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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엄흥도

 

삼촌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

 

사육신은 두 사람 사이에서 끝까지 단종을 향한 충심을 지키며 세조에 저항했다. 세조에게 반역의 깃발을 든 사육신의 운명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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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열형

 

사육신은 모진 고문 끝에 사지가 찢어지는 거열형을 당하고, 해체된 육신은 저잣거리에 던져졌다. 남겨진 가족은 왕명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했다.

 

돌을 지난 사내아이의 입에 소금을 채워 넣어 죽였고, 부녀자들은 관아의 노비와 공신들의 첩으로 보내졌다. 전란이 일어나지 않은 한양의 골목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누구도 시체를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먹구름보다 검은 침묵과, 지엄한 왕명보다 무거운 분노가 골목마다 내려앉았다. 

 

그리고 사육신이 죽고 사흘째 되는 날, 거지꼴을 한 사내 하나가 여기저기 뒹굴던 신하들의 사지를 바랑에 담기 시작했다. 

 

이 사내의 정체는.....?

 

그는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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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

(매월당은 김시습의 호이다)

 

맞다. 사육신처럼 대놓고 저항하다 죽진 않았으나,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위해 일할 순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혹은 붓을 꺾고) 속세를 떠난 여섯 명의 충신 ‘생육신’ 중 한 사람인 그 김시습이다.   

 

 

김시습

 

김시습은 세 살 때부터 한시를 지은 신동이었다. 늙은 정승이 찾아와 시 한 수를 청했다. 정승은 아이에게 늙을 노 한 글자를 내밀었다. 다섯 살 난 아이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붓을 거침없이 놀렸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나, 마음은 늙지 않았다' 

 

늙은 정승의 감탄은 세종의 귀까지 들어갔다. 세종은 다섯 살 난 아이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했으나, 신하들이 만류했다. 결국 김시습은 궁으로 초대받아 신하들만 만났다. 도승지 앞에서 써 내려간 어린 김시습의 시는 아름다웠다. 세종은 비단 오십 필을 하사하며, 장성하면 궁에서 다시 만나자 격려했다.

 

장성한 김시습은 과거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때 조선사 최대 비극 중 하나인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걸 목격한 김시습은 붓을 꺾고 상투를 잘랐다. 유교의 나라에서 인과 예과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왕이 버린 예를 되살리기 위해 김시습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했다. 그는 한강 너머 노량진 언덕에 작은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대들을 따르진 못했으나 편히 살지는 않을 것이오. 바람처럼 흐르다 마음이 이끌면 다시 들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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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역사공원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사육신의 묘역 및 그 일대에 조성된 시립 공원이다.

출처-<연합뉴스>

 

김시습은 삼은각이 있는 동학사로 향했다. 삼은각은 조선을 부정한 고려의 충신 정몽주, 이색, 길재를 모신 곳이다. 김시습은 그 옆에 단을 쌓고 사육신의 제사를 지냈다. 상투를 자른 것에서 그치지 않고 머리를 깎은 김시습은 수행을 위해 길 위로 떠났다. 스님이 되는 것은 유교의 이념이 무너진 조정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그는 팔도를 돌며 백성들의 삶을 체득했다. 

 

유랑의 끝자락에 김시습은 경주의 금오산(남산)에 머물며, 필생의 역작이자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펼쳐낸 ‘금오신화’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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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최초의 한문 단편 소설이었지만, 당대에는 그 의미도 위대함도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낮에는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세계를 천박하다며 폄하했지만, 밤이 되면 필사본이라도 구하기 위해 안달을 부렸다.

 

시대가 담지 못할 재능을 가졌던 김시습은 끝내 세상에 융화될 수 없었다. 이런 김시습과 세조의 공신 오브 공신인 ‘한명회’ 사이에 얽힌 일화가 있다.

 

계유정난 이후, 어느덧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며 늙어가던 한명회는 압구정 정자 위에서 살생부를 만든 지난날을 미화하며 시 한 수를 남겼다.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靑春社稷 白首江湖)

 

여전히 길 위에 방랑의 삶을 살던 김시습은 압구정을 지나다 한명회의 글에서 단 두 글자만 바꾸고 가던 길을 갔다.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네.’ 

(靑春社稷 白首江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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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현대 5차 아파트에 위치한

한명회의 압구정 터

출처-<대한경제>

 

 

세조 ‘이유’

 

영월로 유배 보낸 어린 조카를 떠올리자, 왕(세조)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이제 마지막 한 걸음이 남았으나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왕은 깊은 피로감을 느끼며 동이 틀 무렵에 겨우 잠이 들었다. 

 

조카의 생모이자 자신의 형수였던 현덕왕후가 귀신이 되어 다시 나타났으나, 말이 없었다.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귀신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체념한 눈빛은 아니었다. 천장에서 왕을 내려다보던 귀신은 바닥에 누운 왕에게 피를 토해냈다. 어린 아들의 죽음을 예감한 어미의 피는 짐승의 것과 같았다. 제아무리 대담한 왕이라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피의 질감에 잠이 깨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놀란 티를 내지 않았는데, 문밖에서 다급한 인기척이 들렸다. 

 

“주상전하! 세자 저하가.......”

 

자신을 해치려는 귀신은 두렵지 않으나, 자식을 해코지하려는 미물도 두려운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왕은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정신이 온전히 깨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리가 먼저 움직였으나, 말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왕의 장남인 의경세자는 세종의 첫 손자였다. 문종의 장남 단종은 삼 년 후에나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된 세종은 관례를 깨고 (수양)대군의 가족을 궁에 머물게 하였고, 틈만 나면 손자를 안은 채 궁 곳곳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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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냐? 요 눈매가 나를 쏙 빼닮지 않았느냐?"

 

"그러하옵니다. 주상전하!"

 

"아니다. 자세히 보니 눈매뿐 아니라 온 얼굴이 나를 닮았구나. 허허허~"

 

왕이 당도했을 때 세자의 육신은 이미 맥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왕은 여느 아비처럼 달려가 세자를 안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선 채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핏기가 사라진 세자의 얼굴에 자신이 배반한 아버지와 형님의 모습이 번갈아 스쳤다. 세자는 용모뿐만 아니라 성품도 자신이 아닌 두 사람을 닮았다. 그래서 왕은 세자를 더욱 아꼈었다. 왕은 아들의 늘어진 사지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무덤과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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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은 과거 지관 최양선이 말했던 대로 묫자리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저주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치러야 할 업보일까? 전자라면 아버지 세종의 능을 옮겨야 하고, 후자라면 이것이 마지막이길 빌었다.

 

 

단종 ‘이홍위’와 엄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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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청령포

출처-<연합뉴스>

 

왕은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금부도사를 청령포로 보냈다. 소년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된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육지 안의 섬이자 천혜의 감옥이다. 벽촌에도 한양에서 일어난 도륙 소식은 이미 전해졌다. 

 

소년은 왕의 명이 곧 도달할 것이라 여겼다.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지 처절하게 생을 버텨야 할지 생각은 자주 바뀌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그릇된 일을 수긍해야 하는 처지가 갑갑했다. 

 

“찾아 계시옵니까?”

 

영월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며 관아 일을 하는 호장 엄흥도가 좁은 마당에 들어서며 어린 왕의 생각을 깨웠다.

 

“어서 오시게.”

 

어린 왕은 궁에서 가져온 몇 안 되는 물건을 소담하게 담아 엄흥도에게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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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그간 고마웠네. 돈이 될 만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 마음이니 받아주게. 그리고 오늘부로 발길은 끓게. 곧 한양에서 군사가 올 것이네.”

 

“아니. 이 무슨 갑자기.....”

 

“내 자네 덕에 짧은 생의 마지막이 적적하지 않았네. 좋은 인연이었어. 혹여라도...... 내가 죽은 후에, 내게 일어난 일 때문에 자네의 몸이 나서면 큰 화를 입을 것이네. 혼자가 아니고 식솔이 있지 않나. 나 또한 줄 것이 마음뿐이니 자네도 그저 마음만....”

 

“전하.....”

 

“어허! 이 사람 큰일날 사람이구만. 썩 물러가게.”

 

몇 년 사이 겪은 고초에도 소년의 얼굴에 광채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 말본새는 중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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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음력) 1457년 10월 24일, 그날이 왔다.

 

실록에는 이렇게 전한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도사가 대답을 못 하였다.' 

 

실록의 내용과 다른 말도 소실되지 않고 전해진다. 

 

어떤 이는 어린 왕이 스스로 목을 매었다 하고, 다른 이는 종놈이 활시위로 소년의 목을 졸랐다고 한다. 

 

죽은 왕은 강에 던져졌다. 시신은 눈치도 없이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자꾸 떠올랐다. 한양의 양반들도 멸문지화를 당했다. 벽지의 누구 하나 감히 나서지 못했으나 새어 나오는 울음까지는 가두지 못했다. 청령포에는 밤늦도록 숨죽인 곡소리가 끓이질 않았다. 

 

잠들지 못한 엄흥도는 어린 왕의 명을 어기기로 했다. 그저 눈감고 세월을 강물에 흘려보내면 천수를 누리고 살 것이나, 남은 생 동안 마음이 크게 쓰일 것이다. 엄흥도는 지게를 지고 아들과 집을 나섰다. 의를 행하기 전, 가까운 이들에게 뜻을 전했다. 많은 이들이 만류했지만, 엄흥도의 마음은 단단했고, 강가로 하는 발걸음은 올곧았다.

 

엄흥도는 온몸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죽어버린 소년을 업은 채 산을 올랐다. 마음이 급하여 소년의 목에 감긴 줄을 풀 생각조차 못했다. 정신없이 땅을 팠고 작은 돌무덤을 만들어 예를 다했다.

 

“전하....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참으로 복되었습니다. 다음 생애에는 여염집에서 태어나소서. 그때는 제가 꼭 금강산 유람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엄흥도는 동이 트기 전, 족보까지 태워버리고 자신의 왕이 죽은 나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세조, 천릉을 시도하다

 

세조의 장남이 죽고 조카가 죽임을 당해도 왕실의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왕의 다른 아들인 인성대군의 장남 또한 돌도 지나지 않아 풍질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주검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왕은 손자를 끌어안은 채 금수처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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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외면하려던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번뇌 끝에 답을 얻었다. 그날, 왕은 오랜만에 단잠에 들었다. 어쩐 일인지 피부가 전혀 가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잠에서 깬 왕이 신하들에게 천릉을 논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응은 왕의 생각과 달랐다.

 

"주상전하, 천릉이라니요? 선왕의 능소가 파괴된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그런 무리한 일을 명하시옵니까? 법도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백성의 원성이 더 높아질 것이옵니다.“

 

"절사손장자! 그대들도 그날 지관이 한 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 세자와 세손을 잃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개의치 않다고 말하는 공신들에게 왕이 물었다. 

 

"능소가 파괴되지 않더라도 흉지로 판명이 되면 천릉을 하는 것 또한 법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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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신간을 출간했다. 

 

한국 역사에서 기묘하거나

비주류 이야기를 묶어 낸 책이라고!

 

역사를 보다 입체적이고 인간적으로

이해해 보고 싶은 독자께 권한다.

 

당신의 예감이 맞다. 

 

슈퍼팩토리공장장이 말했다.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십쇼...!"

 

기묘한 한국사 - 예스24

 

 

 

 

오십이라는 나이에 

전업 작가가 되겠다며

회사를 때려치고 나온 

슈퍼팩토리공장장.

 

이후 각종 글을 쓰며 발버둥 치던 그가,

드디어 방송까지 진출했다.

유튜브 및 IPTV인 Btv에서 방송되는

<역사썰명회>라는 방송이다.

 

중간중간 재연(?!)도 하는데,

가서 허접한 연기를 비웃는 

댓글이라도 남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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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임권산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슈퍼팩토리공장장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