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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석유산업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자신의 고용 상태 외에도 혼자 몸집을 불리며 영구기관처럼 멈추지 않고 잘 구르는 적립식 투자 자산 증식 방법을 포기하게 만드는 또 다른 여러 장애물이 있다. 나의 경험에 비추면 의료비용, 주거비용, 교육비용이 덩치 큰 장애물들이다. 가계부에서 세 가지 항목을 지금의 반 정도로만 줄일 수 있어도 내가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아진다.

 

아버지는 1924년 생이셨고 나는 그의 나이 마흔여섯 살에 태어났다. 내가 30대 중반일 때 노인성 치매로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던 아버지는 2년가량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다 돌아가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의사와 치료 시설을 갖춘 요양병원 비용이 요양원 비용보다 더 많이 든다. 당시에는 장기 요양 보험 같은 것도 없었다. 국민건강보험이 제공하는 의료비 지원이 전부였다.

 

고지식으로 정신 무장이 철저하셨던 아버지는 신기할 정도로 생활력이 빵점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긴 유산은 젊은 시절 아버지 사진 몇 장, 그리고 도대체 왜 아버지께서 갖고 계셨는지 모를 노무현 대통령의 해마루 법률사무소 변호사 명함이 전부였다. 그 흔한 은행 계좌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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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30대 중반인 나와 내 동생이 간병에 필요한 모든 경제적 부담을 져야 했다. 다행히 나의 벌이가 당시 도시 근로자의 평균 임금보다 훨씬 많았던 덕에 2년의 간병 비용으로 빚을 지는 일은 없었다. 대신 그 기간엔 저축이나 투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도시 근로자의 평균 임금 정도를 벌고 있었다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실 수 있었을까? 강남은 아니지만 서울 안에 대출을 낀 아파트 한 채와 몇 년 불입해 온 종신보험이나 적금이 가진 재산의 전부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많지도 그렇다고 아주 없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의 가계 경제 규모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수입이 적고 모아 놓은 재산의 규모가 적다면 당연히 치료 시설을 갖춘 요양병원이 아니라 요양원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용도 더 드는 요양병원을 선택하면 더 많은 빚이 생기고 가진 재산을 모두 소모할 수 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2000년 초 요양원은 생명의 존엄이 너무 희박한 곳이었다. 내 눈에는 범죄자를 수감하는 감옥보다 요양원이 더 비인간적이었다. 비장애인의 편익을 위해 장애인 불편을 당연시하는 삐딱하고 편협한 공동체 의식이 구체화된 현장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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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하며 고집불통이며 지식인 꼰대로 무장한 경상도 남정네가 아버지였던 탓에 성장기 시절을 거치며 아버지라는 단어는 내 가슴 속에서 건드리기만 하면 부서지는 바싹 마른 화석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의식과 행동이 퇴행하는 아버지는 일거수일투족 나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 갔고 내 마음에는 자식에게나 쏟을 내리사랑 같은 애정이 생겨났다. 그렇게 생기가 돌고 빨갛게 꽃망울을 터뜨린 애정은 아버지를 더더욱 요양원에 모실 수 없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요양병원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어정쩡한 나의 경제 규모가 요양원 대신 요양병원을 향하는 비합리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어렵게 모은 목돈을 깨고, 종신보험도 해지하고 은행 것이나 다름없는 아파트를 담보로 더 많은 빚을 내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요양 기간이 실제 기간이었던 2년보다 길어졌다면 내 수중에는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수익과 빚을 가리지 않는 복리 마술은 나를 개인 파산의 길로 떠밀었을 것이다.

 

고개 넘어 고개

 

2000년 초만 해도 나 같은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부모 모두 만혼이었고 첫째인 나를 낳으신 나이도 당시 보통 가정에 비해 매우 늦었다. 하지만 점점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초혼 연령도 늦어지고 있다. 2000년과 2024년까지 24년 동안 초혼 연령은 매년 조금씩 늘어 30세에서 33세가 되었다. 합계출산율은 계속 떨어지는 반면 40대의 초산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최근 연구들은 40대 초산 증가를 여성의 경력 단절이나 경제적 이유를 고려한 여성의 전략적 선택으로 추정한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건 간에 부모 자식 간의 나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이고 일상적이지 않았던 내 경우가 이제 일상적인 경우가 되어가고 있다는 소리다.

 

부모가 노후에 자녀의 도움 없이 자신의 돌봄 비용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재산을 갖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늦은 출산은 결과적으로 돌봄으로 발생하는 자녀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한다. 내 경우처럼 다행히 빚이 늘지 않더라도 쥐꼬리만한 재산을 소진하고 마음 편히 투자로 전용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장기 요양 보험 신청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통계는 치매뿐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 고령화 사회로 이행하는 대한민국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증가 추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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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0만 명 이상 장기 요양 인정자가 생긴다. 현재 우리나라 1년 사망자 수는 36만 명 정도 되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 총가구의 50%에 1명 이상의 돌봄 환자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연명 치료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여러 사회적 여건을 고려하면 이런 추정은 전혀 무리한 추정이 아니다.

 

거기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일이 아버지만으로 끝나라는 법은 없다. 어머니, 내 아내의 부모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 최근 비교적 젊은 65세 미만에게서 발생하는 치매인 초로기 치매의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질병에 걸린 가족 구성원을 돌보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나눌 형제가 많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나 2018년 합계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돌봄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가족 간 부조로 완화할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 가구에서 경제적 중추인 가장이 병마와 싸우고 있다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부모 돌봄과 자기 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늘지만 노동 시간과 노동력 상실 때문에 가계 소득은 줄게 된다. 2025년 서울회생법원이 발행한 통계 조사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개인 파산자 중 16.47%가 의료비 지출 증가가 파산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파탄 원인을 묻는 문항은 중복 답변이 가능했다. 따라서 제시된 답변 항목 중 파탄의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될 수 있는 소득 감소, 사업 실패, 생활비 지출 증가 등 일반화한 문항을 제외하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원인 중에는 의료비 지출 증가가 1위를 차지했다. 투자 실패나 사기 피해(13.5%)보다 높았다.

 

장기 적립식 투자의 복리 마술이 나만 비켜가는 또 다른 이유는 놀랍게도 나를 포함한 가족의 건강이다. 신체적 질병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호박을 멈추게 하고 점점 커지는 스노우볼도 깨지게 만든다. 호박을 멈추고 스노우볼을 깨고 그 대신 나의 빚에 복리의 마술이 걸릴 가능성을 높인다.

 

어라, 개인 문제가 아니네

 

우리는 건강과 치료를 개인적 사건과 운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주팔자나 점을 보러 본인의 질병 문제를 묻기도 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가급적 많은 보험을 들어 언제 닥칠지 모를 건강 위험에 대비하려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처럼 산업화한 사회 혹은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큰 비용을 투입하는 질병의 목록을 보면 과연 현대 질병이 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성질의 것인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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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대한민국 사망 원인 중 80%가 만성질환이다. 만성질환은 고혈압, 당뇨, 뇌혈관 질환, 심혈관 질환, 악성 신생물이라 불리는 암, 알츠하이머, 간질환 등이 포함된다. 최근 의학계는 만성질환의 원인이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인간이 현대에 구축한 산업 사회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해석하는 추세다. 석유산업 자본주의로 인간이 향유하는 편익에 필연적으로 딸려 오는 1+1 공짜 상품인 셈이다.

 

거대 인구가 밀집해 사는 대도시 생활 환경과 그에 따른 각종 오염, 과도한 당 섭취를 유발하는 초가공 식품과 각종 식품 첨가제의 대사 교란, 신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제한하는 노동 환경, 신체의 에너지 소비를 초과하는 편중된 영양 공급과 에너지 공급, 심지어 인간관계의 단절이 죽음을 부르는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원인을 하나씩 끼워 맞추다 보면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난 200년 간 건설한 현대 사회-경제 체제가 된다. 석유산업 자본주의가 인류의 경제적 부흥과 동시에 전 지구적 기후 위기를 불러오는 양날의 칼인 것처럼 개인 의료 비용의 증가는 의료 산업의 성장과 개인 삶의 질 저하를 동시에 가져온다. 의료 비용의 증가로 줄어드는 가처분 소득은 도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질병의 연쇄 사슬이라는 덫에 빠뜨린다.

 

우리나라 GDP대비 경상 의료비(국민이 한 해 동안 보건의료를 위해 지출한 최종 비용)도 2022년도에 OECD 평균 수준인 9.4%(한국 KDI 수치, 국가누리집의 발표는 8.8%)를 넘어서며 꾸준히 증가했다. 언뜻 이런 의료 비용의 증가가 고령화되는 인구 구조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는 의료 서비스와 재화의 공급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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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한국개발연구원의 2025년 통계 분석 보고에 따르면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 증가의 76.7%가 가격 요인으로 설명된다고 한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인구 구조의 변화나 수요 증가보다 의료 서비스나 재화의 공급 가격 상승이라는 경제적 요인이 진료비 지출 증가의 주된 기여 인자라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대개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이 늘고 가격이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의료 시장에서는 수요도 늘고, 공급도 늘며, 동시에 가격도 오르는 현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보통 대체재가 없는 필수재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꼭 필요한데 대체품이 없는 필수적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은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우리처럼 국가가 의료 산업의 가격 결정에 강력히 개입하는 경우 이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잘 안 보인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덮고 의료 산업을 순전히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가격 요인이 의료비 지출을 견인하는 경제적 메커니즘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현대 의료 산업의 경제적 메커니즘이 눈에 들어와야 현대 질병을 개인사적 맥락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맥락 안에서 좀 더 입체감 있게 조망할 수 있게 된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명망을 얻어야 하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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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현재 의료 서비스와 재화, 보험, 제약 및 바이오산업 등을 망라한 의료 관련 산업은 이미 우리나라 명목 GDP 대비 14.9%를 차지하는 중추 산업이 되었다. 신성장 산업이라는 이름표도 단지 오래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의료 산업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석유산업 자본주의의 무한 성장 공식으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 산업의 수요 증가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환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내 주위에 환자가 하나둘씩 늘게 되면 대한민국의 의료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선진화된 산업 사회에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만성질환의 창궐은 정확히 현대 의료 산업이 석유산업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영리 산업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욕구가 시장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시장은 수요자의 욕구가 아니라 공급자의 노련한 상술이 만든다. 전문용어로 마케팅이라고 부르는 기업 행위다.

 

고혈압을 예로 들어보자. 세계적으로 고혈압의 경계치는 지속적으로 내려와서 지금은 정상 범위의 수축기 혈압은 120mmHg, 확장기는 80mmHg가 기준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40/80mmHg으로 보다 높았다. 고혈압은 만성질환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고혈압 환자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혈압강하제를 처방하는 것도 근본적 치료가 되지 못한다. 왜 내 심장이 더 센 압력으로 피를 뿜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또한 다소 높은 듯한 나의 혈압이 신체 이상의 증상인지 아니면 표준 범위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선천적 체질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높은 내 혈압을 놓고 이런 고민과 상담을 하는 의사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고혈압의 기준 경계치가 낮아지는 것을 의료 산업의 마케팅 기법으로 의심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혈압강하제가 더 많이 처방된 것 말고는 경계치 강화로 개선된 지표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이다. 표준 고혈압 치료의 경계치인 140/80mmHg에 맞춰 처방하고 치료를 하다 보니 실제로 사망자 수가 늘어나서 경계치를 강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조군 임상 시험을 해서 상대 위험 감소(Relative Risk Reduction)를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고혈압의 치료를 위한 표준 경계치를 조정했다. 기존 표준 치료 기준이었던 140/80mmHg을 유지할 경우 사망할 확률이 1.41%지만 강화된 기준 120/80mmHg로 치료하면 1.06%로 낮아졌다. 둘 사이 상대적 사망률의 차이는 27%가 된다. 이 차이를 상대 위험 감소라고 부른다.

 

1.4%와 1.06%의 상대적 차이가 27%인 것은 맞지만 전체 표본을 기준으로 발생한 확률의 차이는 0.35%밖에 되지 않는다. 표본 수가 커지면 0.35% 차이도 사망자 수로는 눈에 띄는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2025년 대한 고혈압 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 수는 1,30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치료받은 사람은 1,125만 명에 이른다. 치료받았다는 것은 혈압강하제를 처방받았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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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강화된 경계치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0.35%의 차이로도 무려 2만 8천 명의 생명을 잃지 않게 되었다니… 현대 의학의 위대함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1년 사망자 수는 35만 명 정도 된다. 이 중에서 고혈압을 직접 원인으로 사망하거나 고혈압과 직접 관련이 있는 심혈관/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을 모두 합쳐봐야 6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 1.06%의 사망 위험을 가진 강화된 경계치 치료를 해도 1년에 적어도 10만 명 이상이 고혈압으로 사망할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표준 경계치 치료를 했을 때나 강화 경계치 치료를 했을 때나 고혈압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유의미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환자만 늘고 치료 약만 많이 팔렸다. 덕분에 득을 본 것은 병원과 제약회사다. 반면 기준이 바뀌는 바람에 우리는 정상인이었다가 졸지에 꾸준한 구독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되었다. 최근 유행하는 구독 모델의 원류는 사실 의료 산업에 있었다. 어쩌다 보니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은 현대 의료 산업계의 성장 비결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속담이 되었다.

 

통계청이 집계한 우리나라 치료 목적별 의약품 소비량을 봐도 영리사업으로 변모한 의료 산업의 실상이 확인된다. 만성질환과 관련된 대부분의 치료 약 사용량이 지난 10년 새 1.5~2배 증가했다. 만성질환뿐 아니라 최면제, 진정제, 항우울제와 같은 정신 의학적 치료를 위해 쓰이는 약물의 사용량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늘었다. 이런 약의 소비량을 보고 있으면 병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강한 사회는 제약회사나 병원 같은 의료 산업에는 지옥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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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바이오산업, 제약회사, 생명보험사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면 나는 지금 골골거리는 인류 미래에 배팅하고 있다는 소리다. 의료 산업은 나의 포트폴리오 안에서는 투자 수익을 올리는 효자 종목일지 모르지만 일상에서는 내 가처분 소득을 갉아 먹는 좀과 같은 존재가 된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이며 이중적 산업이 또 있을까?

 

직업 중에는 절대 돈과 권력이 아니라 명망을 쫓아야 하는 직업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소임을 맡은 의사가 그런 직업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의료 산업은 애초에 현대 석유산업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 경제체제에 편입되면 안 되었다. 섞이지 말아야 할 것에 섞인 순간 가장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괴물이 되었다. 의료 재화와 서비스는 주거와 관련된 부동산 재화와 마찬가지로 시장 경쟁 경제체제에서 분리되어 공익적 가치만 부여받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느리고 힘들어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급하게 받는 수술, 먹는 약이 우리 몸을 치유하고 회복하지 않는다. 의료는 우리 몸이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명의가 아무리 암에 걸린 부위만 깨끗이 도려내도 우리 몸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면역 체계를 정비하지 못하면 암은 쉽게 재발하고 우리는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모든 생명이 가진 몸은 환경과 신체의 상당한 변화에도 어지간하면 신진대사의 균형을 유지하며 몸을 안정된 상태로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의료의 소임은 그런 환자의 자기 치유력을 잃지 않게 돕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는 환자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피를 뒤집어쓰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쉬지 않고 CPR을 하는 거룩한 의사의 모습을 시장 경쟁 경제체제 안에서 괴물이 된 의료 산업에 오버랩해서 보면 안 된다. 감상적으로만 보면 우리의 시야가 흐려지고 정말 지켜야 할 본질적 가치를 놓치게 된다. 우리의 투자 기회도 날려 버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계속>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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