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어릴 적 들었던 이 속담의 풀이는 대충 “자라나 솥뚜껑이나 생긴 게 비슷하니 자라보고 놀랐으면 솥뚜껑 보고도 놀랄 수 있다.” 정도 되었다. 요새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설명도 이 정도 수준이다. 너무 평면적이고 동어반복인 설명이다.
어릴 때 이 속담을 듣고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자라를 보고 놀라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은 찾기 어려웠다. 여기저기 물어봐도 글쎄? 라는 반문만 돌아오기 일쑤였다. 원래 구전은 원류나 원형을 찾기 어렵고 관습에 기대 쓰던 대로 쓰는 법이지만 자라를 보고 놀라는 이유를 추측해 본 사람이 그렇게 드물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라 여겼는데 갑자기 움직여서 놀랐을까? 그렇게 한번 놀랐다고 부뚜막 위의 솥뚜껑을 보고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심지어 솥뚜껑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다 해도 크게 놀랄 것 같지 않다.
속담이 될 정도라면… 자라의 무는 힘을 고려해 아마도 등껍질 속에 대가리를 숨긴 자라를 잘못 건드렸다 손가락을 물려 잘릴 뻔한 아찔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자라의 무는 힘은 180kg/cm² 정도 된다. 약 70kg/cm² 정도 무는 힘을 가진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귀나 손가락을 물어 잘라 버릴 만큼 위협적이라는 걸 생각하면 자라에게 물리는 경험은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며 자라를 닮은 솥뚜껑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놀랐다는 경험
이 속담이 서술하는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 '자라'와 '놀랐다'이다.
이 속담은 인공지능으로 어떻게든 구현하고 싶은, 인간 뇌의 '한번 학습(one shot learning)'이나 '적은 수 학습(few-shot learning)'의 학습 기제, 인간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고 기억의 결정적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더불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의 기전에 대한 적절한 설명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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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단 한 번 혹은 극히 적은 경험으로도 어떤 정보, 행동, 대상을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뇌가 전인지(Holistic perception) 과정으로 학습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전인지 과정이란 우리 몸의 감각 기관으로 들어오는 외부 사건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그 외부 정보를 뇌에서 처리하면서 일어나는 신체의 생리적 변화와 이로 인한 심리적 요란이 외부 정보와 통합되어 인지된다는 뜻이다. 즉, 외부 정보와 그에 대한 몸의 반응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지되고 기억된다는 뜻이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읽으며 하는 학습이 쉽지 않은 것은 이 학습 과정은 전인지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길어야 5~6천 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인지 과정인 '책상머리 학습'은 필연적으로 몸의 안팎에서 감지되는 많은 느낌과 정보를 차단하고 오직 글로 적힌 정보만 집중적으로 반복하여 기억하는 불완전 학습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한 번 본 낯선 사람의 얼굴이나 그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딱 한 번 가봤던 초행길을 찾아갈 수 있는 한번 학습이나 적은 수 학습보다 책상머리 학습이 압도적인 반복 학습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인간 인지의 진화 과정을 고려할 때 불완전 학습이기 때문이다.
PTSD도 이 같은 인간 인지 과정이 전인지 과정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왜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PTSD는 직접적 신체적 상해 없이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외부로부터 극한 위험을 감지하게 만드는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고 이에 반응하며 몸 안에서 긴장과 도피에 필요한 각종 호르몬을 뿜어 내면서 공포나 긴장감과 같은 느낌을 만들어 낸다. 느낌이라는 감정적 정보가 인지된 사건 정보와 결합하면서 우리의 뇌는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는 시냅스를 형성하게 된다. 그 기억이 살아날 때마다 몸은 그때 당시 우리 몸의 상태를 재현하고 공포에 휩싸이고 무조건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받은 충격의 크기에 따라 상처의 깊이가 다를 수 있다. 또한 상처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강도도 다를 수 있다. 같은 사건이나 인물을 마주치고 자신보다 더 긴장하고 떠는 친구를 보고 ‘왜 긴장하고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떨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친구가 왜 나보다 더 떨고 더 긴장하는지 혹은 더 공포를 느끼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보폭의 넓이와 속도를 맞춰야 한다. 육지에서 태어나 40년을 살다 제주로 이주해 살고 있는 나에게 성산 터진목 앞바다에서 맞는 4월의 봄바람은 만물이 소생하는 환희의 송가지만 4.3 사건으로 가족이 몰살당하고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제주인들에게는 한겨울 삭풍보다 더 매서운 죽음의 비가일 수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역사

제주 4.3 항쟁 유골 발굴 현장
2014년, 내 아버지의 트라우마가 내게, 내 트라우마가 내 아들에게, 내 아들의 트라우마가 내 아들의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실험 논문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렸다. 제목은 ‘부모의 후각 경험이 후대의 행동과 신경 구조에 미치는 영향(Parental olfactory experience influences behavior and neuro structure in subsequent generations.)’.
이 실험에서 실험자들은 생쥐가 좋아하는 달콤한 체리향을 맡게 하면서 동시에 전기 충격을 함께 주었다. 달콤한 향은 지상의 거의 모든 생물의 생존에 필수적 영양소인 포도당을 대표하는 냄새다. ‘달콤한 향-포도당-에너지 공급’이라는 연쇄 인지 작용을 배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달콤한 향을 맡으면 향을 내는 대상에 대부분의 동물은 접근한다. 그런데 이 실험의 실험자들은 이 달콤한 향에 전기 충격이라는 배반의 장미를 날렸다.
그걸 직접 경험한 부모 세대는 다음부터 전기 충격이 없어도 체리향을 맡으면 공포(회피)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 공포(회피) 반응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유전되었다. 부모 세대 수컷 생쥐의 정자에 있는 달콤한 냄새를 감지하는 수용체 유전자가 아주 과민하게 활성화된 상태로 후대에 유전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 수용체 유전자 스위치는 꺼진 상태(메틸화된 상태)로 후대에 유전되는 데 오히려 더욱 민감하게 스위치가 켜진 상태(탈메틸화된 상태)로 유전된 것이 확인된 것이다.
살면서 획득한 형질인 트라우마가 생식세포를 통해 후대에 유전된다는 사실을 지지하는 후속 연구도 속속 보고 되었다. 특정 스트레스 수용체의 메틸기가 변화하는 현상 보고를 넘어 그런 메틸기 변화가 정자의 RNA 변화로 촉발되고 후손에도 생식세포를 통해 유전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Rodgers et al., Paternal Stress Exposure Alters Sperm MicroRNA Content and Reprograms Offspring HPA Stress Axis Regulation, The Journal of Neuroscience, 2013).
생쥐에게 한 실험 결과를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 확대 적용해서 해석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후성 유전이 적어도 같은 포유류인 생쥐에게서 일어나는 것임을 확인한 이 실험 결과는 인간도 환경적으로, 태어난 뒤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이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분자 수준의 물질에 변화를 불러오고 그 변화가 자손에게 유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5.18 광주 민주항쟁 당시 계엄군이 쓰러진 시민을 바닥에 끌어 옮기고 있다
출처 - (링크)
한반도의 민중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외세의 침략(특히 일제)으로 얻은 트라우마, 지배자의 권력 전횡으로 얻게 된 트라우마가 역사라는 문자적 기록이나 유물이나 사회적 학습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의 분자 수준 변화를 수반하며 대대로 유전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이것은 피비린내 나는 폭력과 그런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를 이유 없이 혐오하게 되는 이유, 권력가보다 명망가를 더 선호하는 이유, 드물지 않게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우두머리가 등장하지만 결국 폭력적 독재자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 집단에서건 고도의 문화를 누리는 인간 세계에서건 늘 민중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되는 것이 물질적 토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한강의 깨달음 역시 우리 몸 안에 각인되어 유전되는 물적 토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트라우마 치유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

출처 - <대통령실>
트라우마를 분자 단위의 신체 물질 변화에서 관찰하면,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수용체 유전자의 메틸기가 떨어져 나가면서 스트레스 민감도가 높아지고 발현된다. 앞서 소개한 실험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렇게 메틸화가 떨어져 나간 수용체 유전자나 변화된 정자 RNA가 후대에 전해진다면 그 반대 과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다. 트라우마와 관련된 물질 변화는 비가역적 변화가 아니라 가역적 변화라는 것도 확인되었다.
어릴 때 강제적으로 어미에게서 떼어 놓는 어미 분리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 트라우마를 가진 수컷 쥐는 스트레스 반응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유전자 수용체(글루코코르티코이드; GR)의 메틸기가 떨어져 나가며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트라우마 행동 양태를 보인다. 그런 트라우마를 겪는 생쥐를 풍족한 환경 속에서 안정감을 갖고 생활하게 만들어주면 GR에 다시 메틸기가 붙어 스트레스에 덜 민감한 상태, 즉 트라우마를 겪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런 부모 세대의 변화도 유전을 통해 자손 세대에 전해지는 것도 확인했다(Mansuy, et al, Potential of Environmental Enrichment to Prevent Transgenerational Effects of Paternal Trauma, Neuropsycholpharmacology, 2016). 즉 트라우마는 치유될 수 있고 그 치유는 분자 단위에서 신체의 물질 변화를 수반하며 유전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앞서 소개한 논문과 함께 이 논문이 시사하는 것은 트라우마의 생성과 소멸이 가역적이라는 사실이다. 트라우마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실제로 PTSD는 정신의학적 상담과 약물을 병행하면서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게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다. 그런데 생성과 소멸의 과정 자체는 매우 비대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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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단시간 내에 매우 강렬한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치유는 수많은 반복 학습과 수고가 필요하다. 더 많은 반복 학습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생쥐가 트라우마를 얻게 만드는 데는 2주 동안 매일 3시간씩 어미로부터 분리하는 것으로 가능했지만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는 젖을 뗀 생후 21일경부터 성체가 될 때까지 몇 달이 걸렸다.
트라우마의 생성과 소멸 과정이 이렇게 비대칭적인 것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학습이 전인지적 과정과 함께 기본적으로 베이지안 확률 모델을 따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인공지능도 새로운 경험으로 과거 학습 결과로 얻은 추론 결과를 갱신하는 베이지안 확률 모델을 기본으로 설계된 알고리즘이다.
트라우마를 만드는 사건은 과거에 학습된 모든 경험을 한 번에 엎어버릴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다. 전인지 과정으로 학습하고 기억을 만드는 인간이라 생존을 위협하는 충격적 사건을 겪으면 우리의 뇌와 몸은 트라우마를 쉽게 버리지 않도록 강한 시냅스를 만들고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수용체 유전자에 생리적 흔적을 깊게 남긴다. 이렇게 생긴 트라우마를 잠재우려면 안정을 주고 좋은 느낌을 주는 사건과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학습해야 한다. 실패가 있더라도 작은 성공 경험을 많이 축적할 수 있어야 우리의 뇌는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시냅스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에 관련된 수용체 유전자의 메틸기 수준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거나 전반적인 뇌 발달과 스트레스 수용 능력을 관장하는 RNA의 변화를 정상화할 수 있다.
한국 보수, 제대로 된 트라우마의 부재

이재명 당시 대표 테러 발생 직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현장을 물청소 중인 모습
한국의 보수라고 자처한 이들이 계획하고 실행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의 모든 비극적 사건은 한결같이 이재명을 지지하고 대통령으로 만든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충격적 사건들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대한민국의 대한국인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유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다음 가까스로 광주 항쟁으로 쓰러진 이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를 수 있게 되었고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야 그보다 더 오래된 상처, 제주 4.3의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한국의 보수는 쉬지 않고 상처를 들쑤시고 트라우마를 증폭하기에 바빴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달콤한 경험은 윤석열의 배신, 윤석열의 당선, 윤석열의 내란으로 한 방에 묻어 버렸다. 이전보다 더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현장영상] 자유대학 박준영 대표, 단식농성 4일차 ‘눈물의 호소’ 1-49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421/294/869/caaea3b127eeb664d0ee77d7aac9d64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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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어게인을 외치며 극단주의자가 된 이들도 박근혜와 윤석열의 연이은 탄핵으로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그 이전에는 한국 전쟁이 가져온 공산당에 대한 트라우마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공격의 대상은 북한이 아니라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생명을 빼앗고 탄압했다. 그들은 한 번도 트라우마다운 트라우마를 가져본 적이 없다.
생존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체득한 트라우마는 단순히 특정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반응을 유발하는 수동적 기제가 아니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맞서 능동적으로 회피하고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여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적극적 기제다.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유전되고 있는 트라우마가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켰을 때 수많은 시민이 숨지 않고 버선발로 국회로 모이게 만들고,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게 하고, 특수부대의 총부리를 가슴으로 부여잡았게 했던 힘이다. 그 힘은 1894년 내대리, 1919년 종로, 1948년 관덕정, 1980년 광주 금남로, 2024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민중들이 모이게 만든 힘이기도 하다. 최근 극우 집회의 참석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단지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견디게 할 힘, 유전된 트라우마가 없기 때문이다. 설사 있다 한들 이재명 정부는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지도 않으니 그 힘을 쓸 기회도 없다.
세심한 배려와 차분한 인내
이번 이혜훈 인선과 같은 시도는 우리의 상처가 아물고 유전되는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풍요한 환경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수구 세력이 대한민국의 주류 행색을 할 때는, 우리 생존, 아니 대한국인 모두의 생존을 걱정하며 능동적 생존 기제로 트라우마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주류다. 우리가 주류가 된 상황에서는 굳이 트라우마에 기대 생존을 모색하는 데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할 이유가 없다. 좀 더 안정되고 성공적이며 창의적인 경험을 축적하는 일에 우리 모두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 더 절실하고 나은 전략적 선택이다.
이런 이유로 이재명 정부에 한가지 바람이 생겼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겨주길 바란다. 이혜훈보다 나은 인물, 이재명과 함께 목숨을 걸고 국회의 담을 넘었던 지지자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 정도의 인물은 없는지 조급함 없이 찾길 바란다. 상처의 깊이, 고통을 느끼는 정도, 트라우마가 각인된 신체 변화를 고려할 때는 통계적 중간을 가늠하는 평균값이나 중간값에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상처가 더 이상 덧나지 않고 트라우마가 이전처럼 우리 스스로를 위축하지 않도록 더 세심하게 지지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역치의 최솟값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길 당부한다.
나처럼 머리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동지들에게도 바람이 있다. 지금까지 권력을 독점하려 했던 대한민국 수구 세력의 그 어떤 농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재명을 믿고, 이재명을 지키고,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왔던 것처럼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좀 더 차분한 인내로 기다려보자는 바람이다. 조급하다 싶으면 화내지 말고 기다릴 수 있다고 진정시켰으면 한다.
그래야 한반도에서 게으름을 호연지기로, 무식을 용기로, 무지를 뚝심으로 포장하면서 온 대한국인들이 함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흘렸던 땀이 키운 열매를 독식하려 해왔던 독재의 그림자가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그래야 우리 미래가 이제는 화석이 되어 더 이상 우리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트라우마를 잠재우고 신나는 내일을, 소소한 행복이 매일매일 쏟아지는 일상을 만들 수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솥뚜껑을 보고 자라에 놀랄 일은 없으니까.
편집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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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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