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인도, FTA를 타결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가장 굳건한 동맹이던 유럽과 21세기 중국이 부상한 이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국가 중 하나였던 인도가 서로 손을 잡았다. 거대한 두 개의 시장이 FTA를 타결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니다. 본 기사는 이 판에 숨겨진 의미를 디벼보려 한다.

자유무역협정을 마무리하고
세 정상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안토니오 코스타 유럽정상회의 의장,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폰 데어 레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출처-<Atlantic Council>
두 가지 질문
유럽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25년간 이뤄지지 못하던 유럽연합과 남미 4개국(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의 FTA(자유무역협정)가 타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연합과 인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었다.
유럽연합-인도의 FTA 협상은 지난 2007년도에 시작되어 무려 20여 년만에 타결된 것이다. 이에 국내·외 언론들은 이번 협정으로 약 20억 명의 세계 인구와 세계 GDP의 약 25%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게 되었다고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FTA를 이끈 유럽연합과 인도 세 정상의 발언을 보면, 어째 경제 분야 협력에서 할 법한 발언이 아닌 것 같다.
한번 그 발언을 보자.
“이번 정상회의는 세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다.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At a time when the global order is being fundamentally reshaped), 유럽연합과 인도는 전략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함께 서 있다.”
-안토니오 코스타 유럽정상회의 의장-
“세계 질서가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turmoil in the global order)에서 EU와의 파트너십이 국제 체제의 안정성을 강화할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두 거인의 ··· 협력은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는 최선의 해답(the best answer to global challenges)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폰 데어 레이엔 유럽집행위원회 위원장-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1. 20년 만에 타결된 유럽연합과 인도의 FTA는 왜 이 시점이었을까?
2. 세 정상은 왜 경제 분야 협력과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했을까?
자유무역협정의 표면적 내용들
여러 외신 보도를 종합해 보면, 21세기 초부터 인도는 보호무역이 강한 국가였다. 이제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기록하고 있는 인도는 오랫동안 방대한 국내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무역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반면, 유럽연합에게 인도는 대규모 경제와 엄청난 속도로 경제 성장하고 있는 시장으로서 자유무역을 맺어 진출하고 싶은 중요 목표 중 하나였다. 이에 유럽연합은 인도와 2007년부터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연합과 인도의 견해 차이는 좁히기 힘든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유럽연합이 강조하는 지속가능성, 노동권 보호 강화 요구와 같은 제도는 인도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인도가 요구하는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등은 유럽연합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유럽연합과 인도의 FTA
출처-<금융경제플러스>
영국 가디언은 지지부진하던 이들의 협상은 2022년 재개되었고 최근 6개월 사이에 급진전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인도 정부는 이번 협정과 관련해 Fact Sheet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실제 협상이 타결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실용적인 제도 구축을 제시한다.
즉, 자유무역이지만 한 번에 모든 분야를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협상 과정에서 서로 타협하기 힘든 분야의 경우는 일정 시간 시간적 여유를 두면서 점진적으로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90% 이상의 상품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거나 철폐하게 된다.
이러한 실용적인 접근을 통해 20년 만에 타결에 이른 이번 자유무역협정으로 유럽연합과 인도는 각각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먼저, 유럽연합은 이번 협정으로 무역액 기준 약 96.6%의 품목에서 관세가 사라지거나 인하되어 2032년까지 대인도 수출이 2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기간에 비용 절감 비용만 연간 약 40억 유로(약 6조 8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의 경우는 유제품, 곡물 등 민감한 산업 분야를 보호하면서도 섬유, 의류, 차, 커피, 향신료, 보석 등에서 상당한 수출 확대뿐 아니라 고용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유럽연합과 인도의 FTA는 경제 분야 협력답게 상호 간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효과를 실제로 거두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은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와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의 비준 과정을, 인도 또한 국내 비준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이 비준 절차까지 마쳐야 FTA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까진 오케이!
그렇다면,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런 경제 협력에서 왜 세 정상 “세계 질서” “글로벌 도전” 같은 워딩을 썼을까. 그리고 20여 년간 지지부진했던 FTA는 왜 지금 시점에 이뤄졌을까.
출처-<AFP>
트럼프가 낳은 유럽연합과 인도의 FTA
다수의 언론은 이번에 FTA 협상이 급진전된 배경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와 중국의 제조업 독점 등 공급망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관세 올려~!
조금 더 근본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유럽연합과 미국의 갈등을 살펴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조는 유럽과 미국의 ‘대서양 동맹’(Atlantic Alliance)에 기반하고 있었다. 1, 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의 폐허가 된 유럽은 미국의 경제원조인 마샬플랜과 군사동맹인 나토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다.
동시에 미국은 이 유럽의 부활 없이는 냉전 시기 소련을 견제할 수 없었다. 유럽과 미국은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소련이 붕괴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이 대서양 동맹은 더욱 굳건한 국제질서의 근간이 되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이 대서양 동맹은 트럼프의 등장 이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 미국은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에 지나치게 안보적으로 기대고 있다며 각국의 국방비 인상을 노골적으로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고율 관세라는 무기는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지며 상시로 휘둘러졌다. 경제는 물론 군사안보적으로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던 유럽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2018년 G7 정상회의 당시,
유럽의 정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르켈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팽팽히 맞섰다.
트럼프는 1기부터 유럽과 갈등을 빚었다.
출처-<연합뉴스>
최근 트럼프 2기의 미국은 더욱 노골적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그린란드 사태다. 덴마크 땅을 무작정 달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에 법, 제도, 규범, 관습 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100년 가까이 만들어 놓은 대서양 동맹의 신뢰는 사라지고 있다.

트럼프가 SNS에 올린 이미지
트럼프가 그린란드에서
성조기 깃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의 이미지다.
표지판에 ‘그린란드-미국령 EST. 2026’이라고 적혀 있다.
출처-<트루스소셜 캡처>
다음으로 인도와 미국의 갈등을 살펴보자.
인도는 유럽에 비해 미국과의 신뢰가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중국이 부상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미국에게 인도는 유럽보다도 더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은 모든 외교의 총력을 유럽도, 중동도 아닌 아시아-태평양으로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 외교 노선이 바로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이다.

출처-<한겨레>
특히 바이든 행정부 이후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의 핵심 외교 전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인도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은 필리핀-대만-한국-일본을 통해 막고,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것은 인도를 통해 막고자 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필리핀, 대만, 한국, 일본은 오랫동안 동맹국으로 이미 상당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만, 인도는 상대적으로 신뢰가 부족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인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쏟아부었다.

헤이~ 브라더~
출처-<AP>
어렵게 구축한 신뢰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날아가 버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6월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추천 요구다. 트럼프는 오랜 군사적 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파키스탄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 대가로 파키스탄과 인도에 대놓고 자신의 노벨평화상 추천을 요구했다. 이 요구에 파키스탄은 응했지만, 인도는 거부했다.
트럼프는 인도를 용서할 수 없었다. 트럼프는 곧장 관세라는 무기를 휘둘렀는데, 미국에 들어오는 인도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무려 50%까지 부과해 버렸다. 당시 이 수치는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인도는 더 이상 미국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트럼프의 50% 관세를 비판하는
인도 뭄바이의 한 예술가
출처-<헤럴드경제>
이번 FTA의 핵심은 정치적 협력이다
트럼프는 20세기 이후 미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유럽을, 21세기 이후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인도를 차례로 내팽개쳤다.
미국을 중심에 두고 관계를 맺던 유럽과 인도는 이제 미국이 낳은 불신 때문에 미국을 배제하고 서로를 찾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유럽연합과 인도의 FTA 협상 타결을 이해해야 하며, 동시에 체결한 또 다른 형태의 외교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데, 유럽연합과 인도는 이번 FTA와 동시에 상호 간 안보·방위 파트너십(Security and defense partnership)을 체결했다. 탈냉전 이후 국제관계에서 전략적 동반자관계(strategic partnership)라는 외교 행태는 활발하게 체결되고 있지만, 안보·방위 파트너십은 다소 생소하다. 실제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 홈페이지에서는 이것을 ‘유럽연합이 비유럽 국가와 상호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체결하는 양자 간 관계(bilateral relations)로, 새로운 형태(new framework)’라고 정의하고 있다.
2024년 유럽연합이 몰도바와 체결한 것이 첫 사례다. 그러면서 유럽이사회는 유럽연합이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파트너들(like-minded partners)과 이 관계를 구축하지만, 이 관계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non-legally binding)은 아니라고 밝힌다.
2026년 1월 기준, 유럽연합이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는 국가는 총 9개다. 2024년 5월 몰도바를 시작으로 2024년 6개국(몰도바, 노르웨이, 일본, 한국,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과 2025년 2개국(영국, 캐나다), 그리고 2026년 1월 인도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볼 때, 최근 유럽연합이 체결하고 있는 이 파트너십의 특징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양자관계다.
태생부터 다자주의(multilateralism)에 기반한 유럽연합은 국제사회에서 다자주의에 대한 강조를 끊임없이 해왔다. 그런데 이 안보·방위 파트너십은 분명하게 양자관계라고 명시하고 있다.
둘째,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에 체결한 자유무역협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 파트너십은 자유무역협정과 달리 유럽이사회 또는 개별 회원국으로부터 비준받을 필요가 없다. 이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자유무역보다 실질적 효과는 떨어질 수 있지만, 상호 관계는 물론 국제관계에 던지는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의 파급효과는 더욱 분명하다.
셋째, 2024년 이후 유럽연합이 체결한 국가들의 면면이다.
단순히 지역적으로 보면 아시아와 유럽의 국가들이지만, 실제로 보면 대륙을 떠나 모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던 국가들이다. 그 대표적인 게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영국, 아메리카의 캐나다다.
유럽연합이 굳이 이들과 양자관계를 체결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정치적으로 미국 중심의 다자주의를 통해 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이 독자적으로 이들과 안보와 정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인 것이다. 물론 그 실효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유럽연합과 인도의 안보·방위 파트너십이 국제사회와 미국에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라는 점은 이번 파트너십의 내용에서 잘 드러난다.
출처-<로이터>
유럽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연합과 인도는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총 16개의 구체적인 분야에서의 안보·방위 협력을 약속했다. 그 면면을 보면, 해양 안보, 핵 비확산 등과 같은 전통적인 안보 분야와 함께 인공지능(AI)과 여성, 안보 등 새로운 분야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과 인도는 이번 안보·방위 파트너십이 ‘양자관계의 전략적 축’이며, 다양한 안보 개념을 포괄하는 확장된 협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 협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양자는 이번에 EU–인도 안보·방위 대화(Security and Defence Dialogue) 채널을 신설하고, 이 문건에서 합의한 안보 분야를 일회적 선언이 아닌 상시적으로 논의하는 지속적인 협의 구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이번 유럽연합과 인도의 FTA 협상 타결은 FTA라는 경제 분야의 협력 뒤에 숨겨진 정치적 협력의 신호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유럽연합과 인도는 왜 FTA를 체결하면서 이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국제 정치적 함의가 숨겨져 있다.
‘무역 협정이 더 이상 경제 분야만의 이슈가 아닌 지정학적 계약으로 진화했다는 것’
이번에 유럽연합과 인도가 서로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은 ‘FTA = 경제 협정’이라는 전통적 구분은 과거의 등식이며, 경제에서 핵심이 되는 공급망, 에너지, 해양로 등은 정치·군사 안보 사안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적 협력과 안보적 신뢰를 동시에 구축하지 않고는 더 이상 경제적 관계조차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유럽연합과 인도에 각각 안보적 신뢰를 내팽겨치면서 유럽연합과 인도가 서로를 찾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27일 유럽연합과 인도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은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협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협력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협력의 배경은 지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국제정치의 근간을 트럼프가 흔들면서 시작된 것이다. 즉, 이번 유럽연합과 인도의 FTA 협상 타결은 그 디테일을 살펴보면 트럼프의 미국이 야기한 국제정치의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에 대한 유럽연합과 인도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kuy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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