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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의 시작,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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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검찰이 정치적으로 판단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수사와 기소의 선택과 타이밍을 검찰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과거 조국 전 장관과 그의 가족에 대한 수사,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300번이 넘는 압수수색이 대표적이다. 직접 수사를 하기도 전에 기소를 먼저 하는 행위는 검찰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판단했다고 보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하지만 영국에선 이런 정치적 판단이 불가능하다.

 

영국 검사의 결정은 시스템의 일부다. 경찰에서 조사를 마친 사건에 대해 검사가 기소를 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시스템이 요구한 절차의 결과이다. 쉽게 말하면, 검사 개인의 철학이나 성향이 아닌 코드와 기록 검토의 결과물이 결정문이 된다(참고 기사: 링크). 그래서 영국 검사의 권한은 권력이 되지 않고, 그들의 권한은 책임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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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영국 검찰의 권한과 체계에는 여러 차이가 있다. 한국은 검사가 직접 개인의 재량에 따라 기소 판단을 결정하고, 영국은 법적 기준(Code)에 따른다. 한국에선 불기소 결정 여부에 대해 내부 종결이 가능하지만, 영국은 피해자가 언제든 검사의 불기소에 대해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 또한 검사의 비위에 대한 감사도 한국의 경우 내부에서 감사를 진행하지만, 영국은 독립 감사 기관을 별도로 두고 이들이 감사를 시행해 내부적으로 사건을 종결시킬 수 없도록 한다. 한국에선 검사들의 기소 여부에 대한 기록이 비공개지만, 영국은 모든 결정 기록을 공개하고 감사할 수 있다. 결국 한국 검사에게 기소는 권력 행사의 도구가 되지만 영국에선 단순한 행정 절차로 이해된다.

 

사건 배당에 있어서도 체계가 다르다. 한국에선 누가 특정 사건을 맡을 것인지를 두고 권력 투쟁이 발생한다. 영국에선 이러한 싸움 자체가 불가능하다. 시스템에 의해 사건이 자동으로 배당되고 기소 여부는 코드가 결정한다. 그 결과 영국의 검사는 자신을 결정자(decision-maker)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절차 수행자(procedural executor)이며 절차를 완성하는 행정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정의를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정의가 작동하도록 만든 절차를 수행할 뿐이다."

 

영국의 검사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찌 보면 법률가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영국 검사 제도가 채택한 하나의 철학으로서 법의 정의를 개인의 양심에 기대지 않고 절차의 정직함으로 보장하겠다는 믿음으로 귀결된다.

 

영국의 전관 예방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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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영국의 사법 제도에 대해 알아봤다. 특히 서로서로 밀고 당기며 복잡한 법조인 간의 관계 속에서 전관예우가 일종의 관습이 된 한국에 영국의 사법 제도는 분명한 본보기가 된다.

 

판검사에 대한 전관예우와 검사의 기소권으로 인한 권력, 이는 결정권자가 사람일 때 발생한다. 그래서 영국은 기록, 기준, 검토, 감사 등의 절차를 끝까지 요구한다. 영국의 법조인이라고 더 양심적일 리 없다. 전관예우를 할 리가 없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관습이 발현되려는 순간 시스템이 목을 조른다. 제도를 통해 제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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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잠금장치, 정치가 손을 대면 사고가 발생한다. 영국 CPS는 정부 부처 내부의 실무 부서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독립된 형태로 운영되는 기소 기관이다. 법무부 장관은 CPS를 감독하는 책임은 있지만, 개별 사건의 기소 여부 결정을 지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윗선에서 사건을 찍었다"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통로를 만들려는 순간 바로 제도 충돌이 일어나는 구조다.

 

두 번째 잠금장치, 검사의 판단은 철학이 아닌 코드다. 내가 기소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에 비춰 기소해야 한다 또는 기소할 수 없다를 판단한다. CPS의 기소 판단은 Code for Crown Prosecutors에 의해 안내되고, 기본적으로 증거 기준(Evidential stage)과 공익 기준(Public interest stage) 두 단계로 정리된다. 전관예우의 문제는 '누구'에게 판단의 권한이 있냐에 따라 발생하는데, 영국은 그 승부처를 '누구'에서 '코드(기준)'로 통째로 옮겼다.

 

세 번째 잠금장치, 배당·기록·감사 등 지속적인 검토를 진행한다. 누군가 사건을 맡는 순간, 사건을 맡은 자가 사건에 연루된 자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영국은 이 지점을 경계해 최대한 사람 손에서 결정권을 떼어낸다. 사건은 사건 관리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디지털 시스템 변경과 운영은 정부 공지로 남는다. 그리고 결정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CPS는 성과·처리 관련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공개(quarterly data summaries)하며, 조직 내부에서도 그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검토한다는 점을 공식 문서에서 강조한다.

 

또한 CPS를 독립적으로 점검하는 Inspectorate(HMCPSI)가 존재하고, 점검 보고서를 공개해 책임성을 강화한다. 전관예우의 핵심은 조용히, 남몰래, 알아서인데, 영국은 반대로 기록을 남기고, 보여주고, 검사(inspection)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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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잠금장치, 검사는 권력으로 향하는 '엘리트 코스'가 아니라 공개 채용된 '법조 공무원'이다. CPS에 소속되어 공적 업무를 맡은 법률가를 영국에선 검사로 부른다. CPS는 공개적으로 채용·육성 트랙(예: legal trainee scheme)을 운영하며, 2년 훈련 과정을 명시한다. 즉, 영국의 검사는 승진과 권력이라는 단일 레일을 향하는 경로가 아닌 공적 기소 업무를 수행하는 법률가의 직업 경로에 가깝다.

 

다섯 번째 잠금장치, 판사와 변호사도 '전관예우 현금화'가 어렵다. 전관예우는 법정의 판사가 피고인을 봐주면서 완성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영국 판사는 독립된 사법 임용 기구(JAC)가 공개경쟁과 능력, 적격 중심으로 판사를 선발한다. 급여를 받는 정규 판사는 퇴직 후 사적 법률 실무로 돌아가지 않는 관행이 존재한다. 이해 충돌과 독립성 규정이 인맥을 이용한 퇴직 후 활동을 압박하며 변호사로서의 활동에 규제가 작동한다. 즉, 영국에 전관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한을 돈이 되는 권력으로 치환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마지막 잠금장치는 처벌받는 판사다. 영국은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 잘못된 판단은 항소로, 비리는 파면이나 감옥행으로 처벌하는 장치를 분리해 두었다. 판사의 재판 내용, 법리, 사실 관계, 양형은 항소심에서 교정되는 영역으로 징계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판사의 행실, 특히 권위를 이용한 부적절한 이해 충돌, 모욕, 폭언, 직무 태만, 기록 삭제와 같은 행위는 사법 행동 시스템(징계)으로 별도로 처리한다. 또한 징계는 내부적으로 조용히 정리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기록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JCIO 연례 보고서에서 밝히듯, 징계는 개인의 평판 손상 정도가 아닌 공적 제재이며 제재 결과는 공개되고 해당자의 기록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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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2025년 한 해에만 JCIO는 3,279건이 민원을 접수했다. 그 가운데 89건이 판사들에 대한 징계로 이어졌다. 룸살롱 접대 의혹이 제기되어도 제대로 된 감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국의 사법부와는 판이하다. 실제로 한국의 판사 징계는 2004년부터 약 20년간 40명에 대해 이뤄졌으며 이중 절반이 판사직을 유지하거나 10대 대형 로펌에 재직 중이다.

 

작년 영국에서 발생한 징계 89건의 구성은 더 구체적이다. Formal advice 36건, Formal warning 29건, Reprimand 5건, 그리고 Removed from office, 파면이 무려 19건에 달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대표적인 파면 사례가 있다. 앤드루 이스틸(Andrew Easteal) 판사는 수사 대상자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고, 이를 삭제한 일로 파면되었다. 라십 가파르(Rasib Ghaffar) 이민 재판 판사는 법률구조(legal aid)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비위는 징계로, 범죄는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분리 원칙 덕분에 가능한 처벌이었다.

 

이처럼 영국에서는 판결이 흔들리면 항소가 작동하고, 행실이 흔들리면 징계가 작동하며, 범죄면 수사로 시작해 기소와 재판까지 이어진다. 전관이 힘쓰는 나라는 사람이 제도를 쥐고, 전관이 힘쓰지 못하는 나라는 제도가 사람을 쥔다.

 

이재명 정부의 검찰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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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검찰은 다르다. 이번 검찰 개혁안이 검찰 스스로 주도한 셀프 개혁안이라는 비판에 대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지금까지 누적된 검찰의 문제점은 검사 개인의 부도덕함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제도가 검찰에 부여한 막강한 권력 때문이었다. 검사의 손끝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며, 그가 정한 플랜대로 속수무책 끌려갈 수 있는 구조다. 정성호 장관이 신뢰한다는 일부 검사는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기꺼이 반대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내란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이다.

 

선한 의도의 검사 개인에게 기댈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제도를 개혁하는 것.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하고 분산시키는 것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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