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사이드〉(링크)
얼마 전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에 출연한 이승훈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글루타치온, 알부민, 콜라겐 이런 영양제들은 우리가 어떤 식사를 하더라도 탄수화물은 포도당과 과당으로 다 분해가 된 다음에 흡수를 합니다. 단백질은 전부 다 아미노산으로 분해가 되고요. 지방은 지방산으로 분해가 된 다음에 흡수를 해요. 그리니까 우리는 음식을 먹지만 성분으로 흡수를 한단 말이에요.
알부민과 글루타치온과 콜라겐을 먹으면 뭐로 변하냐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그 아미노산 중에 대표적인 성분이 글루탐산이거든요. 글루탐산은 여러분이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MSG, 동일한 성분이거든요. 그래서 조미료를 많이 먹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냅니다. (진행자 폭소) 알부민과 글루타치온을 많이 드시면 조미료를 퍼먹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요.”
MSG 마구 때려 넣은 음식보다 더 자극적인 그의 말은 곧장 뉴스로 퍼 날라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법대는 몰라도 의대라면 여전히 대한민국 1황의 위치가 공고한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 선생님이 인생을 바친 필사의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라도 풀어낸 결과였던 걸까.
아니다.
단백질은 분자 크기가 커서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어서 소화 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야 몸에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중학교 과학 시간에 이미 배웠다.


위의 두 그림은 중학교 〈과학 2〉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
‘알부민, 글루타치온 먹으면 조미료 퍼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는 발언은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지만 논란의 여지 따윈 전혀 없다. 놀랄 일도 아닌, 그냥 익히 잘 알려진 중학교 수준의 ‘과학적 사실’이다. 알부민이 중요한데, 먹으면 분해되니까 진짜 외부에서 넣어줘야 할 땐 주사로 넣는다. 이걸로 끝이다.
진짜 충격인 건 중학교 수준의 과학 상식을 말한 의대 교수의 발언이 ‘뉴스’가 됐다는 거다. 대한민국의 평균 교육 수준이 중학교 수준의 과학 상식을 엎을 정도로 미달이었나. 그렇지 않다. 그럼,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들여가며 소화되면 조미료나 다를 것 없는 것들을 ‘몸 생각하며’ 사 먹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단 말인가.
조미료를 영양제로 만드는 과정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먹는 글루타치온이나 알부민 제품의 표기 사항을 찾아보자. 귀찮으면 네이버 쇼핑 검색을 통해 온라인 상품 페이지에 들어가 상세 페이지를 훑어보면 된다. 식품 유형을 확인해 보시라. 애초에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다. 알부민의 경우 대부분 혼합 음료나 액상 차 같은 카테고리로 등록되어 있고 글루타치온의 경우 기타 가공품 정도다.
식약처에서 인정한 기능성 원료를 사용해야 하는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일반 가공식품은 생산 시작 전후 7일 이내에 지자체에 보고만 하면 된다. 광고 사전 심의도 없다. 오히려(?) 건강기능식품은 광고 사전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건강기능식품에 비하면 진입장벽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올해 1월 기준 제품명에 ‘알부민’이 포함된 식품만 1,190여 개에 달한다.

(일요신문, 링크)
그렇다면 알부민이나 글루타치온은 어째서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가. 먹어서 얻는 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임상적으로 일정하지 않아서다. 특정한 기능성을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이 되려면 ‘1일 섭취량’ 기준과 ‘기능 성분의 함량’이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는데 표준 함량 규격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
먹는 글루타치온 가운데 가장 잘나간다고 할 수 있는, 셀럽에 준하는 유명세를 가진 모 의사의 이름을 건 제품의 상세 페이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일단 자신들이 만든 글루타치온 제품의 공법과 제형을 강조하는 데에 잔뜩 힘을 준다. 먹어서 소화되는 글루타치온의 한계를 반박이라도 하는 듯이. 필름형으로 입안 점막을 통해 흡수되는 글루타치온이 혈중 농도를 유의미하게 상승시킨다는 논문도 제시한다. 논문의 존재와 의미가 허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제품 또한 동일한 결과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커다랗게 ‘SCI급 국제 학술지 등재’라고 써놨지만 그 아래 조그맣게 ‘상기 내용은 브랜드에 대한 설명으로 제품과는 무관합니다’라고 써놨다.

뭐 대단한 공법을 써서 일반 글루타치온 대비 전달력이 우수하다고 크게 써놨는데 그 아래 작게 논문 출처와 함께 ‘상기 정보는 제품과 무관한 원료 및 제형 공법의 일반적 특성에 대한 정보로 원료적 특성에 한합니다’라고 써놨다.

원료에 대한 순도와 배합 어쩌구 하면서 또 큼지막하게 자랑을 해놓고 또 그 밑에 쬐깐하게 ‘본 정보는 제품과 무관한 원료 및 제형 공법의 일반적 특성에 대한 정보로 원료적 특성에 한합니다’라고 달렸다.
죄다 이런 식이다. 뭔가 엄청나게 효과적인 것처럼 써 놓고는 법에 걸리면 안 되니까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쥐구멍을 만들어놨다. 그러니 상세 페이지의 정보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제품과 무관하다. 장난하나?
재밌는 건,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한 이 제품이 법망은 끝까지 피해 가면서 심지어 그걸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상세 페이지 내내 대체 글루타치온이 몸에 어떻게 좋은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우리 글루타치온 제품은 진짜 훌륭한 글루타치온이에요’만 주구장창 떠들다가 체내 글루타치온이 노화에 따라 감소하기 때문에 외부 보충이 필수적이라는 내용만 찔끔 한 토막 들이민다.
그마저 또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상기 정보는 제품에 대한 정보가 아니며, 제품과 무관한 건강 정보입니다’라는 사족을 달아놓는다. 그러면서 ‘권장량보다 많이 사용해도 되나요’라는 자체 QnA에는 자기 제품은 식품이기 때문에 하루 섭취량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맘껏 먹으라는 거지. 어차피 ‘그냥’ 식품인데.
지금까지 얘기한 특정 글루타치온 제품의 경우가 대단히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성분을 알부민으로 바꿔놓고 보면, 차라리 방금 언급한 제품은 먹어서 소화되면 꽝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우리는 입안 점막 흡수라 괜찮다며 나름 (자기 제품과는 무관한) 근거를 갖다 쓰기라도 하지만 대부분의 알부민 ‘혼합 음료’는 그런 것도 없다. 자기 제품과는 무관한 알부민의 건강 정보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글루타치온과 알부민을 불문하고 유명 제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라면 의사나 약사가 자기 얼굴을 내걸고 ‘성분 배합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명을 거론하기는 뭣하니까 알부민이나 글루타치온을 검색해 보시길. 이들의 타이틀은 근거가 빈약한 ‘일반 식품’의 효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대체한다.
온라인 상세 페이지는 어차피 거들 뿐이다. 온라인상에서는 후기를 빙자한 온갖 바이럴 마케팅이 ‘진짜’다. 그리고 제품 효과에 대한 근거는 TV 프로그램이 만들어낸다.

(아주경제, 링크)
먹는 알부민과 글루타치온 가운데 진짜 잘나가는 제품은 홈쇼핑 판매량이 상당하고 방송 빈도도 높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동 시간대 다른 일반 채널에서는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하필이면 그 방송회차는 홈쇼핑에서 판매되고 있는 그 제품의 성분을 다룬다. 출연한 쇼닥터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그 성분이 얼마나 몸에 중요한지 시청자인지 소비자인지 모를 대상을 설득한다. 물론 ‘제품과는 무관한 건강 정보’일 뿐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은 3월 13일, 먹는 알부민 광고가 허위, 기만 표시 광고에 해당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와 식약처에 신고서를 제출했고, 특히 고령자를 주 대상으로 삼는 광고 방식을 문제로 지목했다. 이들은 홈쇼핑의 주 고객층이기도 하다.
위에서도 언급한 그 분, 셀럽 닥터이자 업체 대표이기도 한 그는 이 바닥에서 삼위일체를 이룩하시었다. 제품을 파는 업체 대표이면서, 방송에서는 의학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로 활약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성공한 기업인으로 소개된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든 여러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하던 위법은 아니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 PD나 쇼닥터도 홈쇼핑 채널도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도 위법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힘을 합쳐 조미료를 영양제로 만들어냈다. 중학교 수준의 과학 상식이 뉴스가 되는 데에 기여했다.
‘배우신 분’들은 안전하다
앞서 밝혔듯이 한국소비자연맹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식약처에 신고서를 냈다. 식약처도 이미 작년부터 알부민 광고가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될 수 있다며 업계 협조를 요청했다. 주수호 전 의협회장은 SNS에 글을 올려 의사들이 알부민 광고에 참여하는 것을 공개 비판하며 “의협은 비윤리적인 의사들을 공개 징계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법적 문제가 없다면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일까.
재밌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는 위법 행위가 아니라 ‘도덕적 잣대’에만 어긋나도 아니, 어긋나지 않느냐는 논란만 일어도 커리어가 흔들린다. 뭔 말 한마디 꼬투리 잡히거나 실상 위법 행위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닌 사생활이 논란이 되고 언론은 신나게 논란을 부추긴다. 나락행 급행열차 티겟 발권이 너무나 쉽다. (비교를 하는 것이지 쉴드를 치는 건 아니다)

(청년의사, 링크)
의사는 배우신 분이라 대우가 다른 걸까. 효능 효과가 법적으로 검증되지 않아서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일반 식품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얼굴마담을 해도, 의사라는 자신의 타이틀이 소비자로 하여금 제품의 효과를 믿게끔 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이용된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임에도 논란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의사는 과학의 영역에 서 있는 직업이고 해당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다.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중학교 수준의 과학 상식을 외면한 채 자신의 직업적 위상을 신뢰 자산 삼아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 내 말이 과한가.
하긴, 그런 의사 선생님들도 나름 억울할 수 있겠다.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해당 지식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비전문가를 합법적으로 기만하는 것이 이 바닥뿐이겠냐.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법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금융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금융으로 다른 이를 등치는 일이 여전히,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데.
평생 갈고닦은 기술로 타인을 기만하고 제 욕심을 채우는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사회에서, 조미료는 영양제로 둔갑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의 건강식품 카테고리뿐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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