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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의 근본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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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하면 생각나는 거부터 드가보자. 거기는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국가수반을 겸하는 신정독재체잖음?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명제로부터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답 없는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이란 국민들의 '수준'이 중동에서 유난하기 때문이다.

 

이란인은 원래부터 학력과 지식수준이 높았고, 지금도 높다. 이란의 대학진학률은 60% 이상으로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리고 대학생 남녀 비율은 반반이다. 굳이 숫자를 세자면 여성이 대학 진학율이 더 높다! 즉 이란은 성차별적인 국가이지만, 이란인은 의외로 성차별적이지 않다.

 

이란인은 원래 무슬림이면서도 세속주의적이다. 이란 무슬림은 절대다수가 시아파 신도인데, 시아파는 원래 수니파만큼 원리원칙적이지 않고 관습적이다. 1979년의 이슬람 공화국 혁명이 무너뜨린 페르시아 제국도 세속적인 성격이 강했다. 호메이니의 1979년 신정혁명 당시에는 단발머리와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란은 신정체제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일어난 게 아니다. 신정체제이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란인에겐 원래 신정체제가 맞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사람들은 너무 지적이고, 과학적이다. 웹에서 이란을 검색하면 '무슬림 98%'라는 통계가 바로 나온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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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국제 논문 등재 수는 세계 15위 수준으로, 다른 중동 국과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회엔 종교에 회의적인 인구가 많다. 이란에는 관습적으로, 즉 전통에서 아주 벗어나진 않았다는 의미로 '그래도 무슬림이긴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불가지론자(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인간이 알 수 없다), 무종교인(나의 종교를 확정하지 않겠다), 나이롱 신도, 무신론자(!)를 합치면 50%가 넘는다.

 

덧붙여, 이란은 오랜 시간 미국의 강력한 제재 하에 고립된 채 미사일과 드론 등 수준 높은 군사-우주항공 기술을 구축했다. 다운그레이드된 미제 무기를 사다가 제대로 운용도 못하는 사우디 따위와는 국민의 질이 아예 차원이 다르다. 이런 말 하면 사우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은 이란 국민들이 고생하고 있으니 좀 추켜세워주자.

 

음, 그렇다면 어째서 신정체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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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1979년으로 돌아가자. 겉으로는 입헌군주지만 실제로는 전제군주로 통치한 황제(샤한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개혁개방을 추진한 독재자였다. 그는 친미-친서방 편에서, 우리로 치면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종국에는 모두의 적이 되었다.

 

팔레비는 국가를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했다. 하지만 입헌군주제의 헌법에 의거하면 그의 '경영'은 정경유착, 부패, 독재였다. 이란 사람들은 황제를 끌어내리고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공화국을 건설하고 싶었다. 여기서 시민을 거칠게 셋으로 나눠보겠다. 첫째 학생운동권. 둘째 지식인층. 셋째 시골 율법학자들. 우리로 치면 가끔 한복 입고 정부 행사에 나오는 '유림' 할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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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테헤란의 미대사관 앞에서 팔레비가 그려진 인형을 태우고 있는 시위대들
출처 - AP
(링크)

 

79년 혁명의 열기는 뜨거웠다. 황제는 쫓겨나 외국으로 망명했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혁명의 결과는 '배신'이었다. 모두가 공동의 적을 무너뜨렸지만 그 결과는 시골 율법학자들의 옹위를 받은 호메이니, 그 호메이니가 수립한 신정독재 세력이 모두 차지했다.

 

북한의 현 체제가 배신의 결과인 것과 비슷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운 이들 중에는 지적, 도덕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많다. 하지만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만주파가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를 모두 숙청했다. 결국 봉건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건국된 나라가 김씨왕조 체제라는 극도의 봉건주의로 퇴행한 것이 현재의 북한이다. 이란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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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이란, 두 체제는 윤리가 파괴된 모양새도 같다. 북한 주민들은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입고 나온 화려하고도 야한(북한 기준에서는) 옷차림에 충격받았다. 미제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인민락원 건설에 봉사해야 하며, 인민의 총화단결을 위해 모두가 소박한 옷을 입어야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청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끌려가 고초를 당해야 하지 않았는가...?

 

이란 지배층의 자녀들은 미국 부촌에 옹기종기 모여 SNS에 사치를 자랑한다. 그들이 그곳에 있어 즐거워 마지 않는, 바로 그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들은 독재와 경제난을 견뎌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서구 자본주의에 물들면 이란의 주권을 지킬 수 없기에 신정독재가 필요하고, 젊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히잡 사이로 삐져 나오면 도덕경찰(이름이 킹받게도 '도덕경찰'이다...)에 두들겨 맞아야 하는 거 아니었나.

 

독재국가는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윤리를 강요한다. 독재의 수혜자인 지배층은 해당 윤리를 지키지 않는다. 그건 피지배민을 가두는 우리의 창살이니까. 내가 주인인데, 노예의 도덕을 어따 대고 디밀어? 미국에서 슈퍼카를 몰며 함박웃음을 짓고 사는 이란 지배층 딸내미는 히잡을 쓰지 않는다. 2023년, 이란 고위층 딸이 결혼식에서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도 히잡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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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정치 고문인 알리 샴카니 소장의 딸 결혼식

 

피지배층 생각은 다르다.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우리에 가뒀으면, 최소한 너네도 우리 안에 있긴 해야지...?

 

다시 말하지만 이란 국민은 지적이며, 성차별적이지 않다. 운동권 남학생에게 여대생이 받는 핍박은 다 같은 동기, 선후배가 받는 핍박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22살의 쿠르드족 여성이 히잡을 똑바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촉발된 2022-2023 시위는 결국 진압되었지만, 그 분노의 에너지가 사그라들 리는 없었던 것이다. 분노가 지속되다가 2025년 12월,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물가가 50% 이상 폭등하자 이번 시위로 이어졌다. 즉 물가폭등은 시위의 근본 이유가 아니라 트리거에 불과하다. 이란 국민들은 언제든 시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너무 많이, 오래 참았다.

 

시위의 근본 이유는 '우등한 국민과 열등한 체제의 비상식적인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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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살 이전까지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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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023 시위와 지금의 2025-2026 시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지금은 상인들이 시위에 합류했다. 상인은 생활인이고 기성세대다. 하메네이 정권은 이를 중대한 위기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자국민을 향해 기관총 난사를 해댔다. 이제 악업을 쌓지 않으면 정말 지들이 죽을 판이라...

 

상인 합류는, 1987년 6월 한국에서 학생운동권에 합류한 '넥타이부대'를 연상케 한다. 학생들은 운동의 동력을 지속하긴 하지만, 구체제가 혁명으로 기울어지는 결정적인 무게추가 되진 않는다. 학생운동권의 힘만으로는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다. 체제의 일부인 기성세대가 합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넥타이부대가 합류하자 7년간의 신군부 독재는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초혼(첫 결혼)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는 데다 결혼이라도 해주면 다행이지만, 90년대까지는 보통 20대에 결혼했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 독재에 대한 저항은 후배들에게 맡기게 되는 구조다. 그런데 기성세대 생활인들이 합류했다? 얘기가 달라진다. 참, 그러고보니 과거 팔레비 왕조가 무너질 때에도 상인들이 합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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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을 휘갈겨대기 전까지, 하메네이 정권은 무력진압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시위대 측에 대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신정독재 체제는 대화의 상대일 수 없었다. "지금 시위를 해산하면 죄를 묻지 않고 한국 돈으로 몇 만원씩 줄게" 독재세력의 죄업은 이미 이 정도로 퉁칠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어갔다.

 

더군다나, 신정독재 청산 없이는 이란의 미래도 없다. 열심히 공부해 봐야 우리에 갇혀 있으면 돼지 신세다. 지적인 국민이면 뭐하는가? 빵도 사먹을 수 없는데. 거기다 이란 국민 입장에서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다. 이 기회가 10년 후에 다시 올지, 아니면 '웨이팅 타임'이 40년이 될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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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테헤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출처 - 연합뉴스 (링크)

 

하메네이 정권은 애저녁부터 국민의 적이었다. 순순히 물러나면 혁명으로 청산당한 반동이다. 어차피 악당이다. 실패한 악당이 되는 것보다는 성공한 악당으로 남는 편이 낫다. 발악하다 실패해도 똑같은 실패다. 어차피 쌓은 죄업이 산더미인데, 산의 고도를 조금 높이는 일에 불과하다.

 

하메네이의 유혈 진압, 아니 학살은 전략적으로 당연한 수순이다. 더군다나 시민을 학살하며 발악하면 시간을 번다. 시간을 벌어서 나쁠 게 뭔가? 트럼프만 아니라면... 침공의 도덕적 명분을 충분히 얻은 미국이라는 변수만 없었다면, 이란 시민혁명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으리라.

 

3

한국은 20세기에 시민혁명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매우매우 특이한' 역사를 갖고 있다. 왜 20세기 이후의 혁명은 힘든가. 전근대에 백성이 들고 일어나면 왕조가 멸망했다. 중국은 민란이 벌어지면 왕조가 교체되었으며, 동학농민운동은 조선의 산소호흡기를 끊어 버렸다. 관군은 농민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없었다. 프랑스 시민혁명 역시도, 시민은 일원화된 지휘통제 체제도 없이 각 지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났지만 중앙정부는 힘을 쓰지 못한 채 왕과 왕비가 처형당했다.

 

전근대에는 백성이 손에 쥔 죽창과, 관군이 든 칼과 방배의 격차가 거기서 거기다. 물론 화약무기가 있었지만, 20세기의 열병기처럼 인체의 위력과 극단적인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시민혁명 당시 파리의 여인들은 정부 소유의 대포를 끌고다녔다. 바로 그 포에 맞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수십 수백의 여인들만으로도 '화력'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은 조선제 화포에 굴복하지 않았다. '현대적 무기'인 미제 개틀링 건에 무너졌다.

 

그러나 지금은? 죽창이 화염병으로 진화하는 사이 조총과 똥포는 탱크, 미사일, 전투기로 진화했다. 막스 베버의 정의대로,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국가가 독점하는 폭력의 근간은 군대다. 이제 시민은 물리력의 차원에서 고급무기체계를 독점한 정부를 결코, 결단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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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수 있겠다. 네팔은 매우 특수한 경우로 카트만두의 지정학적 위치를 봐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에 기사와 방송으로 충분히 설명했다. (네팔 난리통의 근본 원인 - 링크) 방글라데시는? 역시 시민이 군부를 이기지 못했다. 군부는 어부지리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시민이 부패한 총리를 쫓아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권력공백이 생기자 군부가 나라를 삼켰다.

 

시민은 군대를 못 이긴다.

 

4

87년 혁명과 박근혜, 윤석열 탄핵을 경험한 한국인의 눈에는, 테헤란이 시위 인파로 가득한 영상을 본 시점에서 하메이니 정권은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국인의 탄생>에서 한국이 자력으로, 그것도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에 성공한 이유는 한국인이 조선인의 후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선인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말이다.

 

조선은 호메이니-하메네이 정권이 내미는 종교,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체제의 정당성을 종교가 담당하는 체제를 벗어난 인문주의 국가다. 현대 한국인이 조선 성리학을 아무리 욕해도, 성리학은 인문학이다. 조선문명은 도덕을 인간이 기록한 기록문명이다. 우리는 500년을 이렇게 살았다.

 

한국인에게 선악은 인간이 판단하는 것이며, 인간의 상식적 감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대중의 여론이 정한 역사적 평가는 역사에 기록된다. 역사에 죄인으로 기록되는 일은 종교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일과 같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죽었을 때 이승만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군부독재정권은 단지 권력자가 권력을 이용해 권력을 지킨다는 '본질'을 쉬이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저항하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숱한 용공조작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용공조작사건은 잔인하고 비열하지만, 그 근원을 보면 적어도 피해자를 빨갱이로 만들지 않고서는 탄압의 도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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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일당은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극비사항으로 만들었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곳은 한국이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군사독재정권조차 그 도덕성이 드러나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당사자들도 이해했다.

 

"너네 이제 애들도 패 죽여?"

 

진실이 드러나자, 철옹성같던 독재정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결코 전두환이 착해서 물러나준 게 아니다(그럴 리가 없잖은가). 역사가 종교의 경전이 되는 나라에서는 민중의 여론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

 

한국과 같지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한국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란, 미얀마, 칠레, 아르헨티나,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그렇다. 과거의 이란 얘기를 하자면 팔레비 황제는 군부가 호메이니 편을 들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권좌를 잃었다. 그래서 시민이 '자력'으로 '혁명'에 성공해 '정권'을 수립하는 그런 낭만적인 일은, 말 그대로 낭만이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계속)

 

 

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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