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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다시 세계를 단순화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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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공격을 받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출처-<로이터>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미국의 태도는 우발적이지 않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를 설득하는 국가로 남을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힘이 미치는 범위만을 지배하는 국가로 스스로를 축소하려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다. 

 

문제는 마두로가 아니다. 문제는 미국이 어떤 방식의 세계 질서를 선택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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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백악관 X>

 

미국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를 통해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자유주의 질서의 언어, 즉 규칙·보편성·합의라는 오래된 외교 문법은 더 이상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대신 미국은 세계를 다시 단순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관리 가능한 공간 vs 그렇지 않은 공간’

 

‘개입이 정당화되는 영역 vs 외면해도 되는 영역’

 

여기서 미국이 관리 가능하며 (스스로) 개입이 정당화되는 영역으로 정한 게 어디냐. 

 

바로 ‘서반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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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서반구, 오른쪽이 동반구

일반적으로 서반구는 아메리카 대륙을 말한다.

 

이 선택은 후퇴이자 자기부정이다. 미국은 스스로 설계해 온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더 이상 자신에게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질서의 복잡성을 감당하기보다 세계를 좁히는 길을 택했다. 다자주의의 비용을 감내하는 대신, 영향권 정치라는 더 거친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은 전략적 진화라기보다, 패권의 피로가 낳은 퇴행에 가깝다.

 

 

‘서반구’는 방어 개념이 아니라 배제의 언어다

 

미국이 말하는 ‘서반구 안정화’는 방어적 조치처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배제의 언어다. 이 개념은 외부 세력의 개입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해당 지역 국가들의 정치적 선택권을 부차적인 문제로 밀어낸다. 미국의 계산에 맞지 않는 정권, 미국의 이해와 엇갈리는 경제 파트너십은 곧 ‘관리 대상’으로 격하된다.

 

베네수엘라는 그 논리가 가장 극단적으로 적용된 사례다. 범죄 단속이라는 사법적 언어가 동원됐지만, 그 뒤에 깔린 메시지는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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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미국은 더 이상 이 지역에서 주권을 동등한 권리로 취급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국가를 ‘운영’의 대상으로 선언할 수 있다.”

 

미국은 이런 오만을 드러냈다. 이것은 법 집행이 아니라, 질서 설계자의 지위를 포기한 채 관리자로 내려앉은 패권국의 언어다.

 

미국은 이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듯 보인다. 세계 전체를 설득하는 데 드는 비용과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확실한 이익이 걸린 공간만 직접 통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계산은 단기적 안정과 장기적 고립을 구분하지 못한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 영향권은 설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동의 없는 질서는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힘은 증명됐지만, 정당성은 아직 공백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은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힘의 과시가 곧 질서의 정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 온 규범적 우위를 얼마나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이제 ‘선언’이나 ‘군사적 성공’이 아니다. 그 선택이 현실 정치 속에서 얼마나 작동하는가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26년 남미의 선거들이 중요해진다.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에서 치러질 선거는 단순한 국내 정치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설정한 ‘서반구 중심 질서’가 민주적 절차라는 가장 불편한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미국이 정말로 이 지역을 안정시키고 싶다면, 군사력이나 압박이 아니라 정치적 결과로 그 영향력이 재생산되어야 한다.

 

 

브라질 : 전략적 자율성 vs 미국 패권 압박

 

브라질에서는 2026년 10월 대선과 총선이 예정돼 있고, 국가의 정치적 방향이 다시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룰라의 지지율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아들 플라비오 보우소나루에 상당히 앞서며 격차를 벌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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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좌)와 플라비오 보우소나루(우)

출처-<AFP>

 

브라질 정치의 중요한 특징은, 전통적 좌·우의 대결을 넘어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 유지에 대한 시민적 감수성이 강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룰라가 주도하는 세력은 역사적으로 외부 압력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미국이 설정한 ‘서반구 영향권’이라는 개념에 쉽게 수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브라질이 독자적 중남미 리더십을 주장하며 지역 통합과 다자협력에 무게를 두는 경향은, 미국 중심 패권 질서와 뚜렷하게 충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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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P>

 

미국 입장에서 브라질의 이러한 정치적 자율성은 관리 구역 전략의 최대 걸림돌이 된다. 만약 브라질 정치가 외부 패권 논리를 내면화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한다면, 미국의 신먼로주의는 이 거대한 정치적 시장에서 구조적 균열을 드러낼 것이다. 브라질 유권자들의 선택은 단지 한 나라의 공직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패권 전략을 민주적 정치 공간 속에서 수용할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할 수 있다.

 

 

콜롬비아 : 동맹의 틀을 넘어선 주권 경쟁

 

콜롬비아의 5월 31일 대통령 선거는 미국에 특히 민감한 정치적 시험장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다양한 후보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좌파 쪽에서는 이반 세페다가 여론조사에서 유의미한 지지율을 보이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는 현재 집권 연합의 일부로,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이끈 구스타보 페트로의 정치적 연장선에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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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페다 의원

 

중도 혹은 우익 진영에서도 다양한 후보가 나오고 있다. 보수·전통 정당들은 단일 후보론을 추진 중이며, 국가 안보를 전면에 내세우는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 같은 신흥 보수 후보도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범죄와 경제성장, 사회 질서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보수층의 지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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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

출처-<Pares>

 

콜롬비아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강력한 안보·마약 단속 협력을 유지해 왔지만, 이것이 곧바로 미국 주도의 질서 수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 이후 수천 명의 반미 시위가 벌어졌고, 대통령과 주요 정치인들이 미국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콜롬비아 사회 내에서도 주권 수호 의식과 반개입 정서가 뚜렷해졌다.

 

콜롬비아 정치가 미국이 마련한 ‘관리 대상’의 틀 안에서 움직이기를 거부할 경우, 이는 미국 패권 전략이 동맹이라는 이름으로도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특히 세페다와 같은 좌파 후보가 승리할 경우, 미국 주도의 질서와 뚜렷한 갈등이 반복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페루 : 불안정한 정치와 대안 탐색의 복잡성

 

페루의 2026년 총선 및 대선은 정치적 불안정성과 혼란 속에서 치러진다. 최근 몇 년간 페루는 여러 차례 대통령 교체를 겪으며 정치적 분열이 심화돼 왔다. 2026년 선거에서도 후보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43개 이상의 정당이 등록했을 정도로 분열의 폭이 크다.

 

페루에서 선거의 쟁점은 이념적 좌우 구도가 아니라, 경제 생존과 미래 전략 사이의 선택이다. 광업과 물류, 인프라 개발은 페루 경제의 핵심 축이며, 특히 중국과의 협력 프로젝트는 현지 경제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미국 패권 전략은 종종 이를 ‘외부 간섭’이나 안보 문제로 프레이밍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페루 유권자들에게는 직접적인 생활 문제와 경제 성장 전망이 훨씬 절박하다. 미국 중심의 영향권 논리를 받아들이기보다, 실질적 이익과 연결된 중국 프로젝트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목소리가 강할 수밖에 없다.

 

페루의 이번 선거가 보여주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식 질서가 경제 현실을 정치적 통치 언어로 포섭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서반구의 안정”이라는 구호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해도, 페루에서는 그것이 국민들의 경제적 욕구와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이 충돌은 미국 전략이 단순한 외교적 명분을 넘어 구체적 정치적 결과를 견인할 능력이 없는 전략임을 드러낸다.

 

 

선거를 흔드는 방식 : 투표함이 아니라 투표소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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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FP>

 

그럼에도 미국은 이 선거들을 ‘그냥 지켜보는’ 방식으로만 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패권은 늘 투표함에 직접 손을 넣기보다, 투표함이 놓이는 방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누구를 찍으라고 강요하기보다,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위협”인지에 대한 경계를 먼저 정하고, 그 경계 안에서만 선택이 가능하도록 설계한다. 신먼로주의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이 오래된 기법들이 이제 ‘서반구’라는 이름으로 더 노골적으로 재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미국의 전략이 될 키워드를 예상해 본다면, 첫째는 ‘안보’다. 

 

선거는 원래 경제·복지·부패·치안 같은 다층적인 문제들의 경쟁인데, 미국은 이 복잡한 의제들을 하나의 축으로 환원하려 할 것이다. 자국 내에서 그렇게 성공했듯이 이제는 ‘서반구’의 이름으로 마약, 범죄, 이민, 항만, 광산, 에너지 인프라까지 묶어 ‘국가 안보’라는 최상위 프레임으로 재분류될 것이다.

 

이 프레임이 작동하면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강경하게 질서를 세울 것인가”의 경쟁으로 쪼그라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미국의 개입은 ‘간섭’이 아니라 ‘안정화 지원’으로 포장될 여지가 커진다. 선거를 통과시키는 첫 단계는, 유권자의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의 조건화’다. 신먼로주의는 군사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주, 더 조용하게 작동하는 것은 돈과 시장, 그리고 달러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다.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지 않아도, 선거 국면이 되면 “어떤 선택이 시장을 안심시키고, 어떤 선택이 불안을 키우는지”에 대한 메시지는 끊임없이 흘러 들어간다.

 

무역, 투자, 금융 접근, 신용평가, 대출 조건, 제재의 가능성까지, 이 모든 요소는 표면상 경제 논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선택의 비용표를 미리 작성하는 행위에 가깝다. 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유권자는 투표로 정권을 바꿀 수 있지만, 당선 이후 맞닥뜨릴 경제 환경은 이미 외부에서 ‘조건’으로 설정돼 있다. 그 결과 정치적 선택은 자유로운 결정이 아니라, 감당 가능한 손실의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는 선택이 된다.

 

미국은 이 과정을 강요가 아니라 “시장”의 반응이라고 부르고, 통제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이 조건들은, 선거의 결과를 사전에 길들이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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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선택해라...!

 

세 번째는 안보·정보 인프라의 내장이다. 콜롬비아 같은 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지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선거 전술이 아니라 훈련, 장비, 정보 공유, 합동 작전, 수사 공조 등 평시의 협력 체계로 축적되어 왔다. 이런 체계는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은 그 정부에게 협력의 연속성을 “책임 있는 통치”로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인프라가 단지 범죄 대응이 아니라 정치 의제 설정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마약·범죄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외교와 경제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치안과 안보의 하위로 끌려 내려간다. 그때부터 “주권”은 권리가 아니라 위험 요소가 된다. 안보 협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치인은 곧바로 ‘불안정’의 얼굴이 되고, 협력에 순응하는 정치인은 ‘책임 있는 지도자’가 된다. 선거는 끝났지만, 프레임은 남는다.

 

네 번째는 법의 선택적 동원이다. 베네수엘라 사례가 보여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범죄 혐의, 기소, 송환, 비자 제한, 자산 동결, 부패 딱지는 군사 개입보다 훨씬 덜 피를 흘리면서도, 개인과 집단을 동시에 압박한다. 중요한 점은 ‘법’이 작동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법이 어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선택적이라는 점이다.

 

특정 정권·특정 세력은 ‘부패 척결’의 이름으로 타격받고, 다른 세력은 “안정”의 이름으로 보호받는다. 이 선택성이 반복될수록, 법은 공정한 규칙이 아니라 패권의 도구로 인식된다. 그러나 패권은 그 반발조차 “정의에 대한 저항”으로 포장하려 든다. 정당화는 이렇게 생산된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말이 아니라, 법이 칼을 대신하는 순간이다.

 

다섯 번째는 지역 기구와 규범의 재포장이다. 서반구라는 구획은 단지 미국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주변국을 ‘관리 동맹’으로 엮어내는 방식으로 강화된다. 어떤 정부를 “민주주의 수호”의 이름으로 비난하고 고립시키는가, 어떤 정부를 “안정”의 이름으로 인정하는가, 어떤 이슈를 ‘역외 세력의 침투’로 규정하는가.

 

이 과정에서 국제기구와 다자 문서들은 원래의 목적을 잃고 정치적 인증 장치로 변한다. 개입은 더 이상 미국의 개입이 아니라 “서반구의 합의”로 연출된다. 문제는 그 합의가 진짜 합의가 아니라, 힘의 비대칭 위에서 만들어진 동원된 합의라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20세기의 이념 논리가 그렇지 않았나. 다만 21세기는 이념이 질서로 바뀌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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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미국은 그린란드를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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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동그라미가 그린란드

 

이 다섯 가지 레버는 하나로 묶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순서는 대체로 이렇다. 

 

1. 의제를 안보화해 선거의 질문을 단순화한다. 

 

2. 경제적 조건을 걸어 선택의 비용을 조정한다. 

 

3. 동시에 안보·정보 인프라로 협력의 기본값을 ‘미국 중심’으로 고정한다.

 

4. 필요할 때는 법을 선택적으로 동원해 반대 세력의 공간을 좁힌다.

 

5. 마지막으로 지역 기구와 규범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정당한 질서 유지”로 포장한다. 

 

이것이 바로, 

 

‘개입 → 정당화 → 제도화’

 

의 연쇄다. 한 번 제도화된 영향력은 선거의 결과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패권은 선거를 ‘이기려’ 하기보다, 선거 이후에도 계속 이기기 위해 구조를 만든다.

 

 

낯설지 않은 정치의 얼굴

 

이 모든 과정은 어느 순간부터 낯설기보다 익숙해지지 않은가? 선거가 정책의 경쟁이 아니라 ‘위험 관리 능력’의 시험으로 바뀌고, 정치의 언어가 비전이 아니라 경고로 채워질 때 그렇다. 외세의 위협은 늘 과장된 채 호출되고, 복잡한 사회 문제는 “지금은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된다.

 

일방적인 강경함은 결단력으로, 배제는 현실 감각으로, 절차의 생략은 책임 있는 통치로 포장된다. 이때 질서는 토론의 결과가 아니라, 먼저 정해진 전제가 된다. 어디선가 이미 검증됐다는 이 정치 문법은, 국경을 넘을 때도 놀라울 만큼 잘 작동한다. 이름만 바뀔 뿐, 방식은 늘 같다.

 

하지만 이 방식은 결정적인 역설을 품고 있다. 미국은 세계를 단순화하려 한다. 관리 가능한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으로, 협조하는 정부와 ‘문제 정부’로, 내부 질서와 외부 침투로. 그러나 민주주의의 공간은 그렇게 단순화될수록 반작용을 낳는다.

 

강요가 “현실”로 포장될수록, 유권자들은 그 현실을 만든 손이 누구인지 더 또렷하게 보게 된다. 신먼로주의가 오래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이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힘을 행사하는 문법 자체가 민주주의의 언어와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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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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