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약 1,150만 건에 달하는 조세피난처에 관한 문서가 독일 신문사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전달되었다. 파나마에 위치한 모색 폰세카라는 로펌에서 내부고발자에 의해 유출된 이 문서들은 모색 폰세카(독일인 이민자 출신들이 세웠기 때문에 독일식 이름에 따른다)가 지난 40년간 관여해온 거래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이 문서는 유출된 나라 이름을 따서 '파나마 페이퍼'라 명명되었다.


_89077472_89077470.jpg

(이미지 출처 : bbc.com)


이 문서 자료는 방대한 양과 연관된 정보의 중요성으로 인해 한 신문사가 파헤치기엔 너무 큰 건이 되어버렸고 결국,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전달, 25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약 100여 개의 언론사와 500여 명의 기자들이 1년 이상 취재한 끝에 내용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뉴스타파가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였고, 관련 뉴스를 가장 열성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참고하시고 후원도 좀 해주시라. (스타파 홈페이지).


adfdfdadf.JPG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홈페이지 (링크)


현재까지의 발표를 요약하자면 전 세계 약 12개국 전·현직 지도자를 비롯한 약 140명의 공직자, 그리고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유명인과 부호들은 모색 폰세카 등을 통해 파나마, 버진아일랜드 등에 법인을 설립했고 이렇게 흘러간 돈은 약 2조 원 가량에 달한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파마나 등을 비롯한 조세 회피처로 흘러 들어간 것일까. 그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로 나눠서 볼 수 있다.


경제적인 이유란 세금 절감을 뜻한다. 이 스캔들에 무대가 된 파나마, 버진 아일랜드 등의 공통점은 법인세가 없거나 말도 안 되게 낮다는 것이다. 버진 아일랜드, 바하마, 케이먼 제도 등의 경우 법인세가 무려 0%다. 파나마의 경우에도 페이퍼 컴퍼니와 소유주들에게 과세를 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가장 큰 비용이 세금'이란 말이 있는데, 이들 국가에 회사를 만들 경우엔 이 비용이 면제가 되는 것. 정말이지 엄청나게 중요한 이슈다.


16270_32864_3812.jpg

버진 아일랜드. 아름답고 세금 없는 곳


하지만, 정상적으로 전 세계에서 큰 규모로 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조세 회피를 시도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주식회사다 보니, 주주들에게 배당을 일일이 줘야 하는 이슈가 있고(이렇게 조세회피처를 통해 선진국에 있는 주주들에게 배당을 줄 경우 별도규정에 따라 과세할 수 있다) 소비자 등에게 비난을 받을 확률이 높아 우회법을 쓴다.


그래서 과거 스타벅스 등은 'Double Irish Dutch Sandwich'라는, 지금은 유명해진 방식으로 각국의 조세 시스템의 차이점을 활용, 복잡한 자회사 설립방식 등을 통해 절세를 시도했다. 이후 가장 최근의 트렌드는 Tax Inversion이라는 기법이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을 예로 들면, Tim Hortons라는 캐나다 커피 회사에 인수가 됨으로써 국적을 캐나다로 갈아탔다. 캐나다의 세금이 약 10%가량 저렴하므로 이를 노려서, 규모가 훨씬 작은 캐나다 회사에 자발적으로 인수당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인수합병이 잦고 소비자들에 덜 민감한 제약회사들도 이 방식을 따랐다. 어쨌거나, 대기업들의 조세회피는 낮은 세율과 다른 과세 규정을 연구한 세금 설계방식을 사용한다.


이런 복잡한 방식에 비해, 조세피난처로 거론되는 버진 아일랜드와 파나마 등은 좀 더 과감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냥 여기다가 회사 차리면 세금이 없다. 정상적인 경로로 돈을 벌고 당국의 통제를 받는 기업과 달리, 개인들은 좀 더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이 방식을 사용한다.


이번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UBS와 HSBC 같은 대형 은행들은 VIP 고객들을 위해 1970년 이후 약 3300개의 계좌를 개설했고 이 계좌들은 조세피난처에 난립한 약 15,600개의 달하는 페이퍼 컴퍼니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푸틴은 버진 아일랜드에 세워진 A 회사를 통해, 키프로스에 있는 B라는 회사에 2억 달러를 대출해주고, 다음날 A 회사는 C라는 회사에 2억 달러를 B로부터 회수할 권리를 1불에 판매한다. 그리고 C는 파나마에 있는 D라는 회사에 이 권리를 즉시 되판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인랭귀지가 연상되는 이 복잡한 거래를 통해 2억 달러라는 자금이 하룻밤 사이에 A에서 D로 옮겨갔다.


FDGFGDF.JPG

탈세. 성공적.


여기까지가 모색 폰세카가 관여한 돈세탁 과정이고, 이를 거쳐 여러 번 세탁된 2억 달러는 파나마에서 다시 어딘가로 흘러갔으리라. 여러 조세회피처를 거쳤기 때문에, 이 2억 달러는 출처가 확실해지지 않을뿐더러, 이를 추후에 운용하여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과세하지 않는다.


근데 이 정도 스케일과 꼼꼼함으로 강대국 지도자의 돈이 세탁된 걸 보면, 단순히 세금 좀 아낄라고 이 짓을 한 게 아니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엔 두 번째 이유, 즉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이 돈의 출처가 캥기는 사람들을 위한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방식에 참가한 각국 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특히 그렇다. 요르단, 사우디, 카타르, U&E, 수단 등의 지도자들이 직접 이 페이퍼 컴퍼니들의 소유주로 거론되었으며, 푸틴, 시진핑과 같은 강대국 지도자의 가족은 물론, 아제르바이잔, 시리아, 이집트, 코트디부아르 등의 국가 지도자 가족이 연관되었다.


DFDFD.JPG

탈세도 함께...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과, 이를 이용하여 쉽게 경제적인 이권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경우 필수적으로 뒤가 구릴 수 밖에 없기때문에, 자금세탁을 통해 그 출처를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북한, 시리아 같은 제재대상국들의 통치자금이 일부 흘러들어 갔다는 점을 보면, 조세회피처라는 말보다는, 자금 세탁소라는 말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금융제재나, 정권교체를 통한 숙청 등의 우려가 있는 이들의 자금들은 이런 돈세탁을 통해 실소유주를 꽁꽁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자금세탁이 일부 개도국 지도자에만 국한된 문제는 결코 아니다. 오늘 하야한 아이슬란드 총리의 경우 자국 은행들에 대한 구제 금융을 실시했는데, 이번 문서에 따르면, 그는 이 은행들의 채권을 이런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소유하고 있었다. 이해관계에 충돌이 쉽게 예상될 수 있기 때문에(내가 투자한 기업의 빚을 정부 돈으로 갚아주는 계획이었다) 각국의 공직자는 보유자산을 공개할 의무가 있는데, 이번 사태 때 드러난 바에 따르면 파나마 등은 이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들을 숨겨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블레어 영국 총리의 아버지도, 이 모색 폰세카의 주요 고객으로, 가문의 재산을 세금 없이 오랜 기간 굴렸으며, 이혼 소송 등으로 재산 분할 당할 위험에 노출된 부유층 역시 이 방법으로 자기 돈을 빼돌렸다.


이러한 다양한 이해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로펌과 대형은행들은 파나마에 페이퍼 컴퍼니사업을 형성했다. 이런 이유로 파나마정부는 각국 정부의 요구에도 조세협약을 맺길 거부하고, 자국 내에 위치한 수많은 페이퍼 컴퍼니의 관한 정보를 보호해주는 등의 혜택을 부여했다. 대형은행들은 자신들의 구좌들을 통해 전 세계 금융망을 타고 이 돈들이 움직이는 것을 도왔으며, 구좌들의 실소유주에 관한 정보를 꽁꽁 숨겨주었다. 로펌들은 이 자금 세탁과 조세회피를 위한 자회사 설립 등의 설계를 도맡았다.


Panama-City.jpg

탈세에 최적화된 파나마


내 제한적인 경험에 의하면, 이런 조세회피처에 로펌들은 '도면'을 제공한다. 이런 페이퍼 컴퍼니간의 거래에는 계약서들이 많이 쓰이기 마련인데, 이들은 일종의 표준 양식을 만들고, 투자자들의 필요에 따라 별도의 보정을 해준다. 이 계약서들은 정말 치밀하게 짜여있어서 동업자 간에 분쟁조정, 특수상황 발생 시에 조정 절차 등을 세밀하게 명시한다.


또 단순히 수단을 제시하는대서 벗어나, 무기명 채권(채권엔 보통 돈 받을 사람이 명시되어있는데 이게 없는 채권)을 사용해야 할지, 몇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돈을 움직여 세탁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컨설팅을 제공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머리 엄청 좋은 넘들이다. 모색 폰세코는 40년간 법률활동을 해오면서 한 번도 불법활동으로 기소 받은 적이 없는 곳이다. 빈틈없이 법의 테두리에 아슬아슬하게 활동했을 것이며, 형성된 커넥션을 통해 정권에 비호를 받았을 것이다.


모색 폰세카는 홍콩, 네바다, 버진아일랜드 등 약 40개 지역에 법적인 자회사 등을 두고서, 이들을 통해 전 세계 곳곳에서 법률활동을 해오고 있다. 글로벌 영업은 고객의 베이스를 넓혀주었지만, 500명이 넘는 직원을 전 세계에 두게 되자, 민감한 정보가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졌을 것이고, 이걸 관리하느라 애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평판관리 업체를 고용해서 그동안 검색어 차단 등에 나섰던 것이고, 지금도 공식 트위터 계정을 활용해서 본인들의 적법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IT 전문가도 두어서 지사의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고, 본사로 데이터를 옮기는 식의 관리도 해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탈탈' 털렸다. 최근 자료나 특정 지역의 자료가 아닌, 40년 치의 전체 데이터가 털린 걸 보면 내부고발자에 의한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스노든 이래, 각종 비리와 불법활동이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내부고발이 다시 한 번 큰 힘을 발휘한 듯하다. 철저한 고발자에 대한 비밀 엄수와 상호 신뢰 등이 제대로 작동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론 각국 수사당국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점이기도 하다.


insider-threat-Jan14-WEB.jpg


개인이 외국에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에 은행과 로펌이 도움을 주고, 대가를 받는 것 역시 불법은 아니다. 그래서 얘들은 요새 되려 당당하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물론, 신용이 생명인 그 바닥에서 이런 큰 실수 하나는 앞으로의 돈줄을 끊었으리라) 계약서가 유출이 되지않았다면, 실소유주문제는 영영 묻혔을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 은행은 범죄자에 한해 금융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있지만(UBS등은 이로인해 대규모 과징금을 받기도 했다), 파나마 같은 조세회피처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실소유주를 꽁꽁 숨겨놓으면, 내부자 고발 없이는 공권력이 수사권을 행사할 여지가 없다.


결국, 개인에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씁쓸함을 남긴다. 조세회피처가 파나마만 있는 게 아니라, 캐러비안에 무수히 많다. 또 미국인 등의 경우엔 거의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는데(일부 정치후원금이 조금 들어간 정도다), 이는 미국인들이 청렴해서가 아니라 미국 내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도 충분히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눈에 드러난 건 빙산에 일각이란 말이다.


청렴을 내세웠던 공청단 출신 시진핑이 이 정도로 부패에 관계돼있다면 중국 공산당 내 태자당(太子黨 : 중국 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은 그간 몇십 조를 해먹었을 것인가. 수십 년간 천문학적 개발자금이 투입된 아프리카 대륙은 어째서 자본 유출이 더 큰 것인가? (대륙에 들어가는 돈보다 흘러나오는 액수가 더 크다. 이는 독재자들이 이 리스트에서 드러난 것처럼 해외에 자산을 옮겨놨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거대한 빙산 아래에 그 답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도 알지 못하고, 파헤치기 힘든 문제들이다. 이런 외로운 싸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노력하는 세계 언론인들과 뉴스타파팀, 그리고 주진우 기자등에게 무한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씻퐈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