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1,500만을 넘기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3위에 안착하며, 2위인 <극한직업>을 뒤쫓고 있다. (1위는 영화 <명량>)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 당시를 다루며, 구체적으로는 단종과 훗날 단종의 유해를 수습해 준 엄흥도의 이야기 다룬다.
본 연재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스토리와 연결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와 버무려져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각설하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흉지가 된 세종대왕릉
조선 왕실은 42기의 능과 14기의 원, 64기의 묘를 남겼다. 이중 북한에 위치한 2개의 능을 제외한 40기의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능은 왕과 왕후의 무덤, 원은 왕의 사친(생모와 생부) 세자와 빈의 무덤이며, 묘는 왕족과 후궁이나 폐위된 왕과 왕후의 무덤을 말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이야기까지 흘러가게 되는 이 이야기는 조선의 42기 왕릉 중 하나이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능에서 시작된다.
현재 경기 여주시에 있는 ‘영릉(세종대왕릉)’
출처-<궁능유적본부>
조선은 왕이 죽기 전 미리 능 자리를 결정했다. 지관과 신하들이 십여 곳을 추려 올리면, 왕이 그중 한 곳을 정하였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과 원경왕후가 함께 묻혀있는 헌릉(서울 내곡동) 인근을 이미 마음에 두고 있었다.
"수양대군, 안평대군, 예조판서 김종서, 도승지 등에게 명하니 헌릉을 두루 살피고 오라."
조정의 요직에 있는 신하와 당대 최고의 지관 최양선, 세종의 아들들이 함께 헌릉에 도착했다.
"어떠한가? 할바마마가 계신 곳의 인근이니 틀림없는 명당이렸다?"
수양의 물음에 지관은 당황했지만, 대답은 명확했다.
"대군마마! 혈자리가....... 곤방 물이 새 입처럼 갈라졌습니다."
"무슨 말이냐? 알아듣게 말하라."
"절사손장자! 이곳에 묘를 쓰면 장자를 잃어 손이 끓어지게 될 것입니다."
"네 이놈! 그 요망한 입을 닫지 못할까! 내 일전에도 네 놈이 올린 상소를 들어 알고 있다. 이번에는 네 놈의 목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관 최양선은 경복궁이 명당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며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인물이다.
경복궁 전경
출처-<위키피디아>
"대군마마. 전하께서 땅을 살피라 하셔서 그리하였고, 본 것을 사실대로 아뢸 뿐입니다."
"네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네 놈 말대로라면, 이곳에 능을 쓰면 세자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이 아니냐?"
"대군!"
김종서의 제지에 수양이 겨우 말을 그쳤으나, 능 주변의 모든 시선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관 최양선을 엄벌에 처하고, 다른 명당을 찾아야 한다는 신하들의 청이 이어졌으나 세종의 뜻은 분명했다.
"지관은 지관의 일을 한 것이다. 결정은 과인의 몫이다. 아무리 복된 자리를 구한다 해도 선영 곁만 하겠느냐? 더 이상 이 문제로 시끄럽게 하지 말라. 살아서 할 일이 많다."
세종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곳에 묻혔다.
그러나 그 후 세종의 뜻을 따른 적장자 문종은 재위 2년 만에 사망했고, 문종의 유일한 아들인 어린 단종은 즉위한지 3년 만에 왕위를 빼앗기며 죽음을 앞두고 있게 되었다. 풍수지리 때문이든 어쨌든 결과적으로 지관의 말처럼 그 무덤은 조선 왕실 최악의 흉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그 자리가 수양에게는 반대로 최고의 명당이 된 자리였을까? 왕이 될 운명이 아닌 수양이 왕이 되었으니 말이다.
한번 보자.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세조(수양대군)는 보위에 오르고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시지만 취하는 것은 공신들뿐이었다.
그자들은 누구의 공신인가? 백성의 공신이 아님은 분명하다. 왕을 위한 공신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야망은 드높고, 때때로 저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동업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라는 허상을 찬탈하기 위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 역모의 창업자이자 살아있는 왕을 함께 죽여야 하는 살인의 동조자들이다.
어쩌면 그들도 잠들지 못할 것이다. 계유정난의 무고한 죽음은 미리 설계되었고,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였으나, 대의가 없는 살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넘어야 할 파도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곤룡포에 묻은 피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고, 피 냄새를 맡은 또 다른 괴인이 밀려와 권좌를 덮칠 것이다. 괴인이 어린 조카나 동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왕은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왕의 마음을 더 건드리는 것은 두려움보다 선왕의 당부였다.

1935년 모사된 세조 어진 초본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수양이란 군호가 어떠하냐?”
세종은 장성한 둘째 아들의 군호를 수양으로 고치기로 결정했다.
“어찌하여?.....”
“총명한 네가 뜻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
“수양대군은 들어라! 나의 선왕께서는 처남과 형제를 죽이며 조선의 안정을 꾀하셨다. 그런 연유로 내 이리 편하게 정사를 돌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인은 결단코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조선과 백성을 위해서도 절대 아니 될 일이다. 네 군호를 깊게 새기고 살아야 한다. 이는 아들을 위한 아비의 청이 아니라 왕이 내린 지엄한 어명이다.”
“.........”
(중국 은나라 말, 주나라 초기 시절 인물인) 백이, 숙제가 절개를 지키다 죽은 곳이 수양산이다. 세종은 자신을 닮은 세자와 자신의 아버지를 닮은 수양대군 모두를 걱정해야 하는 아버지이자 한 나라의 통치자였다.
세종은 영민한 군주였기에, 사후의 일은 산자의 의지로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걱정을 가슴에 묻어둘 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세종의 걱정은 기우로 그치지 않았고, 계유정난은 창건 오십 년이 안 된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새겼다.
왕이 된 세조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은 상념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침전의 한 구석을 차지한 자가 있다. 그자는 왕의 목숨을 노린 살아있는 자객이 아니라 이미 죽은 현덕왕후(문종의 왕후이자 단종의 생모)였다.
“귀신이 어찌 산 자, 그것도 감히 왕의 침소를 찾았느냐?”
왕의 목소리에 옅은 떨림이 있었지만, 두려움은 방 안에 울리지 않았다. 공간을 차지한 사람은 사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온몸이 피 칠갑이 된 채 짐승을 사냥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장년이 되어서는 천륜과 인륜을 배반하고 보위에 오른 자이다.
그런 이를 마주한 귀신은 말이 없었으나 노려보는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사람은 말 없는 귀신을 곁에 두고 자리에 누웠고, 귀신은 천장에다 자리를 잡았다. 두 존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밤은 깊어 갔다. 왕이 선잠이 들자, 귀신이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을 죽이면, 너의 자식들도 성치 못할 것이다. 내가 구천을 떠도는 유일한 이유이다.”
왕은 잠에서 깨면 어린 상왕을 죽여야 한다는 공신들의 말에 쫓겼고, 잠이 들면 아들을 죽이지 말라는 귀신의 겁박에 시달렸다. 전장에서 일생을 보낸 무사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나, 왕위 찬탈자에게도 왕가의 피는 흐르고 있었다.
‘낸들 죽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때가 이르다. 때가 되면 사람이 말리든 귀신이 붙잡든 내 손으로 그리할 것이다. 할바마마가 아바마마에게 물려준 조선을, 내 아들에게 이 두 손으로 물려줄 것이니. 제발 좀 닥치고들 있어라.’
세조를 향한 암살 프로젝트
침전 밖에서는 집현전 학자들인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승원과 무신 유응부 등이 왕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세종의 남다른 총애를 받은 그들은 왕위 찬탈자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것이 고역이었다.
성삼문은 단종에게 옥새를 건네받아 수양에게 전달하며, 고개들 들지 않은 채 오랫동안 울었다. 왕은 그런 신하를 그저 바라보아야만 했다. 신하가 새 왕에게 옥새를 건네지 않고, 서럽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와 무사에게 조금 이른 기회가 찾아왔다. 명나라 사신이 떠나는 날,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가 별운검(임금의 좌우에 서서 호위하는 2품 이상의 임시 벼슬)으로 서게 된 것이다.
왕의 자리 앞에
두 명의 (별)운검이 보인다.
왕의 양쪽에서 왕의 목을 노리는 두 무사가 (구름이 승천하는 무늬가 새겨진) 칼을 차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마침맞은 복수는 없을 것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줄 것이다. 그자의 목뿐만 아니라 그 밤의 주모자들은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베어버리고, 왕을 다시 모실 것이다."
그러나 매사에 순조롭지 않은 것이 사람의 일이다. 왕이 별안간 별운검을 철회시켰다. 선비와 무사, 마음이 다급한 자와 신중한 자의 의견이 갈렸다.
"칼을 뽑은 이상 피를 보아야 하오!"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란 일이오. 다음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오."
발각된 암살 프로젝트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떨어지는 잎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질은 늦은 밤 장인을 찾아갔다. 그는 다음 기회가 찾아와도 결코 거사가 성공할 수 없다고 여긴 냉철한 분석가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일에 발을 담근 연약한 잎사귀였을까?
김질이 장인에게 말했다.
"역모를 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의 한 마디는 그릇됨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낙태시키고, 역사에 사육신과 생육신을 출생시켰다. 왕은 국문장에 직접 나와 각각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성삼문은 자신의 살가죽이 타는 냄새에 혼미해진 정신을 일깨워 답했다.
"나리.... 나리가 준 녹봉은 일일이 기록하여 우리 집 곳간에 그대로 있소이다. 내 죽거든 부디 굶주린 백성에게 나눠주시오.“
“나는 나리가 아니다. 네가 보필해야 할 왕이다.”
왕은 박팽년의 재주를 아꼈다. 고문으로 넋이 나간 그에게 함께하자 물었다. 박팽년은 그저 고개를 저으며 왕을 바라보았다. 형 집행을 앞두고 다시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가.....?”
그가 이번에는 무심히 대답했다.
"마음이... 그저 마음이 편치 않았소이다."
후대에 그려진 박팽년 표준 영정
박팽년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수레에 여식이 울며 매달렸다.
"괜찮다. 아비는 괜찮아. 다만 네가 걸리는구나. 사내아이들만 죽일 것이다. 너는 고될 것이나 세상을 버리지 말거라."
무관 유응부는 왕을 향해 대차게 소리를 질렀다.
"나리! 쇠가 식었소이다. 더 뜨겁게 달궈서 오시오~!"
세조는 차갑게 식은 자신의 공신들과 손이 델 듯 뜨거운 조카의 신하들을 번갈아 보았다. 인두와 칼로 그들의 몸은 뚫었지만, 정신의 터럭도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왕은 자신이 아니라 아들과 조정을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거열형
사육신은 사지가 찢어지는 거열형을 당하고, 해체된 육신은 저잣거리에 던져졌다. 남겨진 가족은 왕명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했다.
돌을 지난 사내아이의 입에 소금을 채워 넣어 죽였고, 부녀자들은 관아의 노비와 공신들의 첩으로 보내졌다. 전란이 일어나지 않은 한양의 골목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누구도 시체를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먹구름보다 검은 침묵과, 지엄한 왕명보다 무거운 분노가 골목마다 내려앉았다.
그리고 사육신이 죽고 사흘째 되는 날, 거지꼴을 한 사내 하나가 여기저기 뒹굴던 신하들의 사지를 바랑에 담기 시작했다.
이 사내의 정체는 무엇일까?
<계속>

|
필자가 신간을 출간했다.
한국 역사에서 기묘하거나 비주류 이야기를 묶어 낸 책이라고!
역사를 보다 입체적이고 인간적으로 이해해 보고 싶은 독자께 권한다.
당신의 예감이 맞다.
슈퍼팩토리공장장이 말했다.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십쇼...!"
|
|
오십이라는 나이에 전업 작가가 되겠다며 회사를 때려치고 나온 슈퍼팩토리공장장.
이후 각종 글을 쓰며 발버둥 치던 그가, 드디어 방송까지 진출했다. 유튜브 및 IPTV인 Btv에서 방송되는 <역사썰명회>라는 방송이다.
중간중간 재연(?!)도 하는데, 가서 허접한 연기를 비웃는 댓글이라도 남겨주자...!
|
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슈퍼팩토리공장장
제보 및 연재 문의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