘NCT 127’과 ‘NCT 드림’ 팬덤은 연말 대상 수상을 두고 충돌을 겪었다. 유닛 중심 활동은 멤버 간 소속감과 결속력을 약화시켰고, 개인 인기에 따라 활동 기회가 불균형해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무한 확장의 콘셉트에 맞춰 무한 유닛 구성 역시 가능했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가능했던 반면, 팀으로서의 일관성은 희미해졌다. 또 그룹 자체가 복잡하고 어려운 만큼 ‘입덕’의 진입장벽이 높았다. 관심을 가졌다가도 ‘팬질’을 위해 공부(?)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이는 ‘이수만 아저씨의 절망’이었다.

 

결국 NCT는 3세대 중반에 등장해 4세대에 이르러서야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연말 가요대상을 받았고,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으며, 대규모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규모의 팬덤을 확보했다. 그러나 선배 그룹들처럼 시대를 주도하는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고, 데뷔 초기부터 시도했던 북미 진출 역시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네오’를 강조했지만, 이수만이 꿈꾼 네오와 아티스트 및 회사 구성원들이 이해한 네오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빌보드에서 BTS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자극받은 SM은 각 그룹의 에이스를 모아 ‘슈퍼M’이라는, 이른바 ‘SM의 어벤저스’ 그룹을 결성해 또 한 번 빌보드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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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의 드림팀 프로젝트 ‘Super M’

(SM엔터테인먼트)

 

슈퍼M은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지만,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한계로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원소속 그룹의 활동에 차질을 준다는 비판과 함께,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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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CU는 SM컬처 유니버스의 약자다.

요즘은 아바타 없이 인간 4명으로 활동 중인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2020년, SM은 또 한 번 실험(?)에 나선다. 레드벨벳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걸 그룹 에스파는 아바타와 함께 8인조(?)로 데뷔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를 열게 될 ‘SMCU(SM 컬처 유니버스)’의 첫 프로젝트로,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예고했다.

 

사실 이수만은 2000년대 초반부터 ‘컬처 테크놀로지’, 이른바 CT론을 설파했었다. 문화 콘텐츠 창작 기술과 현지화를 결합해 국경을 허물고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해 왔다. 그 일차적 접근이 한국에서 만든 가수를 현지화하는 것이라면, 2차는 일본과 중국에 전진 기지를 만들어 처음부터 현지 가수를 직접 제작하고 데뷔시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Tia를, 중국에서 장리인을 데뷔시켰고, 그룹 멤버에 외국인을 넣는 수준에서 엑소M처럼 현지 공략 유닛을 제작하는 것으로 점차 진화했다.

 

이후 SM은 단순한 현지화를 넘어, 국경 자체를 허무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문화 전파에 물리적 거리와 국적이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자, SM은 기존에 진행해 오던 SM TOWN 프로젝트를 확장해, 하나의 ‘버츄얼 네이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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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타운 여권(좌)

SM타운 가상 국가 선포식(우)

(조선일보, 링크)

 

이 구상은 2012년 ‘SM 타운 가상 국가 선포식’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여권 형태의 굿즈를 제작·발급하며, 가상의 음악 국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각 아이돌 팬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로고가 새겨진 국기를 흔들며 정서적 연대감을 강화했다. SM은 이 결속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로 연결하겠다는 계산을 깔고 있었다.

 

특히 해피 하와이와 기업 전문 여행업체 BT&I를 인수해, SM C&C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여행업과 드라마, 영상 콘텐츠 영역까지 폭을 넓혔다. 실제로 콘서트 관람과 전시, 숙박까지 풀 코스로 준비한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Ⅲ’ 패키지를 판매하며 가능성을 시험했다. 엔터테인먼트 IP를 중심으로 식음료, 리테일, 리조트 사업까지 아우르는 구조를 구상했다는 점에서, SM 버전의 디즈니 월드를 꿈꾼 시도였다. 디즈니랜드의 핵심 어트랙션이 반드시 캐릭터 서사와 직결되지 않듯, SM 역시 ‘덕질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간’을 상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2020년 에스파의 데뷔와 함께 한 단계 더 구체화된다. ‘광야’라는 세계관과 버츄얼 아이돌의 도입은 버츄얼 네이션 구상을 현재진행형 프로젝트로 끌어올렸다. 이는 ‘갑툭튀’한 발상이 아니었다. 이미 2017년에 3D 인공지능 아바타 기업 오벤(ObEN)과 공동 투자해 홍콩에 합작사 ‘AI스타즈’를 설립했고, 사내에 인공지능 사업팀을 운영하면서 오랜 준비 끝에 결합된 결과였다.

 

결국 SM의 전략은 개별 아티스트보다 ‘SM’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핑크블러드(Pink Blood)’로 대표되는 브랜드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 세대가 바뀌어도 지속되는 장기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기획의 결정체가 NCT와 에스파라면, 이 두 팀은 SM을 대표하는 4세대 아이돌이자, 이수만 아저씨가 오랜 시간 품어온 마지막 꿈을 이뤄주는 단계였던 것은 아닐까.

 

 

금요 제이티비.jpg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Jay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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