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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건넨 최초의 격려, 진보적 인간의 의무

 

1987년 6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군사쿠데타와 광주 민중 학살로 권력을 잡은 살인 독재 정권, 전두환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잔인한 폭력으로 권력을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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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한 기사

 

그 국가 폭력의 끝은 서울대생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였다.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 분실의 밀실에서 공안 경찰에게 물고문을 받던 중 질식사했다. 분노한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 타도’를 외쳤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전국적, 전국민적 저항, 6월 민주화 대투쟁이 시작되었다.

 

6월 항쟁.jpg

6월 항쟁

 

대학생이 되어 알게 된 광주 학살의 진실,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고문치사,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독재 권력의 사냥개인 검사와 판사들. 전두환 정권과 체제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의무였다. 

 

당시 20살 청년이던 필자에겐 인간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보다 무자비한 폭력과 투옥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그때, 시위대의 맨 뒷자리에 서 있던 필자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몸이 아닌 글로.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 형량의 과중함을 애소(哀訴)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 유시민 항소이유서(1985년) 中 -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 이 문장 하나가 20살 필자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렸다. 이어진 내용은 이랬다.

 

‘오늘은 군사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민중항쟁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 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유시민 항소이유서(1985년) 中 -

 

지혜롭고 용기 있는 막내 삼촌이나 큰형님이 어깨를 다독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소중한 조언들이 유려한 문장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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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었던 당시 유시민 작가의 모습

 

이후, 항소이유서의 주인공 ‘유시민’은 오랜 세월 대한민국을 장악한 적폐 기득권 세력과 싸웠다. 정치인이 되어 정치 현장에서 직접 싸우기도 했고, 작가가 된 후로는 시민 사회에서 그 싸움을 지속해 왔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오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 앞에 유시민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면 어김없이 나섰다. 그때마다 그는 좌절하거나 불안해하는 민주 시민들을 향해 소중한 조언과 격려를 보내 위로해 주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답답해하는 이들을 위해 가감없는 분석을 전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욕먹고 매도당할지라도.

 

 

40여 년간 보여준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세월은 사람을 바꾼다. 

 

청년 시절 품었던 고귀한 이상은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가족이 생기고 생계의 문제가 닥치며 타협의 대상이 되거나 후퇴하게 된다. 잃을 것이 별로 없었던 청년 시절에 비해 가족, 재산 등 지킬 것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 일관된 삶을 산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이다.

 

이 어려운 삶을 유시민은 지난 40여 년간 살았다. 정치가, 작가, 평론가. 유시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생각할 때 (그가 방송 매체에서 말했듯) 작가가 1번일 것이오, 그 바로 다음이 평론가이지 않을까 싶다.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354회 신경안정제 유시민 가라사대 이번 대선은  “어마어마하게 이겨야 한다” 34-12 screenshot.png

 

유시민이 선택한 진보적 인간이란 곧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활발한 집필 활동과 날카로운 시사 정치 평론 활동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일례로 1988년 그가 대학생 신분으로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지금까지 1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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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 활동만큼이나 돋보이는 것은 평론가로서의 역할이었다. 그의 평론은 단지 현상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진보적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란 시대를 정확히 읽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통찰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 통찰력을 공익, 즉 사회 진보에 사용할 선한 의지, 앞서 말한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의무’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한다. 통찰력 없는 지식, 선한 의지가 아닌 사익 추구를 위한 지식이란 그저 시끄러운 ‘백색소음’일 뿐이다.

 

그의 통찰력과 소명 의식은 정확히 필요할 때 발휘되었다. 

 

2019년,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한 윤석열의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권력의 사적 사용이 극에 달했을 때, 지식인을 자처하는 대부분과 언론임을 자처하는 대부분은 윤석열의 칼춤에 머리를 조아리고 장단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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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민이 가려진 본질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유시민이 검찰의 칼 앞에 나섰다. 그는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그는 여러 방송에 출연했고, ‘알릴레오’라는 유튜브 방송을 만들어 본인 스스로의 채널도 업로드했다.

 

지식인 유시민은 그러한 검찰의 행태를 ‘검찰 쿠데타’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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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릴레오 라이브

출처-<유튜브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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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링크

 

일명 ‘조국 사태’라는 이름의 검찰 쿠데타가 시작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무렵, 대한민국의 거대한 이벤트가 다가왔다. 21대 총선이었다. 

 

21대 총선은 윤석열의 자폭을 이끌어낸 22대 총선만큼이나 중요한 선거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온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검찰 총장 윤석열의 항명과 월권은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문재인 정권이 남은 임기를 원활히 수행하고, 향후 예상되는 윤석열의 검찰 권력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결탁을 막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민주 진영의 압승이 필요한 선거였다. 

 

언어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면 그것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은 민주당의 180석 승리를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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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가 해서는 안 될 가장 위험한 행위인 예언을 한 것이다. 그것도 숫자까지 제시하며. 평론가 유시민에 대한 민주 시민들의 신뢰는 넓고 깊은 것이었다. 민주 시민들은 이 예언을 통해 ‘불안’을 ‘희망’으로 바꿨고, 희망이 가져다준 긍정적 힘은 현실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놀랍게도 민주당은 유시민의 예언대로 정확히 180석을 차지했다. 

 

40여 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지식인 유시민은 작가로서 평론가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우리 사회가 중요한 갈림길에 섰을 때,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가 없이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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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재래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친명 대 친청’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분열의 프레임에 민주당이 위기에 처하자, 유시민은 정치인 분석의 도구 ‘ABC론’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의무를 이행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ABC론’을 들고 나온 이유에 대해 “검찰 개혁을 둘러싼 일들을 보며 지금이 고비라는 느낌이 들었고, 공론장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를 보탤 여지가 있어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라 밝혔으며 “나는 권력자가 아닌 비평가로서 내 말의 논리적 일관성에 책임을 질 뿐”이라 함으로써 이것이 사익 때문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진보적 지식인이자 시민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임을 명확히 했다.

 

 

정파적 이익으로 유시민을 판단하는 사람들

 

이러한 유시민의 삶과 언행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이 있고, 평론가가 있고, 어떠한 세력도 있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정치인들의 언행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분석의 틀로 제시한 ‘ABC론’에 대해서는 그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일 정도로 매우 불편해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수구 적폐 진영이 아닌 민주 진영 내 인물이 다수였다. 정치인이고 평론가이고 할 거 없이.

 

재래 언론들은 실체가 불분명한 ‘친명계’라는 프레임을 가져와 유시민의 평론 활동이 민주당의 내부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진심(?) 어린 걱정을 건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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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문화일보> 링크

 

왜 불편할까. 

 

왜 유시민의 평론 활동이 민주 진보 진영의 일부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일까. 

 

왜 유독 최근의 ‘ABC론’에 대한 비판은 민주 진보 진영 내에서 집중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현상은 본질의 외적 표현이다.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역시 민주 진보 진영의 구성원임을 자처하는 ‘한겨레 21’의 3월 28일 자 기사를 보면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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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링크

 

‘난무하는 정치적 동원, 유시민 ‘ABC론’에 숨은 정파적 셈법’이란 제목이 기사의 모든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정파적 셈법’이란 분석의 틀로 유시민을 판단하고 있다. 

 

한겨레21 김민하.png

 

기사 말미에서는 ‘ABC론 같은 지지층 동원이나 세계관 ‘덮어쓰기’ 목적의 담론에 기댄 무책임한 정치’를 멈추고 ‘사실을 왜곡하고 비트는 정치로 서로 경쟁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라고 충고하고 있다.

 

한겨레는 4월 1일에도 ‘유시민의 ABC론이 무책임한 이유’란 기사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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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링크

 

‘정파’란 정치상의 파벌을 뜻하는 말이다. 즉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 권력 획득을 위해 모인 무리를 통상 정파라 한다. 유시민의 언행을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으로 파악한다면 앞서 말한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민주 진보 진영 내 정치인, 평론가, 정파 등은 유시민을 경쟁 정파의 일원으로 파악하고 있기에 유시민 작가를 불편해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유시민 작가가 망상이라 말하며 사용한 용어 그대로 ‘문조털래유’라는 정파가 실제로 존재해서 그들이 차기 권력을 노리고 있다면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과 한겨레와 같은 재래 언론 등의 모든 발언은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망상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망상일 뿐이다. 잘못된 대전제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올바른 결론을 추론할 수 없다. 유시민 작가를 정파의 일원으로 파악하는 이상 그의 평론에 담긴 참된 의미, 그의 조언이 가지는 자양분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유시민 작가는 이미 오래전에 정치 권력을 떠난 사람이다. 유시민 작가는 7년 전인 2019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토록 명확히 밝혔다.

 

“설령 진보계열이 위기에 몰리거나 그 어떤 상황이 돼도 제가 정계에 복귀할 의무는 없다.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10년의 정치인생으로 의무복무기간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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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인터뷰 기사

출처-<경향신문> 링크

 

유시민 작가는 ‘매불쇼’에서 최초로 ‘ABC론’을 제시하며 자신의 평론을 두고 “호루라기를 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직접 정치를 하거나 선수로 뛰는 것이 아니며, 밖에서 관전하다가 위험하거나 반칙성 플레이가 보이면 경고음을 내는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 또는 심판이나 관객의 입장이라고. 이보다 더 적확한 ‘진보적 지식인’이나 ‘비평가’의 역할을 표현할 수 있는 비유법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유시민의 소명 의식이다. 

 

유시민은 성역이 아니다. 그 역시 비판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를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올바른 비판을 위해서는, 비판이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알고 비판해야 한다. 유시민을 제대로 비판하려면, 먼저 유시민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비평가 유시민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하는 한결같은 삶을 살았다.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민주 진보 진영에 통찰력을 제공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유시민 작가는 3월 26일 방송된 MBC의 '권순표의 물음표'에서 근래 처음으로 자신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삶이 내일모레 끝난다고 해도 그렇게 아쉬울 수 없을 정도로 살았거든요. 지금 제가 예순여덟이니까, 제가 태어난 1959년도에 통계청이 발표한 생명표에 따르면, 신생아 기대 여명이 50년일 때 제가 태어나서 지금 벌써 68년을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냥 사는 거죠. 그러니까 예, 그런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다른 거는 뭐 특별한 게 없어요. 이제”

 

[권순표의 물음표] '화제의 인물' 유시민에게 'ABC론'을 제대로 물었다 47-6 screenshot.png

출처-<MBC ‘권순표의 물음표’>

 

그는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아흔세 살 강순희 할머니의 회고록을 예로 들며 ‘글로 봉사’하는 삶,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으로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해 말했다. 자신의 삶에는 ‘그게 다’라는 말과 함께. 아마도 작가 유시민은 죽는 날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이 받아들인 소명을 수행할 것이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탐험의 끝은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와, 그 장소를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 T.S. 엘리엇의 시, ‘네 개의 사중주’ 中 -

 

우리 사회가 민주와 진보를 향한 탐험을 멈추지 않는다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뒤를 돌아본다면 유시민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낄 때가 올 것이다. 현재 느끼고 있는 것보다 더 크게 그의 소중함이 다가올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글이 유시민 작가께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도 이기적인 필자의 욕심을 담아 부탁드린다. 호루라기 부는 것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민주 진보 진영과 우리 모두에게도 부탁한다. 유시민 귀한 줄 좀 알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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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임권산

마빡 디자인: 꾸물

기사: 인빅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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