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jpg

 

초속 300,000킬로미터로 날아오던 빛 알갱이가 그녀의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작고 여린 벚꽃잎을 부여안고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락내리락 춤을 춘다.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이 지천인 4월은 내게 마냥 사랑스러운 계절이었다. 제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의 세계에 엘리엇의 잔인한 4월 같은 것은 없었다.

 

살기 위해 10년 만에 찾은 제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특히 4월은 몸서리치게 아름다웠다. 어딜 가나 하얀 벚꽃잎과 빛 알갱이가 추는 화무(華舞)에 넋을 빼앗겼다. 나 역시 사랑하는 그녀를 부둥켜안고 쏟아지는 벚꽃잎과 빛 알갱이와 함께 춤추는 꿈같은 4월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4월이 지났을까? 그 해도 벚꽃잎과 빛 알갱이의 춤사위를 찾아 이리저리 노닐며 납작하고 조그만 중산간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전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두 개의 숫자가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4·3

 

fdsfsd.jpg

출처 - (링크)

 

마을이 살아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4·3 희생자 유적지 표지들이 마을의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이승만과 미군정이 지도에서 지워버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을의 흔적에는 두 숫자가 묘비처럼 서 있었다. 그 앞에 설 때마다 내 심장도 더 많은 피를, 더 빠르게 뿜어냈다.

 

비극의 장소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간 수많은 사람의 원혼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영험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4·3 희생자 유적지 표지 앞에서 심장이 미친 듯이 나대는 것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읽고 이산하의 <한라산>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날도 4·3 희생자 유적지를 무심하게 지나쳤을 것이다.

 

제주에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광주 5·18의 그림자에 가린 제주 4·3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제주 4·3은 학살자 전두환이 자행했던 광주 5·18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피를 흘린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추악하고 지옥 같은 사건이었다. 이산하의 표현처럼 '학살자 이승만이 만든 가스실 없는 아우슈비츠'였다.

 

제주 4·3이 그렇게 오랫동안 대한민국 국민의 기억에서 철저하게 유리되었던 것은 이승만으로부터 시작된 무도한 독재 정권이 무자비하게 침묵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발설의 대가는 모진 고문, 빨갱이라는 주홍 글씨 그리고 또 다른 죽음이었다.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고, 노태우가 그랬다.

 

허연 뼈가 보일 만큼 시뻘겋게 벌어진 상처를 억지로 소매를 끌어당겨 가리고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라고 강요했다. 상처가 소매에 쓸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껴도 작은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신음이 새어 나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가 고문하고 가두고 범죄자를 만들고 죽이려 했다.

 

sdfsd.JPG

fdsf.JPG

출처 - (링크)

 

박정희 정권 말기였던 1978년 <순이 삼촌>으로 4·3 기억의 일면을 들춘 현기영 선생이 이런 이유로 보안사로 끌려갔다.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살아서 제주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현기영 선생의 <순이 삼촌>이 발표되고 10년 뒤 시집 <한라산>을 발표한 이산하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정권보다 더 무식하고 무도했던 전두환 정권 말기였다. 직선제, 호헌 철폐의 함성이 광화문 광장을 물결치던 그때, 시인 이산하는 현기영 선생의 길을 그대로 밟았다. 그를 잡아들인 권력의 주구(走狗)가 보안사에서 안기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역시 모진 고문을 받았고 검찰과 법원은 그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맞서 싸웠던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삼촌, 형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눈에 띄는 족족 어떻게든 색출하고 모질게 고문했다. 그렇게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제주 4·3을 우리의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다.

 

다행히도, 참 다행히도 그렇게 공고할 것 같던 반동의 역사에도 균열이 갔고 더 이상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매를 걷어 벌어진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우금치 언덕에서, 제주 관덕정에서,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자신과 동지의 흘린 피에 이름조차 씻겨 나갔던 민주 시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바싹 다가온 사신(死神)을 감지하면서도 이름을 걸고 상처를 가린 소매를 걷어 올렸던 현기영과 이산하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비틀거리면서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대한민국 공동체 번영이라는 가치를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C0A8CA3C000001213992E9AA0001940F_P4.jpeg

김대중 대통령이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관련 특별법」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 (링크)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정될 수 없었다. 당시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도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대중 후보의 공약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맥락이 전혀 달랐다. 이회창과 신한국당의 생각은 국가권력이 자행한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제주 4·3 학살은 이승만이 국가 공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했던 사건이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뜻이었다.

 

국민의힘 전신인 신한국당은 지금의 국민의힘처럼 국부로 여기는 이승만의 학살 만행을 스스로 자백하고 국민에게 사죄하고 반성할 유전자를 갖고 있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자기 성찰의 유전자를 가졌다면 지금 국민의힘이 감옥에서 밥투정하는 윤석열을 버리지 못해 쩔쩔매고 있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되고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은 현재의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체현하는, 민주당 당원이라면 결코 버리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표상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노무현 대통령, 제주 4.3사건 공식 사과 [KBS 제주] 3-58 screenshot (1).png

출처 - (링크)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0년 조사 위원회가 출범하였고 2001년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첫 번째 조사 보고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었다. 보고서는 미군정과 이승만에 의해 무려 7년 동안이나 자행된 4·3 학살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로 규정했다. 그 보고서를 받아 든 노무현 대통령은 망설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통령,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국가의 잘못에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국가를 대표하여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대한민국 민주 시민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체현하는, 민주당 당원이라면 결코 버리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표상이다.

 

sdfd.JPG

출처 - (링크)

 

노무현 대통령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는 암흑기가 찾아왔다. 오직 사익을 위해 대통령이 된 악덕 기업주 출신 이명박과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집권하는 동안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대한민국의 법이 아니라 제주도민만을 위한 제주도의 법으로 축소되었다. 이명박, 박근혜는 재임 기간 중 단 한 번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들이 집권한 9년 동안 제주 4·3은 다시 이념 정쟁의 대상이 되었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쓰레기 같은 이론을 주창하며 등장한 뉴라이트들은 이승만을 국부로, 광복절을 건국절로 역사를 왜곡하며 제주 4·3 학살 사건을 제주에서 암약한 남로당 출신 무장대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몰아갔다.

 

fdf.JPG

출처 - <강요배 화백>

 

제주 4·3은 이승만과 미군정이 임명한 일제 순사 출신 경찰들이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관덕정에 모인 제주의 어린아이를 말발굽으로 짓밟고 이에 항의한 도민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며 시작되었다. 목사 한경직의 사주를 받은 서북청년단이 기독교의 사랑 대신 총과 일본도를 들고 점령군처럼 들이닥쳐 제주도민을 무차별 도륙하며 전대미문의 학살극으로 비화했다. 이렇게 자신들의 아버지, 이승만이 시작한 사건을 이명박과 박근혜를 떠받치고 있던 뉴라이트들은 마치 제주도민이 시작한 국가 전복 시도로 둔갑시켰다.

 

다행히도, 참 다행히도 민주 시민들이 독재자의 딸, 스스로 공주라 여기고 대통령 자리를 권좌라 착각하고 앉아 있던 박근혜를 추상같은 대한민국 법으로 탄핵하고 단죄하여 이런 무도한 시도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수권 정당인 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굳건히 지켜 나갔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했던 대통령의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의 예를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 갔다.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다시 대한민국의 법이 되었다.

 

대한민국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민주당의 정체성을 체현하는, 민주당 당원이라면 결코 버리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표상이다.

 

gfdgfd.JPG

233114_236949_054.jpg

출처 - (링크)

 

며칠 전 민주당의 새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해 유가족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하겠다" 약속하는 장면을 보았다. 지금 우리가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민주당이 있었기 때문이며, 자기를 버리고 민주주의의 바른 가치와 민주당을 지키려 했던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능력은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체득한 것이지만,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대통령이 된 것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민주당 당원들과 국민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 때문이라고 떠드는 자들이 민주당 내외부에 출몰하고 있다. 이들은 문재인을 민주당의 기억에서 지우라 요구한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민주당의 기억, 정체성에서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그럴 수 없다. 오늘의 나를 어제와 같은 나로 인식하는 것, 존재의 동질성과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제를 살았던 나의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을 지우는 순간,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될 수 없다. 수소, 탄소, 질소, 산소가 결합한 오직 먹이만 쫓는 유기물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지우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먹이만 쫓는 유기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해 윤석열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5분순삭] 검찰개혁의 시작, 노무현 전 대통령 _검사와의 대화_ _ 댓꿀쇼PLUS 하이라이트 9_4(수) 2-56 screenshot.png

출처 - (링크)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무엇보다 타인을 속이기로 작정한 윤석열과 김건희의 집요한 노력 때문이다. 황소의 껍질까지 벗겨가며 기만과 속임수로 온 국민을 속인 이들의 사악한 집착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보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대 법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깔보던 검사들이 여전히 검찰 조직을 장악하고 검찰 개혁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더 집요하게 따지고 보면, 가린 눈을 씻지 않고 소중한 나의 한 표를 윤석열에게 던지거나 포기했던 이들의 책임이다. 그런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더 살갑게 챙기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현대 민주주의는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벌어진 사태와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이다. 우리 스스로가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지우자고, 문재인을 지우자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재명을 지우자는 이야기와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권력의 그늘로 들어가 이재명을 지우라고 할 것이다. 지금 반명과 친문이라는 누명을 쓴 이들을 향해 친명이라 비난하며 이재명에게 돌을 던지라고 할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주의 4월은 벚꽃잎과 빛 알갱이들이 부둥켜안고 꽃빛 춤판을 벌일 것이다. 그 눈부신 춤사위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에 4·3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다시 찾아오는 평안과 안도를 보게 될 것이다.

 

전쟁과 소음만 없다면 정말 좋은 시절이다.

 

비정기 무이야.jpg

 

 

편집 : 금성무스케잌

마빡 디자인 : 꾸물

기사 : 무이야

 

제보 및 연재 문의 

 

ddanzi.mas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