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과메기를 공천해도 허대마이는 이긴데이(허대만은 이긴다)”
이런 조롱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대한민국의 견고한 지역주의 벽 앞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포항의 허대만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보다 더 바보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그의 인생 여정을 ‘악마의 맷돌에 인생을 갈아 넣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허대만 민주당 전 경북도당위원장은 포항에서만 민주당 간판을 달고 평생을 7번의 선거에 도전했고 모두 낙선했다. 그는 2022년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향신문, 링크)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금 이 시간에도 험지라 불리는 지역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허대만을 응원하기 위해 그의 삶은 되돌아보려고 한다.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유년기
지독한 가난 속에 자란 유년기, 그의 아버지는 그가 9살 때 제철소 감전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시 어머니의 나이는 32세.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아버지의 사망으로 회사에서 위로 차원에서 텔레비전 한 대를 줬다고 한다. 남겨진 홀어머니와 세 아이는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어머니는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초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해 중학교까지 급여를 모아 학교 등록금을 냈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우연히 만난 여러 가지 행운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으며 그는 1987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돈이 없어 생활은 어려웠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듯해서 싫었고,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도 많았지만, 개인적인 성취만을 생각하는 길 같아 내키지 않았다. 무언가 과감하고 의미 있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자서전의 일부)
26세 최연소 시의원, 가시밭길의 시작
대학 시절 선후배들과 학생운동을 했고, 정치인의 꿈을 키워 오던 그는 자신의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가 포항 시의원으로 출마했다. 1995년, 26세의 허대만은 기적을 썼다. 전국 최연소 기초의원 당선. 당선 확정 직후, 그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등에 업고 환하게 웃었다.
그 사진은 포항 시민들에게 ‘우리 자식도 하면 된다’라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미소 뒤에 펼쳐질 미래는 27년의 혹독한 겨울이었다.

7전 8기가 아닌, 7전 7패의 기록
그는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포항에서 민주당의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변에서 “당을 바꿔라”, “무소속으로 출마해라”, “수도권으로 가라”라며 수없이 회유했다고 한다. 심지어 동네 주민들도 허대만은 좋지만, 민주당이라 찍어줄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조언을 받았지만, 허대만은 자신을 ‘총알받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책에 “지역주의라는 성벽을 허물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에 미래는 없다”라고 썼다.
도의원 1번, 국회의원 4번, 시장 2번. 기록은 냉정했다. 7번의 낙선. 사람들은 그를 ‘포항의 바보’라고 불렀다. 2018년 포항시장 선거에서 얻은 42.41%라는 수치가 허대만의 선거 역사상 최고의 성적표가 됐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견고했던 지역주의의 벽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낙선은 낙선이다. 정치권엔 이런 말이 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2018년 지방선거가 박근혜 탄핵 이후 첫 지방선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항은 끝내 허대만을 외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쿠키뉴스, 링크)
허대만의 출마 이력은 무모함 그 자체다. 그의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대부분 지역주의 정치의 악순환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모든 개혁의 전제조건이 된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마지막 도전이 된 2020년 총선 당시에 그는 암과 싸우고 있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절대 안정을 권했지만, 또 거리로 나섰다. 결국, 또 낙선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허대만 위원장을 보내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는 26살에 시의원에 당선된 뒤, 포항에서 7번 선거에 나가서 모두 낙선했습니다. 지역주의의 거대한 벽은 청년 정치인 허대만이 나이 50이 넘도록 한 번도 고향을 위해 일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도 낙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노무현의 철학을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체화했던 것 같습니다.
허대만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렇게 순진한 사람이 무슨 정치를 하느냐는 타박을 들을지언정, 그의 순수한 열정에 감명받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알고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참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지역주의를 넘어보자는 그 무모한 도전을 함께하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참 든든했습니다. 허대만 동지는 지역주의의 벽을 넘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정치인에게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정치인 허대만의 이름을.

(한겨레, 링크)
허대만 법 과연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2022년 8월, 그는 향년 53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정치권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허대만 법(△지구당 부활 △중대선거구제 개편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 등)'이 논의되고 있다. 특정 정당의 독점을 막고 지역주의를 뿌리 뽑아, 제2, 제3의 허대만이 더 이상 ‘바보’가 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다.


(한국일보, 링크)
과연 통과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평생을 몸 바쳐 요구했고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지만, 정치는 늘 냉정한 게임이다. 막상 현실 정치에 맞닥들이면, 쉽지 않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현재 국회의원들은 현행 제도 하에서 당선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피해가 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뉴스토마토, 링크)
허대만. 그가 남긴 7번의 패배는 어쩌면, 우리 정치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공존의 세상’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지금 이 시간에도 험지에서 도전하고 있을 수많은 허대만을 응원한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보좌관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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