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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이란의 인권 탄압, 신권 정치 때문인가?(링크))에선 이슬람이 왜 개인 내면의 구원보다 공동체 질서에 더 무게를 두는지 알아보았다. 일반적으로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현상은 권력욕이나 독재의 결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슬람의 출발점은 달랐다. 도덕적 질서가 무너진 사회에서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신앙이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또 다른 질문. 신앙은 왜 예언자를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닌 공동체의 지도자로 만들었을까? 어떻게 무함마드는 종교를 넘어 국가적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어진 '이주'에 있다.

 

메카를 떠난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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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역사의 초기, 메카는 아라비아 서부의 상업과 순례가 만나는 교차로였다.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은 이곳에서 물자와 소식을 교환했고 부족들은 동맹을 확인했다. 무엇도 중요한 건 메카 한가운데 위치한 카바(Kaaba)였다. 검은 천으로 덮인 네모난 성소로, 여러 부족이 각자 섬기는 신상과 전통을 모아둔 공동의 성역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며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요청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큰 소득을 올려 부와 명예가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

 

순례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닌 도시를 먹여 살리는 경제였다. 사람들이 모이면 거래가 생기고, 거래가 생기면 권위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권력이 발생하고 메카의 유력 가문들은 그 질서를 관리했다.

 

여기서 예언가 무함마드가 등장한다. "신은 하나"라는 그의 메시지는 메카의 경제와 권력 구조를 흔들었다. 여러 신이 공존하는 질서는 곧 여러 부족이 공존하는 방식이었고 그 균형 위에 메카의 경제와 권력이 섰다. 무함마드가 말하는 "하나의 하나님"은 종교적 주장인 동시에 기존 권위와 생존 체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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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대중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섬겨온 조상의 신을 부정한다며 손가락질했다. 가문의 전통을 깨뜨린다는 이유는 무함마드를 따르는 이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낙인찍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조롱은 더 현실적인 타격으로 바뀌었다. 거래가 끊어지고 결혼과 동맹이 멈췄다. 무엇보다 보호가 사라진다는 건 결정적인 위험 요소였다.

 

당시 아라비아 사회에서 법은 개인을 지키는데 부족했고 사람들은 가문과 부족이 제공하는 보호망 안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그 보호가 끊기면 곧바로 폭력과 보복에 노출되는 구조였다. 무함마드를 따르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점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신앙을 포기하라는 강요, 폭력, 감금, 고문에 이르렀으며 공동체 전체 생존의 문제까지 이어졌다.

 

무함마드를 따르던 이들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622년,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결국 메카를 떠난다. 이 사건을 이슬람은 '히즈라(이주)'라고 부르며 이슬람력은 바로 이 순간을 원년으로 삼는다. 중요한 건 떠났다는 사실보다 이주함으로써 체제의 전환이 이뤄졌음을 의미했다. 메카에서 이슬람 신앙은 박해받는 소수의 고백이었다. 메디나로 이주한 뒤 이슬람 신앙은 공동체를 세우는 규범이 된다. 그 순간부터 무함마드는 예언자인 동시에 분쟁을 조정하고 질서를 세우는 지도자가 된다.

 

메디나에 자리잡다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종교 예언자가 정치가가 되었다고 하면, 종교가 권력을 탐한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7세기 아라비아에는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국가 제도가 없었다. 공화정에 살고 있는 우리가 500년 전의 왕정, 봉건제도를 살 수 없듯이 지금의 관점으로 역사를 이해해선 안 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고 군이 국가를 보호하는 체계가 없었다. 종교는 인간의 안전을 책임졌고 일상에서 사람을 지켜주는 건 제도가 아닌 관계였다. 어느 부족에 속했는지, 누구의 보호를 받는지, 어떤 동맹망 안에 있는 자인지가 곧 법이었고 안전을 보장받는 방법이었다. 그러니 메카에서 보호가 끊긴 신앙 공동체는 마음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반을 재정립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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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 예루살렘과 더불어 이슬람의 3대 성지로 불리는 메디나

 

그렇다면 왜 무함마드는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향했을까? 오늘날 '메디나'로 불리는 곳의 당시 이름은 야스리브(Yathrib)였다. 메카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오아시스 도시로, 농경이 가능한 땅과 우물이 있었고 작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메카처럼 순례로 먹고사는 성지 도시는 아니었지만, 대신 정착 생활이 가능한 곳이었다. '이주'가 단순한 피난이 아니라 공동체의 재정착이라면, 야스리브는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최적의 선택지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야스리브에는 여러 아랍 부족 집단이 함께 살고 있었고, 유대인 집단도 존재했다. 그들은 하나의 권위 아래 묶여 있지 않았다. 부족들 사이의 다툼이 잦았고 그로 인한 분쟁은 공동체에 위협이 되었다. 메카에서는 질서가 '기존 권위'에 의해 유지되었다면, 야스리브에는 그 질서를 붙잡을 중심이 약했다. 그래서 이곳은 서로 다른 집단이 최소한의 규칙 아래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무함마드는 단순히 박해를 피해 넘어온 종교인이 아니었다. 메카에서 이미 큰 부를 거둔 공동체를 형성했고 그 공동체는 결속력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신에 대한 순결한 신앙을 말하면서 정의와 공동체 질서를 말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게 야스리브 사람들에게 무함마드는 갈등을 끝낼 권위 있는 자로 여겨졌다. 메카에서의 신앙이 견딤이라면 메디나에서의 신앙은 세움이었다.

 

이처럼 이슬람은 개인의 마음속 신앙으로만 머물기엔 어려운 환경에서 발생했다. 신앙 그 자체에 머물지 못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규범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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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의 핵심 성지, 예언자의 무덤

출처 - (링크)

 

메디나에서의 신앙은 다른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더 이상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앙을 토대로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메디나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원래 메디나에 살던 부족 집단이 있었고, 메카를 비롯한 타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유대 공동체까지 여러 집단이 섞여 있었다. 각 집단은 저마다의 전통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한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며 사소한 다툼은 쉽게 보복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때 필요한 건 종교 지도자의 설교가 아니었다. 누가 옳은지 판단하고 분쟁을 멈추고 공동체 전체가 따를 최소한의 약속을 세우는 권위였다.

 

무함마드는 그 역할을 맡게 된다. 신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였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중재자이자 공동체의 규칙을 정하는 지도자였다. 신앙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행위와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 누구를 보호할 것인지, 분쟁이 발생하면 어떤 절차를 따를 것인지를 신앙의 언어로 다룬다. 지금의 이슬람 형태를 만드는 중요한 전환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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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여러 집단과 일종의 공동체 협약을 맺었다. 다른 부족과 유대 집단을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묶고, 외부의 공격에는 함께 대응하며, 내부 분쟁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해결한다는 합의였다. 각 집단은 자신의 종교를 유지하되 공동체 전체의 안전과 정의에 대해 함께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메카에서 온 이주민들은 모든 걸 두고 떠난 사람들이었다. 집, 재산, 보호망도 잃은 상태였다. 무함마드는 이주민과 메디나 토착민 간에 형제 결연을 맺게 한다. 서로 보호하고 생계를 나누고 책임을 함께 지는 실제적인 연대였다.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는 것, 공정한 거래를 하는 규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메카 시기엔 도덕적 선언에 가까웠다면 메디나에선 공동체의 규범으로 작동한다.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공동체의 의무가 되었고, 분쟁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판단해 공동체 전체가 그 결정을 따르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예언자이면서 동시에 재판관이자 중재자이며 공동체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이때 예언자의 지도자 역할은 권력의 욕망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능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공동체를 이슬람에선 '움마(Ummah)'라고 부른다. 단순한 부족 연합이 아닌 신앙을 기준으로 묶인 새로운 소속이다. 혈연보다 신앙이, 가문보다 공동체 규범이 앞서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바로 이 구조가, 이후 이슬람이 빠르게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된다.

 

<계속>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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