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미국을 이길 순 없다. 미국도 이란을 완벽하게 굴복시킬 순 없다. 뒤가 없는 이스라엘은 미친 듯이 이란을 때리고 있지만, 체급이 너무 작다.
결국 답은 하나다. 지상전이다. 하지만 미국이 지상전을 결심하고 이란 본토로 진공하지 않는 이상, 설사 들어간다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뾰족한 해결책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란 역시 미국과 싸워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한다. 결국 미국에게 “드루와!”를 시전하며 지상전으로 끌고 가지 않는 이상, 계속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다.

(노컷뉴스, 링크)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신정체제를 무너뜨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지만, 말은 쉽다. 실제로 가능해지려면 결국 지상군이 들어가 한없이 지지고 볶은 다음에야 겨우 가능성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쉽지 않은데, 이란이 지난 47년간 구축해 온 체제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이다.
보통 ‘레짐 체인지’란 집권 세력을 제거하고, 그 빈자리에 야당이나 비주류 세력을 집어넣는 방식인데 이란은 다르다. 경제, 사법, 행정, 군사 시스템 전반이 신정체제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혁명수비대가 있다. 이란의 지배층, 기득권 세력은 모두 혁명수비대 출신이다. 이란의 군대는 그 지휘부가 혁명수비대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경제의 40% 이상을 움직인다. 양계 사업부터 핵무기 개발까지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체제를 바꾼다? 쉽지 않다. 이렇게 서로 물리고 물린 상황이라면 미국과 이란은 치킨 게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야, 여기서 발 빼. 아니면 너 죽고 나 죽고야.”
전쟁으로는 끝을 볼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들은 협상을 위해 서로의 레버리지를 극단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이른바 ‘압박 카드’를 준비해 언론에 흘리는 방식이다.
이란의 레버리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직전, 바레인에 있던 미국 제5함대가 항구에서 자취를 감췄다. 페르시아만 바깥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이것만 봐도 호르무즈 해협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러니까 호르무즈 해협 안에 머물렀다면 5함대는 그대로 미사일의 표적이 됐을 것이다.

(머니투데이, 링크)
여긴 말 그대로 호구(虎口), 범의 아가리 속이다. 이란과 오만만 사이에 있는 이 좁은 바닷길은 평시에 보면 이렇다.
“그냥 좁은 바닷길이구나.”
하지만 전시가 되면 말 그대로 세계 경제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지역이 된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30%가 이 좁은 해역을 지나간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가 이란 유조선을 공격하면 이란이 고속정을 동원해 이라크의 유조선을 보복 공격하던, 이른바 ‘유조선 전쟁’이 벌어지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결국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미군이 개입했다.
“야이 미친놈들아, 불장난 좀 치지 마!”
실제로 군함이 파견됐고, 그 과정에서 이란 민항기를 F-14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하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당시 이란은 팔레비 시절 미국에게서 F-14를 사서 굴리고 있던 나라였다. 그러니 미군으로서도 ‘이거 전투기인가?’ 하고 오판할 여지는 있었다. 여러모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던 곳이다.

(매일경제, 링크)
왜 위험하냐? 단순하다. 해협이 좁기 때문이다.
“그럼, 오만 쪽으로 붙어서 가면 되지 않나?”
싶지만, 오만 쪽은 수심이 얕다. 대형 유조선은 결국 이란 쪽에 바짝 붙어 지나갈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 보면 해협의 가장 좁은 곳도 39km나 되는 것 같지만, 실제 항로로 쓸 수 있는 구간은 10km 남짓이다. 그마저도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누면 각각 3km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에 기뢰를 깐다? 다 죽자는 소리다.
그럼, 기뢰만 없으면 되느냐, 그게 다가 아니다. 기뢰가 없더라도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배를 돌려야 하는데, 변침하는 그 순간 배의 측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즉 피격 면적이 확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불과 5km 거리에 이란의 해안선이 보인다. 여기서 미사일이나 드론이 날아온다면, 대응 시간은 고작해야 1~2분이다. 군함으로서는 매복 공격당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속도를 높여서 빠져나가면 되잖아?”
싶지만, 앞서 말했듯 배를 돌리는, 방향을 트는 그 순간이 가장 취약하다. 측면이 훤히 노출된 상태인데 불과 5km 떨어진 해안에서 뭐가 날아 올지 모른다는 건, 말 그대로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 속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듯 이 해협 자체가 워낙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란의 기뢰 부설함을 격침시켰다고 고래고래 떠드는 것이다. 이란은 이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쥐고 계속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하루 평균 20여 척의 유조선이 지나가야 정상인데, 이 흐름을 묶어 놓으니, 유가는 요동치기 마련이다. 중국으로 가는 일부 유조선만 어찌어찌 통과하고, 나머지는 인도양에서 발이 묶여 대기 중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입 원유의 90% 이상이 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우리도 목이 타들어 가는 상황이다.

(조선일보, 링크)
미국의 레버리지
미국은 페르시아만 깊숙이 위치한 이란의 하르그섬을 겨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란 본토를 계속해서 타격했지만 별 반응이 없자, 아예 ‘돈줄’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르그섬은 이란 본토에서 25km 떨어진 여의도 약 7배 크기의 섬이다. 이란 원유의 90%가 이 섬을 통해 수출된다. 이란 최대의 적출항인 것이다.

(동아일보, 링크)
이 섬을 공격하는 방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란 혁명 직후 벌어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에도 군사 옵션으로 진지하게 검토됐던 카드다. 다만 파장이 너무 클 것을 우려해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이 위험한 일을 트럼프는 해낸다.
“여기 터트려 버리면, 이란 애들도 움찔할 겁니다.”
대차게 사고 칠 땐 언제고, 트럼프가 내놓은 메시지가 흥미(?)롭다.
“하르그섬 때렸다. 근데 군사시설만 때렸다!”
일단은 선을 그은 셈이지만, 동시에 언제든 ‘진짜’를 건드릴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후 오키나와의 제31해병원정대와 강습상륙함을 중동으로 이동시키는 등, 상륙작전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르그섬이 공격당하자, 이란 혁명수비대는 즉각 반응했다.
“하르그섬 석유 시설을 공격하면, 미국과 관련된 모든 에너지 인프라를 파괴할 것이다.”
이란 정권의 돈줄을 건드릴 수 있다는 신호에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이 공격은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 볼 함의가 많은데, 중국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란 원유의 80% 이상은 중국으로 향한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산으로 ‘택갈이’를 하기도 하고 여러 우회 경로가 있지만 이란 석유가 중국으로 간다는 건 세상 사람 다 아는 일이다. 전쟁 상황에서도 중국행 유조선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1,2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무사히 중국으로 갔다. 이란과 중국의 사이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때 하르그섬을 건드린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의미다.
“어이 중국, 언제까지 팔짱 끼고 있을 거냐? 하르그섬 날아가면 너네도 재미없지 않나?”
중국, 그리고 동맹
뒤이어 공개된 트럼프의 메시지를 보자.

(헤럴드경제, 링크)
“(상략) 바라건대, 지도부가 완전히 제거된 국가에 의해 호르무즈 해협이 더는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인위적인 제약에 영향을 받는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 관련 국가들이 이곳으로 함정을 보냈으면 한다.”
이 말인즉슨,
“야, 우리는 여기서 원유 수입 거의 안 하지만, 여기서 원유 가져다 쓰는 한국,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늬들은 수입자 부담 원칙에 따라 같이 힘 좀 쓰자.”
이 뜻이다. 겉으로는 협력 요청인데 실제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 이란 문제에 개입하라는 중국에 대한 신호
둘째, 미국의 비용과 책임을 동맹에게 전가하는 것
한·중·일·영·프 5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4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중국은 미국의 잠재적 적국이며, 이란 편인 나라다. 그런데 콕 집어 중국을 거론한 이유는, 앞서 하르그섬 폭격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야, 중국아. 언제까지 구경만 할래? 이쯤 되면 너네가 좀 나서야 하지 않겠냐?”
이런 메시지다. 하르그섬을 폭격한 이후, 굳이 석유 시설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것도 일종의 살라미 전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가뜩이나 유가가 불안정한 와중에 석유 시설까지 두들기면 유가를 잡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즉, 군사적 압박과 동시에 판을 완전히 깨지는 않겠다는 신호를 함께 보낸 셈이다. 이것도 일종의 치킨 게임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중국에 함대를 보내라는 요구는 훨씬 노골적인 메시지다.

(뉴스1, 링크)
“야, 이거 해결하자. 이란 놈들이 내 말은 안 들으니까, 네가 좀 나서서 정리해라. 이거 오래가면 너네도 좋을 거 없잖아.”
문제 해결을 사실상 중국에게 떠넘기려는 시도다. 그것도 대놓고 말이다. 이에 중국은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응, 우선 적대행위부터 중단해. 사람 그렇게 패놓고 무슨 대화를 하냐?”
전형적인 거리두기다. 그렇다면 나머지 4개국은 왜 언급했을까.
“저 위험한 호르무즈 해협에 미군 함대 못 넣어! 늬들이 들어가!”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미군 함대가 유조선을 호위하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미군 함대는 10여 척이 고작이다. 하루 평균 20척 이상의 유조선이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 정도 미군 함대로 뭘 할 수 있을까? 결국 동맹국들에게는 말뿐인 것이고, 대중을 상대로는 기만행위다.
결국 사고는 트럼프가 치고, 비용과 책임은 엄한 동맹국에게 넘기겠다는 속내다. 처음에는 이란의 핵 능력 제거와 체제 교체를 말했다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전쟁의 우선순위가 슬그머니 바뀌었다. 핵도, 체제 교체도 아닌 유가 안정이 목표다.
전쟁의 목표가 바뀌면서 부담을 나누는 방식도 바뀌었다. 이제는 은근슬쩍 비용과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가장 위험한 호르무즈 해협으로 들어가는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선다. 미군 함대를 보내는 게 아니라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연합 형태로 이 범의 아가리로 밀어 넣겠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덴만에 파병돼 있는 청해부대였다.
...트럼프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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