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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는 ‘새벽 배송’으로 트럼프 앞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트럼프의 메시지와 발언을 종합해 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제 싸움이 시작됐구나.”

 

트럼프, 아니 미국은 더 이상 세계 경찰 노릇을 자처하지 않을 것이고, 철저한 자국 이익을 기준으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경고는 중국을 향해 날아갔다.

 

“네가 몸집 불리는 건 알겠는데, 내 뒷마당은 건들지 마.”

 

동시에 뒷마당인 중남미를 향한 메시지도 분명했다.

 

“우리, 1950년대로 돌아갈까?”

 

경고는 곧 현실이 됐다.

 

 

핑크 타이드(Pink Tide)의 등장

 

핑크 타이드(Pink tide)란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분홍색 물결’ 정도인데, 쉽게 풀어보면 이런 뜻이다.

 

“소련식 사회주의가 아니라, 중남미 정서에 맞게 한 번 걸러진 좌파·사회주의의 득세”

 

과거 레닌식 혁명처럼 체제를 뒤엎고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 방식은 아니다. 핵심은 소위 말하는 좌파, 극좌, 사회주의자 등 나름 온건한(?)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는 일이 중남미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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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좌·우 정권교체, 반복되는 이유는

(중앙일보, 링크)

 

이들이 득세하는 흐름의 배경은 명확하다.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는 독재 혹은 장기 집권 세력의 ‘정권 로테이션’으로 나라를 말아먹었고, 국민은 부패와 폭력, 경제난을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

 

이런 구호가 안 나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핑크 타이드 이전에도 이런 중남미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변화의 시도는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이었다. 식민지에서 독립하면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군사독재와 빈곤이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어지간한 국가는 모두 독재 체제였고, 그 배경에는 미국의 묵인 혹은 지원이 있었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미국의 뒷배를 업은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사회주의적 변혁을 시도한 내부 세력들은 가혹한 탄압의 대상이 됐다. 체제 전복은 쉽지 않았고, 탄압이 계속되는 와중에, 노골적인 사회주의 대신 가톨릭의 언어를 빌린 ‘독특한 혼종’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해방신학이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비판했던 마르크스의 말을 떠올려 보면, 사회주의와 가톨릭이 결합했다는 것이 얼마나 기묘한 조합인지 감이 올 것이다.

 

이 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같은 단체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가난과 억압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권력이 만든 구조적 폭력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해방신학의 문제의식이 스며 있다.

 

오래전부터 중남미는 사실상 폭발 직전의 사회였다. 너나 할 것 없이 기존 질서를 뒤엎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퍼져 있었다. 실제로 1950년대 이후 중남미 곳곳에서는 좌파 성향의 개혁 정부나 민족주의 정권이 간헐적으로 등장했고, 미국은 이를 소련 진영의 확대라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쿠데타를 지원하거나 군사정권을 묵인하는 방법으로 미국이 중남미의 좌파 개혁 시도를 하나씩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중남미를 휩쓴 핑크 타이드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중남미의 독재 정권들이 차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민주화라는 말이 일상화 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등에서 좌파 정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차 핑크 타이드였다.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던, 차베스 집권 이후 일어난 볼리바르 동맹(ALBA), 페트로카리베(PetroCaribe) 같은 중남미 지역 연대의 배경에도 이 핑크 타이드가 있었다. 당시 중남미는 대부분이 빨간색... 아니, ‘핑크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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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의 국방브리핑]마두로 체포 전까지 1:

배럴당 100달러, 낙원이 될 뻔한 베네수엘라(링크)

 

하지만 차베스가 죽고, 좌파 정권의 연이은 헛발질로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가 닥쳤고, 권력을 잃게 된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실업과 빈곤이 급증하면서,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라는 정서가 중남미 전반에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위기 국면에서 국가 개입과 복지를 강조하는 좌파 담론이 다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에너지·식량 가격이 급등했고, 생활비 위기는 기존 중도·우파 정부들에 치명타가 됐다. 그 결과 중남미 곳곳에서 반미·국가 개입 성향의 좌파 정권들이 다시 연쇄적으로 등장했다. 이른바 ‘2차 핑크 타이드’다.

 

트럼프가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를 노골적으로 지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르헨티나까지 좌파가 집권하면, 남미는 전체가 넘어간다. 아르헨티나는 지켜야 해!”

 

경제학자 출신이자 신자유주의 성향의 밀레이는 미국 입맛에 맞았던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핑크 타이드를 경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핑크 타이드는 기본 옵션으로 ‘반미’를 탑재하고 있다. 차베스의 발언을 보면 이해가 더 쉽다.

 

“미국이 중남미에 개입하면서부터 우리 삶은 망가졌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는 미국으로서는 기분이 나쁘다. 

 

차베스에 한 차례 심하게 당한 미국은, 다시는 남미 전역이 좌파 정권으로 물드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대놓고 쿠데타에 개입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 결정적으로 민주화 이후 선거를 통해서 집권한 좌파 정권을 공개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미국이 아니었다. 미국은 과거처럼 직접 개입이 아닌 ‘상징적 타격’을 통해 경고를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이번 마두로 새벽 배송 사건이다. 여기에 각국 좌파 정권의 경제 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중남미를 물들였던 2차 핑크 타이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켈레라는 예외

 

중남미 국가들의 내부 사정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만성적인 경제위기”

“수십에서 수백 퍼센트를 널뛰는 물가 상승”

“살인, 폭력, 강간 등 강력범죄의 일상화”

“마약 카르텔의 득세”

“불법 해외 이민자의 송금에 의존하는 내부경제”

 

이런 상황에서 엘살바도르의 젊은 독재자, 나이브 부켈레(Nayib Armando Bukele Ortez)는 예외적인 사례다. 독재자 부켈레는 단 한 문장, 하나의 메시지로 엘살바도르 국민의 마음을 샀다.

 

“언제까지 총 맞아 죽을 걱정하면서 살래? 내가 다 뜯어고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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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독재’ 의지 드러낸 대통령…“적어도 2033년까지는 집권해야”

(매일경제, 링크)

 

엘살바도르는 전 세계 ‘살인율 1위’ 국가다. 이 오명을 벗기 위해 부켈레는 집권 직후 군대를 동원해 갱단을 소탕했다. 범죄 조직을 뿌리째 제거하고 치안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우리나라 군사정권 시절의 ‘패턴’과 닮아 있다. 군과 공권력을 동원해 사회 전반을 강하게 통제하고,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반대 세력과 잠재적 위험 요소를 한꺼번에 눌러버리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삼청교육대와 같은 인권 침해와 무고한 사람들의 체포, 독재자 비판 언론과 반대 세력 정치인들에 대한 탄압 역시 일어났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과거와 겹친다.

 

어쨌거나 결과는 분명했다.

 

“오늘 살인 사건이 0건이다. 이건 기적이야!”

 

살인율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엘살바도르 치안 지표가 급격히 개선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 앞에서 엘살바도르 국민은 부켈레에 열광했다.

 

엘살바도르의 사례를 든 이유는 중남미 국가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한국이나 일본, 중국의 정치·사회적 조건을 그대로 대입해서는 그들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부켈레는 ‘엘살바도르의 박정희’라고 볼 수 있다.

 

“인권? 자유? 우선 살고 봐야 할 거 아냐. 살인율 세계 1위 타이틀이라도 일단 떼자! 그리고 자꾸 독재라고 하는데, 이거 다 국민투표 부친 거야. 내 지지율 90% 대인 거 안 보여?”

 

이 지점에서 중남미의 현실이 드러난다. 핑크 타이드가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이미 반세기 넘게 정부와 기업, 군대, 범죄 카르텔이 짬짜미가 된 구조 속에서 정권 하나 바뀌었다고 사회가 극적으로 바뀌기는 어렵다. 또 치안, 빈곤, 부패 문제를 해결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중남미 국가들이 동원할 수 있는 ‘돈’은 언제나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이웃 국가에서 좌파나 진보 정권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더라도, 약속했던 복지 확대와 개혁 과제들은 곧 재원의 한계와 경제 위기에 부딪혔다. 결국 민심은 빠르게 돌아섰고, 상당수 정권은 얼마 못 가 권력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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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엘살바도르 부켈레 대통령 만난다

(블록미디어, 링크)

 

부켈레는 트럼프의 꼬붕(?!)을 자처했다.

 

“트럼프 대통령님! 지금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고민 많으시죠? 저 나쁜 불법 이민자 놈들,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 같고, 추방한다고 해도 이것들이 스물스물 미국으로 기어 들어가니… 저 나쁜 놈들 우리 엘살바도르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황상... 아니, 대통령님께서는 시원하게 추방 때리시고 저희에게 넘기십쇼! 그럼 저희가 받아서 싹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태도가 트럼프 눈에 어떻게 보였겠는가. 실제로 엘살바도르는 미국의 대(對)중남미 압박 대상, 이른바 ‘제거 리스트’에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마약 유통의 핵심인 것처럼 지목됐지만, 이 마약 국가 프레임은 ‘명분’을 위한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만약 정말로 마약이 문제라서 마두로를 새벽 배송했다면, 부켈레는 총살도 모자라다. 왜? 콜롬비아에서 출발한 마약이 육로를 통해 멕시코로 넘어가는 주요 길목이 바로 엘살바도르였기 때문이다. 이 유통 과정에 MS-13과 같은 갱단이 몸집을 키웠고, 이 갱단은 부켈레 집권 이전 엘살바도르 사회를 붕괴 직전까지 몰아넣은 핵심 원인이었다.

 

부켈레는 집권 직후, 이 갱단들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때 내놓은 정책이 바로 마노 두라(Mano Dura), 직역하면 ‘단단한 손’이다. 

 

요지는 간단했다.

 

“갱단으로 의심되는 놈들은 영장 받을 필요 없어. 일단 체포해!”

“아니, 그럼 교도소가 부족할 텐데...”

“그럼 교도소를 더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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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2000명 빼곡’ 세코트 수용소 세기의 이동

(국민일보, 링크)

 

그 결과 등장한 것이 4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교도소 ‘세코트(CECOT)’다. 돔 구장을 방불케 하는 이 교도소에, 부켈레는 약 8만 명에 달하는 갱단원 혹은 갱단 연루 의심 인물을 모조리 집어넣었다.

 

그 덕분에 콜롬비아에서 넘어오는 마약 유통 루트는 상당 부분 차단됐다. 하지만 엘살바도르는 여전히 육상 운송의 핵심 길목이었고, 콜롬비아에서 멕시코로 이어지는 마약 공급망은 이미 하나의 산업처럼 굳어진 상태였다. 몇 개의 통로를 막는다고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부켈레의 정책이 여러모로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복지와 인권을 내세웠지만 치솟는 범죄율과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한 채 하나둘 무너져간 핑크 타이드 계열 좌파 정권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부켈레는 옳고, 좌파 정권은 틀렸다”라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중남미의 현재 상황이 보통의 방식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단계에 와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칼을 뽑았다. ‘마두로 새벽 배송’을 통해 선거로 집권한 좌파 정권이라도, 미국의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거스르면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이 메시지는 미국의 뒷마당에 즉각 전달됐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될 이들의 트럼프를 향한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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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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