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얄 자미르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KRM NEWS, 링크)
“머지않아 IDF(이스라엘 국방군)는 일상적 임무를 수행할 준비조차 갖추지 못하게 되고, 예비군 체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 3월 26일 이스라엘 참모총장 에얄 자미르(Eyal Zamir)
이스라엘군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많은 전문가는 IDF의 영광이 곧 사라질 것이라 예측해 왔으며, 이를 ‘확정된 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기의 문제일 뿐, 조만간 이스라엘의 근간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하마스와의 전쟁부터 이란과의 전면전으로 이어지는 작금의 상황을 두고 군사 전문가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군의 ‘라스트 댄스’가 될 수도 있다.”
국가나 군대가 보유한 모든 자원과 국력을 마지막으로 쏟아부어 운명을 가르는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승부를 시도한다는 뜻의 ‘라스트 댄스’. 즉, 현재의 전력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실패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쇠퇴기로 접어든다는 종말론적 위기감을 담고 있다.
제3차 중동전쟁의 압도적인 승리와 제4차 중동전쟁의 드라마틱한 역전승은 이제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더 이상 현재의 전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어떤 절박함이 팽배해 있다.
“지금이 아니면 이란을 때릴 기회가 없다. 반드시 지금 이란을 주저앉혀야만 한다.”
이러한 위기감이 이번 이란 공격의 핵심 동기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과연 지금 이스라엘군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 군대가 무너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영토는 경상도보다 약간 큰 정도이고 인구는 약 900만 명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인구수가 부족하기에 남녀 공동 징병제를 통해 병력을 유지하는데, 이렇게 부족한 인구임에도 실상 그 징병 과정은 한국보다 조금은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다. 여성의 약 40%를 비롯해 아랍계 주민,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 그리고 신체 및 정신적 장애가 있는 이들은 징병 검사에서 제외된다.

이스라엘 남녀 혼성 전투부대‘카라칼’소속 병사들
(조선일보, 링크)
여성의 탈락 비율이 높은 이유는 남성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이유로 인한 병역 거부 또한 여성에게는 폭넓게 인정되지만, 남성의 경우는 비전투병 보직을 받거나 이조차 거부하면 교도소로 보내버린다.
주변국과 툭하면 전쟁을 치르는 나라치고는 징병 제도가 허술해 보이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며 이스라엘군도 비상이 걸렸다.
“징병 너무 힘들다! 징병 기피가 너무 심각해서 이대로는 군대가 무너진다!”
병역 기피가 너나 할 것 없이 만연해지자 이스라엘 참모총장이 사설탐정을 고용해 기피자들을 색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2008년 개봉한 이스라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이 있다. 1982년 레바논 내전 당시 베이루트 난민촌에서 자행된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이스라엘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세기에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은 21세기 이스라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레바논 내전의 참혹한 기억과 학살의 트라우마를 쫓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이스라엘 사회에
전쟁의 무의미함을 각인시킨 작품.
(중앙일보, 링크)
과거 오사마 빈 라덴은 9·11테러를 일으킨 직접적인 이유 중 하나로 이 사건을 언급했고, 이후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무장 단체 헤즈볼라의 탄생 배경 역시 이 학살 사건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레바논 내전에 참전했거나 이를 목격한 세대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군대에 가고 싶지 않다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과거 3·4차 중동전쟁을 겪은 조부모 세대는 국가의 존립을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당연시했다. 그러나 레바논 내전을 겪으며 전쟁의 참혹함과 자국 이스라엘의 정의관에 의구심을 품게 된 부모 세대의 생각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여기에 현대의 개인주의와 전쟁을 혐오하는 ‘염전(厭戰) 의식’이 더해지며 이스라엘의 병력 시스템은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계점이 온 예비군 체제
문제는 이러한 병력 부족 상황에서 하마스 및 이란과의 전쟁이 터졌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체급이 작기 때문에 단기 결전을 선호한다. 초기에 최대한의 전력을 끌어모아 기선을 제압하고 전쟁을 끝내는 게 이스라엘의 전략이었다. 이스라엘군의 구성을 보면 현역은 28%에 불과하고 나머지 72%가 예비군이다. 사실상 이스라엘군의 주축은 예비군인 셈이다.
이스라엘 병역법상 직업군인 출신은 연간 45일, 현역 복무자는 연간 30일에서 최대 55일까지 동원 훈련을 받는다. 39세 이하 남성과 34세 이하 여성으로 구성된 ‘제1예비역’은 전시가 되면 공수와 기갑, 기계화여단 및 돌격 공병 부대 등 주력군으로 최전방에 투입되고, 44세 이하 남성의 ‘제2예비역’은 보병여단 및 지원 병과를 담당한다.
이스라엘 예비군들이 이러한 고된 동원에 큰 불만이 없는 배경에는 강력한 보상이 있다. ‘국립 보험법’에 따라 훈련 참가자에게는 월평균 임금의 1.5배가 훈련비로 지급되며, 실업자의 경우에도 실업수당에 준하는 비용을 국가로부터 보전받는다. 교통비 면제는 기본이다.

(JTBC, 링크)
그러나 최근 전쟁은 이 보상 체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2023년에 하마스와의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36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했다. 제1예비역은 물론 제2예비역까지, 그야말로 국가의 모든 인적 자원을 긁어모은 것이다. 전쟁 막바지였던 2025년에도 여전히 25만 명이 동원된 상태였다.
이러한 대규모 동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매달 1억 달러 이상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됐다. 재정 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결국 2025년 예산에서 복지, 교육, 의료, 사회보장 비용이 대폭 축소되는 긴축 재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4년 이후 경제 성장률은 1%대로 주저앉았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경제 활동의 주축인 청장년층이 예비군으로 빠져나가면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군사비 지출로 인한 국가 재정 적자가 더해지며 이스라엘 경제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 예비군을 동원해 전쟁을 지속하기에는 경제적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병력 부족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된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과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왔다. 베두인 부대(Bedouin Battalion)를 별도로 편성하기도 하고, 이민자들에게 영주권을 대가로 입대를 권유하기도 했다. 또 전통적으로 비전투 병과에만 배치하던 여성들에게도 전투 병과의 문호를 열었다.

임무 수행 중인 이스라엘 9900부대원들
(now news, 링크)
심지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청년들까지 군으로 불러들였다. 이스라엘 방위군 정보국 소속의 ‘9900부대(Unit 9900)’가 그 사례다. 인공위성과 드론을 활용해 수집된 군사 정보를 분석하는 이 부대에서는 자폐증이 있는 인원들이 배치되어 위성사진 판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3개월 과정의 특수 교육을 거쳐 실전에 투입되는데, 이는 병력 고갈 상황에서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병력 부족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
이스라엘은 1인당 GDP가 5만 달러를 넘어서면서도 합계출산율이 2.9명을 넘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국가다. OECD 평균인 1.5명의 2배에 달하는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출산율 이면에는 ‘하레디’라는 거대한 허수가 존재한다.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유대교 율법에 따라
엄격하게 생활하는 초정통파 유대인 집단, 하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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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링크)
초정통파 유대인인 하레디는 일하지 않는다. 경제 활동 대신 오로지 유대교 경전인 토라에 전념하며 아이만 낳는다. 이들은 국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데, 가구당 평균 출산율이 6.6명에 달한다. 이는 일반 유대인 출산율의 3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현재 하레디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3% 수준이지만, 이들의 자녀 세대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뒤흔들 ‘복병’으로 자라나고 있다. 14세 미만 어린이의 19%, 4세 미만 영유아의 24%가 하레디의 후손들이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30%가 하레디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하레디 남성의 절반가량이 평생 일 한 번 하지 않고 율법 공부만 한다는 점이다. 하레디 여성은 80%가 일을 하고는 있지만 저임금 단순노동에 종사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들 가구의 주 수입원은 정부가 지급하는 아동수당이다. 국방의 의무는 기피하면서 국가 재정에만 의존하는 이 인구층의 급증은 이스라엘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근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군도 이 하레디들을 군으로 끌어오기 위해 어르고 달래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 너희들 종교 인정한다니까. 일과 시간에 경전 공부할 시간도 주고, 랍비 인증받은 그 ‘코셔 (Kosher) 식단’도 보장해 준다니까.”
이렇게 하레디들을 ‘꼬셨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과의 기나긴 협상 끝에 하레디 부대(Haredi Battalion)를 만들긴 했으나, 전체 규모에 비하면 실제 입대 인원은 ‘새 발의 피’였다.

(조선일보, 링크)
전문가들은 이대로 하레디 인구가 늘어난다면 이스라엘의 국가 구조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도 하레디 정당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국정이 휘둘리는데, 이들의 인구가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면 군대는 물론 국가 존립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는 지금, 이란을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비극적인 상황의 중심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있다. 그는 전쟁에 있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만, 하레디 징병 문제만큼은 유독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한다. 연정 파트너인 하레디 정당들은 네타냐후라는 괴물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그를 압박하고 있다.
“하레디의 병역 의무를 영구 면제해달라!”
대놓고 이러한 법안을 내놓는 상황에서 네타냐후는 손발이 묶여있다. 사기 및 뇌물 수수 혐의로 법정에 서야 하는 네타냐후에게 연정 유지는 곧 생존과 직결된다. 하레디 세력의 지지를 잃는 순간 그의 권력은 끝난다.
결국 이란과의 전쟁은 국가 안보라는 대의명분 뒤에 숨은 네타냐후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한 전쟁이라는 의구심을 피하기 어렵다. 전쟁의 이유로 여러 주장이 있음에도 이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권력자 개인의 욕망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이 지금 중동에서 펼쳐지고 있다.

편집: 이현화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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