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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제현들, 안녕하신가. 딴지 역사상 전무후무한 소비 대모험을 쓰다가, 서정아트센터 조 단위 사기극에 휘말리고, 캄보디아 보이스 피싱 본거지에서 파이프 찜질까지 당하고 돌아온 사나이, 마성의 불가사리다.

 

내 통장 잔고는 0원을 넘어 지하 암반수를 뚫고 들어간 지 오래다.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리며, 딴지일보가 던져주는 쥐꼬리만 한 원고료(온라인에서는 이를 조롱 섞어 ‘200따리’라 부른다)에 목숨을 거는 비참한 나날.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알고리즘이 나를 기가 막힌 유튜브 쇼츠로 이끌었다.

 

화면 속에는 앳된 티가 줄줄 흐르는 18살 고등학생이 롤렉스 시계를 번쩍이며 외치고 있었다.

 

“저 지금 사회가 정한 그 구조를 깨부쉈어요! 7개월 동안 2억 5,500만 원을 벌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어요. 본인의 노력만 따른다면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구조, 지금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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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ing a $15,000 Rolex at 18 years old...

(유튜브, 링크)

 

순간, 캄보디아에서 맞은 뒤통수가 다시 욱신거렸지만 내 뇌 구조는 이미 합리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사십 평생 전통적인 방식(글쓰기)만 고집하다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다! 저 어린놈이 깨부쉈다는 사회 구조, 나도 한번 부숴보자!’

 

나는 홀린 듯이 소년에게 DM을 보냈다.

 

 

1. 형, 돈 벌고 싶어? 16만 원만 내봐

 

답장은 1초 만에 왔다. 자동응답 봇이었다. 링크를 누르니 ‘성공 아카데미’라는 거창한 이름과 함께 결제창이 떴다. 16만 원. 내 신용카드는 진작에 모조리 정지되었지만, 나에겐 최후의 보루인 ‘휴대폰 소액결제’가 남아있었다. 손을 덜덜 떨며 결제 버튼을 눌렀다.

 

결제가 끝나자 ‘성공 비법 VOD 1단계’가 열렸다.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나도 경제적 자유를 얻고, 파이어족이 되어 딴지일보 담벼락에 짱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영상의 내용은 기가 막혔다.

 

“당신의 콤플렉스를 이용해 대본을 쓰세요. 그리고 저처럼 쇼츠를 찍어서 올리세요.”

 

이게 끝이었다. 구체적으로 뭘 팔라는 건지, 어떻게 돈을 버는 건지는 안 나왔다.

화가 나서 단톡방에 항의하려는데, ‘데이빗’이라는 미국 유학파 출신(처럼 보이는) 대표가 등장해 영어 섞인 발음으로 말했다.

 

“여러분, 이건 마인드셋입니다. Next level로 가시려면 VIP 코칭을 받으셔야죠.”

 

그렇게 나는 다음 날, 남은 소액결제 한도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49만 원을 추가 결제했다.

 

 

2. ‘폰지 사기’의 역사: 우표에서 옥 장판을 거쳐 PDF로

 

65만 원을 바치고 드디어 VIP 등급이 되어 알게 된 ‘월 1,000만 원 수익의 비밀’은 이거였다.

 

“너도 나처럼 성공한 척 영상을 찍어라. 그리고 너의 영상을 보고 DM을 보낸 놈들에게, 지금 네가 산 이 VOD와 PDF(전자책)를 똑같이 팔아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분노를 억누르고, 안경닦이의 섬유 조직을 분석하던 그 집요함으로 이 사기극의 데이터와 역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이들이 쓰는 수법의 근본은 정확히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미국 보스턴에 등장한 희대의 사기꾼 ‘찰스 폰지(Charles Ponzi)’ 형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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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폰지

(위키피디아, 링크)

 

당시 폰지는 ‘국제 반신권(IRC)’는 일종의 우표 교환권의 가 간 환율 차익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45일 만에 50%의 수익을 돌려주겠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돈을 싸 들고 왔지만, 사실 우표 환치기 따위는 없었다. 폰지는 그저 나중에 온 사람의 투자금을 먼저 온 사람에게 수익으로 배분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 사기, 이른바 ‘폰지 사기(Ponzi Scheme)’의 탄생이다.

 

한국의 폰지 사기도 찬란한 역사를 자랑한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우리의 이모 삼촌들을 현혹했던 건 ‘자석요’와 ‘옥 장판’이었다. 대학생들을 합숙소에 가두고 부모님 지갑을 털게 만들었던 피라미드 사기에서 가장 흔한 물건은 ‘영어 테이프’였다. 이후 2000년대 중반 주수도 회장의 제이유(JU) 네트워크, 조희팔 사건 등으로 단위가 조 단위로 커지며 진화해 왔다.

 

하지만 과거의 폰지 사기와 지금 이 18살 소년들이 하는 폰지 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최소한 옥 장판이나 자석요 같은 실물 쓰레기라도 집에 남았다. 영어 테이프의 내용은 쓰레기 같았지만(박기태 변호사는 과거 300만 원을 주고 이 쓰레기 영어 테이프를 산 적이 있다!) 엄마가 300만 원 주고 사 온 옥 장판 위에서 등이라도 뜨끈하게 지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2024년 10대 성공팔이들이 파는 건 ‘무자본 창업 PDF 전자책’과 VOD다. 실체가 없다. 이들이 파는 상품의 본질은 “나한테 돈을 내면, 너도 다른 사람한테 이 허접한 PDF를 팔아서 수수료를 챙길 권리를 주겠다”라는 것이다. 실물 옥 장판조차 남지 않는, 탐욕만 남은 완벽하고 순수한 폰지 사기다.

 

 

3. ‘200따리’의 비애가 만들어낸 비극

 

돈이 너무나 궁했던 나는, 아카데미의 지시대로 내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영상을 찍어보기로 했다.

 

“나는 빚더미에 앉은 배 나온 40대 아재다. 하지만 나도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 비법이 궁금하다면 DM을 줘라...” 

 

카메라에 비친 내 퀭한 눈과 뱃살을 보는 순간, 나는 구역질이 나 카메라를 껐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과 청년들은 이 허접한 성공팔이에 영혼을 파는 걸까? 그 기저에는 ‘200따리’라는 서글픈 단어가 있다.

 

한 달 내내 땀 흘려 일해도 200~300만 원 남짓 버는 현실. 평생 숨만 쉬고 모아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는 자산 격차의 시대. 대기업 정규직 전환 경쟁률이 4,500 대 1에 달하는 숨 막히는 취업 시장. 이 절망 속에서 “전통적인 방식(성실한 노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라는 성공팔이들의 가스라이팅은 10대와 20대들을 정확히 타격한다. 그리고 이 절망은 더 끔찍한 범죄의 덫으로 청년들을 이끈다. 바로 ‘고수익 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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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링크)

 

PDF를 팔다 실패하거나, 당장 빚을 갚아야 하는 청년들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월 800~1,300만 원 보장, IT 업무’라는 글에 혹하게 된다. 나 불가사리도 캄보디아에 끌려가 수갑을 차고 전기 지짐이를 당해봐서 안다. 이번 취재에 등장한 주형 씨 역시 대기업 계약직이 끝나고 캄보디아 보이스 피싱 본거지로 끌려가 100일 넘게 파이프로 맞다 겨우 구출되었다.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세금 절감 투자 자문 알바(건당 16만 원)’에 속아 보이스 피싱 현금 수거책이 된 30대 소리 씨는 하루아침에 전과자가 되고 9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떠안았다.

 

 

4. 세상에 건당 16만 원짜리 심부름은 없다

 

결국 나는 65만 원의 소액결제 빚을 추가로 떠안고, 나의 영원한 법률 노예이자 채권자, 박기태 변호사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변호사님! 이 데이빗이라는 놈, 사기죄로 고소합시다! 이건 명백한 다단계 아닙니까!”

 

“불가사리님. 방문판매법 위반(다단계)이나 사기죄로 엮을 여지는 있습니다. 실질적인 상품 없이 하위 판매원 모집만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니까요. 하지만... 고작 65만 원 돌려받겠다고 변호사 선임하실 겁니까? 수임료가 더 나옵니다.”

 

“아니, 그럼 보이스 피싱 수거책 하다가 걸린 그 불쌍한 청년들 변호라도 좀 해주세요! 고아 출신 주희 씨나 탁송 기사 재석 씨는 진짜 여행사 알바인 줄 알았다잖아요! 왜 몸통은 냅두고 꼬리만 징역을 삽니까!”

 

박기태 변호사는 전화기 너머로 특유의 뚱뚱한 한숨을 내쉬며 팩트를 꽂아 넣었다.

 

“불가사리님, 흥분하지 마세요. 저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서류봉투나 쇼핑백 하나 전달해 주는데 건당 16만 원을 주는 정상적인 알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이걸 ‘미필적 고의’로 봅니다. 이게 불법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혹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고수익의 유혹에 눈감았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래도 너무 가혹하잖아요!”

 

“범죄 조직은 머리(총책)를 해외에 두고 꼬리(수거책)를 계속 잘라냅니다. 사법 시스템 입장에서는 조직의 자금줄과 손발 역할인 말단 가담자들을 공동정범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서라도 범죄 생태계의 유입을 끊으려는 겁니다. 억울해도, 자기 통장을 빌려주거나 모르는 돈을 전달하는 순간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 명백한 가해자가 됩니다. 쉽게 버는 큰돈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담보로 한 대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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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60분, 링크)

 

 

5. 200따리로 사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

 

캄보디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주형 씨가 공장 일용직을 뛰며 덤덤하게 내뱉은 말이 내내 귓가를 맴돈다.

 

“가족들과 연락하고, 걱정해 주며, 국밥 한 그릇 먹는 평범한 삶이 성공인 것 같아요.”

 

세상의 태반은, 특히 갓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들의 태반은 ‘200따리’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18살짜리 꼬마가 롤렉스를 차고 발리 풀빌라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만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진짜 인생의 행복과 의미는 부자가 되고 슈퍼 카를 모는 데만 있지 않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위해 밤잠을 설치며 헤매고, 깨지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그 땀내 나는 시간. 어쩌면 그 고단한 과정, 그 순간들 자체가 우리 삶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뼈아프게 질문해야 한다. 청년들이 그 평범하고도 위대한 200따리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이 사회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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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링크)

 

이미 견고한 성을 높게 쌓아 올린 자산가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숨만 쉬며 자산을 복사해 낸다. 반면, 출발선에 선 청년들은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서울에 몸 뉠 집 한 칸도 살 수 없다. 10년 동안 먹고 싶은 것 안 먹어가며 허리띠를 졸라매 모은 돈이, 금수저 친구가 부모에게 증여받은 아파트의 1년 치 상승분의 절반도 되지 않는 세상.

 

이 지독한 무력감과 절망감 속에서 청년들은 삶의 방향을 잃는다. 땀 흘려 번 돈은 푼돈이 되고 조롱거리가 된다. 결국 그 끔찍한 상실감은 아이들을 실체 없는 PDF 다단계 사기로 내몰고, 급기야 보이스 피싱 수거책이라는 일회용 범죄 도구로 전락시킨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 좋은 세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사회에서, ‘200 따리’가 되지 않으려고 무모한 선택을 하는 그 사람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나는 오늘 소액결제로 날린 65만 원을 후회하며 낡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200따리도 안 되는 원고료를 받기 위해 아등바등 산다. 하지만 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이렇게 글을 써서 짱돌 하나라도 던질 수 있다면, 그래서 아주 조금이라도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캄보디아에서 파이프로 맞으면서도 기어코 살아남은 나, 불가사리의 삶의 의미이자 보람일 것이다.

 

전국의 성실한 200따리들이여, 18살짜리가 차고 있는 롤렉스를 부러워하며 기죽지 말자. 그건 누군가의 피눈물을 쥐어짜 만든 모래성일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속이지 않고, 내 통장을 범죄의 도구로 팔아넘기지 않고, 당당하게 땀 흘려 번 돈으로 오늘 저녁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사 먹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 200따리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그때는 정말로, ‘열심히 일해도 부자들의 돈이 돈 버는 것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 미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꿔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불가사리의 법률 대모험,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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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60분, 링크)

 

여담: 이 기사의 내용은 KBS ‘추적 60분’과 거의 동일하다. 박기태 변호사와 불가사리는, 이 영상에서 나오는 이들을 추적하고 영상을 제작하는 데 협조했다. 영상 중간에 박기태 변호사의 실제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박기태 변호사와 불가사리는, 이 건을 고소하는 선생님과 함께, 이들이 만든 다른 다단계들에 대해서도 고소를 진행중이다. 만약 비슷한 사기를 당하고 있다면, 당신도 도울 것이다. 언제든 연락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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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마성의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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