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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역의 보스는 누구인가

 

1

우리 한 번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보자. 부패한 왕실에서 나쁜 왕을 배출했다. 나랏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요인을 찾아서 뿌리를 추적해보면 죄다 왕의 탓이다. 만악의 근원인 임금과 왕정을 끝내기 위해 민중이 일어섰다. 그리고 결국 왕을 쫓아내고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이란 1979_01.webp

 

현실은 냉혹하다. 20세기의 역사는 매우 높은 확률로 이렇게 수립된 공화국이 전보다 훨씬 엉망이 된다는 사례로 가득하다. 공산주의 운동가들이 민중의 지지를 얻어 타락한 갸넨드라 국왕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수립한 네팔을 보라. 왕정이 차라리 나았다.

 

첫째, 구관이 명관이다. 어쨌거나 일정 기간 이상 국가를 경영해 본 구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 처음 국가 행정을 맡아 본 신세력은 뭐가 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일에 숙련되기도 전에 부패하기 시작한다.

 

둘째, 왕이 제멋대로일 때 나라에 도둑은 하나였다. 왕실이 커봐야 하나의 가문일 뿐이다. 그러나 혁명세력의 일원이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면 나라에 도둑은 수백 수천명이 된다. '나는 차관급이나 4급 공무원 정도의 생활수준을 위해 부패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없다. 모두 각자 왕처럼 살고 싶어한다. 애들이 자라면 부와 권력을 세습하기 시작한다.

 

(이 경우에는 네팔처럼 선거제도가 정상화된 나라가 외려 더 쉽게 실패국가가 된다. 선거를 통해 자리를 차지한 뉴페이스들이 똑같이 해먹어야 하니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도둑이 늘어난다. 이런 점에서만큼은 차라리 이란이 낫다. 이란의 신정독재가 워낙 막장이라서 논외이긴 하지만...)

 

팔레비 황제는 독재자였지만 개발독재자였고, 국가발전에 진심이긴 했다. 그의 개혁개방과 경제개발로 실제로 이란은 꽤나 가시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를 몰아내면 발전이 가속화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국가발전이란 건 시궁창에 쳐박힌 채 썩어들어간 지 오래고, '혁명세력'의 아들딸은 미국의 최고급 저택에서 슈퍼카를 바꿔 타며 SNS를 명품으로 도배질한다. 그들은 모두 이란의 차기 장차관, 지자체장, 기관장이다. 아버지가 그랬든 지들도 자리를 물려받을 거니까. 이번 시민혁명이 실패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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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그려진 팔라비 왕조 시대의 이란 국기를 들고 있는 시위대

 

이란 시위 현장에 제국 시절 국기가 나부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관이 명관이며, 수천의 도둑보다 하나의 도둑이 낫고, 황제는 애국심이 있었지만 혁명 1세대의 후손들은 이란이라는 빵덩어리를 파먹으려 몰려든 개미떼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이 특이할 뿐이다. 외국은 우리처럼 특수하지 않다.

 

2

만약 팔레비 왕조가 여전히 이란을 통치하면, 즉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아니라 아직도 페르시아 제국이라면 중동의 맹주는 누구일까. 지금처럼 사우디아라비아일까? 원래대로라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의 상대가 안 된다. 이란인은 높은 교육열과 학력, 근면함 등 국민수준의 질에서 사우디를 쉽게 추월한다. 인구는 사우디가 3,300만에 불과한 반면 이란은 9,200만이다. 1970년대 기준 이란 사회의 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사우디와 비교 불가한 정도였다.

 

석유는 어떤가. 세계 석유 매장량 순위는 베네수엘라-사우디-캐나다-이란 순이다. 헌데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끈적끈적한 중질유로 처리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 캐나다 석유의 상당량은 오일샌드로, 상품화 과정이 중질유보다 더 귀찮은 물건이다. 자원 가치가 가장 높은 경질유만 보자면 사우디 바로 다음이 이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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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경제 (링크)

 

그런데 미국은 1974년 사우디와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구축했다. <석유는 달러로 구매한다>는 체제다. 이 시스템은 US달러의 가치와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하는 근본 토대다. 그 대가로 사우디는 중동의 맹주 자리를 얻었다. 이슬람의 최상위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어서는 아니다. 사우디 왕실이 미국의 '간택'을 받아서다. 당연히 다른 아랍/이슬람 국가들은 사우디의 맹주 자리를 억지로 인정하면서도 뒤로는 대놓고 고까워한다.

 

'미제 놈들에 착 들러붙어 떵떵거리며 사는 주제에 맹주라니...'

 

사우디 왕실이 누리는 한없는 부와 권력은 미국이 파트너로 삼아준 은혜 덕분이다. 바로 그 때문에 미국은 사우디를 선택했다. 사우디의 국가 수준이 낮기 때문에.

 

사우디에도 헌법은 있다. 그런데 그 헌법이 다름아닌 <꾸란>과 <순나>다. (순나는 무함마드의 행적이다) 아니 그럼 세부적인 통치는? 고민할 게 뭐 있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근거한다. 이 나라의 기본통치법에는 다음 구절이 적혀 있다.

 

"통치권은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압둘라흐만 알-파이살 알-사우드의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에게만 부여된다."

 

즉 국가의 통치권과 소유권이 왕조에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애초에 나라 이름 자체가 '사우드 왕조의 아랍 국가'란 뜻이다.

 

따라서 미국에게 사우디아라비아는, 입헌군주국이자 고속 성장중이었던 이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트너십을 맺기 좋은 상대다. 워낙 후진적이므로 국민주권이라든지, 민주주의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없다. 왕실과만 계약하면 된다. 벼락부자 일가족에게 무한한 부를 보장해주는 것 따위, 달러의 패권과 세계의 에너지 지배권을 유지하는 데 지불하는 값으로 너무나 싸다. 주변 토호국의 군주들이 덩달아 떼부자가 됐지만 그건 걔네 복이다. 오일머니는 두바이쫀득쿠키처럼 달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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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 왕세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링크)

 

그리고 1979년 혁명의 결과, 이란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의 친미 왕실이 떵떵거릴 때 미국은 이란을 제재하고 고립시키면 그만이었다.

 

3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금액으로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는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지배권을 포함한 '패권'이다. 중국이 중남미에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면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곳이 바로 베네수엘라다. 왜 중국은 귀찮은 끈끈이 중질유에 그토록 집착했나. 석유를 위안화로도 결제할 수 있기 위해서였고, 장기적으로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해체할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두로 생포는 중국의 욕망에 대한 미국의 답이었다.

 

"이 구역의 보스는 나야."

 

"그런데 꼭 중남미만 그런 건 아니고, 생각해보니 세계가 다 내 구역인 거 같아."

 

이란이 깨어나면 미국이 구축한 '중동 질서'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더 나아가 미국의 에너지 지배권이 흔들리고 달러 패권이 위협받는다. 이란의 존재는 미국에게, 미국 중심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이란의 신정독재는 미국에게 달달한 두쫀쿠였다. 신정독재는 이란의 발전을 스스로 가로막아 주는데다가, 미국이 이란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해 고강도의 제재를 가하는 기가 막한 핑계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란이 민주화된 정상국가가 되는 데 성공하면, 미국은 과연 무슨 핑계로 이란의 성장, 아니 대폭발 가능성을 지금까지처럼 억누를 것인가?

 

미국은 이란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척 해왔다.

 

하지만 지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미국이야말로 호메이니-하메네이 신정독재체제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런데 이란이 덜컥 민주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어쩐단 말인가. 여기서 트럼프의 뻔한 빌드업이 나온다.

 

"하메네이 네 이놈! 정의로운 민주 투사들을 해친다면 내가 미군을 보내 가만두지 않겠다!"

 

그렇다. 혹여 시민이 자력으로 민주화에 성공해 이란이 국민의 힘만으로 성장하면 미국에 위협이 된다. 그러기 전에 미군을 보내 알박기를 해 두어야 한다. 깃발을 꽂은 미군은 웬만해선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특히나 석유가 나오는 땅에서는 유난히 엉덩이가 무거워진다. 미국은 어째선지 석유가 매장된 나라에 있어서만큼은,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해주고 싶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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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주주의는 개뿔. 이란의 석유가 세상 밖으로 흘러넘치게 될 수도 있다면, 페트로달러 시스템에 묶인 채 흘러야 할 뿐이다. 자,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트럼프는 심형래 캐롤을 불러제끼는 중이다.

 

썰매를 타고~ 달릴까아 마알까아

미군을 보내~ 조질까아 마알까아

 

좋게 말하면 전략적 모호성, 까놓고 말하면 일진의 기분성이다. 마두로는 조졌다. 하메네이는? 하메네이도 모르고 해찬들 고추장처럼 하메네이 며느리도 모른다. 마복림 할매...가 아니라 트럼프는 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란의 민주화가 좌절되면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현상유지되니 좋다. 그런데 이란의 원전에까지 빨대를 꽂으면 더 좋다. 이란인들이 자력으로 시민혁명에 성공할 가능성을 미리 뿌리뽑는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너무나 좋다. 단, 베네수엘라에 한 것마냥 그림처럼 성공한다는 조건 하에서.

 

마지막으로 이란 국민의 입장이 난처하다. 지난 편에서 말했듯 현대에 시민혁명은 정권과 군대가 봐주지 않는 이상 거의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라 안에서 혁명이 성공하려면 군대가 이탈해 민중의 편에 서야 한다. 이대로라면 미군의 도움 없이는 신정독재를 끝장낼 수 없을지 모른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어디까지나 국익을 위한 계산이고, 이란 국민의 미래 따위 수첩의 맨 끝에도 적혀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신정독재가 너무도 사악한 나머지, 미군의 침공(혹은 군사원조)이 이란인의 숨통을 틔워 줄 것도 사실이다. 만약 미군이 성공한다면, 그나마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척이라도 할 줄 아는 미국이 이란 국민에게 전보다 나은 정부를 제공할 것이다.

 

주권을 훼손당하는 편이 정의에 가까운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역사의 질곡이 이란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는 진정 끔찍한 비극이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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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이란 대사관 앞에서 시위 중인 시위대
출처 - AFP/ALJAZEERA
(링크)

 

 

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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