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수 있는 군대, 싸우면 이기는 군대가 돼라.”
- 2012년 광동성의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시진핑의 발언
후진타오로부터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넘겨받은 직후, 시진핑이 중국군에게 던진 주문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군대라면 당연히 싸워서 이겨야 한다. 군에 늘상 하던 주문이지만, 당시 시진핑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대만과의 사정, 미국과의 패권 경쟁, 그리고 중국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감안하면, 이 말은 사실상 다음과 같은 선언에 가까웠다.
“너네 지금부터 개혁해야 해. 지금 상태로는 미국이랑 싸워보지도 못하고 박살 나.”
시진핑은 대만이 보이는 푸젠성에서 17년간 근무했다. 이 시기에 인연을 맺은 부대가 바로 31집단군(훗날 73집단군으로 개편)이다. 31집단군은 대만 유사시 선봉에 설 전력이었다. 수륙양용 장갑차 등 상륙작전에 특화된 부대였는데, 이후 이들이 이른바 ‘시군(習軍)’, 즉 시진핑의 친위대 주축으로 발전했다.
2012년 군권을 넘겨받은 직후, 시진핑은 “싸울 수 있는 군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것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미국과 군사적 충돌을 염두에 둔 것인지, 혹은 양쪽 모두인 것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전례 없이 강도 높은 군 개혁에 나섰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링크)
시진핑은 7대 군구를 5대 전구(戰區) 체제로 재편했다. 군구가 지역 단위의 병력 관리 조직이었다면, 전구는 유사시 해당 지역에서 육해공군을 통합 지휘해 실제 전쟁을 수행하는 작전 중심 체제다. 행정형 구조를 실전형 구조로 바꾼 셈이다. 이와 더불어 로켓군을 포함한 군 구조를 개편하고, 수백 명의 고위 장성을 반부패 혐의로 숙청했다. 그리고 자신의 측근 세력인 ‘시자쥔(習家軍)’, 태자당 중에서도 자기 계파로 분류되는 인물을 군부 요직에 앉혔다.
7명 중 5명이 사라졌다
여기까지는 권력자가 군권을 장악하는 과정이라 낯선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반부패를 명분으로 한 숙청은 10년 가까이 이어졌고, 중국군에 대한 이 ‘잡도리’로 어지간한 파벌은 대부분 정리됐다. 군권이 시진핑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개인적으로 장유샤의 숙청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있다. 2025년 6월에 있었던 쉬치량(許其亮)의 사망이다.
2012년, 시진핑이 군권을 넘겨받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에 오른 쉬치량은 시진핑 군 개혁의 실질적 실행자였다. 전구 체제 개편, 육군사령부와 로켓군, 전략 지원부대 창설을 이끌었고, 군 내부 부패 척결 등 주요 개혁을 주도했다. 그러다가 2022년 제20차 당 대회가 열리고 부주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은퇴다.
그리고 2025년, 아침에 조깅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쉬치량 전 중앙군사위 주석
(연합뉴스, 링크)
시진핑의 군 개혁을 이끌었던 사람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다. 베이징은 쉬치량의 죽음을 자연사로 발표했는데, 그 전후로 벌어진 군 내부의 격변을 생각하면 과연 자연사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중국군의 실질적 통수권은 중앙군사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시진핑이 군권을 장악한 이후 위원 수는 11명에서 7명으로 축소됐다. 이때가 2016년이었는데 당시 총참모부와 총정치부, 총후근부와 총장비부까지 4대 총부 체제가 해체되고 중앙군사위 직속 부서로 재편되면서 시진핑의 군 장악력이 강화됐다.
그리고 2022년 20기 중앙군사위원으로 뽑힌 이가 시진핑, 장유샤, 허웨이둥, 리상푸, 류전리, 먀오화, 장성민이었다. 그러나 이후 4년간 한 명씩 쫓겨나게 된다.

(중앙일보, 링크)
특히 시진핑의 측근 그룹인 ‘시자쥔’으로 분류되던 리상푸, 먀오화, 허웨이둥이 제거된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이 시진핑의 측근이 하나씩 제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장유샤와 류전리도 날아갔다.
남은 건 시진핑과 장성민 둘뿐이다. 실제로 2월 7일 퇴역한 군 원로를 위한 중앙군사위 만찬 행사에 시진핑과 장성민 둘만 참석했다. 시진핑 1인의 독재 체재가 구축됐다고 봐야 할까? 중국군을 통제하는 중앙군사위원회는 이제 실질적으로 시진핑 1인에 의해 움직이게 됐다.
왜 하필 지금, 이런 연쇄 숙청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결과만 놓고 보면 한 가지 가설은 힘을 잃는다.
“2027년에 대만과 전쟁을 벌인다.”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27년에 대만을 침공해 ‘하나의 중국’을 이루겠다는 전망은 공공연하게 회자돼 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군 수뇌부 ‘숙청’ 상황에서 대규모 전쟁을 감행하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가 않다.
일각에서는 장유샤 숙청의 배경을 이 대만 침공에서 찾는다. 항간에 떠도는 ‘편지’ 내용처럼, 장유샤가 대만 침공에 반대했다는 해석이다. 그 근거로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의 한 문장을 들고 있다.
“장유샤, 류전리가 ‘당 중앙군사위 주석 책임제도’를 유린·훼손했다.”

장유샤(좌)와 류전리(우)
(인터내셔널포커스, 링크)
이 부분을 두고 장유샤가 시진핑과 대립각을 세웠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그럴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중국군은 특정 인물이 공개적으로 노선을 거스를 수 있는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핵심은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정치적 충돌이 아니라, 중국군이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상태냐는 것이다. 시진핑이 군권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강조해 온 구호는 “싸울 수 있는 군대”였다.
그러나 이 구호가 현실에서 관철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국군의 전력을 갉아먹는 두 개의 큰 장애물이 있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국군이 미군을 상대로 실질적인 승리를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군의 약점 두 가지
첫째, 정치위원(政治委员)의 존재
둘째, 부정부패
중국군의 문제점 중 가장 크게 대두되는 요소가 바로 정치장교, 즉 정치위원의 존재다. 언제나 그렇듯 독재자의 군대는 실전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면서도, 동시에 체제를 위협하는 것 역시 군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재 체제의 군대는 전투력 강화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체제 유지와 함께 쿠데타 방지가 우선 과제가 된다. 다시 말해, 군대에 족쇄를 채운다. 이 제어 장치, 이른바 족쇄의 대표적인 장치가 정치장교다.
중국군에도 ‘정위’라 불리는 ‘정치위원(政治委员)’, 즉 정치장교가 존재한다. 이들은 명목상으로 지휘관을 보좌하지만, 실제로는 지휘관의 독단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구조의 문제는 전시에 드러나는데 지휘권의 분열과 명령의 혼선이나 지체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해군 함정에서 지휘관과 정치위원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의사결정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 함선은 그대로 침몰할 것이다.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현대전에서 지휘 체계의 명확성과 속도는 생존과 직결되는데, 이러한 지연은 치명적이다.
만약 정치위원이 나름의 역할에 충실해서 군 내부의 부패나 부정을 척결하는 데 앞장섰다면 긍정적 평가도 가능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 중국군의 부패 수준은 비할 데가 없다. 조 단위의 돈을 해 먹는 상황에서 군 내부의 자정작용은 기대를 접는 게 맞다.
시진핑은 중국군 개혁의 상징이 될까?
시진핑이 군권을 장악하고 군 장성들을 대거 숙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이유가 있다. 그가 군권을 넘겨받은 직후인 2013년 3월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작금의 국제 정세 속 중국군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당의 지휘를 따르고, 싸워 승리할 수 있으며, 기풍이 우수한 인민군대 건설.”

(연합뉴스, 링크)
이른바 ‘강군몽(强軍夢)’이다. 시진핑은 30만 명 감군이라는 대규모 병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군의 정예화를 시도했고, 2014년 3월에는 중앙군사위원회 산하에 ‘국방 및 군대 개혁 심화 영도 소조’를 만들어 본격적인 군 개혁에 나섰다.
다만 당시 반응은 시큰둥했다. 1952년 이래로 11번째 개혁이었다. 이미 열 번이나 개혁을 했음에도 “또 개혁이냐?”라는 냉소였다. 반복되는 개혁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전임 지도자들과의 차이를 짚을 필요가 있다.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나 장쩌민은 상대적으로 군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사람 모두 군 경력이 없었고, 군 내부 기반도 약했다. 장쩌민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군 인사와 밥을 먹는 등 군을 통제하에 넣지 못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후진타오의 사례는 더 심각하다.
“너네 위성 요격 실험 했더라? 중국 무시했는데 제법이야.”
2007년 중국이 위성 요격 실험을 단행했을 때, 후진타오는 미국 측 인사와의 대화에서 이 사실을 ‘최초로’ 전해 들었다. 후진타오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2011년,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와의 대화는 더 황당하다.
“너네 스텔스기도 만들었더라? 이번에 J-20 시험 비행했다면서? 이거 긴장해야겠는데?”
게이츠의 이 덕담에 후진타오는 즉각 반응하지 못했다. 이 역시 몰랐으니까.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당 주석의 군 장악력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총참모부와 총정치부, 총후근부와 총장비부 4대 부서를 중심으로 당 주석의 군 통수권을 위협했다. 좋게 말하면 자율성의 확대였고 나쁘게 말하면 당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중국군 장교들은 부대 군구급에 오르기 전까지 대체로 한 군구 내에서 승진과 보직 이동을 반복한다. 우리나라 군대처럼 2년 단위로 이리저리 헤쳐 모이는 대규모 순환 구조와는 다르다. 중국군의 이러한 인사 구조는 자연스럽게 지역 기반 인맥과 파벌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결국 특정 군구 출신들이 결속하고, 그 중심인물에게 충성하게 된다. 하나의 군 내부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와 같은 군 경험이 부족한 당 주석이 등장하자, 군이 주석을 패싱하고 무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일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시진핑이 군 개혁에 착수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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