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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슈퍼볼, 하프타임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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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엔 슈퍼볼이라는 행사가 있다.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미식축구의 프로 리그 결승전으로, 미국인들에게 슈퍼볼이 열리는 날은 비공식 국경일과 같다.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삼대가 거실에 둘러앉은 모습, 한국에선 흔치 않은 장면이지만 미국에선 이런 가족 행사가 매년 열린다.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한 손에는 팝콘을 든 채 시청하는 모습을 미드에서 한 번은 본 적 있을 거다. 그때 이들이 시청하던 프로가 아마 NFL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슈퍼볼이 미국에서 얼마나 큰 이벤트냐. 평균 시청자 수가 1억, 슈퍼볼 중간중간에 송출되는 광고가 30초당 평균 700만 달러에 달한다. 한화로 계산하면 약 100억을 넘나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물론,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조회수와 비교하면 그닥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할 수 있지만, 단시간에 이 정도 조회수와 시청률을 끌어내는 '스포츠 엔터 산업'임을 고려하면 이로 인해 얻는 광고 수익과 영향력은 그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슈퍼볼 행사의 절정, 바로 하프타임 쇼다. 원래 경기 전반전이 끝나고 관객들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으로 주어지는 일종의 인터미션이었다. 그런데 1993년, 마이클 잭슨의 공연 이후로 하프타임 쇼의 세계관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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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치어리딩이나 마칭밴드 수준의 음악 공연이 진행되었다면, 마이클 잭슨이 슈퍼볼에 등장하면서 슈퍼볼은 팝스타들이 출연하고 싶은 연중행사, 톱스타만 나올 수 있는 곳 혹은 슈퍼볼에 참가함으로써 나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참고로, 마이클 잭슨이 공연한 1993년 하프타임 쇼는 '힐 더 월드', 세상을 치유한다는 테마로 진행되었다. 1992년에 발생한 흑인 폭동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데,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가수를 무대에 세움으로써 흑인과 백인의 화합, 화해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메시지 전달의 무대로도 사용되는 곳이 바로 슈퍼볼 하프타임 쇼다. 올해 이곳에는 히스패닉계 가수가 무대에 올랐다. 인생은 기세가 아닌 타이밍이라 했다. 현재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히스패닉이라는 인종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그가 그의 모국어로 무대 위 모든 시간을 장악한 건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한번 살펴보자.

 

나쁜 토끼(배드 버니)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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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버니가 하프타임 쇼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랐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2020년대 라틴 음악계를 대표하는 팝스타다. 레게, 라틴 멜로디에 강렬한 스페인어로 노래한다는 점이 매력인데, 스페인어 앨범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다. 트럼프가 듣보잡이라고 말한 것과 달리 버니는 미국 본토 음악 시장을 석권한 센세이셔널한 아티스트다.

 

시작부터 트럼프는 심하게 긁혔다. 평소 사회적인 메시지를 거침없이 뱉는 남미 출신의 가수가 미국을 상징하는 풋볼 리그의 하프타임 쇼를 맡게 된다고 하니, 반이민 정책을 밀고 있는 입장에서 썩 유쾌하진 않았을 거다.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행사가 흥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사실 망하길 바람)을 투명하게 내비쳤다. 트럼프의 주문에 따라 극우에선 그 시간대에 다른 가수들로 구성된 하프타임 대안쇼를 준비했다. 물론, 블루칼라 백인들만을 위한 대안쇼는 NFL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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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단체 터닝 포인트 USA에서 추최한 행사 포스터

 

배드 버니는 월드 투어를 도는 와중에도 미국 본토에서의 공연은 잡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 입장을 표명한 거다. 그런 버니가 이번 한 번만 미국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지난 9월에 헤드라이너로 선정되면서부터 이날만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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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버니의 공연은 대단했다. 공연 전부터 나와 나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던 버니의 말대로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역사가 시작되는 사탕수수밭에서 걸어나왔으며, 고향 상인들의 시장 풍경을 재현하고, 자본주의가 응축된 공간인 슈퍼볼 경기장과 상반되는 수수하고 서민적인 자신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번 연출에서 하이라이트는 전봇대 퍼포먼스다. 공연 후반부에 등장하는 댄서들이 전신주에 매달려 춤을 추는데, 이는 푸에르토리코에 만연히 발생하는 정전 이슈를 표현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대응과도 연결되어 있다. 노후화된 전력망에 대해 미국 정부는 지원을 약속했으나 실제적인 원조는 이뤄지지 않아 거의 1년 동안 정전 상태에서 주민들이 지내야 했다는 아픔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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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했다. 물론, 이번 공연에 대해 미국 안에서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NFL은 미국인을 위한 쇼인데 스페인어를 사용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입장과 슈퍼볼이 미국을 넘어 세계의 행사로 나아감을 보여주었다는 입장이다.

 

한국 극우는 이 공연을 어떻게 봤을까? 조선족이 나와서 중국어로 노래한 꼴이니 버니의 무례함에 얼마나 미국인들이 화가 났을지 모르겠다는 댓글이 보인다. 애초에 미국과 한국은 출발점부터 다른데, 단순히 타국에 정착한 외국인이 자기 언어로 노래하는 행위로 보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본래 미국은 이민자들이 정착해 만든 다민족 다문화를 스까놓은 멜팅팟 국가다. 그러한 정체성을 가졌음에도 이민자 커뮤니티에 대한 정당성 없는 혐오와 탄압을 보여왔다. 그런자들 덕분에 버니의 공연은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공연에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느낀 사람이 자초한 일이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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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을 위한 공연이면 영어로 하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다. 그 말도 맞다. 영어를 일단 국제 공통어로 쓰기로 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인을 위한 공연은 꼭 영어로 해야 되는 법이 있나? 따지고 보면 지구상엔 영어를 쓰는 사람보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훨 많다.

 

그리고 영어로 하든 스페인어로 하든 모국어가 아닌 이상 공연 그 자체를 즐길 뿐이지 알아듣고 자시고는 관계없다. 영어 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이번 공연 영상에 '싫어요'를 누른 미국인의 입장이다. 라이브 시청자 수가 1억을 넘어서는 국경 없는 문화 공유의 현장에서 어떤 인종만을 위한 공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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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에서 공연한 샤키라 역시 영어 버전과 스페인어 버전 두 가지로 음원을 발매했다. 콜롬비아 출신 라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글로벌 팝 시장 공략까지 이뤄내려는 전략이다. 왜 하필 배드 버니의 공연에 대해서만 이리 불편한 자들이 많았을까. NFL이 너무 소중해서 미국 내에서만 즐기는 자기들만의 행사로 독점하고 싶은 마음인가. 트럼프의 초침과 버니 헤이터들의 훼방에도 그러든가 말든가 배드 버니의 하프타임 쇼 공연 영상은 하루만에 현재 6000만이 넘는 조회수가 나오고 있다.

 

다섯살 라틴 보이와 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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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는 유쾌한 방식을 택했다. "투게더 위 아 아메리카" 문구가 새겨진 공을 들고, 공연 중간에는 "갓 블레스 아메리카" 또 "칠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모든 아메리카에도 축복을"을 외치고, 전광판엔 '증오보다 강력한 건 오직 사랑'이라는 문구를 띄웠다. 국적 불문 인류가 하나될 수 있는 공통의 언어, 음악 속에서 버니는 사랑과 화합을 호소했다. 관객들은 거리 시위에서 외치는 직접적인 구호 대신 음악과 메타포로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공연에 녹아 들었다. 미국에서 단 한 번의 공연, 배드 버니의 절치부심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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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버니는 슈퍼볼에서 5살짜리 라틴 보이에게 본인이 수상한 트로피를 건넨다.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유산을 물려준다는 퍼포먼스다. 여기서 등장한 아이가 ICE에 붙잡혔던 그 아이와 동일한 아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실은 배우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피해 아동을 떠올리기 충분한, 성공적인 캐스팅이었다. ICE에 끌려간 5살 아이에게, 그 아이의 부모에게, 희생된 시민들에게, 트럼프의 폭주에 분노하는 전 세계인에게 버니의 퍼포먼스는 위로가 되었다.

 

 

사족.

버니의 공연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어쩌라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개쩔었다고 본다. 시작부터 흥이 나면 사실 끝난 거 아닌가?

 

 

기사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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