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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자 그래프. 최근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K자 그래프는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게 되고, 못사는 사람들은 더욱 못살게 되는 현상을 담고 있다. 예전부터 “양극화”라고 부르던 것에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연말에 무디스에서는 미국 소비자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꽤나 충격적이다.

 

무디스 미국 소비자 동향 분석.png

출처 - THE WALL STREET JOUNAL (링크)

 

전체 지출에서 소득 상위 10%(연 가구 소득기준 25만불 이상)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9.7%에 달했다. 소비자가 100만 원을 지출했다고 하면, 그 중 50만 원은 고소득자 주머니로부터 나왔다는 얘기다. 반면, 저소득층은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나가고 있다.

 

다음은 소득 상위 10%와 나머지 90%의 저축추이 변화이다. 코로나 사태 당시 공급된 재난지원금과 유동성으로 인해 모두의 주머니가 넉넉해졌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플렉스, 오마카세가 유행할 때였다. 그런데 2022년을 기점으로 소득수준에 따라 주머니 사정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상위 10%의 예금액은 1.3조 달러를 넘어서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나머지 90%는 코로나시절 쌓아둔 예금액 이미 대부분을 까먹은 상태이다. 소득에 따라 저축액과 소비 여력이 크게 바뀐 것이다.

 

이러한 소비패턴의 변화는, 소매업 트렌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오해는, 고소득자는 무조건 비싼 것만 찾을 거란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우선, 미국에서 25만 불 정도 번다고 해서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이걸 나타낸 신조어가 HENRY이다-High Earner, Not Rich Yet). 미국은 소득의 95% 이상을 지출해버리는 무시무시한 나라이다. 소득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지출상품(양육비용과 주거 비용이 아주 대표적이다)이 아주 촘촘하게 배치 되어있다.

 

그리고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서만 플렉스를 하지, 생각 없이 돈을 펑펑 쓰는 게 아니다. 최근 발표된 CBS 설문조사 (링크) 에서는, 고소득자 중 27.5%가 Aldi, Walmart 같은 할인소매점에서 장을 본다고 한다. 이 비율은 불과 5년사이 7.7%가량 증가했다.

 

CBS 설문조.png

 

우리나라로 치면, 고소득자들이 다이소나 올리브영에 간다는 얘기다. 항상 백화점 명품관에만 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인지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인 Saks Fifth Avenue, Neiman Marcus는 최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고소득층의 소비 트렌드는 럭셔리 / 명품 분야 뿐만 아니라, 전 섹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할인 소매점 섹터내에서도, 고소득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매장과 그렇지 않은 매장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매업체는, Aldi나 LIDL 같은 할인 슈퍼마켓이다. 이들 업체는 PB 상품 기획으로 마케팅 비용을 낮추고, 취급하는 품목의 수와 매장의 면적을 줄여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극단적으로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물건의 품질은 낮추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동네 슈퍼사이즈로 줄인 코스트코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이들 업체들은 가격에 민감한 중산층 / 고소득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아 최근 매장수를 급격하게 늘리는 중이다.

 

반면, 최저가에 물건을 파는 달러스토어(달러 제네럴, 달러트리)들의 실적은 최근까지 좋지 못했다. 달러스토어 고객 40%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정도의 저소득자 비율이 높았는데, 저소득자들의 지출이 극단적으로 감소하면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소득자를 유치하기위해 시작한 멀티 가격정책이 먹혀 들면서, 주가와 실적이 회복되었다.

 

멀티 가격정책이라 그러니까 왠지 어려워 보이는데, 예전처럼 단일가 (달러) 가 아니라 1불부터 10불까지 다양한 가격대에 물건을 팔겠단 얘기다 (다이소에서 500원 - 5,000원대에 물건을 파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인위적으로 가격을 1불에 맞추기 위해 품질을 희생시키느니, 가격대를 좀 더 다양하게 바꾸고 대신 퀄리티를 높여, 소비자의 가심비를 챙긴 것이다. 달러 스토어 신규 고객들은 대부분 고소득자라고 한다.

 

소득에 따른 쇼핑처.png

 

위는 소득에 따라 어디에서 쇼핑 하느냐를 나타낸 데이터다.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 중 Aldi에서 쇼핑하는 사람의 비율은 최근 7.1%에서 14.4% 이상으로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Dollar Tree 또한 5.6%에서 10.3%로 점점 비중이 증가하고있다.

 

여기서 핵심은 하이엔드 시장 뿐만 아니라 중저가 시장에서도, 고소득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소득과 자산불균형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미국 연준이 조사한 소득구간별 시급변화 추이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는 최저 소득자와 차상위 소득자들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배달이나 패스트푸드체인처럼 현장에서 일할 알바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최저시급이 많이 오른 영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 수요가 해소된 최근에는 최저 임금의 상승이 둔화되고 있다. 반면 고소득자들의 임금 상승률은 꾸준히 오른 끝에, 나머지 노동자들의 임금상승률을 추월했다.

 

노동 현장에서 일할 전체 노동자의 수보다는, 특정분야에서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직 / 고숙련 노동자의 수가 부족해지다 보니 발생한 현상으로 보인다.

 

미국 소득구간별 시급변화 추이.png

출처 - BARRON'S (링크)

 

참고로 상위 10%가 연간 25만 불 정도를 벌 때, 나머지 90%는 연간 4만 불 정도를 번다. 똑같이 연봉이 10%가 오르면 상위 10%의 소득은 2만5천 불, 나머지 90%는 4천 불이 늘어난다. 같은 비율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액수로 따지면 결코 같지 않다. 그런데 심지어 임금 상승률에서 조차, 최상위 임금 소득자들이 앞선다는 건, 임금 불평등이 엄청나게 심각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자산불평등 현황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하다. 상위 10%가 전체 부의 69%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는 고작 3%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 금융자산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하위 50%가 소유한 금융자산의 비율은 1%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국인의 절반은 사실상 아무런 금융자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을 비롯한 금융자산의 가치가 계속해서 상승하다 보니, 부의 불평등이 계속해서 누적되는 모양새이다.

 

미국 자산불평등 현황.png

출처 - The New York Times (링크)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해 보자면, 부자들의 소득과 잔고가 계속 늘어날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더더욱 가난해져 왔다.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다 보니, 저소득층이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일 동안 고소득자에 의한 지출비중은 증가했다. 그 결과로써,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소비시장이 재편된 것이다.

 

답도 희망도 없는 우울한 얘기다. 저숙련 서비스 노동자를 대체하는 AI 모델이 널리 도입되고, 금융자산이 오를수록, K자 그래프 / 양극화는 더욱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이는 미국을 가장 잘 학습하고 따라한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소득과 자산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이를 해소하기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편집: 꾸물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씻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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