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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 법률 대모험_700.jpg

 

프롤로그: 명품은 주인을 알아보는 법(이라 믿었다)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을 기억하시는가. 딴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기를 끌었던, 안경닦이의 분자 구조부터 믹스커피의 역사까지 파헤치며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과 소비 욕구를 동시에 자극했던 그 전설의 시리즈 말이다.

 

3년 전, 나는 홀연히 사라졌다. 독자들은 “와인 밀수하다 잡혀갔다”, “돈까스와 술로 성인병 엔딩을 맞았다” 등 온갖 추측을 내놓았다.아무튼, 나는 돌아왔다. ‘법률 대모험’이라는 더 살벌한 간판을 달고. 그동안 로맨스 스캠을 당해 일본인 미녀(인 척하는 아저씨)에게 마음을 뺏기고, 조 단위 미술품 사기에 휘말려 멘탈이 털렸지만, 내 통장 잔고는 여전히 ‘공허(Void)’ 그 자체다.

 

원고료 입금은 요원하고, 배는 고프다. 나는 집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3년 전 소비 대모험 연재 당시, 내 영혼을 팔아(사실은 딴지의 계좌를 팔아) 샀던 ‘샤토 라기올(Château Laguiole) 그랑 크뤼 와인 오프너’를.

 

이게 어떤 물건인가. 프랑스 장인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라는 나무를 깎아 손잡이를 만들고, 등에는 나폴레옹의 상징인 벌(Bee) 문양을 새겨 넣은, 오프너계의 롤스로이스 아니던가. 당시 24만 9천 원을 주고 샀는데, 지금은 환율과 품귀 현상으로 35만 원을 호가하는 귀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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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에서 리뷰하던 당시의 사진

(딴지일보, 링크)

 

“눈물을 머금고 판다. 이걸 팔면 성북동 돈까스 투어를 할 수 있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중고 거래 앱을 켰다.

 

 

1. 성북동 돈까스 3대장 순례와 쿨거래의 함정

 

[판매] (소장용) 샤토 라기올 그랑 크뤼 오프너. 베르사유 나무 핸들. S급.

가격: 150,000원 (급처합니다. 네고 사절)

 

30만 원짜리를 15만 원에 던졌다. 올린 지 3분이나 지났을까? ‘띠링’ 알림이 울렸다.

 

구매자(닉네임: 매너 온도99도): “와, 라기올을 이 가격에요? 제가 삽니다. 바로 계좌 주세요.”

 

역시 명품은 주인을, 아니 호구를 알아보는 법. 나는 신나서 국민은행 계좌번호를 찍어 보냈다. 1분 뒤, 입금 알림이 떴다.

 

[입금] 150,000원 (보낸 사람: 김철수)

 

깔끔했다. 네고도 없고, 간 보는 것도 없고.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편의점으로 달려가 택배를 부쳤다. 송장 번호를 보내자마자 구매자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답장을 남겼다.

 

통장에 꽂힌 15만 원. 이 돈은 곧 내 위장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나는 곧장 성북동으로 버스를 탔다. 오늘은 날 잡고 ‘성북동 기사식당 돈까스 3대장’을 순례할 예정이니까.

 

첫 번째 집인 금왕돈까스에서 얇고 넓게 펴진 한국식 돈까스를 썰어 풋고추에 쌈장을 찍어 먹었다. “크으, 이거지.” 두 번째 집 서울돈까스에 가서 생선까스로 입가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오박사네돈까스에 들러 정식까지 해치웠다. 배는 터질 것 같고, 통장엔 아직 돈이 남았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내가 씹고 있는 게 돈까스가 아니라, 내 금융 인생의 마지막 만찬이었다는 것을.

 

 

2. 경제적 사형 선고: “왜 카카오뱅크까지 안 열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전날의 과식으로 부은 얼굴을 문지르며 출근길에 나섰다. 해장을 위해 편의점에 들러 ‘돈까스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습관처럼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삐-익.”

 

알바생이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손님, 거래 정지 카드라고 뜨는데요?”

 

“에이, 그럴 리가요? 어제 돈 들어온 거 있는데.”

 

“아뇨, 진짜 정지래요. 다른 카드 없으세요?”

 

등골이 서늘해졌다. 주머니를 뒤져 신용카드를 꺼내 줬다. 결과는 마찬가지.

 

“승인 거절. 도난 분실 및 거래 정지 카드.”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나는 황급히 폰을 꺼내 주거래 은행인 국민은행 앱을 켰다. 로그인 화면 대신, 붉은색 경고창이 내 안구를 강타했다.

 

[알림] 해당 계좌는 전기통신 금융사기(보이스 피싱) 신고가 접수되어 지급정지 되었습니다.

 

“뭐? 보이스 피싱? 어제 그 15만 원 때문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이제부터였다.

 

“국민은행이 묶였으면 카카오뱅크에도 돈이 있으니까 쓰면 되지.”

 

나는 카카오뱅크 앱을 켰다. 접속 불가. ‘비대면 거래 제한 대상자’라는 팝업이 떴다. 설마 하는 마음에 토스를 켰다. 먹통이었다. 우리은행? 로그인조차 안 된다. 심지어 증권사 계좌까지.

 

내 명의로 된 대한민국의 모든 금융 창구가 닫혔다. 신고당한 건 국민은행 계좌 하나인데, 금융 전산망은 나를 ‘금융 테러리스트’로 인식해 버린 것이다. 마치 도미노처럼, 내 모든 자산이 디지털 감옥에 갇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내가 가진 현금은 차에 있는 동전 몇 개뿐.

 

당장 차에 기름도 넣을 수 없고, 점심 사 먹을 돈도 없다. 아니, 지금 당장 목말라 죽겠는데 헛개수 하나 살 수 없는 금융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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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D 코리아, 링크)

 

 

3. 악마의 속삭임: “돈 내놓으면 풀어 줄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내 폰으로 텔레그램 메시지가 도착했다.

 

(알 수 없음): “불가사리님, 계좌 싹 다 묶인 거 확인하셨죠? ㅋㅋ

 

국민은행만 막힌 게 아닐걸? 다른 은행도 다 안 되죠? 그거 풀려면 경찰서 가서 조사받고, 은행 가서 서류 내고, 이의제기하고... 최소 3개월은 걸릴 텐데, 생활비 없어서 어쩌나?”

 

피가 거꾸로 솟았다. 놈들은 알고 있었다. 이 시스템의 허점을.

 

(알 수 없음):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지금 당장 내 다른 계좌로 200만 원 보내면 보이스 피싱 신고 취소해 줄게. 30분 준다. 안 그러면 님 신용불량자 되는 거야.”

 

이건 단순한 사기가 아니었다. 인질극이었다. 놈들은 내 라기올 오프너를 먹튀한 것도 모자라, 내 금융 생명을 담보로 2차 몸값을 요구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200만 원? 큰돈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 나갈 카드값, 관리비, 대출 이자는 어쩌나? 계좌가 묶이면 연체는 확정이고, 신용등급은 나락으로 갈 텐데. 차라리 눈 딱 감고 200만 원 보내서 푸는 게 이득 아닐까?

 

“그래, 똥 밟았다 치자. 3개월 동안 거지로 사느니...”

 

내 손가락이 떨리는 마음으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돈 좀 빌려달라고 하려던 찰나, 누군가 내 뒷덜미를 거칠게 낚아챘다.

 

 

4. 박기태 변호사의 등판: “그 돈 보내면, 넌 공범이야!”

 

익숙한 뱃살의 중량감. 박기태 변호사였다. 그는 마치 돈까스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내 폰을 낚아채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안경을 추켜올리며 소리쳤다.

 

“불가사리님! 미쳤어요? 여기에 돈을 왜 줍니까! 주는 순간, 님은 피해자가 아니라 ‘범죄 수익 은닉 공범’ 확정이에요!”

 

“아니, 변호사님! 지금 내 모든 통장이 다 막혔다고요! 내가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라기올 오프너 팔았는데 왜 내가 죄인이냐고요! 대한민국 법이 원래 이래요?”

 

박 변호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칠판(갑자기 어디서 가져온 거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정하세요. 이건 전형적인 ‘3자 사기’와 ‘통장 협박(통협)’이 결합된 수법입니다.”

 

[박 변호사의 3자 사기 메커니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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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고객센터, 링크)

 

1. 사기꾼(C): 불가사리(B)에게 라기올 오프너 산다고 함. 동시에 다른 피해자(C)에게는 투미 가방 판다고 속임.

2. 피해자(B): 사기꾼(C)의 말에 속아, 가방값 15만 원을 불가사리(A)의 계좌로 입금함.

3. 사기꾼(C): 불가사리로부터 오프너를 꿀꺽함.

4. 피해자(B): 가방이 안 오자 경찰과 은행에 불가사리(A)의 계좌를 신고.

5. 결과: 은행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불가사리의 계좌를 즉시 동결. 그리고 금융 전산망은 불가사리를 ‘요주의 인물’로 찍어 전 금융권 비대면 거래 차단.

 

“불가사리님은 15만 원 벌려다가 지금 대포통장 명의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겁니다.”

 

“그럼 저놈한테 200만 원 주면 풀리는 거 아니에요?”

 

“천만의 말씀! 저놈은 신고자(피해자 C)가 아니에요. 저놈한테 돈을 보내봤자 신고를 취소할 권한이 없어요. 설사 저놈이 직접 돈을 보내고 신고한 놈이라 해도, 돈을 보내는 순간 경찰은 ‘둘이 짜고 돈 나눴네?’라고 봅니다. 오히려 보이스 피싱 공범이 되는 거예요.”

 

 

5. 탈출구는 어디에: “디지털 원시인의 투쟁”

 

“그럼 전 어떻게 해요? 지금 당장 은행 가서 채팅 내역 보여주면 풀어줍니까?”

 

나는 당장이라도 국민은행 본점으로 달려갈 기세로 일어났다. 하지만 박 변호사가 다시 나를 자리에 앉혔다.

 

“어허, 앉으세요. 은행은 수사기관이 아닙니다. 불가사리님이 폰 화면 들이밀면서 ‘나 억울해요!’ 외쳐봤자, 은행 직원은 규정상 안 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겁니다.”

 

“그럼 어쩌라고요!”

 

① 1단계: 경찰서로 가라 (사건사고사실확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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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링크)

 

“제일 먼저 가야 할 곳은 은행이 아니라 경찰서입니다. 가서 ‘사기꾼이 아니라, 3자 사기에 휘말린 피해자’라는 걸 입증하고 고소장을 접수해야 합니다.”

 

필수 서류: 판매 글 캡처, 범인(가오리)과의 채팅 내역, 택배 송장 영수증, 편의점 CCTV 영상(있으면 좋음).

가서 조사받고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발급받아야 해요. 이게 있어야 은행이 불가사리님의 말을 들어줍니다.”

 

② 2단계: 은행에 이의제기 신청 (골든타임)

 

“그 확인원과 증거 자료들을 들고 은행에 가서 ‘이의제기 신청’을 하는 겁니다. 이 거래는 정당한 상거래였으며, 나는 사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거죠.”

 

③ 3단계: 인고의 시간 (오프라인 은행 투어)

 

“이의제기한다고 바로 풀리는 건 아닙니다. 금감원 공고 기간(약 2개월)이 필요해요. 그동안은... 디지털 원시인으로 사셔야 합니다. 돈 필요하면 통장과 도장 들고 은행 창구 가세요. 가서 ‘사기 계좌 명의인인데 생활비 출금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직원의 한심하다는 눈빛을 견디며 수동으로 뽑아 쓰셔야 합니다. 출금은 가능해요. 조금만 가능하겠지만”

 

 

에필로그: 그래도 대모험은 계속된다

 

박 변호사의 말대로 나는 그 길로 경찰서 사이버수사 팀으로 달려갔다. 형사님 앞에서 나는 죄인도 아닌데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선생님.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한테 돈 받고 물건을 보내셨다는 거죠? 보통 확인 안 합니까?”

 

“아니, 입금자명이 김철수인데 제가 김철수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15만 원 들어왔길래 보냈지...”

 

한 시간 넘게 진땀을 빼며 조사받고, 겨우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손에 쥐었다. 이걸 들고 은행으로 뛰었다. 창구 직원에게 확인원과 채팅 내역, 택배 영수증 뭉치를 내밀었다.

 

“이의제기 신청합니다. 저 진짜 억울해요.”

 

직원은 서류를 한참 검토하더니, 전산에 무언가를 틱틱 입력했다.

 

“신청되셨고요. 심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비대면 거래 안 풀립니다. 당분간은 창구 오셔서 출금하셔야 해요.”

 

그 후로 3주. 나는 지옥을 맛봤다.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친구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려 해도 “나 계좌 묶여서 더치페이 못 해”라고 말하면 다들 “너 도박하냐?”라며 피했다.

 

결국 계좌는 풀렸다. 내 거래가 정당했다는 게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그 3주 동안의 스트레스로 나는 폭식을 거듭했고, 성북동 돈까스 투어 때보다 몸무게가 4kg이나 불어났다. (박 변호사 몸매를 따라잡을 지경이다.)

 

이 글을 읽는 딴지 독자들에게 피눈물로 쓴 교훈을 남긴다.

 

1. 입금자명 확인 필수: 판매할 때 구매자 닉네임과 입금자명이 다르면 절대 거래하지 않겠다고 명시해라. “남편이 입금해요”, “회사 이름으로 넣을게요” 다 개소리다.

 

2. 고가 물품은 직거래: 라기올 오프너 같은 명품은 귀찮더라도 만나서 팔아라.

 

3. 내 계좌는 공공재가 아니다: 아무리 급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계좌번호를 함부로 뿌리지 마라. 당신의 계좌가 인질이 되는 순간, 당신의 삶도 멈춘다.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많으며, 내 라기올 오프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사리는 멈추지 않는다. 내 계좌가 다시 열린 기념으로, 오늘은 남산 돈까스를 털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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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마성의 불가사리
자문: 박기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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