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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반대가 없으면 틈틈이 만들 예정!>
중동을 이해하는 두 질서
공격받는 테헤란
출처-<게티이미지>
미국,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란과의 충돌은 전면적인 중동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공격과 보복이 이어지면서 전선은 넓어지고, 상황은 날마다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다. 전쟁이 끝날까 싶다가도 어느새 상황은 돌변해 충돌이 더 심해지고, 이후 다시 전쟁이 끝날 것 같은 기대감을 갖는 제스처가 나오는 등의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관심은 어디가 맞았고, 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같은 개별 사건들을 따라가는 데 급급해진다.
하지만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단순히 전쟁의 확대가 아니라, 중동을 지탱해 온 두 질서가 정면충돌했고, 한 질서가 다른 질서를 밀어내는 중이다.
이 두 가지 질서는 중동 정세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두 질서란 다음과 같다.
1. 적을 분명히 설정하고 그 적을 중심으로 국가들을 재배열하는 질서
2. 적대를 인정하되 그것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질서
적대의 질서, 아브라함 협정
우선, 적대의 질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아브라함 협정’이다.
백악관에서 서명한 ‘아브라함 협정’
(왼쪽부터)바레인 외무장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트럼프 미국 대통령, UAE 외무장관.
트럼프 1기 때 맺은 협정이다.
출처-<AP>
2020년 9월, 미국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중동 외교의 흐름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어 같은 해 모로코와 수단까지 이 흐름에 합류하면서,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 국가들 사이에 공식적인 관계가 빠르게 열렸다.
이것이 ‘아브라함 협정’이다. 여러 이슬람 국가들과 (그간 앙숙이었던) 유대교 국가 이스라엘이 잘 지내보자는 이 협정의 이름이 ‘아브라함 협정’인 것은 아랍인과 유대인의 공통 조상이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첫째이자 서자인
이스마엘 계통이 아랍인의 조상이고,
아브라함의 둘째이자 적자인
이삭 계통이 유대인의 조상이다.
이 협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오랫동안 대립해 온 아랍과 이스라엘이 화해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이 협정은 평화, 협력, 번영이라는 언어로 설명됐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서사는 다른 구조를 가리고 있다.
이 협정은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무엇을 중심 위협으로 볼 것인가를 다시 정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중심 위협으로는 이란이 설정되었다.
‘시아파이면서 이란 혁명의 공화정 체제를 수출하려는 이란이 껄끄러운 수니파이자 왕정 체제인 아랍 국가들’
+
‘유대교 국가로서 이슬람 국가의 시아파 맹주 이란을 껄끄러워하는 이스라엘’
vs
이란
이런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8년, 미국이 이란 핵 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중동의 긴장은 다시 높아졌다.
합의가 무너지자, 이란은 제약에서 벗어나 역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핵 개발 가능성까지 다시 열어두게 된다. 이 과정은 다른 수니파 걸프 아랍 국가들에 새로운 불안을 안겨 주었고, 기존의 안보 계산을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예멘,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서 이란의 존재감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적대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아파 벨트
이란을 맹주로 하는 시아파 세력을
나타낸 지도.
초승달 모양이라 하여
‘시아파 초승달 벨트’라고도 불렸다.
(예멘은 수니파 정권이지만, 시아파 반군인
후티 반군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어 내전 상태다.)
이란의 영향력이 이렇게 확대되면서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지금은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시리아의 경우는,
오랜 기간 시아파가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수니파 정권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아브라함 협정은 단순한 외교적 사건을 넘어 하나의 흐름으로 확장된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이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후 모로코와 수단이 뒤따른다. 각국은 경제적, 외교적 보상을 얻었고, 협정은 선언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교환 속에서 연쇄적으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은 단순한 관계 정상화의 연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일부 아랍 국가들과 연결되고, 그 바깥에 이란이 위치하는 새로운 구도가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의 중심적 적대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이란이 공동의 기준점으로 떠오르면서 관계의 축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이란은 점차 지역 질서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완충의 질서, 걸프-이란 데탕트
반대의 움직임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복원이다.
베이징에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뒤,
악수하는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좌)과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우)
아브라함 협정이 있은 지 2년 6개월 정도가 지난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 아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2016년 단절된 이후 7년 만의 복원이었다. 이후 양국은 대사관을 재개하고 고위급 접촉을 이어가며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흐름은 사우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아랍에미리트 역시 이란과의 외교 채널을 다시 열고 접촉을 확대했다. 2019년 이후 점진적으로 긴장을 낮추기 시작한 아랍에미리트는 2022년 주이란 대사를 복귀시키며 관계 정상화에 나섰고, 이후 경제와 안보를 둘러싼 실무 협의를 이어갔다. 걸프 지역 전반에서 이란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사건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 속에서 형성된 선택이었다.
예멘 전쟁의 장기화, 호르무즈해협 긴장, 드론과 미사일 공격 위험의 상시화는 걸프 국가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주고 있었다. 전쟁은 멀리서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자국 영토와 경제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빨간 동그라미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
출처-<구글 지도>
이 조건 속에서 걸프 국가들은 다른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이란을 제거하거나 굴복시키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적대가 격화될수록 우리들이 전장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관계 복원과 긴장 완화라는 방식이었다.
이 흐름은 적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적대를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이란은 여전히 위협으로 인식되지만, 그 위협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된다. 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충돌 가능성을 낮추며, 긴장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는 방식이다. 즉, 관계를 조정하고 긴장을 낮추며 충돌을 늦추는 질서라고 할 수 있다.
걸프 국가들이 가장 원하는 건, 적을 없애는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영토와 경제가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막는 일이었다. 적이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가장 자신들의 영토와 경제를 지킬 수 있는 방식이면 되는 것이었다.
두 질서의 관계
이 두 질서는 서로를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다. 어느 시기에는 이랬다가 다른 시기에는 저랬던 게 아니다. 두 질서는 일정 기간 동시에 존재해 왔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에도 걸프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열어두면서, 이란과는 관계를 끊었던 게 아니다. 이란과의 접촉 역시 이어갔다. 투 트랙을 써가며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은 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간 수많은 역학관계와 갈등을 겪은 중동 국가들이 그 복잡함 속에 선택한 방식이었다.
완충의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서 함께 존재해 온 두 질서는 같은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긴장을 늦추는 방식은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절제, 더 많은 외교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훨씬 유지하기 힘든 일이었다. 반면, 적대하는 방식은 훨씬 단순했고, 한 번 작동하면 빠르게 공간을 넓혀 갔다.

힘들게 유지하고 있던 질서의 균형을 깨뜨린 건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은 충돌을 정면화하는 방향으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 결과, 걸프 국가들이 어렵게 유지해 온 완충의 공간은 좁아졌고, 중동은 다시 적대의 질서 안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이 하나의 행위자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후원이 있었고, 이란의 대응 또한 긴장을 더욱 키웠다. 그러나 이 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질서를 재편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분명 적대를 다시 중심 원리로 밀어 올리는 쪽이 있고, 이번 전쟁은 그 흐름에 따라 공간을 재구성하고 있다.
지금 중동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하나의 합의가 아니다. 전쟁을 늦추고 관계를 유지하던 방식 자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더 단순하고 더 빠르게 작동하는 질서다.
중동은 지금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지고 있다. 유지하기 더 어려운 질서는 밀려나고, 작동하기 더 쉬운 질서가 앞에 나온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새로운 균형이 아니라, 더 선명해진 전선이다.
이 방향은 이제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중동의 질서 구도를 바꿔놓았다. 이런 질서의 근본적 변화는 앞으로의 중동을 이해하는 데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다.

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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