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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ood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영국에서 한식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덩달아 한식당 개업 붐도 일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던가. 며칠 전, 친구가 런던에 한식당을 오픈했다는 연락이 왔다.
보통 해외에 있는 한식당들은 전통적인 고유의 맛보다 현지인 입맛에 맞게 변형한 퓨전 요리를 선보인다. 하지만 친구는 평소 우리 맛을 강조하던바, 퓨전 대신 전통 한국의 맛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기본 찬과 김치는 한국 식당에서 먹는 맛과 비슷하고, 메인 메뉴인 불고기 양념은 한국 가정집에서 만드는 수제 양념과 맛의 차이가 없었다.
달큰한 불고기를 먹다 보니, 쌉쌀한 숯불 향을 입힌 숯불갈비도 생각이 난다. 영국인들도 바비큐를 자주 해 먹으니 직접 구워 먹는 숯불갈비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거로 생각했다.
"야야, 근데 숯불갈비도 메뉴에 추가하는 게 어때? 영국인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
"나도 생각해 봤지. 근데 환기 시설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로 쉽지 않더라."

사실 환기구는 설치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친구가 걱정하는 또 다른 걸림돌이 있을 터다. 화재 위험 때문이냐고 재차 물어본다. 런던 대화재 이후, 영국이 실내 화재에 엄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다.
"손님도 손님인데, 직원들 건강 때문에 안된대."
한국의 숯불갈비 집엔 테이블마다 숯불이 들어가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달달한 양념과 숯불이 그을려 만들어낸 냄새가 식당의 정체성이 된다. 물론 환기 장치를 설치하고 법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직원이 연기에 장시간 노출될 것을 우려해 숯불 사용을 지양한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숯불고기는 맛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
영국에서 숯불은, 가게 매출과 음식 문화에 앞서 검토되어야 하는 근로 환경이다. 숯불에서 나오는 탄소일산화물과 미세 입자에 장시간 노출되면 직원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가장 먼저 고려한다. 영국 정부는 쉽게 허가를 내어주지 않고 있다. 손님은 한 시간 이내로 머물다 가지만, 직원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밀폐된 공간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즘은 전기와 가스로 테이블에서 직접 고기를 굽는 걸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숯불은 여전히 예외다.
직원 안전이 우선인 나라

식당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직원이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머무는 작업장이다. 한국에서 숯불갈비를 떠올리면 손님의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불향, 연기, 테이블 위에서 직접 굽는 체험. 그러나 영국에선 같은 장면을 다르게 본다. 연기는 분위기가 아닌 유해한 노출이 되고, 고기 굽는 체험은 재밌는 놀이가 아닌 위험 요소로 분류된다. 이러한 태도 형성은 영국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 18세기 후반부터 공장과 광산이 급격히 늘어나며 세계 최초의 대규모 산업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번영의 이면에는 처참한 노동 환경이 있었다. 지속적인 경고를 무시한 채 진행된 탄광 작업으로 인해 광산이 붕괴되고, 마을 하나가 사라질 만큼 처참한 인명 사고로 이어졌다.
환기되지 않은 작업장과 유독 가스 노출은 런던 스모그 현상을 만들었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만 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다. 기계에 끼여 죽는 여성과 아동도 많았다. 당시 노동자는 부품처럼 소모되는 자원이었다.

영국 소년공들의 모습
영국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법을 제정했다. 19세기 공장법(Factory Acts)을 시작으로, 산업 안전에 관한 규정이 점차 도입되었다. 산업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보고서가 작성되고, 그 보고서는 다시 규제로 이어졌다. 잘못의 책임자를 찾기보다 구조의 문제점을 물었다. 20세기에 이르러 규제는 더 체계화된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74년에 제정된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Health and Safety at Work etc. Act)이다.
1960~70년대 영국에선 매년 수백 명의 산업 재해가 보고되었다. 밝혀진 수치보다 은폐된 사건의 수가 더 많으며, 사실상 수십만 건의 산업 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생산성이 안전보다 늘 우선이었다.
이전까지 영국의 산업안전 관련 법은 공장법, 광산법 등 분야별로 나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각 산업이 교착되는 지점이 생겨났다. 이전의 법체계로는 새로운 산업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책임의 주체가 불분명한 부분도 있었다.
당시 노동당의 알프레드 로벤스는 낡은 법 개정에 필요성을 느꼈다. 이른바 로벤스 보고서를 작성해 영국 산업안전 체계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보고서의 핵심은, 사고의 대부분은 규칙이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관리의 실패 때문이며, 사업주와 노동자에게 공동 책임을 부여하여 기업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통합된 단일 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로벤스 보고서로 알려진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로벤스
참고로, 알프레드 로벤스는 영국 맨체스터의 노동 계층 출신으로, 1940~50년대 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 그는 보수당 집권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노동 이슈에 목소리를 키웠다. 국가 석탄위원회 의장직까지 맡았던 알프레드에겐 수십만의 노동자를 관리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석탄 산업 구조조정 및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 현장을 잘 알고 관리자로서 안목이 뛰어난 실무자에 가까웠다.
그가 주도한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존의 규칙 중심의 구조를 위험 기반 중심(현재의 위기관리) 구조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법 조항 개정뿐만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었다. 유럽연합,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현대의 산업 규제법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이 법은 사업주에게 명확한 의무를 부여했다.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다. 이어 도입된 유해 물질 관리 규정(COSHH)은 탄소일산화물 등 기타 화학물질이 근로 환경에서 실질적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노출 기준을 설정하고, 환기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사업주가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도록 한다.
영국은 오랜 시민 사회의 역사 덕분에 촘촘한 법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덕에 영국은 때로 답답하다. 허가는 까다롭고, 설비는 비싸며, 규정은 복잡하다. 산업 혁명이라는 거대한 실험이 끝나고, 이 사회는 위험을 개인의 감수성에 맡기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불에 대한 집단 기억

1666년 런던 대화재 당시 상황을 재현한 조형물
영국은 화재 역시 큰 위험으로 관리한다. 1666년, 런던 대화재. 빵을 굽던 난로 위의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대도시 런던의 대부분을 집어삼켰다. 목조 건물이 밀집해 있던 도시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1/3만을 남기고 수만 채의 건물이 잿더미로 변한다. 이 참사를 계기로 도시 설계와 건축 규정이 바뀌었다. 런던은 목재로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거리 구조를 재정비하여 화재 대응 체계를 정립한다.
런던 대화재는 영국 사회에 집단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불은 낭만이 아닌 통제해야 하는 위험이라는 기억이다. 물론 오늘날의 런던은 17세기와 다르다. 기술이 발전하고 건축 자재도 바뀌었다. 그러나 이들의 경각심은 변하지 않았다.
몇 년 전, 런던정경대(LSE, London School of Economics) 인근 건물 옥상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멀리서 목격한 화재 현장의 불길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소방 당국은 주변 도로를 광범위하게 통제했다. 템즈강변과 워털루 브리지 인근까지 접근을 제한했다. 체감상 수백 미터 반경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곳이 런던의 중심가이다 보니 해당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모든 버스의 운행이 중단되었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해당 지역을 빙빙 돌아 걸어야 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 조금 과한 대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현장 책임자는 과잉 대응을 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른 절차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건물 구조, 바람 방향, 인접 시설, 연기 확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일정 범위를 자동으로 통제하게 되어 있었다.
식탁 위 작은 불씨 하나

테이블 위에 얹은 뜨거운 숯불, 불판 위에서 지글대는 고기, 연기와 냄새가 뒤섞인 매캐한 공기. 직접 고기를 뒤집어가며 익히고 불을 조절하여 완성된 숯불갈비는 가위로 잘라 먹는다. 자욱한 연기조차 식사의 일부다. 한국인에게 이는 불편함이 아닌 특별한 체험이자 식문화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다. 특히, 불을 중심으로 한 식문화는 우리에게 단순한 조리 방식을 넘어선 관계 형성과 공동체 경험의 일부로 작동해 왔다. 같은 위험이라도 한국과 영국은 그것을 감수하는 방식과 의미 부여 지점이 다르다.
한국은 공동체적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영국은 안전에 중점을 둔다. 이들이 불맛을 몰라서 혹은 숯 향에 거부감이 있어서 내린 결정이 아니다. 답답하고 까다롭지만 예측 가능한 위험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제한하고, 위험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지 않기 위해서다.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아니다. 예측 가능한 위험을 사회 전체가 분담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사회적 합의로 본다.
영국 역시 처음부터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회가 아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고와 재해를 겪었고,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지금의 제도와 규제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의 엄격한 기준은 반복된 실패 위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선택이었다.
한국 역시 산업재해가 적지 않은 나라다. 그럼에도 안전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어딘가 느슨하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숯불이 뭐 그리 대단한 문제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식의 문제다. 변화는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식탁 위의 작은 불씨 하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사회가 위험을 다루는 방식 전체가 달라진다.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B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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