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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영국 2부 리그에서 아마추어 선수로 농구를 한 적이 있다. 팀엔 유난히 열심히 뛰던 어린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슈퍼리그로 스카웃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축하 인사를 전하고 꼭 응원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영국 프로 리그 농구 경기(British Basketball League)를 관람하러 가게 되었다.

 

영국에서 농구는 워낙 변방 스포츠라 큰 기대는 없었지만, 막상 가서 본 경기장은 규모도 있고 관중도 많았다. 형식만 놓고 보면 한국 프로 농구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치어리더가 없었다!

 

추후에 관람한 영국의 넷볼 경기와 다른 실내 스포츠에서도 치어리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축구나 럭비, 크리켓과 같은 인기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치어리더는 없다. 반면, 한국 농구장에서 치어리딩은 필수다. 쿼터가 끝날 때마다 타임아웃 때마다 음악이 시작되고 응원복을 입은 여성들이 뛰어나온다. 야구장도 마찬가지다. 경기와 응원은 하나의 패키지처럼 움직인다. 다만, 같은 영국이라도 어느 나라에서 주최하는 경기인지에 따라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영국의 The O2 Arena에서 열린 NBA 경기에선 치어리더가 등장했고, 타임아웃마다 댄스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같은 도시, 같은 스포츠 경기라도 영국에서 주최하는 스포츠 경기에는 치어리더가 없고, 미국 경기에는 치어리더가 있다. 무슨 차이일까?

 

미국에서 시작된 치어리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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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어리딩 문화는 19세기 말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되었다. 1898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열린 미식축구 경기에서 조니 캠벨(Johnny Campbell)이라는 남학생이 관중 앞에서 응원을 선창했다. 이 장면이 현대 치어리딩의 시작으로 기록된다. 최초의 치어리더는 여성이 아니었다. 초기의 치어리더는 군중을 조직하고 응원을 이끄는 '리더'였다. 목소리가 크고, 카리스마 있고, 관중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이 맡는 자리였다.

 

당시 대학 스포츠는 남성 중심 문화였고 응원을 이끄는 일 역시 남성의 역할로 여겨졌다. 하지만,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며 상황이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전쟁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많은 남성들이 전장으로 떠났고, 대학 캠퍼스의 공백을 여성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치어리딩 역시 그중 하나였다. 둘째, 스포츠의 성격이 변했다. 특히 프로 미식축구 리그인 NFL(National Football League)과 프로 농구 리그인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가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면서 스포츠는 단순 경기에서 거대한 오락 산업으로 확장되었다. 경기는 더 이상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경기만이 아니었다. 경기 전 쇼, 하프타임 공연, 브랜드 마케팅, 방송 연출이 결합된 하나의 종합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응원의 성격도 바뀐다. 치어리더는 군중을 조직하는 '리더'에서 관중을 즐겁게 하는 '퍼포머'로 성격이 달라졌다. 그리고 치어리딩은 점점 여성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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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사회는 분명한 젠더 분업 구조로 되어 있었다. 남성은 경쟁하고 성취하는 주체, 여성은 지지하고 장식하는 존재로 인식되던 시기다. 경기의 중심에는 남성이 서고, 그 경기를 둘러싸는 시각적 요소는 여성의 몫이 되었다. 응원은 더 이상 권위의 영역이 아니라 연출의 영역이 되었고 여성이 그 연출을 맡게 된다.

 

20세기 후반부터 치어리딩은 단순한 응원을 넘어 산업적 상징된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DCC(Dallas Cowboys Cheerleaders)다. DCC는 미식축구팀 Dallas Cowboys가 전국적인 인기를 얻던 시기(1970년대)에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다. 구단은 경기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팀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소박한 응원단을 대대적으로 재편한다. 전문 안무를 도입하고 무대 의상을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미디어 노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치어리더는 관중 응원 리더가 아니라 구단 브랜드의 얼굴이 된다. 인기를 얻고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자극적인 노출은 필수가 되었다. 짧은 치마와 흰색 부츠, 별 장식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은 치어리더의 모습이 전국 방송에 전파되고, 이후 Dallas Cowboys는 달력, 포스터, 광고, TV 스페셜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하며 이름을 알린다. 치어리딩이 하나의 독립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선수들의 경기력과 별개로 치어리더는 브랜드 자산이 되어 구단의 이미지를 만들고 판매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환은 20세기 대중문화가 여성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방식과도 깊이 연결된다.

 

출세의 기회를 제공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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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어리딩의 여성화를 단순히 성 상품화의 결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에게 치어리딩은 기회의 장이었다. 전문 안무 훈련을 받고 전국 방송에 출연하며 구단과 계약을 맺고 활동한다. 특히 Dallas Cowboys Cheerleaders의 경우,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인원만이 무대에 설 수 있었고 이는 일정한 급여를 지급받고 방송,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일부 여성들에게 치어리딩은 커리어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치어리딩은 고도의 체력과 기술을 요구한다. 스턴트, 점프, 유연성, 군무의 정확성 등은 많은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치어리딩이 하나의 경쟁 스포츠로 인정받아 대학 장학금을 받는 수단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의 기회와 구조의 방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어리딩은 여성에게 무대를 제공하지만, 그 무대는 어디까지나 남성 스포츠의 주변부였다. 경기 중심엔 남성이 있고, 경기를 둘러싼 여성은 이를 빛내는 장치로 배치된다. 눈에 보이는 주체는 여성이지만 경기와 산업 권력의 구조는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작동했다. 즉, 여성에게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경기하는 남성과 응원하는 여성이라는 20세기적 젠더 구조를 강화한 것이다.

 

영국은 왜 미국과 다를까?

 

영국은 이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국이 보수적인 국가라 그렇다 혹은 미국처럼 스포츠가 덜 상업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영국 스포츠는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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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잉글리시 게임>

 

19세기 후반, 축구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을 때 영국의 경기장은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토요일 오후, 모처럼 쉬는 날이 되면 노동자들은 함께 경기를 보러 모였고, 자기 팀을 응원하며 소리 지르고 노래하던 자리였다. 누군가의 리드로 향유된 응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군중이 모여 형성된 것이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전신이 되는 초기 리그들이 생겨날 무렵, 영국 축구의 응원 문화는 테라스(terrace) 문화였다. 스탠드에 빼곡히 서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집단행동이었다. 소비되는 공연이 아닌 참여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이러한 구조에서 치어리더는 설 자리가 없다. 응원을 대신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중을 관람자로 두는 미국의 스포츠 산업과 달리 영국은 관중을 참여자로 둔다. 이들은 경기의 일부가 되어 움직인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미국의 경기는 공연, 치어리딩, 관중 참여 이벤트의 구성으로 하나의 쇼이자 콘텐츠로 작용한다. 영국에서 경기는 공동체 의식에 가깝다. 관중이 응원하고 관중이 분위기를 책임진다. 한국의 축구 경기에도 치어리딩이 없다. 영국에서 건너와 자리 잡은 "관중이 12번째 선수"라는 가치 때문이다.

 

경기의 주체가 된 영국 치어리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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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영국에 치어리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대학 스포츠 대회에선 치어리딩 팀을 볼 수 있으며 전국 규모의 치어리딩 챔피언십도 열린다. 스턴트, 점프, 텀블링, 고난도 군무를 선보이며 점수를 겨룬다. 그러나 미국식 모델과는 다르다. 경기 중간에 등장에 남성으로 구성된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보조 인력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종목이 된다.

 

예를 들어, 영국 대학 스포츠를 총괄하는 BUCS(British Universities and Colleges Sport) 안에는 치어리딩이 독립 종목으로 포함되어 있다. 농구팀의 응원단이 아닌 체조와 곡예에 가까운 경기 종목이다. 코트 옆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치어리더가 경기의 주체로서 경기장에 서 있다는 건 미국의 치어리딩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왜 어떤 사회에서는 여성이 경기의 주변에 자리하고, 어떤 사회에선 경기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까?

 

이 답은 스포츠 역사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영국 사회가 여성과 성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 또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는지 이를 관통하는 긴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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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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