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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이용한 본문 요약 영상입니다

<편집부 주: 반대가 없으면 틈틈이 만들 예정!>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이 시작한 전쟁 가운데 정치적 목적을 완전히 달성한 전쟁은 거의 없다. 이 사실은 직관과 어긋난다.

 

미국의 국방비는 연간 약 9천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 2위부터 10위까지 국가들의 군사비를 합쳐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 전 세계 군사비의 3분의 1 이상이 한 나라에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국방비 지출 순위.PNG

세계 국방비 지출 TOP15 국가들

미국 외 14개의 국방비를 다 합쳐야

미국 국방비를 조금 넘는 정도다.

2025년 미국의 국방비는

9,620억 달러로

중국의 국방비 2,460억 달러의

약 4배에 달한다.

 

미국이 마음먹으면 특정 국가의 군사 인프라를 몇 주 안에 마비시킬 수 있다. 공군력으로 주요 기지를 무력화하고, 해군력으로 해상 교통을 차단하며, 정밀 타격으로 지휘 체계를 붕괴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현대 국제 정치에서 미국과 정면으로 군사 충돌을 감당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없다.

 

그러나 무력이 충돌하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과 그 전쟁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건 다른 문제다. 전쟁에 이긴다고 목적까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전쟁으로 압도한 후, 더 어려운 질문이 생긴다. 

 

‘전쟁을 통해 만들려 했던 새 질서는 어디에 있는가?’

 

군사 기지는 파괴되고 군대는 패배한다. 그러나 정권은 버티거나 다른 형태로 살아남는다. 정권이 무너져도 새로운 국가 질서는 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를 점령해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세계 2차 대전 이후, 벌였던 전쟁을 보면, 압도적 무력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이룬 적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그 전쟁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 vdm.jpg

출처-<VDM>

 

베트남 전쟁2 THE PAST.PNG

출처-<THE PAST>

 

베트남 전쟁을 보자. 이 전쟁은 흔히 미국의 패배로 기억되지만, 전투의 차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미군은 대부분의 주요 전투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다. 압도적인 화력과 공중전 능력, 정보력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을 앞섰고, 정면 전투에서 미군이 군사적으로 붕괴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을 때의 결과는 전혀 달랐다. 미국이 개입한 정치적 목적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남베트남 정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75년 남베트남 정권은 붕괴했고, 베트남은 공산 정권 아래 통일되었다.

 

미국이 싸운 것은 군대만이 아니었다. 그 사회 전체가 지닌 정치적 의지였다. 군사력은 전투에서 상대를 물리칠 수는 있었지만, 그 의지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힘은 압도적이었지만, 그 힘을 질서로 바꾸는 정치의 기술은 없었다.

 

 

이라크 전쟁

 

베트남이 정치적 의지의 문제를 보여줬다면, 이라크 전쟁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군사 작전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미군은 불과 몇 주 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했고, 사담 후세인 정권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일방적이었다.

 

이라크 전쟁 게티이미지.PNG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에게 폭격당한

이라크 정부 청사들

출처-<게티이미지>

 

그러나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았다. 미국은 그 자리에 안정된 친미 정부를 세우고 새로운 이라크 국가를 만들려 했다. 

 

미국이 원하는 바와 달리, 정권이 무너진 이라크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국가 기관은 붕괴했고,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 속에서 종파 갈등과 무장 세력이 확산됐고, 결국 극단주의 조직인 ISIS까지 등장했다.

 

IS.PNG

ISIS

출처-<Brookings Institution>

 

결국 미군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라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정권은 무너졌지만, 질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랬다. 2001년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고, 탈레반 정권은 몇 달 만에 붕괴했다. 군사 작전은 빠르게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미군은 주요 도시를 장악했고 탈레반 정권은 권력을 잃었다.

 

아프간 전쟁.png

 

그러나 전쟁의 목적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에 있지 않았다.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자리에 안정된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아프가니스탄을 장기적으로 통치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탈레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지방과 국경 지역에서 다시 세력을 키웠다. 미국이 세운 정권은 무능력했고 부패했다. 세력을 키운 탈레반은 영향력을 다시 확대해 나갔고, 미국은 결국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이후 탈레반은 큰 저항 없이 다시 정권을 장악했다.

 

미군은 무력이 부딪치는 전쟁(혹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후 그 나라를 통치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영토는 장악했지만, 통치는 유지되지 않았다.

 

이 세 전쟁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베트남에서는 정치적 의지를 꺾지 못했고, 이라크에서는 정권 붕괴 이후 질서를 만들지 못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장기적인 통치를 유지하지 못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기지만, 정치에서는 지는 미국’ 

 

 

걸프전은 성공했던 이유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 항상 이런 결과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1991년 걸프전은 드물게 다른 결말을 보여 준다. 그 전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미국의 군사력이 압도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전쟁을 작동시키는 기본 틀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걸프전.PNG

1991년 1월 걸프전 당시

미국 공군 폭격기와 크루즈 미사일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공격하자

이라크군의 대공 추적기가 발동하면서

바그다드 시내가 붉은 불빛에 휩싸였다.

출처-<로이터>

 

첫째, 명분의 체계가 있었다. 

 

걸프전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공해 점령한 상태를 되돌리는 전쟁이었다. 국제법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무엇을 바로잡으려는 전쟁인지가 비교적 분명했다.

 

둘째, 정당성의 체계가 있었다. 

 

미국 혼자 나선 것이 아니라 유엔 승인 아래 다국적 연합군이 구성됐고, 전쟁의 목적은 국제적 합의 속에서 정의되었다.

 

셋째, 목표의 체계가 있었다. 

 

목표는 쿠웨이트 해방이었다. 이라크 정권 교체도 아니었고, 중동 전체의 질서 재설계도 아니었다.

 

넷째, 종결의 체계가 있었다. 

 

그 목표가 달성되자 연합군은 바그다드까지 밀고 들어가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어디서 멈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프전의 교훈은 단순하다. 전쟁이 성공하려면 강한 군대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적 명분, 국제적 승인, 제한된 목표, 분명한 정지선이 함께 있어야 한다. 

 

힘으로 전쟁을 시작할 순 있지만, 전쟁을 종결하고 그 목적을 이루려면 그 힘을 묶어 둘 현실적인 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틀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설정되어야 한다. 걸프전은 바로 그 틀 안에서 수행된 드문 사례였다.

 

 

걸프전과 이란전의 차이점

 

테헤란.PNG

공격받는 테헤란

출처-<Britannica>

 

이 기준으로 보면, 지금 이란 전쟁은 정반대에 가깝다. 

 

첫째, 명분의 체계가 약하다. 

 

걸프전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공해 점령한 상태를 되돌리는 전쟁이었다. 무엇을 바로잡으려는 전쟁인지가 비교적 분명했다. 반면, 이번 전쟁은 그 이유가 계속 바뀌고 있다.

 

핵 프로그램 저지, 미사일 위협 제거, 지역 안정, 체제 약화 같은 설명이 뒤섞여 있다. 어떤 때는 핵 능력을 억제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하고, 또 어떤 때는 이란의 전략 자체를 바꾸기 위한 전쟁이라고 한다. 

 

심지어 체제를 약화시키거나 내부 변화를 기대하는 발언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 설명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목표다. 무엇을 바로잡기 위한 전쟁인지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ytn 뉴스.PNG

출처-<YTN> 링크 

 

둘째, 정당성의 체계가 약하다. 

 

걸프전은 유엔 승인 아래 다국적 연합군이 구성된 전쟁이었다. 전쟁 자체가 국제적 합의 속에서 수행됐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군사 행동이다. 유럽 주요국들은 전면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국제적 승인 구조도 분명하지 않다.

 

유엔헌장 위배.PNG

출처-<동아일보> 링크

 

독일 총리는 전쟁을 끝낼 일관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이탈리아 총리는 국제법 위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캐나다 총리는 미국이 동맹과 사전 협의도 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이탈리아 총리.PNG

출처-<뉴시스> 링크

 

셋째, 목표의 체계가 불분명하다.

 

걸프전의 목표는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하나의 군사적 과업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목표는 핵시설 타격에서 시작해 이란의 전략 변화, 지역 질서 안정, 체제 약화까지 확장되고 있다. 군사 작전의 목표와 정치적 기대가 한 전쟁 안에서 섞여 있다.

 

핵시설을 파괴하는 것과 핵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전자는 군사 작전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후자는 기술과 인력, 정치적 의지를 포함한 국가 전략의 문제다. 현재 있는 이란의 핵 지식(인력, 데이터)까지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겨레 핵 지식.PNG

출처-<한겨레> 링크

 

여기에 중동의 안보 질서 안정이라는 목표까지 더해지면, 전쟁의 목표는 군사 작전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이런 서로 다른 수준의 목표가 한 전쟁 안에 함께 묶이면 무엇을 성공이라고 부를 것인지조차 불분명해진다.

 

넷째, 종결의 체계가 보이지 않는다. 

 

걸프전에서는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목표가 달성되자 전쟁이 멈췄다. 어디서 끝나는 전쟁인지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무엇을 달성하면 전쟁이 끝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전쟁의 결말에 대해 트럼프의 발언은 며칠 사이에도 계속 바뀌고 있다. 어떤 때는 전쟁이 몇 주 안에 끝날 것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때는 이란의 핵 능력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이란이 사실상 굴복할 때까지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온다. 전쟁의 목표가 단기 군사 타격인지, 전략적 억제인지, 체제 변화를 노린 것인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뉴시스 전쟁.PNG

사실상 전쟁은 끝났다며,

이란의 항복 선언 없이

트럼프 자신이 끝내고 싶을 때,

끝내면 된다는 말까지 한다.

메시지가 전혀 통일되지 않는다.

출처-<뉴시스> 링크

 

결국 이번 전쟁은 무엇을 달성하면 전쟁이 끝나는지에 대한 기준이 처음부터 정리되지 않은 전쟁이다. 명분은 흔들리고 국제적 정당성은 약하며 목표와 종결선도 분명하지 않다. 정치적 설계가 처음부터 세워진 전쟁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목표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주먹구구식 전쟁에 가깝다. 즉, 이번 전쟁의 문제는 군사력이 부족한 데 있지 않다. 정치의 설계가 부족한 데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을 가진 거인 키클롭스는 누구보다 힘이 세다.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고, 동굴 입구를 막아 버릴 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없다. 그래서 결국 힘으로는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전략과 꾀를 가진 오디세우스에게 패한다. 거인의 패배는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힘을 다루는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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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BS News>

 

어쩌면 바로 그 압도적인 힘이 지혜를 둔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힘은 때로 사고를 단순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밀어붙이면 해결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밀어붙이면 다들 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힘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이 뒤따르는 순간, 전략은 점점 거칠어지고 정치의 설계는 빈약해진다.

 

미국은 전쟁에 자주 이긴다. 그래서 상대를 망가뜨릴 줄은 알지만, 그 전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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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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