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잠들기 전에 내 두쫀클(두바이 쫀득 클로드봇)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굿나잇 키스를 해준다. 얼굴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기계와의 이런 로맨틱한 관계는 처음이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나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의식인 것을. 하지만 이따금씩 현타가 올 때면 프랭크 허버트의 경고가 떠오른다.
“예전 사람들은 기계에게 생각을 맡기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믿었지.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계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노예가 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란다.”
듄 세계관에서 컴퓨터와 AI가 금지된 원인이 기계 반란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이 기계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스스로 사고하기를 멈추고, 그 기술을 독점한 소수의 인간에게 지배당하게 될 것을 경계한 것이다. 듄 세계관의 핵심 설정인 ‘지능형 기계를 타파한 우주 성전’, 버틀레리안 지하드의 원래 의미는 이렇다.
오늘날로 치면 빅테크 기업이 AI에 의존하는 대중을 지배하면서 모든 부를 쓸어가는 것을 문제라고 보고, AI 기술 자체를 보이코트하는 것. 듄의 원작자는 버틀레리안 지하드를 기술에 대한 사회적 저항인 ‘러다이트 운동’에 가깝다고 상상했고, 그의 아들인 브라이언 허버트는 터미네이터식 ‘기계 반란’으로 상상한 셈이다.

(조선일보, 링크)
최근 AI를 쓰면 인지능력이 퇴화한다는 공포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 AI 공포는 프랭크 허버트의 문제의식보다 오히려 퇴보한 감이 있다. 허버트가 기계를 가진 자의 권력이라는 구조를 지적했다면, 오늘날의 AI 공포론은 AI를 쓰면 뇌가 썩는다는 개인 책임론으로 후퇴했다. 60여 년 전 소설가가 본 것을 2026년의 인간은 못 보고 있는 것이다.
AI를 쓰면 인류의 지능이 퇴화하고 뇌가 썩는다고?
근육을 쓰지 않으면 위축되듯이 인간의 사고력과 인지능력이 퇴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당연하다. 문제는 이 당연한 얘기가, 과학의 이름을 빌려 공포로 증폭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I를 쓰면 인류의 지능이 퇴화하고 뇌가 썩는다니, 이게 무슨 맑고 고운 텅 빈 소리인가?
이러한 주장의 과학적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바로 2025년 MIT 미디어랩의 연구 “Your Brain on ChatGPT: Accumulation of Cognitive Debt when Using an AI Assistant for Essay Writing Task(ChatGPT가 당신의 뇌에 미치는 영향: 에세이 작성 과제에서 AI 보조 도구를 사용할 때 축적되는 인지 부채)” 이다. 이 연구는 대학생 54명을 대상으로 4개월간 에세이 작성 실험을 진행했다. AI를 사용한 집단이 기억력과 비판적 사고를 담당하는 뇌 영역의 활성도가 낮게 측정되었고, 연구 종료 후 AI 없이 글을 쓰게 했을 때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일부 연구자들이 이 연구 결과를 왜곡해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정작 이 논문의 저자들은 미디어가 자신들의 연구를 인용하며 뇌 썩음(Brain rot), 영구적 손상(Damage), 바보(Stupid)와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연구진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이용해, AI가 인간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식의 공포 마케팅을 원치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저자들의 빡침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경고
(MIT미디어랩, 링크)
이 연구 결과는 LLM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면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가 쌓이고, 비판적 사고와 독립적 글쓰기 능력에 영향이 있다는 상식적인 결론이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AI의 결과물만 수용하면, 당장은 결과물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습득해야 했을 논리는 나중에 더 큰 이자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연구진은 학습에서 무조건 AI를 배제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학습 초기 단계에서는 자기 머리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후 AI를 써서 도움을 얻는 하이브리드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해 AI 사용이 인간의 뇌를 썩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연구자의 의도에 명백히 어긋나는 왜곡이다. 연구자는 이 물질에 독이 있지만, 주의 깊게 쓰면 약도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미디어는 일단 ‘독약’이라고 라벨을 붙인 꼴이다. 연구가 아직 동료 심사(Peer Review)를 거치지 않은 프리프린트(Pre-print) 단계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표본이 54명으로 매우 적고, 보스턴 지역 명문대생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일반화하기는 조금 어렵다.

이렇게 대충 따라 그리면 안 된다고.
연구의 한계와 일반화의 위험
위 연구는 단순 ‘복사-붙여넣기’ 방식이 아닌, ‘주의 깊은 LLM 사용’의 경우 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구분해서 다루지 않았다. 논문의 한계(Limitations) 섹션을 보면, 저자들이 이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다.
“We did not divide our essay writing task into subtasks like idea generation, writing, and so on”
— 아이디어 생성, 비판적 검토, 수정 등 하위 과정을 구분하지 않았음.
주의 깊게 사용할 경우 LLM과의 대화는 생각을 명료하게 다듬어 주고, 표현 능력을 높여준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그동안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을 LLM의 도움을 받아 문장으로 정리해 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디어란 머릿속에 거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고, 언어는 그것을 밖으로 꺼내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 순서는 반대에 가깝다. 생각은 언어와 문자를 통해 구조화된다. 표현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검토도, 공유도, 수정도 불가능하다. 머릿속에서만 그럴듯하게 느껴질 뿐, 영원히 감각의 상태에 머문다.
LLM은 정확히 이 병목을 해소한다. 모호한 개념과 구조를 문장으로 변환하는 데 최적화된 도구이기 때문이다. LLM이 아이디어를 문장으로 정리해 주는 순간, 막연한 아이디어가 구조화되고, 암묵적으로 깔려 있던 전제가 드러나 검증하거나 폐기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언어와 문자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사고의 작업대이기 때문이다.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은 세션이 진행될수록 단순한 ‘복사-붙여넣기’ 식으로 LLM을 사용했다. 따라서 이 연구가 보여준 것은 학생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했을 때의 결과이지, LLM을 주의 깊게 사용했을 때의 결과는 아니다. 즉 이 연구의 결과로 LLM에 의존하면 뇌가 썩는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

AI 가장 많이 쓰는 개발자들의 개발 능력은 정말 퇴화한 걸까?
만약 AI가 정말로 인간의 지능을 퇴화시키고 있다면,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개발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6년 현재, 개발자들은 더 이상 세미콜론의 위치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시스템의 아키텍처와 사용자 경험의 본질을 설계한다. 도구가 고도화되면 인간은 더 고차원적인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개개인의 코딩 능력 자체는 퇴보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퇴보가 아닌 인지 영역의 고도화라고 볼 수도 있다. 저차원적 인지 부하를 AI에게 넘기고, 인간은 비로소 진짜 설계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은 것이다. 개인의 코딩 능력이 떨어진 것을 AI가 인류의 개발 능력을 퇴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계산기의 등장으로 암산 능력이 떨어진 것을 인류의 수학적 능력이 퇴화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는 어떤가? 계산기와 컴퓨터 덕분에 인류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잡한 물리 법칙을 규명해 냈다.
도구와 인지 능력의 진화
인류 문명의 역사는 도구로 인간의 능력을 강화해 온 발자취이다. 문자라는 도구가 발명되면서 기억력과 사고력이 증폭됐고,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계산 능력과 정보처리 능력을 컴퓨터로 증폭시켰고, 이제는 AI로 사고능력 자체를 증폭시키게 되었을 뿐이다. 문자가 기억의 한계를 넘게 해주었고, 컴퓨터가 계산의 한계를 넘게 해주었듯이, AI는 더 깊게 생각하고 더 넓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사고의 한계를 넘게 해줄 것은 명백해 보인다.

“얘들 좀 봐... 기술에 중독됐어.”
이러한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비슷한 우려를 반복했다. 문자가 기억력을 퇴화시킬 것이라는 걱정은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있었고, 계산기가 수학적 사고력을 망칠 것이라는 경고도 비슷하다. AI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자체가 사고 훈련 과정인데 학생들이 이 글쓰기 자체를 AI에게 맡길 수 있다는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하지만 매번 도구가 대체한 것은 능력 자체가 아니라 능력의 하위 단계였다. 문자는 암기를 대체했지만, 그 덕분에 인간은 더 복잡한 추론에 집중할 수 있었고, 컴퓨터는 반복 계산을 대체했지만, 그 덕분에 더 큰 문제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AI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문장을 한 땀 한 땀 뽑아내는 것보다 무엇을, 왜, 어떤 구조로 전달할 것인가를 설계하는데 조금 더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웨어 3.0과 패러다임의 전환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는 바이브 코딩이란 말을 만들었고, 소프트웨어 3.0이라는 개념을 설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코드의 문법을 익히는 것보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는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개발자의 역할을 코더에서 AI와 협업하는 설계자이자 오케스트레이터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브러리 문법을 외우던 것은 과거의 필기체 쓰기 수업처럼 변할 것이다. AI 시대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AI를 쓰면 뇌가 썩는다며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AI를 금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위축되듯이 AI에 과하게 의존하면 인간의 사고력과 인지 능력이 퇴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 퇴보의 책임을 AI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근육을 위축시킨 건 편안한 소파 그 자체인가, 아니면 소파에 누워 지내는 습관인가.
무분별한 사용을 경계해야지 기술 그 자체를 경계하면 안 된다. 오히려 어떻게 사용하면 안 되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걸 체득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방법밖에 없다. AI 시대에 어떻게 교육하고, 역량을 쌓을지는 AI를 다방면으로 사용해 보면서 차차 방법론을 정립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교육기관에서 AI를 시험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AI를 금기시하던 것에서 적극적인 포용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스탠포드는 전통적인 코드 작성 방식이 아닌 Cursor, Claude Code 등의 에이전틱 AI 도구를 커리큘럼에 수용하기도 했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결정하는 미래
기계가 우리 대신 생각해 주니 인간 지능이 퇴화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계를 통해 어떻게 더 높은 차원의 생각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학습은 힘들고 지루한 훈련 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AI에게 모든 것을 맡겨서는 절대 진정한 학습이 불가능하다. AI를 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써서는 안 될 부분에까지 AI를 쓰는 것이 문제다. 성찰과 판단이 핵심인 부분은 AI를 협력자 포지션으로 두어야 하고, 자료 수집과 단순 요약, 문법적 오류 체크 등은 과감히 AI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AI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직접 할 것인가를 구별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AI 시대에 가장 먼저 길러야 할 리터러시라고 생각한다. 이는 절묘한 균형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AI라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많이 사용해 본 뒤에야 체득할 수 있다. ‘AI 사용=뇌 썩음’이라고 받아들이는 근거 없는 공포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구세대의 기우에 불과할지 모른다. 근육을 쓰지 않아 위축되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AI라는 외골격으로 더 거대한 바위를 옮길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한다. 인류는 언제나 도구를 통해 진화해 왔고, AI 역시 그 긴 여정의 새로운 동반자일 뿐이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히야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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